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59)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59화(59/203)
059
베록은 리오넬수호군 백인대와 함께 계곡이 흐르는 야산에 매복해있었다.
콸콸콸, 거센 물소리 덕분에 나뭇잎 부스럭거리는 소리 정도는 눈치챌 수 없는 좋은 지형이었다.
그는 지도에서 현 지점을 가리키며 지시를 내리던 5왕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 쌍둥이 해적단의 부선장 놈과 그 직속 수하들이 이 계곡을 통과할 겁니다. 백인대를 이끌고 매복해있다 놈들을 처리하세요.
5왕자가 신통방통하다는 건 3기사단 인원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다.
지나가다 툭툭 던져준 그의 말에 사기당할 뻔하다 구제받은 예비단원, 좋은 인연을 만나 솔로 부대를 탈영한 선임 기사 등등.
처음엔 기를 쓰고 5왕자와 얽히는 걸 꺼리던 3기사단 인원들.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5왕자가 나타나면 슬그머니 그의 주변을 맴돌며 검을 휘둘렀다.
‘진짜 이리로 올까?’
그래도 베록은 아직 반신반의 중이었다.
그는 대검에 손을 가져갔다.
‘이건 대체 어떻게 가져온 거지?’
그의 애검을 깨트렸던 5왕자가 나중에 미안하다며 임시로 사용하라고 건네준 대검이었다.
부서져 버린 애검보다야 당연히 못했지만, 임시로 사용할 물건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대검이었다.
무엇보다 베록을 놀라게 한 사실은.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있는 대검이 아니야.’
그의 고향인 서북부, 바이든 자작령의 대장간에서 만든 대검 같다는 것. 동부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더 황당한 건 리오넬수호군의 간부, 드레이크도 두 동강이 난 그의 도끼와 비슷한 양식의 도끼를 임시로 사용하라고 받았다는 것.
베록이 알기로 그건 북부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도끼였다.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설마 처음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건가!’
자신의 대검과 드레이크의 도끼가 망가질 걸 생각해 동부로 올 때 챙겨왔다는 이야기였다.
즉, 집결지에서의 둘은 5왕자의 손바닥 위에서 그가 바라는 재롱을 부렸다는 것.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말이다.
베록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급 담배가 당겼다.
개념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듣지만, 작전 중에 담배를 태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품에서 마력초를 꺼내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마을이 나온다!))
((잠시 뒤면 야들야들한 계집들을······ 크크크.))
거센 계곡 물소리를 뚫고 앵알앵알거리는 아르야어가 들려왔다.
‘진짜 왔어!’
베록은 씹고 있던 마력초를 뱉어내고 대검에 손을 가져갔다.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줄도 모르고 해적 놈들이 계곡을 건너기 시작했다.
***
해적 소탕을 위해 나눈 팀 중에서 가장 강한 전력을 보유한 건 당연히 내가 속한 곳이었다.
나.
세 명의 호위기사.
베록.
리오넬수호군의 세 개 백인대.
······ 덤으로 알폰소.
나를 제외해도 5성 기사 둘에 4성 기사 둘, 거기에 마법사가 포함된 삼백 명의 리오넬수호군.
당연히 나는 [도서관]을 통해 이동 경로를 확인한 해적단 중에서 가장 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놈들을 처리하러 왔다.
300명이 넘는 규모의 쌍둥이 해적단.
어릴 때부터 강도, 살인, 방화 등의 강력범죄를 밥 먹듯이 해온 쌍둥이가 만든 해적단으로 선장, 부선장 두 명 모두 5성급 해적.
어지간한 남작 가문 급의 전력을 보유한 해적단이다. 정면에서 충돌하면 리오넬수호군의 막대한 희생이 불가피한 상황.
하지만 내가 바보도 아니고, 정면에서 놈들과 맞붙을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협곡을 들어오고 있는 선장 이하 300명가량의 해적놈들을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다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베록이 부선장 놈이 이끄는 해적들을 덮쳤겠군.’
트러블메이커 기질이 농후한 베록은 팀을 맺어줄 인원이 마땅치 않아 그냥 내가 데려왔다.
그래도 리오넬수호군 병사들을 해코지할 인간은 아니란 걸 알고 있다. 백인대와 함께 매복해있다 쌍둥이 해적단의 부선장을 처리하라 해놓은 상태.
쌍둥이 해적단 놈들이 모두 협곡에 들어온 걸 확인한 나는 옆에 있던 알폰소에게 고개를 돌렸다.
“알폰소, 신호탄을 쏴.”
“넵!”
