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7)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8화(7/203)
008
로사 시스템이 하믈 제국의 영향을 받은 단어들을 한자식으로 번역하는 건 크게 불만이 없었다.
다만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그 단어를 모르면 뜻을 알 방도가 없다는 것.
‘무극 마나연공법? 무극이 내가 생각하는 그 뜻이 맞나?’
다행히 몇 시간 전에 물어볼 곳이 생겼다.
┕ 무극이 무슨 뜻이야?
「끝이 없고 끝없이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짐작한 뜻이 맞았다.
‘이런 것까지 RP를 요구하진 않네.’
피식 웃으며 [무극 마나연공법]의 가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413RP.
전생의 현금 가치로 약 1억에 해당하는 10,000RP의 [리오넬 제식 마나연공법]과 비교하면 턱도 없이 저렴했다.
연공법의 정보는 이 세계 어디에도 기록되어있지 않다는데, 일의 단위까지 가격을 매겨놨다.
누군가의 장난일까?
혹시 모른다. 오늘 아침 누군가 엉터리 마나연공법을 그럴싸하게 만든 뒤, 호구를 기다리며 팔고 있을지.
‘그러면 연공법의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도 말이 돼. 일단 확인부터 마무리하자.’
혹시라도 [무극 마나연공법] 같은 것이 또 있을지 모르니 남은 연공법들도 빠르게 조사했다. 그 결과, 더는 특별한 경우를 발견하지 못했다.
다시 [무극 마나연공법]으로 돌아온 나는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익혀도 되는 건가?’
막상 ‘히든 피스’로 의심되는 마나연공법을 찾고 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이거 익혀도 부작용은 없는 거야?
「무극 마나연공법에 대한 정보······.」
┕ 됐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뻔했기에 바로 말을 끊었다. 직접 익혀보는 것만이 [무극 마나연공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이란 걸 직감했다.
‘첫 마나연공법의 선택은 정말 중요해.’
심장과 뇌, 둘 중 어느 곳에 마나를 모으는지도 모르는 마나연공법을 덜컥 익혀버려도 되는 걸까?
혹시라도 익히자마자 심장이나 뇌에 마나가 모여들면 큰일.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기로 했다.
‘확인해보면 그만이야.’
검색창에서 스킬 하나를 찾았다.
━━━━━━━━━━━━×
100RP를 소모해 [리오넬 제식검술]을 익히시겠습니까?
[확인] [취소]━━━━━━━━━━━━
‘확인.’
지잉─!
우주의 중심에 서 있는 나를 인지할 수 없는 존재들이 지켜보는 듯한, 처음 로사에 로그인을 했을 때의 그 감각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전방에 보이는 거대한 책.
사락, 사락, 사라락-
빠르게 넘겨지던 책장이 어느 한 페이지에서 멈췄다.
파앗-!
눈 부신 빛이 터짐과 동시에 기이한 현상을 체험했다.
리오넬 제식 검술의 연원.
검을 쥐는 법.
총 6개로 이루어진 초식.
각 초식의 연계법.
.
.
.
누군가 내 머릿속에 [리오넬 제식검술]의 교본을 새겨넣는 것 같았다. 너무나 낯선 감각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동안 눈을 감고 각인된 지식을 음미했다.
‘이런 식이구나.’
생각과 동시에 현실로 돌아왔다.
거대한 책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타닥, 타다닥, 빗줄기가 창문을 내려치는 소리만이 귓가로 들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상의 목검을 쥐고 [리오넬 제식검술]의 기수식을 펼치기 위한 자세를 잡았다.
어색한데 어색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또 어색했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지만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고 4왕자와의 대련을 복기했다. 전방에 투실투실한 볼살을 부들거리며 일그러진 얼굴을 한 놈의 환영이 보였다.
– 막아? 막아아아? 이것도 막아 봐라! 태산 가르기!
나의 머리통을 깨트리며 전생을 자각하는 단초를 제공해줬던 그 공격이 다시 재현되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목검을 크게 들어 올리는 4왕자.
당시에는 몰랐던 것을 알았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저걸 방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막는 것이 아니다.
‘지금!’
목검을 쥔 놈의 손목을 향한 섬광 같은 찌르기를······.
– 퍼억!
하지 못했다.
내 머리통을 다시 한번 박살 낸 4왕자의 환영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흐려졌다.
상상이었을 뿐인데도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머리를 매만졌다.
‘생각대로 안 되네.’
머릿속에서 그렸던 움직임을 재현하지 못한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몸이 못 따르는 거야.‘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봤다.
서재에 틀어박혀 책만 읽던 유령왕자의 허연 얼굴이 불만으로 잔뜩 찡그려져 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다시 소파에 앉은 나는 방금 경험한 ‘스킬을 익힌다’라는 것에 대해 정리했다.
