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51)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51화(51/203)
051
“······.”
엘프의 숲 관광을 시켜달라는 내 부탁에 프란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녹아버린 초콜릿에 모여드는 개미를 하릴없이 관찰하며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필요한 건 하늘꽃.’
엘프의 숲에서 발견되는 진귀한 꽃이다. 영약으로 만들어 복용하면 마나 증진에 엄청난 효능이 있다.
‘세계수의 열매는······ 당장 구하기 힘들겠지?’
하늘꽃의 효능은 세계수의 열매 비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이나 마찬가지.
내가 아는 한 인간이 세계수의 열매를 얻었던 적은 단 한 번.
하믈 제국의 폭군이 불노불사의 약을 만들기 위해 세계수의 열매가 필요하다며 엘프의 숲 중 하나를 불태웠을 때뿐이었다.
할 마음도 없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하늘꽃부터 찾는 데 집중하자.’
[바리사다]의 시련을 겪으며 ‘미래’의 기억을 되찾았건만, 아직 내 코어에는 외로운 별 하나가 쓸쓸히 존재할 뿐이다.히든 피스를 발견했다 생각하며 익혔던 [무극 마나연공법]. 안전성에 굉장히 중점을 둔 연공법이다. 아마도 ‘코어’를 이용한 마나연공법이 연구되기 시작한 초창기의 프로토타입.
[도서관]에서 그 정보를 찾아볼 수 없게 된 건 세월이 흐르며 ‘기록’이 유실된 탓이지 않을까 추측한다.본론으로 돌아와서.
안전성에 굉장히 중점을 둔 탓에 연공 속도는 솔직히 농담으로도 빠르다고 말할 수 없다.
‘미래’를 알기 전까지는 내 선천적인 마나 감응도가 높은 탓에 다른 이들과 연공 속도와 비슷하게 나왔을 뿐이라는 걸 몰랐다.
다른 걸 익혀본 적이 없으니 알 리가 없었지. 하지만 이제 안다.
만약 내가 외조부가 개량한 [베이른 마나연공법]으로 입문했다면, 지금 내 심장에는 2개의 별이 완성되어 있을 거다.
뭐, 그렇다고 [무극 마나연공법]을 익힌 걸 후회하진 않는다. 왜냐면 ‘미래’의 내가 새로 만들다시피 한 [무극 마나연공법]은 [베이른 마나연공법] 이상의 연공 속도를 자랑하니까.
‘이제야 속도를 좀 내게 되었지만, 그래도 영약은 필요해.’
아까 [마그네트론]을 프란에게 선보일 때도 엄지손톱만 한 크기로 발현된 물풍선에 매우 민망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바리사다]의 마나 증폭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며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그건 회복의 개념이 더 커.’
[바리사다]는 대용량 보조배터리에 가깝다.그릇이 커야 담을 수 있는 물도 많은 법.
감당할 수 없는 양의 마나를 하나의 별에 무리하게 채우려고 하면 그 결과는 정해져 있다.
풍선 터지듯 펑!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프란의 입이 열렸다.
“······ 엘프의 숲을 방문하는 게 꼭 필요한 일이냐?”
“네.”
“뭐 때문에?”
“일단, 하늘꽃을 찾을 생각입니다.”
“하늘꽃? ······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지는 짐작이 간다만, 그건 찾는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야. 내 고향인 세계수의 7번째 가지에는 없을 수도 있어.”
엘프들은 본인들이 거주하는 숲을 세계수의 ○○번째 가지라고 부른다.
그들 마을 중앙에 있는 세계수들은 모두 하나의 뿌리를 공유하기에 그렇게 불린다고 알고 있다.
“없으면 할 수 없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있을 게 확실하다.
‘미래’에서 메어튼 백작가의 상단이 엘프들을 대리해 하늘꽃을 경매에 출품한 적이 있다.
그걸로 6성 기사가 되는 길목에서 헤매던 1왕자가 벽을 넘어 왕궁이 축제 분위기였으니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아, 당연히 2왕자 진영은 초상집이었다.
그런 편법을 안 써도 다 때가 되면 성취를 이루는 법이다. 그러니 여유 있는 1왕자 대신 급한 내가 챙기기로 했다.
“마을 주변은 돌아다니기 힘들 거야.”
“멀리서 구경도 못 합니까?”
