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70)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70화(70/203)
070
발표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 여, 여기서 나가야 해!
– 비켜!
– 내가 먼저 나갈 거야!
많은 이들이 한시라도 빨리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기 위해 앞다투어 입구 쪽으로 몰려갔다.
프랑켄은 단지 시작일지도 몰랐다. 추가로 누군가 죽어 나가고, 괜히 주변에 있다 휩쓸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반면 자리를 지키는 이들도 있었다.
자기 한 몸 건사할 자신이 있는 강자들과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고 마음먹은 이들이었다.
이자벨은 후자였다.
‘지금 나가려다 오히려 깔려 죽겠어.’
무엇보다 추가적인 피해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같은 공간에 두 자릿수가 넘는 7성급 이상의 강자들이 있었다.
소국 하나는 우습게 날려버릴 전력이었다.
((멈추시오오오오오!!!))
아덴의 국가원수, 토르릭의 마력이 듬뿍 담긴 사자후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발표회장을 빠져나가던 사람들의 발이 우뚝 멈췄다. 그들의 의지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몸이 마비되어 버린 것.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토르릭의 지시에 아덴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상황을 수습했다. 서슬 퍼런 그들의 눈빛에 혼란에 빠졌던 사람들도 제정신이 돌아왔다.
이자벨은 검은 연기가 옅어지는 단상을 바라보았다. 이내 프랑켄이 서 있던 자리를 보고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벌레를 짓이긴 것 같은 끔찍한 몰골.
넝마가 된 하얀 가운과 깨진 안경 파편이 그게 프랑켄이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웁- 웁─”
구역질이 난 이자벨은 다급히 입을 막았다. 그녀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난리였다.
잠시 뒤.
조금 진정이 된 이자벨이 주머니를 뒤져 손수건을 찾으려는데 누군가 그녀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괜찮으십니까?”
남자 목소리.
그런데 룬어가 아닌 이자벨이 태어난 리오넬 왕국의 언어였다.
((아, 죄송합니다. 습관적으로 모국어가 튀어나왔군요. 괜찮으십니까?))
근 10년 만에 듣는,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모국어였다. 그게 그녀의 경계심을 한없이 누그러트렸다.
본래라면 모르는 사람이 건넨 손수건을 쉬이 사용하지 않았을 터였다.
“가, 감사합니다.”
“오! 리오넬 왕국 분이셨군요.”
“네, 아직은······.”
입과 손을 닦은 이자벨은 그제야 남자를 자세히 살폈다. 검은 머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머릿속이 바빠졌다.
일단 흑발이면 가계 어딘가에 왕가의 피가 섞여 있다는 이야기다. 고위 귀족일 확률이 높았다.
이자벨은 아이멘 제국으로 이주했지만, 아직 시민권을 얻지 못해 공식적으론 리오넬 왕국의 하급 귀족이었다. 그녀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복장을 보니 아이멘 제국에 정착하신 분 같은데,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아··· 네, 손수건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세탁해서 다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빈말이었다.
그런 귀찮은 일. 누가 하고 싶겠는가.
남자가 입고 있는 정장이 말도 안 되게 비싼 소재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손수건 정도는 됐다고 할 줄 알았다.
“네. 소중한 추억이 있는 손수건이니 꼭 돌려주시길 바랍니다. 여기로 오시면 됩니다.”
하지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호텔 명함을 내밀었다. 이자벨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걸 받았다.
“뒤에 약도가 있습니다. 프런트에서 ‘알폰소’를 찾으시면 됩니다. 아! 흔한 이름이라 다른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니, 실눈에 야비한 인상이라고 하면 알아들을 겁니다.”
역시 모르는 사람이 건네는 손수건을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조금 전, 그의 호의를 받아들인 걸 후회했다.
이자벨은 자신이 더럽힌 손수건을 조몰락거리다 조심스럽게 단상을 곁눈질했다.
– 대체······ 어떻게 한 거지?
– 모르겠어. 도저히 모르겠어.
– 청중석 쪽에서는 어떤 마력 반응도 못 느꼈어! 이게 말이 돼?
– 어떻게 우리가 아무런 전조를 못 느낀 거지? 심지어 황탑주는 이 자리에 없잖아!
– 단순히 영약을 퍼먹어 그 경지에 오른 게 아니란 말인가?
