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69)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69화(69/203)
069
호라이즌 발표회장.
어두컴컴한 구석진 자리에 모자를 푹 눌러쓴 여인이 앉아있었다.
이자벨 로넬리.
황탑주에게 초전도마력체 라크에 관한 모든 연구를 빼앗기고 실종된 카메오의 딸이었다. 그녀는 황탑주의 만행을 폭로하는 프랑켄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말이 없으시죠?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어떻게 제 친우가 연구하고 있던 라크를 당신이 발표했는지 말입니다.))
하얀 가운 주머니에 왼손을 집어넣은 프랑켄. 그가 오른손 중지로 안경 코 받침을 올리며 황탑주의 답변을 재촉했다.
‘아버지의 친우?’
이자벨의 머릿속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카메오는 좋은 가장이 아니었다.
구리를 황금으로 만들겠다는 허황된 꿈을 가진 거지 같은 인간. 그게 그와 이혼 후 그녀의 어머니가 혼자 술을 마실 때면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었다.
카메오는 좋은 남편은 아니었지만, 어린 이자벨에게는 좋은 아버지였다.
– 이자벨, 이것 보렴. 여기 구리에다가 이 빨간 용액을 부으면······ 쨘!
– 우와! 황금처럼 반짝거려요!
그게 이자벨이 카메오와 같은 마공학자 겸 연금술사가 된 이유였다.
‘아버지와 편지를 교환하던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어······?’
이자벨은 프랑켄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아버지의 친구라기엔 너무 어려 보였다. 잘 봐줘야 그녀와 동갑내기?
결론은 하나.
인간이 아니다. 젊어 보이는 외양에 풍성한 금발 곱슬머리가 귀를 가리고 있는 걸 보면 7성 마법사 프란처럼 하프엘프일 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사교성 없던 아버지에게 친구라니······.’
이자벨의 시선이 마력 손실률 측정 도구를 향했다. 프랑켄이 만들었다던 ‘라크9’가 현미경으로 확대한 것처럼 보였다.
저렇게 증거가 떡 하니 있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어머니와 함께 동대륙 아이멘 제국으로 건너갔었던 그녀였다.
10년 넘게 홀로 지냈던 아버지. 그사이 연구를 공유할 정도의 절친한 친우가 생겼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여전히 믿어지지는 않지만.
그녀는 시선을 다시 프랑켄에게로 옮겼다.
‘목숨이 서너 개는 되는 건가?’
사실 저 자리에서 황탑주의 만행을 폭로하는 건 프랑켄이 아닌 자신이어야 했다. 하지만, 이자벨은 그럴 수 없었다.
하믈 제국의 황족.
황탑의 주인.
8성 마법사.
이자벨이 감히 쳐다보기도 힘든 위치에 있는 황탑주였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개미를 눌러 죽이는 것보다도 간단히 그녀를 짓뭉갤 수 있을 터.
이자벨이 그에게 느끼는 감정은 복수심 반, 두려운 반이었다. 아니, 솔직히 두려움 쪽이 조금 더 컸다.
((상대할 가치가 없군. 먼저 내려가 보겠소. 그리고 내 논문의 내용이 흘러나간 배경에 대해서 호라이즌 논문 심의 위원회는 반드시 해명해야 할 것이오.))
드디어 입이 열린 황탑주.
그가 떠나기 전, 프랑켄을 씹어먹을 듯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발표회장 구석에 앉아있는 그녀의 등골이 써늘해질 정도로 살기등등한 모습이었다.
‘프랑켄, 당신. 얼마 안 가 살해당할 거야. 진짜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거지?’
이자벨은 당장이라도 단상으로 뛰어가 그렇게 묻고 싶었다.
***
어떤 개떡 같은 논리를 펼치며 자신을 방어할지 기대했건만, 황탑주는 발표회장에서 몸을 빼는 걸 택했다.
– 황탑주가 도망갔어.
– 프랑켄? 누구지?
– 발표 일정표에는 그저 마공학자라고만 되어있는데?
– 성이 없어. 이종족인가?
– 7성 마법사 프란과 공동연구를 한 거면······ 엘프? 아니면, 하프엘프?
– 미친 거 아니야? 하믈 제국과 황탑주가 자신을 가만 놔둘 줄 아나?
사방에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미친놈 쳐다보듯 바라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중에는 지인도 한 명 있었다.
프란이라고······.
팔짱을 낀 채로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아까 황탑주의 눈빛보다 더 살벌한 것 같았다.
미리 이야기하지 못한 내 잘못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반대할 게 뻔한 데, 어찌 말하겠는가. 거기다 마그네트론의 발표로 모든 정신이 쏠려있던 그녀였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용서가 허락보다 빠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슬며시 프란의 눈을 피했다.
변명할 말은 많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어.’
가만히 내버려 두면 전 세계의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은 황탑에서 철보다 단단한, 타이탄의 외갑에 사용될 마력초전도체를 최초로 개발하게 될 터였다.