피융- 파앙!
알폰소가 쏘아 올린 신호탄.
협곡을 통과하고 있던 놈들을 향해 기름통과 함께 마법사들의 화염 계열 마법, 그리고 불화살이 퍼부어졌다.
쇄액- 쇄액- 콰앙!
화르르륵!
((커억!))
((적습! 적습이다!)
기습을 전혀 상상하지 못해 척후조차 세우지 않았던 놈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살려줘!!))
((불이! 크아아악!))
((뜨거워! 끄아아──!))
일방적인 불놀이.
해적 놈들이 타들어 가는 불쾌한 냄새가 협곡을 가득 채웠다. 언제나 먼저 공격했지, 당해보지 않은 놈들의 최후였다.
나는 놈들의 비명과 화염이 조금 잦아들어서야 천천히 협곡을 내려갔다. 기사들이 혹시라도 있을 공격에 대비해 나를 삼면에서 보호했다.
쌍둥이 해적단의 선장은 살아있었다.
((네놈들······.))
마력을 이용해 불길을 차단한 덕일 테지. 그래도 전신이 그을리고 여기저기 심한 화상을 입은 데다 팔뚝에는 화살도 박혀있었다.
뭐,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떻게, 어떻게 우리가 여기를 지나가는 줄 알았지. 동생밖에 모르는 일인데······ 설마 녀석이 배신을!))
앵앵거리는 듯한 아르야어.
너무나도 궁금해하는 것 같아 놈들의 언어로 대답해줬다.
((일기를 쓰는 건 참 좋은 취미야, 그렇지?))
((?))
이해를 못 한 표정이었다.
하긴, 방금 한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건, 내가 [도서관]을 통해 놈이 일기에 적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는 걸 아는 바리사다뿐이다.
선장 놈은 자기를 놀렸다고 생각한 건지 안 그래도 화상으로 울긋불긋했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버렸다.
((개새끼가!!)
놈이 몸을 일으키고 언월도를 손에 들었다.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려는 레이나. 나는 그녀를 제지했다.
“왕자님?”
“내가 처리합니다.”
((같이 지옥으로 끌고 가주마!))
휘우웅─!
땅을 박찬 선장의 언월도가 스산한 검명을 토해냈다. 나는 [바리사다]를 뽑았다.
우우우웅──!!
((!!))
하울링, 검사에 둘러싸이지 않고도 울리는 검의 노래에 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웬 사술이냐!!))
어느새 코앞까지 달려든 놈이 언월도를 사선으로 베어왔다.
에반식 리오넬 제왕검술 2초식.
‘하늘 베기.’
샤아아아─ 서걱!
두 동강 난 언월도와 선장의 머리가 동시에 허공을 날았다.
쨍그랑, 투욱!
「다른 검을 쓰면 안 돼? 날은 꼭 깨끗이 닦아놔. 창문밖에 기름때가 낀 기분이니까.」
바리사다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놈의 머리를 주워 들었다.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알폰소에게 쓰레기 던지듯 던져줬다.
“잘 챙겨 놔.”
“으엑!”
나는 널브러져 있는 목 없는 선장의 몸을 발로 뒤집었다. 사람의 귀를 꿰어 만든 목걸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양과 색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모두 리오넬 왕국민의 것.
서로서로 얼마나 많은, 희귀한 모양의 귀를 모으는지가 해적 놈들의 취미였다.
나는 그걸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주워 알폰소에게 건네주었다.
“양지바른 곳에 묻어줘.”
“알겠습니다.”
녀석도 소중한 보물 받듯 그걸 받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죽은 척하고 있는 해적 놈이 없나 확인하는 리오넬수호군을 지켜봤다.
((······ 끄으으으,))
((하, 항복, 사 살려······ 컥!))
살인, 방화를 숨 쉬듯 하던 해적들.
투항하는 해적을 포로로 잡는 원칙이 하나 있었다.
귀 목걸이를 하고 있지 않을 것.
안타깝게도 단 한 명의 포로도 생기지 않았다.
***
쌍둥이 해적단 이후 4성 마법사가 선장 노릇을 하던 해적단을 하나 더 소탕한 뒤,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고드론 백작령으로 돌아왔다.
목욕한 뒤 낮잠부터 잤다.
피와 살이 튀는 전장에서 쌓이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는 평상시와 그 궤를 달리한다. 마나 연공만으로 해소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가끔은 순수하게 잠을 잠으로써 정신과 육체를 재충전할 필요도 있다.
똑똑, 똑똑.
