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52)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52화(52/203)
052
재앙의 2년.
‘미래’에서는 전 대륙을 강타한 전염병이 사그라질 때까지의 기간을 그리 불렀다.
역병의 이름은 붉은별열병.
목 부근에서 일어나는 발진이 꼭 별 모양 같다고 하여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전염력이 말도 안 됐지.’
누군가 한 명이 콜록거리기 시작하면, 이미 마을 사람 전원이 감염되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건강한 ‘인간’이라면 심한 감기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간혹 아무런 증상도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이들만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붉은별열병은 한번 걸렸다가 완치되었어도 언제든 재발하는 위험성을 지녔다.
“제네센을 이용한 신약 개발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치료사가 있습니다. 약이 개발되면 분명 가격이 폭등할 겁니다.”
“치료사요? 혹시 유명하신 분인가요? 부끄럽지만, 제가 그쪽 분야는 잘 몰라서······.”
“물론입니다.”
미래에요, 라는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프란 님도 그렇고, 레이나 경도 그렇고, 왕자님 주변엔 대단하신 분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그 치료사가 내 주변에 없다는 말 역시도.
나는 그저 겸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근데, 그 제네센이란 약초는 어느 지역에서 나는 약초인가요.”
“동부지역입니다. 일부 영지에서는 약초보다는 향신료로 더 많이 사용할 겁니다.”
재앙의 2년이라 불리는 기간에도 이득을 본 인간이 있었다.
바로 2왕자.
남부와는 확연히 체감될 정도로 발병률이 낮았던 동부지역. 그것과 제네센의 연관성을 발견한 한 동부의 치료사.
그런 행운을 바탕으로 2왕자는 하늘꽃을 이용해 6성 기사가 되며 왕위 계승 싸움에서 크게 치고 나가려던 1왕자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다.
왕국의 입장에서는 큰 비극이었다. 일찌감치 마무리될 수 있었던 왕권 다툼이 장기화하고 말았으니까.
“전부터 느꼈는데 에반 왕자님은 정말 박학다식하신 것 같아요.”
“과찬입니다.”
“그런데 신약이 개발된다고 당장 돈이 될까요? 만신전에서 그리 쉽게 허가를 내주지 않는 걸로 아는데······.”
신약을 판매하기 위해선 만신전의 승인이 필요하다. 약을 구매할 사람들의 신뢰 여부를 떠나 로얄티를 챙기기 위해서도 반드시.
그리고 그 과정은 매우 까다롭다.
1~2년 단위는 우습다. 10년 가까이 승인을 못 받은 약들이 수두룩하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금방 만신전이 안전한 약이라고 인정해줄 겁니다.”
의료 시스템이 막 자리 잡으려는 찰나 터지는 붉은꽃열병.
환자를 돌보다 쓰러지는 신관, 치료사들이 무더기로 발생. 당연히 현장은 아비규환이 되어버린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거다. 하루건너 하루씩 지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이 일상이 될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나오게 될 신약.
‘긴급 승인이 떨어질 테지.’
대체 왜 붉은꽃열병이 발발했는지는 소문이 무성하다.
마족이 관련되어 있다.
하믈 제국이 인체실험을 하다 실수로 퍼졌다.
좌한 지역의 누군가 몬스터 고기를 먹은 후 발병했다.
사실은 동대륙에서 건너 온 거다.
.
.
.
진실은 나도 모른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소똥도 요리로 만들어 먹는 놈들의 식성 탓이라고 생각한다만.
– 「진실을 알아내면 네가 나서서 막기라도 하려고?」
– ······.
바리사다의 물음에 선뜻 대답을 못 했던 게 떠올랐다.
– ······ 경고라도.
– 「너 말고도 역병을 경고한 이들이 이미 넘치도록 있지 않아?」
맞다. 이미 역병의 출현을 경고한 성인이 한둘이 아니다.
작년에 신의 품으로 떠난 파투라시트 교단의 성녀도 죽기 전에 붉은별열병의 출현을 예언했다.
– 우산을 든 사람들이 화창한 거리를 걸을 때, 붉은 꽃을 삼킨 이들이 지상을 검은 연기로 뒤덮으리라.
문제는 시간이 지나야 그게 붉은별열병에 관한 예언이라는 걸 사람들이 이해할 거라는 것.
옛날에는 예언들이 왜 하나같이 알아먹지 못하게 비비 꼬는 건지 궁금했었다.
이제 바리사다 덕에 그 이유를 안다.
‘세계의 법칙’을 비트는 행위에서 오는 반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 「세계의 법칙을 우습게 보지 마. 인간의 역사에 기록되지도 않은 먼 옛날. 시각, 청각과 함께 사지가 절단되는 대가를 치르고 도시에 대홍수를 ‘적나라하게’ 예언한 성자가 있었어. 누가 죽고 누가 사는지까지 정확하게. 사람들은 둑을 쌓고 철저히 대비했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 행복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건 짐작이 가는군요.