“어. 안 돼.”
단호한 프란의 말에 나직이 혀를 찼다.
“그런데, 하늘꽃이 마을 주변에 있으면 어떻게 하죠?”
“뭘 어떻게 해. 얌전히 돌아와야지. 그런데 그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마을 주변에 있으면 분명 발견했을 텐데,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으니까.”
“그거 다행이네요. 언제 출발할 수 있을까요?”
“내가 어제까지 거기 있다 왔거든? 네가 창안한 마그네트론이란 마법의 술식도 좀 자세히 살펴보고 싶고. 한 삼일 정도 뒤?”
“좋네요.”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룬 만족스러운 대화였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프란에게 [마그네트론]의 술식을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그녀가 나도 볼 수 있게 본인이 구축한 술식에 색을 입혔다. 그걸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금방 습득하시네요.”
“그야 이 술식의 바탕을 이루는 건 전부 기초들이니까.”
“그럼 전 가서 쉬고 있겠습니다.”
“어, 어. 그래.”
마그네트론의 술식에 빠져들어 건성으로 답하는 프란.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혹시 황탑주랑 친분 있으세요?”
술식에 집중하고 있던 그녀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있겠냐? 오다가다 얼굴 몇 번······ 그 새끼야?”
“잘 모르시면 됐습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고 자리를 떠났다. 명석한 그녀이니 알아서 해석하겠지.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어이, 세계의 법칙. 이 정도는 괜찮지?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 그렇다고 대답해주는 것 같았다.
***
프란은 에반과 함께 엘프의 숲 초입을 걷고 있었다.
레이나, 아돌, 버논. 에반의 호위기사들이 동행하겠다 난리 쳤었지만.
– 숲지기를 이길 자신 있으면 따라와.
그녀가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엘프의 숲을 지키는 숲지기는 최소 6성 이상의 강자. 그들은 분루를 삼키며 연무장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었다.
프란이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서부터가 세계수의 7번째 가지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이야.”
“별다른 걸 못 느끼겠는데요? 나무들이 조금 커진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나도 가끔 그래. 내가 하프휴먼이라 그런 거겠지.”
인간들에게는 하프엘프로, 엘프들에게는 하프휴먼이라 불리는 프란의 자조적인 미소. 에반은 잠시 입을 다물고 먼 산을 바라봤다.
“어디로 갈까?”
“일단 가장 높은 곳으로 가주세요.”
“높은 곳이라······. 아, 거기면 되겠네. 따라와.”
에반을 안내하던 프란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엘프의 숲을 처음 와봤을 에반의 표정은 한없이 덤덤했다. 누가 보면 동네 뒷산을 산책 중인 걸로 볼 터였다.
‘신기한 녀석이야.’
그녀는 에반을 알아갈수록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건, 가끔 미래를 보는 게 다가 아닐 거라는 것 정도.
‘마그네트론······ 단지 꿈에서 본 걸 재현해본 거라고?’
그럴 리가 없다.
요 며칠 밤을 지새우며 [마그네트론]의 술식을 연구하던 프란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술식에 담긴 에반의 고뇌와 노력의 흔적을 몰라볼 정도로 그녀의 수준은 낮지 않다.
‘발상이 보통 마법사와는 전혀 달라.’
“혹시 지금 숲지기가 저희를 쳐다보고 있지 않아요?”
“어디?”
“저기요.”
에반의 말에 프란은 그가 바라보는 나무를 바라보았다. 진짜였다. 화들짝 놀란 숲지기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 어떻게 알았어?”
“꿈에서 봤습니다.”
엘프의 숲에서 엘프의 피가 흐르지 않는 인간이 숲지기를 발견해? 세 살배기 아기가 화염구를 난사하는 소리였다.
에반은 엘프의 숲에 들어선 순간부터 유령손을 고속으로 움직이며 시야에 닿는 전부를 스캔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의 시야 한구석에는 아이템 취급을 받는 각종 약초의 알림이 갱신되고 있었다. 숲지기도 유령손에 의해 발각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프란으로선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점심을 먹고 한참이 지난 후.
엘프의 숲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도착한 에반은 끝없이 펼쳐진 나무의 바다를 한참 노려보았다.
“그렇게 내려다본다고 뭐가······.”
“저기 있군요.”
“······ 응?”