“왕자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알폰소의 노크에 눈을 뜬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뻐근한 몸을 풀었다.
우둑, 우두둑.
시원한 소리와 함께 스트레칭을 마친 나는 간단히 세면 후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잠옷을 벗었다.
옷을 입기 전, 잠시 거울을 바라봤다.
전생을 자각하고 약 반년.
어엿한 기사의 육체였다. 실제로도 상태창의 [스탯]을 눌러보면 어지간한 기사 생도 수준을 넘어섰다.
키도 그렇고 근육도 그렇고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 전생이었다면 약물을 이용하고 있다는 오해를 살 정도였다.
피식 웃은 뒤 옷을 마저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대기하고 있던 알폰소, 호위기사 버논과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할당된 임무를 마치고 온 인원들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도서관]을 통해 긴급하게 위치가 파악된 해적 놈들을 소탕하러 간 두 팀을 제외하고 전원 모여있었다.내가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
“······.”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내가 상석으로 갈 때까지 다들 말없이 나를 귀신 쳐다보듯 바라봤다.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일찍 와 있었군요. 해적놈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왕국의 용사들 일부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그들을 기리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제야 다들 눈빛을 바로 하고 작전 중 사망한 인원들에 대한 추모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두 번째 작전 회의.
“······ 그래서 이제 석함도 해군으로부터 전달받았던 5성급 인물이 포함된 해적단은 소탕이 완료된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건 소규모 해적단 놈들인데······.”
규모 있는 해적단은 오히려 [도서관]으로 위치나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 쉬웠다. 놈들이 작성하는 ‘항해일지’ 덕분이었다.
가끔 쌍둥이 해적단의 선장처럼 일기를 쓰는 취미를 가진 놈도 있었고.
문제는 소규모 해적단.
석함도 해군이 건네줬던 자료에서는 선장이 누구인지, 해적단 이름이 뭔지, 그런 기본적인 것도 파악 못 한 해적단이 여럿 있었다.
‘위치 파악이 힘들어.’
그놈들은 항해일지조차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긴, 글자도 모르는 놈이 대부분일 테니. ‘기록’이 있어야 정보가 획득 가능하다는 것, [도서관]의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사실, 요 일주일 사이에 낸 성과만으로도 왕도로 돌아가기엔 충분했다.
남작, 자작령의 영주들이 그들의 군사력으로 섣불리 제거하기 힘든 놈들을 불과 일주일 사이에 속전속결로 정리했다.
이제 영주들의 군사만으로도 큰 피해 없이 토벌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고, 그만큼 왕국민의 피해는 가중될 터.
‘아직 3주 정도의 시간이 남았어.’
가능하면 소규모 해적단까지 싹 뿌리 뽑고 왕도로 복귀하고 싶었다.
“아쉽게도 소규모 해적단의 위치 파악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각자 할당된 지역을 탐색, 해적단 놈들의 발견 시 즉각 소탕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우선 여기 이 지역은······.”
나는 포인터로 지도를 가리키며 각자의 할당 영역을 알려주었다.
회의실의 모인 이들이 자신의 담당구역을 진지한 눈으로 바라봤다.
“각자에게 할당된 지역을 탐색하면서 서서히 그물을 좁혀나갈 생각입니다. 동부에 상륙했던 놈들이 다시 배를 타고 나가지 못하도록 해안가 지역을 맡은 기사와 간부는 각별히 신경 써주길 바랍니다.”
별다른 의견들이 없었다.
다들 고개만 끄덕거렸다. 이미 1차 작전 회의에서 내가 했던 말들이 모두 들어맞은 탓이었다.
슬슬 회의를 마무리하려는 찰나.
리오넬수호군의 간부, 카이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런데 왕자님이 담당하시는 구역이 없는데, 이번에는 후방에서 지휘하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여기, 승전도로 갈 예정입니다.”
나는 동부 해안가와 석함도 사이에 있는 큰 섬을 포인터로 가리키며 말했다.
“분명 우리를 피해 바다로 잠시 도망가는 해적들이 생길 겁니다. 이곳에서 석함도 해군 일부와 함께 도망치는 해적 놈들을 수장시킬 계획입니다.”
덤으로 해적 소탕, 치료사 말고 동부를 찾았던 마지막 목적을 달성할 생각이었다.
‘로이르 신.’
함장으로 나섰던 최초, 최후의 전투에서 단 1척의 배로 13척의 아르야 군함을 막아낸 비운의 명장.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그가 승전도에 있다.
이번에도 섬나라 놈들과 함께 바닷속에 가라앉는, 그런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