아덴의 고위 마법사들이 프랑켄이었던 것을 둘러싼 채 귀신에 홀린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프랑켄을 살해한 범인을 찾기 힘들어 보이는군요.”
“······ 범인은 뻔하겠죠.”
이자젤은 말을 아꼈다.
황탑주니 하믈 제국이니 떠드는 건 힘이 있는 자들이나 입에 올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황상 지금 프랑켄이 죽어서 이득 볼 수 있는 곳이 어딘지는 명확하니까요.”
“그래도 저 많은 고위 마법사가, 심지어 탑주들도 있는데 저렇게 혼란스러워하니 의외네요.”
“그렇군요. 정말 기상천외한 마술인가 보네요.”
마술? 마술이 뭐지?
이자벨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시죠?”
“아, 아닙니다.”
여기저기 혼란스러운 상황이니 자신이 마법을 잘못 들었겠거니.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손수건, 꼭 돌려주셔야 합니다. 꼭!”
“······ 네.”
***
내가 머무는 곳은 아덴의 수도인 에란젤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급 호텔의 17층 특실이었다.
본래 호라이즌 측에서 잡아준 최고의 호텔에 짐을 풀었었지만······.
프란을 피해 도망쳐왔다. 그녀는 내가 상의도 없이 황탑주를 엿 먹인 것에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다.
용서가 허락보다 빠르다는 말.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객실로 돌아온 나는 창가로 다가가 야경을 감상했다.
가로등을 대신해 잎에서 빛을 발하는 나무가 인공 구조물들 비추고, 거목의 내부를 파서 만들어진 집에서는 전등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에란젤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드워프와 엘프. 그걸 반영하듯 에란젤은 숲과 도시가 공존하는 특이한 곳이다.
띵동, 띵동.
“왕자님, 알폰소입니다.”
“들어와.”
알폰소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세련된 정장을 입고 왼쪽 손목에는 명품 시계를 차고 있었다.
“뭐래?”
내 물음에 녀석이 시선을 살짝 피했다.
“또 허탕인가?”
“죄송합니다.”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알폰소는 최근 내가 영입하기 위해 만난 마법사, 마공학자들에게 확답을 받으러 다니고 있다.
‘쉽지 않네.’
호라이즌이 열린 시기에 아덴을 방문한 이들 중 슈이츠처럼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래의 위인은 드물었다.
일단 논문 발표든 구경이든 호라이즌 때문에 아덴에 왔다는 것부터가 대부분 자국의 ‘후원’을 받는 이들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은 마법사, 마공학자라는 말이다.
가물에 콩 나듯 자비를 털어 온 이들이 있긴 한데, ‘리오넬 왕국’이란 소리를 들으면 일단 표정이 미묘해지곤 했다.
‘일단 언어부터가 문제긴 해.’
의사소통을 위해서 룬어가 강제된다. 귀족 중에도 룬어로 의사소통을 못 하는 이들이 태반. 그 밑은 말할 것도 없다.
스스로 리오넬 왕국어를 익히기 전까지 일상생활이 무척 불편할 거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비단 언어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족, 리오넬 왕국의 불안한 정치 상황, 자국의 해외 이민 금지법 등등 그들이 영입을 고사한 데에는 수많은 요인이 있다.
‘남은 건 이자벨인가.’
카메오의 딸, 이자벨 로넬리.
그녀는 ‘미래’에서 아이멘 제국의 엄중한 보호를 받는 마력초전도체의 권위자였다.
후발주자였던 아이멘 제국이 압도적으로 앞서나가던 하믈 제국의 멱살을 잡게 한 일등 공신.
하믈 제국도 분명 카메오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을 터. 당시 놈들은 이자벨을 미리 제거하지 못했던 걸 두고두고 후회했을 거다.
부모님의 이혼 후 아이멘 제국으로 떠난 것과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것. 아마도 그게 그녀가 살 수 있었던 이유였겠지.
‘이자벨은 반드시 영입해야 해.’
내가 호라이즌에서 선보였던 라크9는 ‘미래’에서 리오넬 왕국이 만들어낼 수 있었던 가장 성능 좋은 마력초전도체.
20%의 마력 손실률, 그리고 철에 근접한 강도지만 하믈 제국에선 구형 중에서도 구형 타이탄에만 사용하던 수준이었다.
