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64)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64화(64/203)
064
재정경제부 차관.
클리앙 와이트 백작.
그는 루틴을 벗어난 행동을 하면 불쾌감을 느끼는 강박증이 있다. 사전에 루틴의 변경이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경우에는 더더욱 심한 불쾌감을 느낀다.
그렇기에 클리앙은 지금 당장이라도 의자를 박차고 문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를 찾아온 사람이 2왕자, 다미안이 아니었다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이다.
“이제 어쩔 생각이지?”
인상을 잔뜩 찡그린 다미안이 책상에 신문 다발을 툭 던졌다.
클리앙은 제목보다 널브러진 신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신문 뭉치를 책상에 탁탁 쳐서 삐져나온 부분을 정리한 뒤 기사들을 살폈다.
『조 베이리의 목이 떨어졌다!』
『왕국의 새로운 6성 기사! 레이나 잔느는 누구?』
.
.
.
‘빠르군.’
분명 어젯밤 보고 받았는데, 바로 오늘 신문이 인쇄되어 왕도 바로나에 쫙 깔렸다.
북부에서 제국군이 벌이는 만행들이 신문에 실리는 것과 비교하면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분명, 인위적인 것.
그리고 클리앙은 그게 누구 때문인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5왕자겠지.’
기이할 정도로 왕국민의 여론을 신경 쓰는 그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굳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었다.
왕국민의 지지 같은 건 있으면 좋은 정도. 1왕자나 2왕자처럼 치열한 왕위 계승 싸움을 벌일 때나 조금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귀족들의 지지.
클리앙은 그렇게 배웠고, 배웠던 대로 일을 처리해왔었다.
‘북부, 서부, 그리고 이제 동부······.’
한데 막상 왕국 저 밑바닥에서부터 다음 왕위는 5왕자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소리가 슬금슬금 들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어떤 사건이 직접적으로 터지지 않았지만, 클리앙은 그게 삐뚤어진 넥타이처럼 신경 쓰였다.
– 해산시키죠, 북부해방군.
틀을 벗어나는 발상으로 자신의 굳어 있던 머리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놓은 5왕자. 그가 하는 일이니 자꾸 의심이 들었다.
귀족보다 왕국민의 지지가 중요한 것인가?
자신이 선대 가주들에게 배워온 것에 혹시 오류는 없을까?
“클리앙! 왜 대답이 없지?”
“······ 무엇을 어쩌란 말씀이시죠?”
“네 의견대로 에반 녀석에게 해적 소탕을 맡겼다 이렇게 되었어. 그 와중에 레이나가 6성 기사가 되었다고! 내가 가능성을 보고 2기사단에 데려왔었던 그녀가 말이야!”
“국무회의 당시 동의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레이나 경을 5왕자님에게 보낸 건 2왕자님의 판단이셨습니다. 저는 분명 반대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래서 이게 내 탓이라는 건가?”
“설마요. 제가 어찌 감히 2왕자님을 탓하겠습니까.”
클리앙은 신문을 쫙 펼쳐 얼굴을 가렸다. 자신의 표정을 다미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레이나가 6성 기사가 된 것이 가장 열받는 건가?’
『위대한 승리, 조 베이리 해적단 괴멸』
『석함도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는데 말이야.’
클리앙이 처음 석함도의 연락을 받았을 때, 레이나가 6성 기사의 벽을 넘은 것보다 더 놀랐던 것이 있다.
바로 에반이 일으켰던 기적.
구형 전함 한 척으로 철갑선이 포함된 여섯 전함과의 전투에서 대승했다.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전설이 될 거야.’
세상에, 용의 승천을 이용할 생각이라니!
5왕자가 어떤 생각으로 용아목을 향해 질주했었을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못 해보고 용오름에 휩싸여 허무하게 침몰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천운이 함께한 거겠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일.
클리앙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미묘하게 신경이 거슬렸다.
금방 이유를 알았다.
‘천운······?’
5왕자가 세운 전공. 그게 과연 운으로 가능한 일인가?