프란은 에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어디 하나 특별한 구석이 없는 곳이었다.
“······ 진짜야?”
“언제 제가 거짓말하는······ 많이 보셨겠군요. 그런데 진짜입니다. 빨리 캐서 나가죠. 아까 사라진 숲지기가 나타나서 못 가져간다고 억지 부리면 큰일 아닙니까?”
그리고 에반이 말한 장소에 도착한 프란은 하늘같이 투명한 꽃을 발견하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하늘꽃··· 어떻게······.”
“꿈에서 봤습니다.”
저놈의 꿈!
그랬으면 그 높은 언덕에는 왜 올라갔었는데! 그렇게 열을 내려던 프란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더 이상 에반에 대해 고민하는 걸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
“프란 님이 캐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괜히 건드렸다 상하면 큰일이라서.”
프란은 영혼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채집해준 하늘꽃을 받아든 에반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죠.”
“그래.”
둘은 말없이 메어튼 영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엘프의 숲을 빠져나가기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에반이 프란을 불렀다.
“프란 님, 지금 저희 뒤쪽에 숲지기가 다시 따라오고 있지 않습니까?”
“있겠지. 네 꿈에서 봤을 거 아냐.”
“한 마디만 전해주실 수 있습니까?”
“말을 전해달라고······? 뭔데?”
“붉은 별이 뜬 후 하얀 마왕이 강림하거든 메어튼 영지를 통해 저한테 도움을 요청하라고요. 최대한 빨리.”
프란은 이맛살을 구겼다.
딱 봐도 불길한 단어들의 조합. 조만간 큰 재앙이 엘프의 숲에 닥칠 거라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뜻이야?”
“그냥 그렇게만 전해주세요.”
***
어제, 엘프의 숲에서 돌아왔다.
아이라와 티타임을 약속했던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정원으로 갔다. 땅을 박차고 고개를 내미는 새싹들에 이제 봄이 왔음을 실감했다.
아이라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늦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의례적인 인사가 오가고, 근황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니 금방 할 말이 떨어졌다.
슬슬 내가 그녀를 만나자고 한 본론을 꺼내도 될 것 같았다.
“아이라 양. 제가 잠시 외출했던 사이 대공자는 또 상행을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네, 오라버니는 가문을 계승해야 하니까요.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네요.”
“부러우십니까?”
“······네?”
“가문을 이어 메어튼 백작가의 주인이 될 대공자 말입니다. 부러우십니까?”
내 물음에 아이라는 찻잔만 만지작거렸다.
나는 차를 한 입 홀짝 마시며 그녀의 상태창을 살폈다.
[관계 : 신뢰] [인명록]에서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신뢰’ 관계 중 한 명인 아이라. 그 호감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다. 내가 그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다.조금 잔인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이라에게서 어떤 이성적 감정도 못 느낀다. 다른 누군가와 그런 감정을 나눌 수 있을지 의문이기도 하다.
“······ 부러워요. 그리고 미워요. 왕자님에게만 하는 고백이지만, 오라버니가 망나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럼 제게도 기회가 왔을 테니까요.”
아이라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는 그녀의 스킬창을 툭 눌러봤다.
[회계], [측량학], [흥정]······ 상단을 이끌기에 충분한 재목이다. 문제는 대공자 역시 메어튼 백작 가문을 이끌 충분한 상재를 지녔다는 것.내년이면 아이라도 성인이다.
어떤 커다란 계기가 있지 않은 한, 그녀는 향후 3년 이내 어느 귀족가의 안주인이 될 거다.
그게 ‘마력’을 각성하지 못한 일반적인 귀족가 여식의 삶.
“제가 맡기는 일,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 네?”
나를 ‘신뢰’하며 ‘상재’가 있는 사람.
그런 이가 평범한 귀부인의 삶을 살게 할 만큼 내가 어리석진 않다.
“제네센이란 약초가 있습니다. 제가 투자하는 금액으로 작은 상단을 조직해 올가을까지 최대한 많은 양의 수량을 확보해주세요. 웃돈을 얹어줘서라도요.”
“제네센이요? 들어보지 못한 약초인데······ 그걸 어째서?”
나는 차를 홀짝 마시며 쓰게 웃었다.
올겨울, 하믈 제국의 ‘좌한’이란 곳에서 발발하는 지독한 전염병이 전 대륙을 뒤덮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