이론은 완벽하게 통달한다고 보면 될 것 같았다. 다만, 체득은 어디까지나 나의 몫.
‘마법도 비슷하겠지?’
[발화] 같은 기초 마법을 하나 익혀서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마법 관련 스킬을 익히기 위해서는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상태여야 했다.조금······ 아쉬웠다.
내심 스킬을 익히자마자 수년을 갈고닦은 것처럼 검술을 펼치고, 마법을 시전하는 걸 기대했었던 것 같다.
그래, 마치 게임처럼.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미련을 털어냈다.
‘복에 겨웠지.’
세상에는 배움의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RP만 있으면 천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할 비전을 접할 수 있게 된 내가 투정을 부려서는 안 될 일이었다.
긍정적인 면만 생각해보자.
비록 게임처럼 즉시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지만, 이론을 ‘순식간’에 통달하는 것도 엄청난 일이었다.
적대하는 상대가 익힌 검술의 파훼법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고, 충성을 맹세한 이에게 적성에 맞는 비전을 전수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 물론 RP가 있다는 전제하에.
‘활용하기 나름이야.’
생각을 정리한 나는 시야 구석으로 치워놨었던 스킬창을 다시 눈앞으로 끌고 왔다.
━━━━━━━━━━━━×
413RP를 소모해 [무극 마나연공법]을 익히시겠습니까?
[확인] [취소]━━━━━━━━━━━━
검증은 이미 마쳤다.
마나연공법을 익힌다고 바로 심장이나 뇌에 마나가 저장될 일은 없었다. [무극 마나연공법]이 히든 피스인지 아닌지 확인해보는 데 413RP 정도는 충분히 투자해볼 만하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유령손의 검지로 [확인]을 꾹 눌렀다. [리오넬 제식 검술]을 익힐 때와 같은 환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잠시 뒤.
[무극 마나연공법]의 모든 이론을 머릿속에 각인한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일단, 누군가 장난삼아 만들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연공법과 관련하여 머릿속에 각인된 인체에 관한 지식 만해도 413RP는 우습게 넘어갈 것 같았다.
그점은 일단 안심.
문제는······.
‘코어라니, 사장된 방법이잖아.’
심장이나 뇌가 아니라, 인공 장기인 ‘코어’를 연성해 마나를 저장하는 것이 [무극 마나연공법]의 시작이었다.
오른손에는 오러가 넘실거리는 검, 왼손에는 이글거리는 화염. 검과 마법을 동시에 다루는 마검사는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온 소년들의 로망이었다.
하지만.
검과 마법은 양립할 수 없다.
기사는 마나를 보는 세 번째 눈을 개안할 수 없고, 마법사는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왔던 연구가 코어를 이용한 마나의 저장. 명치 부근에 마나의 집인 코어를 연성해 필요할 때마다 뇌와 심장에 마나를 공급하겠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괜히 사장된 게 아닌데.’
기사와 마법사 등 마나에 입문한 이들의 경지는 1성부터 9성으로 분류된다. 그 연원이나 단계별 특징 같은 건 지금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고.
3성부터가 제대로 된 기사, 마법사로 인정받기 시작하고, 4성은 되어야 시골 남작가의 기사단장 자리를 꿰찰 수 있다. 6성부터는 한 국가의 핵심 전력으로 취급.
‘코어’를 만드는 마나연공법이 사장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검사의 길을 걸은 어떤 이도 진정한 강자의 대열에 합류하는 6성에 도달한 적이 없다고 알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 둘 다 놓친다는 이야기의 예시로 자주 언급되는 존재가 바로 마검사다.
‘그렇게 알고 있는데······.’
[무극 마나연공법]을 본격적으로 수련하는 게 맞을까? 무난하게 [리오넬 제식 마나연공법]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 쪽이 늦더라도 옳은 방향이지 않을까?창시자나 연원이라도 알 수 있으면 도움이 될 텐데, 안타깝게도 머릿속에 각인된 [무극 마나연공법]은 불필요한 부분은 전부 생략된 실전 압축형 이론이었다.
‘마검사가 단점만 있진 않아.’
객관적으로 마검사의 한계라는 5성 정도만 해도 대단한 강자였다.
검과 마법을 동시에 다루는 이점으로 인해 동급의 기사나 마법사에게 상대적 우위를 가진다.
물론 3성쯤 도달하면 등급을 올리는 게 한쪽 길만 파는 이들보다 배는 힘들다는 건 치명적이지만.
‘마법을 버리긴 아까운데······.’
