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54)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54화(54/203)
054
나는 외무부 장관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도 나비효과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였다. 4왕녀가 제국 뚱땡이와 약혼하는 데 큰 공을 세워 벼락출세했다고 들었다.
‘미래’에서 4왕녀는 1왕자 진영의 방해로 제국으로 시집가지 못했었다. 그로 인해 중앙정계에서 밀려났어야 할 인간이 지금 저 자리에 있었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나와 외무부 장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곧바로 달려들어 물어뜯으려는 하이에나 떼를 보는 것 같았다.
“제국과 왕국 사이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고 하셨습니까?”
입을 엶과 동시에 [도서관]에 입장했다.
┕ 최근에 일주일 사이, 하믈 제국군이 리오넬 왕국에서 벌인 만행을 알려줘.
“그렇습니다! 4왕녀님의 약혼 덕분에 하믈 제국과의 마정석 무역이 재개되었습니다. 무려 6년 만의 일입니다. 그동안 저희가 마정석 수급 문제로 얼마나 골머리를 썩였습니까.”
그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지니가 작성하는 내용들을 빠르게 곁눈질했다.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그중에서 외무부 장관을 물어뜯을 가장 날카로운 송곳니를 골라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6년 만에 재개된 마정석 무역이라······ 물론 축하할 일입니다. 그런데 외무부 장관님. 그래서 그 무역이 중단될까 두려워 삼 일 전, 제국군이 국경과 인접한 스토크 자작령에서 벌인 만행에 대해서 함구하신 겁니까?”
“······ 네?”
“설마 모르시는 겁니까? 국경을 접하고 있는 스토크 자작령의 작은 마을에 살던 여인과 아이들이 제국군에게 납치되었고! 그중 상당수가 이미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버렸는데 말입니다!”
– 저런 일이 있었어?
– 나도 못 들었는데?
– 저 정도면 신문에 실릴만한 소식 아니야?
술렁이는 회의장.
옆에 있던 베르트 의원도 처음 들었는지 눈빛이 싸늘해졌다.
당연한 반응들. 지니가 알려준 바에 의하면 오늘 아침 북부해방군이 생존자들을 구출해내며 [도서관]에 업데이트 된 따끈따끈한 정보였다.
쾅!
나는 책상을 강하게 내려치며 일어섰다.
외무부 장관, 그리고 밀로아를 바라보며 날카로운 비수들을 거침없이 뱉어냈다.
“그 생존자들을 구해낸 게 바로 북부해방군입니다! 곧 왕도 바로나에 그 사건이 실린 신문이 길거리를 돌아다닐 겁니다. 자국의 외무부 장관이! 발생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사건을! 그걸 해결한 게 바로 북부해방군이란 말입니다! 어찌 그들을 단순한 산적, 열차 강도 따위에 갖다 댈 수 있냐 이 말입니다!”
“그, 그게······ 아,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일로 마정석 무역에 누가 될 수도 있는 항의를 한다는 것이······.”
콰앙!
나는 다시 한번 책상을 내리쳤다.
“그런 일? 지금 그런 일이라고 하셨습니까! 하믈 제국에게 마정석을 구걸하는 것이! 왕국민보다 중요하다 이 말씀이십니까? 지금 그게 왕국의 외무부 장관이란 분이 할 소리입니까!”
“······.”
외무부 장관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안다.
속으로 ‘그렇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란 걸. 저 인간뿐만 아니라 국무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이 그럴 테지.
“그래서 외무부 장관님은 어느 선부터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제국군이 평민이 아닌, 귀족을 건드렸을 때? 아, 그러고 보니 제국의 황족이 메어튼 백작가의 여식을 희롱한 사건도 흐지부지 넘어갔었군요. 최소한 작위를 가진 귀족을 건드려야 움직이시겠군요?”
더 몰아칠 수도 있었지만, 관두기로 했다.
첫 국무회의다.
상대의 심장에 비수를 박아넣는 건 죽일 놈, 살릴 놈을 명확히 구별해낸 후이다.