물론 시간은 꽤 오래 걸리겠지만.
황탑의 탑주가 제국의 황족. 사실상 둘은 일심동체라 봐도 무방하다.
다른 열강들에 비해 기술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을 받던 하믈 제국. 놈들을 단숨에 세계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강국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드는 게 바로 마력초전도체다.
리믈(리오넬·하믈)전쟁은 무조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놈들이 오지 않으면 내가 먼저 쳐들어갈 거다.
‘빼앗긴 서북부를 되찾아야 해.’
아직은 먼 훗날의 이야기.
지금 당장은 웅성거리는 청중과 어쩔 줄 몰라 하는 호라이즌 관계자들을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것 같은 표정인 호라이즌의 관계자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원하던 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덴의 권력 피라미드 최정상에 있는 인물.
국가원수, 강철의 토르릭.
8성 전사이자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장인 그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
((삼 일 후, 주말을 맞아 호라이즌의 논문 발표를 쉬는 토요일. 카메오가 남긴 연구를 세상에 공개하겠습니다. 아마도 이제는 볼 수 없을 그가 남긴! 세상을 바꿀 연구를! 조금 전의 파렴치한 이들이 도용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 지, 진짜냐!
– 마력초전도체를 공짜로 공개하겠다고!
– 미, 미쳤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수도 있는 연구라고!
– 그래도 한 사람의 마법사로서 존경스럽긴 하군.
– ······ 그건 동의하네.
경악한 청중들.
나는 여전히 토르릭과 마주친 눈을 돌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덴에 제 신변 보호를 요청합니다. 최소한 토요일에 마력초전도체를 세상에 공개하는 순간까지는 살아있고 싶군요.))
발표회장에 모인 모든 이들의 눈과 귀가 토르릭에게 쏠리고, 한참 내 눈을 바라보고 있던 그가 입이 열렸다.
((······ 알겠소. 토요일까지 누구도 당신을 털끝 하나 못 건들게 도와주겠소. 다만, 그 이후에는······.))
나는 빙긋 웃었다.
아마도 쭉 신변 보호를 해줄 테니 아덴을 위해 일하는 게 어떻겠느냐, 뭐 그런 이야기를 하려다 만 거겠지.
토르릭의 눈에는 내가 갑자기 뚝 떨어진 보석으로 보일 터였다. 그 말고도 발표회장에 있는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의 눈에 그렇게 보이겠지.
나를 보고 군침을 흘리는 것 같은 시선들. 뒷덜미에 식은땀이 조금 흘렀지만, 티를 내지 않고 의연하게 답했다.
“그때 가서 이야기하시죠.”
***
에반, 아니, 프랑켄이 발표회장을 뒤집은 이후. 마법사, 마공학자들의 발표가 계속되었다.
청중들은 머릿속이 뒤숭숭한 와중에도 발표되는 논문들에 귀를 기울였다.
호라이즌의 1일차에 발표되는 논문은 심의 위원회가 심사숙고해 결정한 것. 마력초전도체에 상응한 발표가 또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그럼 다음으로 7성 마법사 프란 님과 마공학자 프랑켄 님이 공동으로 연구한 마그네트론에 대한 발표가 있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에 조금 느슨한 자세로 앉아있던 청중들도 몸을 바로잡았다.
황탑주가 선보였던 것보다 훨씬 낮은 마력 손실률을 보여준 마력초전도체 라크9를 만든 프랑켄이 공동연구자였다.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시작은 프란이 거대한 철망을 두른 유리 상자에 초콜릿 조각상을 넣고 마그네트론을 발현하는 것부터였다.
불도 없는데 상자 속 조각상이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녹은 초콜릿이 펄펄 끓는 모습에 청중들이 감탄을 내뱉었다.
((······ 이 술식의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수막], [흡입], [자력]. 먼저 수막이 하는 역할은······.))
발표는 프란이 주도했다.
((······ 여기 이 파동이 바로 마그네트론에서 발생한 마이크로파입니다. 기존에 관측되었던 마력파와는 달리 빛처럼 반사하고, 굴절하는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구 결과, 이 마이크로파가 아까 초콜릿을 녹였던 핵심으로······.))
프랑켄은 그녀의 발표를 보조할 뿐,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 그래서 이걸 실생활에 어떻게 응용해볼까 하여 만들어 본 것이 아까의 ‘전자레인지’입니다. 시제품이기에 다소 투박하고 쓸데없이 커다랗지만 조금만 더 개량된다면 전 세계 사람들의 일상에 커다란 편의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준비된 발표를 마친 프란.
그녀는 질의응답을 받겠다고 말하기 전, 마지막 말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하겠습니다. 저는 프랑켄과 ‘우연한’ 기회에 만나 공동연구를 진행했을 뿐, 사적인 친분은 전혀 없습니다. 아덴의 입국도 따로 했고, 연구도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진행해왔죠.))