“클리앙, 이번 일로 석함도에 피바람이 불 거야. 그리고 나를 지지하던 장교들 상당수가 옷을 벗겠지. 에반이 동부행을 하게 된 단초가 되었던 국무회의에서의 네 행동. 분명 물어뜯으려는 이들 있을 거다. 내가 보호해주기 힘들 테니, 준비하도록 해.”
제 할 말만 쏟아낸 후 휙 차관실을 떠난 다미안. 클리앙은 그가 나간 문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석함도가 조 베이리 해적단을 제대로 감시하고 있었다면 애초에 벌어지지도 않았을 일이었다.
깔끔하게 5왕자와 2왕자가 서로 원하던 걸 얻고 끝났을 일이었다. 옷을 벗게 될 석함도의 장성들이 자신에게 따지고 들 일이 아니었다.
클리앙은 신문을 칼 같이 접어 책상 구석 모서리에 정확하게 맞춰놓았다. 가장 위에 놓인 신문의 기사가 그의 눈에 띄었다.
『석함도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러니까 말입니다. 정말 뭘 하고 있었는지.”
조 베이리 해적단의 움직임을 놓쳤던 것이 고의일까, 아니면 무능일까? 확실한 건, 둘 다 클리앙의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아직 점심시간이 10분 남았다.
본래라면 식사 후 잠시 산책을 하고 있을 시간. 조금 있으면 창문밖에 보이는 분수대를 지날 시간이었다.
클리앙은 급하게 외투를 걸치고 뛰어가듯 걸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분수대.
그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다시 본인의 집무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불쾌감에 찌들어있던 속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
따그닥, 따그닥.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잠에서 깼다. 마차의 창문을 살짝 열었다. 숲길을 걷고 있었다.
목이 칼칼해진 나는 알폰소를 찾았다.
“알폰소, 물 좀.”
“여기 있습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그가 얼른 물병을 내밀었다. 입가에 적시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목을 풀었다.
강마(降魔)를 사용한 후유증 때문에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마차에 오르자마자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다 이제야 일어났다.
물병을 다시 알폰소에게 건넸다.
손의 떨림 탓에 물병이 찰랑이는 걸 본 녀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신관의 치료는 끝까지 안 받으실 겁니까?”
“어.”
[바리사다]를 통해 전달받는 마나는 생전 바리사다의 육체에 잠들어 있던 마기를 건국왕의 피로 정화한 것에 가까웠다.강마는 한층 더 마기에 가까운 마나가 사용자에게 침투되는 것. 그렇기에 그 후유증을 신성력으로 치료하려 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바리사다가 조언했었다.
안 그래도 ‘반마검’이라 불리며 만신전에서 탐탁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물품 중 하나인 [바리사다]였다.
신관의 치료를 받다가 내가 [바리사다]를 사용한다는 것이 알려질지도 몰랐다. 차라리 조금 길게 요양하고 말지, 그건 사양이었다.
“그래도 이제 좀 움직일만해.”
“다행이네요. 아까 만나신 치료사가 실력이 있긴 한가 보네요. 어리숙해 보이던데······.”
“친해지는 게 좋을걸. 조만간 엄청나게 유명해질 테니까.”
“하핫. 뭐, 왕자님이 주치의로 데려가려고 직접 이런 시골까지 온 걸 보면 그러겠죠.”
“돈도 많이 벌 거야.”
‘미래’에서는 그러지 못했지만.
그 말은 속으로 삼켰다.
그는 병약한 아내의 비싼 약값 때문에 동부의 한 귀족에 큰 빚을 졌다. 그게 발목이 잡혀 노예처럼 부려지다 병약했던 아내가 사망 후 행적이 묘연해졌었다.
‘이번엔 다를 거야.’
내가 빚을 대신 갚아주고, 아내의 치료를 지원해주는 대가로 주치의로 고용하기로 했다.
죄에는 벌을.
공에는 상을.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이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마땅한 법이었다.
“돈도 많이 벌 거라고요? 정말 친해져야겠네요, 하핫. 이름이 슈, 슈······ 뭐였죠?”
“슈이츠 레밍.”
“슈이츠 레밍, 슈이츠 레밍······.”
알폰소가 그의 이름을 되뇌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창문 밖을 내다봤다.