“······ 제가 잠깐 실언했습니다.”
외무부 장관이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하이에나 같은 눈빛을 하고 있던 이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내 눈을 슬쩍 피했다.
외무부 장관이 당하는 걸 보고 다들 나서서 좋을 게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나는 밀로아 백작을 바라보았다. 졸병은 정리되었으니 이제 장수를 상대할 차례였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왕국민을 사랑하시는 5왕자님의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스토크 자작령의 납치된 사람들을 구조한 북부해방군의 행동에 왕국의 대신으로서 감사를 표합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북부해방군이 왕국의 상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줬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막대한 피해라······.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나와 밀로아의 시선이 교차했다.
어떤 사례를 뽑느냐에 따라 내가 선택할 무기의 종류가 결정된다. 그걸 알고 있을 게 분명할 그녀가 신중히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2년 전, 로스일드 자작가의 상단이 북부지역을 지날 때 북부해방군의 습격을 받았죠. 재산상의 피해를 떠나 당시 아무런 죄가 없던 이들이 여섯이나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심지어 그중 하나는 곧 결혼을 앞둔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죠. 그들 역시 소중한 왕국민 아닙니까, 5왕자님?”
입맛이 조금 썼다.
사람 다섯 명이 모이면 그중 한 명은 쓰레기라는 말이 있다. 북부해방군 역시 마찬가지. 선을 넘는 짓을 해버린 놈들이 존재했었다.
왜, 마족과의 계약을 시도하려던 미친놈도 있지 않았던가.
오스틴과 알폰소가 그런 이들에게는 예전에 자체적으로 단벌을 내렸다 하지만, 그들의 소속이 북부해방군이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런 놈들 때문에 왕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북부해방군이 범죄자 집단과 동일시 취급되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일단 밀로아가 찌르고 들어온 공격을 어떻게든 막아내야 하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 북부해방군의 습격 당시 사망한 로스일드 자작가의 상단 인원들이 남에게 숨기고 있던 비밀. 가격 상관하지 말고 알려줘.
잠시 생각하는 척, 고개를 위로 올리고 지니가 알려주는 정보들을 빠르게 훑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을 그러고 있자 밀로아가 나를 찾았다.
“5왕자님? 왜 말이 없으시죠?”
아까 다섯 명이 모이면 그중 하나는 쓰레기가 있다고 했던가?
죽은 상단 인원은 6명이었다.
고개를 내리고 밀로아와 눈을 마주쳤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도 그에 화답해 입꼬리를 살짝 올리자 그녀가 움찔했다.
“밀로아 백작님. 아무런 죄가 없는, 결혼을 앞둔 전도유망한 청년이 목숨을 잃으셨다 하셨습니까? 설마 그를 단순한 상단의 직원이라고 알고 계셨던 겁니까?”
“······ 네?”
밀로아 백작은 유능하다.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나도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부하들이 모두 유능할까? 정녕 나라를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 그런 이들만 존재할까?
단언할 수 있다.
‘그럴 리가 없지.’
대충 구색이라도 갖추며 일하면 다행.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보고 자체를 안 하거나, 보고하더라도 꺼림칙한 내용은 누락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거다.
중앙정계에 별다른 영향력이 없는 남부의 자작 가문이 운영하는 상단, 그들이 흉흉한 서북부 국경지대에서 북부해방군의 습격을 받았던 사건.
그걸 조사했던 이들은 한직으로 밀려나 있던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과연 제대로 된 수사를 했을까?
“그 청년은! 국경 부근에서 활동하는 제국 노예상의 끄나풀이었습니다! 하믈 제국의 침공으로 부모를 잃고 길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빵 한 조각으로 꼬드겨서! 제국에 팔아먹는 노예상 말입니다! 북부해방군은 그에 합당한 단죄를 내렸을 뿐입니다!”
“그, 그런! 증거가 있습니까!”
“시간을 조금 주신다면 당시 북부해방군이 입수했던, 그놈이 소지하고 있던 장부를 가져다드리죠. 평범한 장부인 척 교묘히 위장하고 있지만 밀로아 백작님은 그게 노예로 팔려 간 아이들의 기록이란 걸 금방 파악하실 겁니다.”