나는 이론을 익히는 시간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는 수많은 마법 이론을 섭렵하는 데 엄청난 강점이 될 터.
그렇다고 또 마법에 올인하기에 마나 감응력이 떨어진다는 판결을 받았던 것이 목구멍을 찌른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다.
이론을 빨리 터득하는 것만으로도 마법을 펑펑 사용할 수 있었다면, 세상은 대마도사 천지이지 않을까?
······ 사실 마법을 익혀본 적이 없어 정확히는 모르겠다. 암기력이 좋은 사람이 수학을 잘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할 뿐.
오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무극 마나연공법, 수련해보자.’
후회할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5성 마검사의 경지에 도달한 뒤, 6성으로 넘어가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좌절하는 상황이 온다면 말이다.
‘지금 내 상황에선 5성 마검사만 되어도 감지덕지야.’
상태창의 [?]들을 해금해나가다 보면 부작용 없이 마나연공법을 교체하는 방법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도 내 선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무엇보다.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게 마음에 걸렸다.
왜 시험을 볼 때면 답을 모르는 문제의 보기 중에 유독 끌리는 것이 있지 않은가? 지금 내겐 [무극 마나연공법]이 그랬다.
작위적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로사 시스템이 이걸 익히라고 내 머릿속에 암시라도 걸어둔 건 아닌지 의심도 되었다.
‘그래도 결정했으면 일단 해보자.’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자세를 바로잡았다. 눈을 감은 후 크게 숨을 내뱉었다. 온몸에 쌓인 불순한 기운을 모두 몰아낸다는 느낌으로.
다음은 짧게 두 번 들이쉬고······.
곧바로 마나를 느낄 거란 기대는 당연히 하지 않았다. 이론은 통달했지만 홀로 독학 중인 입장. 언제 알폰소가 방문을 덜컥 열고 들어올지도 모르고, 일단 체험해보자는 생각이 컸다.
그렇게 호흡을 딱 한 사이클 완료했을 때.
스아아아-
‘응?’
처음 느껴보는 기묘한 감각.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굳이 표현해보면 박하사탕이 가득 쌓인 창고에서 파묻힌 것 같았다. 아니,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청량감.
‘뭐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든 의문.
답은 바로 튀어나왔다.
‘마나!’
이렇게 빠르게 마나를 느낀다고?
‘집중해야 해!’
잡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청량하던 신체 내부가 얼음같이 서늘해졌다 화상을 입은 듯 뜨거워지기를 반복했다. 내 몸에 흘러 들어온 마나가 날뛰려는 전조였다.
서둘러 명치로 마나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갈 길을 못 찾고 내부를 들쑤시던 마나들이 노도와 같이 명치로 몰려들었다.
‘끄으으······.’
고통스러웠지만, 참을 만했다.
다음으로 명치에 모은 마나를 이용해 코어를 연성하기 시작했다.
뭉쳐졌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마나.
땀을 비 오듯 쏟으며 한참을 씨름했다.
어느덧 티끌만 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코어였다. 서서히 크기를 키우기 시작한 코어가 밤톨만 한 크기까지 커졌다.
‘끝나간다.’
이제 마지막으로 텅텅 빈 코어에 마나를 저장해야 했다.
코어의 내부를 관조했다. 새카만 암흑뿐이었던 그곳에서 한데 뭉친 마나가 빛을 터트렸다.
‘아!’
그건, 아무것도 없던 코어라는 우주에 생겨난 최초의 작은 ‘별’이었다.
어째서 마력 사용자의 경지가 성(星)으로 구분되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뇌, 심장에 마나를 저장하는 이들도 심상 속에서 이 광경을 본 게 틀림없었다.
완성된 하나의 작은 별. 그곳에 합류하지 못한 마나는 아쉬운 발걸음으로 코어를 빠져나갔고 호흡을 통해 배출되었다.
이제 눈을 뜰 시간이었다.
“후우-”
눈꺼풀을 들어 올린 나는 손등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쓱 닦았다.
컨디션은 굉장히 상큼했다.
요 며칠 전생을 자각하고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었는데, 볕 좋은 날 시원한 수목원 그늘에서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코어를 만들 수 있지?
연공법을 배우자마자 마나를 느꼈다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들 대부분은 전설, 신화 속 인물.
그럴듯한 보기가 두 가지 떠올랐다.
하나, [무극 마나연공법]이 그만큼 대단한 연공법이라서.
둘, 나의 마나 감응도를 테스트했던 대머리 마법사가 사기꾼이라서.
고개를 들어 유령손을 바라봤다. 검지와 중지로 V자를 그리며 살살 흔들거리고 있었다.
– 왕자님은 마법을 익히시기가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그 빡빡이 자식.’
답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