프랑켄과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
((마력초전도체 라크9 같은 건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는 제가 품은 7개의 별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거기에 마지막 마무리.
별을 건 맹세까지 해버렸다.
6성을 넘어선 이들을 초월자라 불리는 건 그들의 의지로 세계의 법칙을 비틀 수 있기 때문. 그 원동력은 초월자들의 의지에 매혹된 그들이 품고 있는 별이다.
별은 자신들을 걸고 한 맹세를 깨트리는 초월자에 결코 큰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프란이 맹세한 부분은 마력초전도체를 모르고 있었던 부분부터였다.
본래 남을 속여 먹을 때는 진실이 적절히 섞여야 하는 법. 그녀가 에반을 알고 지내며 깨달은 삶의 지혜였다.
***
삼 일 후.
모자를 푹 눌러쓴 이자벨은 발표회장을 찾았다.
프랑켄의 마력초전도체 공개가 있는 날이었다. 호라이즌이 시작된 첫날보다 더 북적거렸다.
다행히 입장권을 보유하고 있던 이들은 우선하여 입장할 수 있었기에 그녀의 지정석인 어두컴컴한 구석 자리에 궁둥이를 붙였다.
– 정말 라크9까지 공개할까?
– 나는 아니라고 봐. 딱 황탑주가 공개한 수준에서 끝내지 않을까?
– 하긴, 그도 자신을 지키려면 모든 걸 공개하진 않겠네.
– 그는 어느 나라에 신변을 의탁할까?
– 아이멘 제국? 브리센 연합 중 하나?
이자벨은 사방에서 소곤거리는 소리를 엿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라크9······ 아버지의 편지가 끊긴 지 거의 7년이야. 그 사이 단독으로 그걸 만들었다고? 심지어 마그네트론이란 것도 연구하면서?’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녀가 아버지의 편지에 적혔던 내용을 토대로 재현에 성공한 마력초전도체가 딱 황탑주가 선보였던 라크 수준이었다.
‘혹시 그는 그 이후에도 아버지와 연락을 주고받았던 걸까?’
– 시간이 됐어!
– 아! 저기 입장한다!
사람들의 술렁임에 이자벨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덴의 국가원수, 강철의 토르릭이 직접 프랑켄을 보호하며 발표회장에 입장했고, 사방에 아덴의 기사, 마법사들이 쫙 깔렸다.
– 하믈 제국과 황탑이라도 지금은 헛수작을 부릴 수는 없겠지?
– 거센 항의를 했다고 들었어. 무력 시위도 불사할 거라고 그랬다던데? 이미 프랑켄을 노리는 암살자를 파견했다는 소문이야.
– 되겠어? 여기서 프랑켄을 눈독 들이는 나라가 얼마나 많은데. 마력초전도체를 하믈 제국이 독점하는 걸 내버려 둘 리가 없잖아.
프랑켄이 단상의 중앙에 서고 나서야 사방에서 소곤거리던 소리가 잦아들었다.
((먼저 제 친우의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모여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제 친우가 연구했던 마력초전도체에 대한 모든 자료를 여러분에게 공개할 생각입니다.))
– 아······.
– 역시 본인이 연구한 건 빼는 건가?
– 황탑주가 선보였던 수준까지만 공유할 생각인가 보군.
프랑켄이 두툼한 서류 뭉치를 들어 올렸다.
((이건!! 그의 모든 것이 담긴 연구자료입니다. 우선, 복사본을 여기 계신 모든 분에게 나눠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복사된 연구자료를 든 아덴의 요원들이 바삐 움직였다. 이자벨 또한 그들이 건네주는 걸 받았다.
‘여기 아버지의 온전한 연구가······.’
지금 당장 어딘가에 틀어박혀 아버지의 흔적을 느끼고 싶었지만, 일단 프랑켄이 하는 말을 끝까지 듣는 게 우선이었다.
((다들 받으신 것 같군요. 그럼 마력초전도체 라크의 핵심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다들 받으신 자료의 첫 장을 펼쳐보시죠.))
사락, 사라락-
사방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가득했다.
((자, 이제 스크린을 주목해주시죠.))
프랑켄의 그 말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향했다.
따악─!
그가 손가락 튕기는 소리.
다들 룬어와 각종 기호, 기하학적 형상들이 가득 찰 스크린을 기대했다.
하지만.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
촤아아아악─ 철퍽.
사람들의 얼굴에 튄 비릿하고 검붉은 액체. 그리고 기분 나쁜 고기 조각.
– ······?
– 꺄아아아아아!
– 테, 테러다!
– 프, 프랑켄은!
이자벨은 황급히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고 프랑켄이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단상을 가리는 검은 연기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 죽었어?’
황탑주다!
하믈 제국의 짓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발표회장에 모인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황탑주우우우우우!!!))
강철의 토르릭.
그의 분노어린 포효가 발표회장을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