싹이 트던 나무들. 잎으로 무성해져 있었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온 햇살도 꽤 뜨거웠다.
5월이었다.
‘열흘 뒤면 성인식인가.’
해적 소탕, 슈이츠와 로이르의 영입.
거기에 동부의 골칫거리이던 조 베이리의 목을 베었고, 레이나가 벽을 넘었다. 동부로 올 때 목표로 했던 것들을 초과 달성한 셈.
모험가 길드가 준 의뢰였다면 SSS급 평가를 받을 터였다.
한 달 정도 무리하지 않고 요양해야 하는 대가를 치렀지만, 꽤 만족스러운 동부행이었다.
아, 맞다.
“카이카닉함 승무원들, 입단속 시켰어? 특히 함장.”
내가 마법을 사용한 것.
찰나의 순간이지만 오러를 막아낸 것.
아직은 밖으로 새어 나가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일들이다.
“슈이츠 레밍, 슈이츠······ 아!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제가 입단속 잘하라고 아주 친절하게 잘 말해놓았습니다.”
알폰소가 입에 자크를 채우는 시늉과 함께 실눈에 섬뜩한 호선을 그렸다.
“잘했어.”
이제 마음 놓고 왕궁으로 돌아가도 될 것 같았다.
***
왕궁으로 복귀하고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금의환향이었다.
‘개선식까지 해줄 줄은 몰랐는데.’
본래는 계획에 없던 일이었지만, 왕국의 새로운 6성 기사의 탄생과 조 베이리의 목을 벤 것이 개선식을 하게 된 이유였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는데, 몸이 너무 힘들었다. 석함도 해군 앞에서 조 베이리의 머리통을 들고 서 있을 때만큼이라 하면 엄살이려나?
왕궁은 야생이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내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내 최측근이면 족했다.
“······ 네 사정은 아는데, 솔직히 좀 방해되거든? 언제까지 거기서 뒹굴 생각이야?”
그래서 이런저런 업무를 보다가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으면 프란의 연구실을 찾아 소파에 누워 쉴 때가 많았다.
내일 있을 성인식을 대비해 푹 충전하고 있었는데 프란이 눈치를 주었다.
“좀 봐주세요. 그리고 가끔 여러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공해드리지 않습니까?”
“······ 아까 말한 레, 레······ 뭐였지?”
“레이더요.”
“아, 그래. 그거.”
“괜찮은 생각 아닌가요? 반사된 마이크로파를 이용해 적군의 위치, 거리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면 기습당할 걱정은 없겠죠.”
[마그네트론]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전자레인지 같은 것에서 끝날 게 아니다.
전생에서 마그네트론은 입자 가속기에도 사용되었다. 핵물리학 연구에도 활용되었다는 말이다.
어쩌면, 나는 ‘타이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전쟁 무기의 시초를 세상에 풀어놓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가능성일 뿐이다.
‘마나’의 존재로 인해 전생의 물리법칙을 그대로 대입하기 힘들다. 현생의 원자는 핵분열을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게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근데 굳이? 그냥 [탐지]가 마나의 소모든 술식의 난이도든 가성비 측면에서 월등할 거 같은데?”
“상대방의 [은폐]를 뚫을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어차피 그에 대응하는 마법이 바로 나올 텐데?”
“대응하는 마법이 나오기 전에 벌어지는 전쟁에서 나라의 존망이 결정된다면요?”
한발 앞선 신무기 개발이 전쟁의 승패를 좌지우지한다는 걸 ‘미래’에서 뼈저리게 체감했었다.
“너······ 조만간 그런 전쟁이 일어날 거라는 거냐?”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프란이 인상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레이더인지 뭔지, 이것도 호라이즌에서 발표하면 안 되겠네. 뭐야, 결국 도움이 하나도 안 되면서 방해만 한 게 맞잖아!”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냥 저번에 제가 말한 전자레인지나 만드시죠. 그것만 해도 주방의 혁명이 될 겁니다. 대륙의 모든 주방에 프란 님의 사진이 걸릴지도 모른다니까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이놈아! 적당히 쉬었으면 이제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