– 「맞아, 말귀를 잘 알아듣네. 대홍수가 아닌 대기근이 찾아왔어. 근데 더 신기한 게 뭔지 알아? 대기근으로 죽은 사람과 성자가 대홍수 때 죽는다고 했던 사람이 정확히 일치했던 거야.」
– ······.
– 「홍수로 죽게 될 지인들에게만 잠시 도시를 떠나있으라 했으면, 기껏해야 며칠 앓아눕는 정도의 대가를 치렀을걸? 그러니 너도 괜히 나대지 말고, 네가 챙길 수 있는 이득만 챙겨.」
나는 수많은 생명을 외면하는 보상으로 막대한 이득을 챙기게 되겠지.
목이 탔다.
식어버린 차를 한입에 들이켠 후 아이라를 바라봤다.
“선택은 아이라 양의 몫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고민하던 그녀가 결심을 마쳤는지 내 눈을 직시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반 왕자님.”
“후회 없으실 겁니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단언했다.
이제 서부에서 할 일은 다 마친 것 같았다. 광산 개발도 막바지고,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이거 보여? 드디어 마그네트론이 진동하는 과정에서, 마력파에 가려졌던 새로운 파장을 관찰해냈어. 반사판을 만났을 때, 통과해버리는 마력파와는 달리 빛처럼 반사하고 굴절하는 성질이 있어. 이걸 뭐라고 불렀으면 좋겠어?”
“프란 님이 발견하셨으니 직접 지으시죠.”
“안 해. 숟가락으로 힌트를 다 떠넘겨 준 네가 붙여.”
“으음······ 그러면 마이크로파 어때요?”
왕궁으로 돌아온 지 두 달이 지났다.
“이 정도면 호라이즌에서 발표하기 충분하지 않을까요?”
“조금 약해.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더 연구해봐야겠어. 고작 초콜릿을 녹이는 데 쓰이고 말 정도로 끝날 게 아닌 것 같아.”
마이크로파를 관찰해냈으니 마법학회 호라이즌에 대한 걱정은 조금 덜어도 될 것 같았다.
“앨리스! 너 설마 조는 거야?”
“······ 아니요!”
프란의 고함에 구석에서 과제를 풀고 있던 그녀의 제자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입가에 침이 잔뜩 묻어있었다.
‘미래’에서 뇌전의 마녀라 불리던 모습과 전혀 매치가 안 됐다. 그나마 찾아보면 토끼 귀를 가려주는 마녀 모자 정도?
“똑바로 풀어서 가져와. 이번에도 틀리면 내일부터 초콜릿 못 먹을 줄 알아.”
“힝······.”
“나, 잠시 볼일 좀 보고 올 테니까 저 녀석 감시 좀 해줘.”
“알겠습니다.”
나는 앨리스 옆으로 다가가 그녀가 풀고 있던 과제를 힐끔 살폈다.
+ + +
10분 동안 유지되는 1m 길이의 번개 채찍을 만드는 술식을 종이 위에 설계해보시오.
+ + +
‘저렇게 하면 1m가 아니라 1cm짜리가 나올 텐데.’
문득 고개를 든 앨리스가 프란이 나간 문을 바라보다 작게 속삭였다.
“왕자님, 한 번만 도와줘요. 한 번만. 제발.”
여왕삼거리의 저택에서 에메랄드궁으로 두 사람이 이사 오고, 처음 마법 수업을 위해 셋이 모였을 때, 드디어 자기에게도 후배가 생긴다며 좋아했었던 그녀.
하지만 그건 얼마 가지 못했다.
– ······ 너, [춤추는 번개]의 술식을 이해하고 있다고? 3성급 마법을?
– 아, 사용할 순 없어도 이론은 독학했습니다. 프란 님이 연구하던 ‘스텔라’에 대해 조사할 때요.
– 다행이네. 그건 꿈에서 본 게 아니라서.
– 네?
–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이건 어때 [탐식의 불]이란 마법인데······.
– 그것도 이론은 숙달했습니다.
– ······.
몇 번의 수업 후.
– 내가 너를 너무 과소평가했었어. 혼자 독학하는 게 내 수업을 받는 것보다 10배는 빠를 거 같아. 내가 보기에 넌 이미 한 명의 마법사요, 훌륭한 마공학자야. 앞으로는 널 ‘학생’이 아닌 동등한 ‘마법사’로 대우하겠어.
프란은 내게 그렇게 선언했었다.
“왕자님, 스승님 오기 전에 빨리요!”
‘미래’에서 뇌전의 마녀라 불렸던 앨리스 역시 수재. 살짝 힌트만 알려주기로 했다.