“그 장부가 진짜란 걸 어떻게 증명하죠?”
나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전생에 차가 급발진해 담벼락을 들이받았었던 내게 급발진임을 직접 증명하라는 개소리를 들었을 때만큼 짜증이 났다.
“그걸 왜 제가 해야 하죠? 증거를 요청하셨고, 저는 증거를 제출하겠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진위까지 제가 하라는 겁니까, 지금?”
“······.”
밀로아가 입술을 달싹이다 결국 입을 닫았다. 아마도 다른 다섯 명은 무슨 죄가 있냐고 물으려다 만 것이 아닐까 추측되었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노예상의 끄나풀 놈 말고 다른 5인은 죽일 놈 소리를 들을 정도의 악행을 한 적이 없었다.
사람이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올 수 없기에 이리저리 갖다 붙이면 죽어 마땅했던 인간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망자를 욕되게 하는 일은 가급적 하기 싫었다.
“······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던 사건으로 북부해방군을 욕보인 것, 나중에라도 그들에게 사과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밀로아는 입을 닫았다.
그녀의 눈빛에서 더 물고 뜯고 싸울 수 있지만, 여기까지 하자는 메시지를 읽었다.
나도 적당한 선에서 그녀의 휴전 협상을 받아들였다.
“제가 전달해 드리죠.”
“······ 쯧.”
그녀가 작게 혀를 차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이제 최종 보스만 남은 건가?
나는 시선을 2왕자와 클리앙에게로 돌렸다. 둘은 아직도 속닥거리며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클리앙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2왕자는 의자에 편하게 기대며 뒤에서 관망하는 자세를 취했다.
“저는 북부해방군을 딱히 나쁘게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분명 왕국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그걸 다들 알고 있었으니 그동안 ‘토벌’되지 않은 것이겠죠.”
거슬리지만 이래저래 쓰임은 있고, 나서서 토벌을 주장하면 욕만 잔뜩 처먹는 상황이 북부해방군이 여태까지 이어져 온 이유였다.
“그렇다고 북부해방군을 왕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제국과 있었던 협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맞는 말이긴 하다.
국경지대를 넘나들며 게릴라를 펼치는 집단이 왕국이 인정하는 민병이냐 아니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또한 그동안 그들 때문에 피해를 봤던 이들은 어찌 달랜단 말입니까? 밀로아 백작이 잘 못 알고 있던 노예상의 끄나풀 말고 선량한 왕국민이 피해를 본 일 역시 상당히 존재할 겁니다. 아닙니까?”
하나하나 틀린 걸 찾기 힘든 말. 대놓고 반대하지 않고 조곤조곤 따지고 드니 오히려 섣불리 입을 열기가 힘들었다.
“제가 말했던 문제점들을 해결할 방법은 생각하시고 안건을 올리신 건지 궁금합니다, 베르트 의원님.”
그렇게 말을 끝맺은 클리앙의 시선은 베르트 의원이 아닌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일단 지껄여보라는 듯한 눈빛.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먼저 첫 번째, 제국의 반발이 있을 거라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저게 무슨 소리야?
– 제국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
술렁이는 회의장.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 마법사가 조종하는 골렘이란 소문까지 있는 클리앙. 그도 눈가를 살짝 꿈틀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나는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해산시키죠, 북부해방군.”
말을 하면서 새 이름을 뭘로 해야 할까 잠깐 고민했다.
북부결사대?
북부수호대?
하여튼.
정당······ 아니, 집단이 문제가 되는 거면 간판을 갈아 끼우면 될 일이었다. 전생의 삶이 내게 큰 도움을 주는 발상이었다.
리오넬 왕국에선······.
– 무, 무슨!
– 지금 설마 북부해방군을 해산시키고 다른 집단으로 새로 만들자는 소리야?
– 그런 말도 안 되는 발상을!
달걀을 세우려면 깨트려서 세우면 된다는,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