당연히 지금 내게 마력초전도체를 연구하라 그러면 세계에서 가장 앞서나갈 자신이 있다.
‘그것만 한다면 말이야.’
내게 그럴 시간이 있을 리가 없다.
마력초전도체가 중요한 건 맞지만 리오넬 왕국의 안정이 먼저였다. 거기다 무력 수준도 빨리 회복해야 하고.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되지 않았나?’
혹시 귀찮아서 손수건을 안 돌려줄 작정이라면 실망인데······.
따르릉, 따르릉.
((네, 1707호입니다. 네? 손수건이요? 알겠습니다.))
왔다!
“왕자님, 프런트에 손수건을 가져온 여성분이 있답니다. 저번에 저한테 말씀하신 그분 같은데요?”
“정중히 모셔와.”
“넵, 알겠습니다.”
잠시 뒤.
알폰소가 쭈뼛쭈뼛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이자벨을 데려왔다.
“또 뵙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 손수건······.”
나는 그녀가 전해준 손수건을 품 안에 넣으며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앉으시죠.”
“어··· 전 이제 가봐도······.”
“소중한 손수건을 돌려주셨는데, 그럴 순 없죠. 알폰소, 마실 거랑 디저트 좀. 아, 네가 하지 말고 호텔 직원한테 부탁해.”
“······ 넵.”
알폰소가 입술을 삐쭉거리며 사라졌다.
이자벨은 내 눈치를 보다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다과가 나올 때까지 호텔 특실 여기저기를 조심스레 곁눈질했다.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리오넬 왕국의 5왕자, 에반입니다.”
“네? 와, 왕자님?!”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말씀 편히 하셔도 됩니다. 아이멘 제국에서 10년을 가까이 거주하셨으니 영주권은 이미 획득하셨을 테고, 곧 시민권 심사도 있으시지 않습니까?”
“그, 그걸 어떻게!”
나는 빙긋 웃었다.
때마침 알폰소가 돌아왔다. 녀석이 탁상에 차와 과자를 올려놓았다. 나는 찻잔을 들어 한 입 마신 후 이자벨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복수는 단념하신 겁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부친, 카메오의 연구를 모두 가로채고 살해한 황탑과 황탑주, 그리고 하믈 제국에게 복수하는 건 포기했는지 물어보는 겁니다.”
그녀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렸다.
“그, 그걸 대체 어떻게 아신 거죠?”
“간단합니다.”
나는 품을 뒤적여 안경을 꺼내 썼다.
“?”
흠, 이 정도로는 못 알아보나?
“알폰소.”
“넵!”
녀석이 찰떡같이 알아듣고 하얀 가운을 들고 왔다. 나는 그걸 입고 왼손을 주머니 넣은 채 중지로 안경 코를 올리는 시늉을 보였다.
아, 물론 방향은 가상의 황탑주에게.
“······!! 서, 설마 프랑켄?!”
짝짝짝.
나는 박수를 쳐줬다.
“정답입니다.”
“어, 어떻게?! 설마 아버지의 친우가 왕자님?! 시, 실례지만 나이가?”
“음··· 올해로 14살이군요. 친구 사이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죠. 제 외가가 베이른 후작가였습니다. 외가에 잠시 머물던 중 우연히 만나 우정을 나누었죠.”
“마, 말도 안 돼요! 아버지와 연구자료를 공유할 당시 7살? 그 정도밖에 안 되셨을 텐데!”
“어쩌다 보니 카메오한테 많이 배웠습니다.”
되는대로 답변했다.
어차피 그녀가 따로 조사한다고 알 수 있는 내용도 아니다.
중요한 건······.
“그,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저한테 다 하셔도······ 헛!”
이자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 의도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맞습니다. 밖으로 새어 나가선 절대 안 되는 이야기죠. 제가 프랑켄이란 사실은.”
나는 살짝, 아주 살짝 스산한 눈빛을 띠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게 설령 이제 볼 수 없는 친우가 세상에 남긴 하나뿐인 딸의 입에서라도 말이죠.”
좋은 말로 인재들을 섭외하는 건 이제 끝났다. 때론 말보다 주먹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아이멘 제국의 시민권 획득을 위한 심사까지 석 달 정도 남으셨죠? 아깝겠지만 고국으로 돌아오시죠. 아버지의 복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