“여기 이쪽의 마나회로를 잘못 그렸어. 꺾이는 위치가 좀 이상하지 않아?”
“아!”
스스로 문제점을 이해한 그녀가 눈을 반짝거리며 술식을 그려 나갔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프란이 앨리스가 문제 푸는 모습을 쓱 보곤 내게 물었다.
“가르쳐 준 거 아니지?”
“당연하죠. 저는 내일 일이 좀 있으니 오늘은 일찍 가보겠습니다.”
“그래. 다음 시간에 또 보자고.”
나는 그녀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주고 밖으로 나갔다.
보름달이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프란의 연구실은 에메랄드궁의 구석에 위치한 탓에 침실로 가기 위해서는 정원을 횡단해야 했다.
커다란 나무 옆을 지날 때,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옥! 그옥!”
지드래곤이었다.
저 녀석 덕분에 내가 이 시간에 시종, 호위기사를 대동하지 않고 홀로 돌아다닐 수 있다.
대신 가끔 정원에 누군가의 핏자국이 발견되어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기는 하다. 아, 당연히 핏자국의 주인은 에메랄드궁의 인원 것이 아니다.
사실, 검은 모루 부족을 떠날 때 고민이 많았다. 두고 와야 하나, 데리고 와야 하나.
– 데려가게. 제법 똑똑하다만, 자네가 없어지면 얼마 안 가 우리를 다 잡아먹고 사라질 수도 있지 않겠나? 최소한 년 단위로 지켜봐야 안전한지, 아닌지 판단하지 않겠나.
족장 길루드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내 옆에 두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것 같았다. 이래저래 녀석이 활약해 줄 일도 있고. 다음 문제는 어떻게 데려오느냐.
그건 길루드와 프란이 간단히 해결해줬다.
크기를 최소로 줄인 지드래곤이 몸을 공처럼 말았을 때 들어갈 안락한 강철 상자를 만들고 강력한 잠금, 보안 마법을 걸었다.
이동용 케이지를 만든 셈이다.
열차, 마차에 실어 왕궁으로 데리고 온 녀석을 무사히 에메랄드궁의 정원에 풀어놨다.
물론 말썽이 없었던 건 아니다.
열차역에 생각지도 않던 마중을 나와 있던 밀로아. 그녀가 지드래곤의 케이지를 보고 눈을 빛냈었다.
– 저 수상한 상자는 뭐죠? 왕궁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품은 철저한 검색을······.
– 내가 올해 열릴 호라이즌에서 발표할 연구자료가 봉인된 상자야. 절대 손대지 마. 죽어도 책임 못 지니까.
– ······ 그렇군요.
프란의 도움으로 깔끔하게 해결.
“그오! 그오!”
“간식 달라고?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봐.”
나는 [만물상]에서 녀석이 좋아하는 메어튼 산 철광석을 5개 구매했다.
쩍 갈라진 유령손에서 투두둑 떨어진 주먹만 한 철광석들이 녀석의 입으로 쏙 들어갔다.
“그오오오!”
입안 가득 철광석을 담은 녀석이 다시 땅속으로 몸을 감췄다. 강아지가 뼈다귀를 들고 집으로 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저 녀석도 자주 보다 보니 징그럽다는 느낌이 거의 안 든다. 가끔은 귀여워 보일 때도 있다.
특이한 애완동물을 기르던 이들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침실에 도착하니 알폰소가 대기하고 있었다. 궁 밖에서 일 좀 본 뒤, 적당히 놀고 오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왔다.
“내일 복귀 아니었어?”
“아, 심심하더라고요. 그냥 일찍 왔습니다.”
“넌 왕궁이 재밌어?”
“하핫.”
간단히 씻고 침대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그래서 오스틴이 북부해방군 반응은 어떻대?”
“끝내줬답니다. 흰쌀밥을 먹고 눈물을 흘리며 왕자님께 충성을 맹세하는 이들이 속출했답니다. 아, 물론 밥 먹을 때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마정석 광산에서 발생한 첫 수익이 수중에 들어왔다. 아이라에게 쌀을 좀 사서 북부해방군에 보내라 했었다.
원래 사람이든 마수든 밥 잘 주는 사람이 최고인 법이다.
“아! 그리고 이번 국무회의에서 왕국이 북부해방군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게 꼭 부탁드린답니다.”
“그걸 말하려고 휴가도 반납하고 일찍 온 거야?”
“하핫.
침대에 일어난 나는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환한 보름달을 바라보며 곧 있을 전쟁을 상상했다.
국무회의.
왕국의 수뇌부가 모여 주요 정책 이슈와 사안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회의. 칼 대신 혀와 펜으로 싸우는 치열한 전장.
내일, 나의 첫 출전이 있다.
에메랄드궁의 유령왕자라 불리던 5왕자 에반 리오넬이 드디어 정계에 공식적으로 데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