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71)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71화(71/203)
071
오늘은 호라이즌의 피날레, 시상식이 있는 날이었다.
((정말 다사다난했던 호라이즌이었습니다. 첫날부터······.))
5년에 한 번 개최되는 호라이즌은 전 세계에서 제출된 수많은 논문 중 50개를 엄선해 현장에서 발표하고, 그중 최고의 논문을 뽑아 연구자에게 ‘호라이즌 메달’을 수여한다.
무려 미스릴 메달.
당연히 도금이다. 그것조차 무시무시한 가격이라 메달을 여럿 증정해야 하는 공동연구 논문은 불이익을 받는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그런 호라이즌 메달을 받는 것은 전생의 노벨상, 필즈상을 받는 것 이상으로 영광된 일이다.
나는 힐끔 옆자리에 앉은 프란을 훔쳐봤다. 긴장된 표정으로 수상식 진행자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화가 좀 누그러든 것 같아서 다행이야.’
수상식 동행을 허락해준 것이 그 증거였다. 일주일 전만 해도 나를 보면 혈압이 오르는지 얼굴의 혈관이 튀어나왔었다.
역시 잠시 피해 있는 게 답이었다.
‘수상만 하면 완전히 풀릴 텐데.’
((······ 올해도 저희를 깜짝 놀라게 할 수많은 논문이 제출······.))
‘미래’에서는 스텔라를 발표한 프란을 제치고 황탑주가 마력초전도체로 호라이즌 메달을 목에 걸었었다.
시기가 안 좋았었다.
다른 때였으면 호라이즌 메달은 무조건 프란이 목에 걸었을 터.
‘이번엔 어떻게 되려나.’
((······ 그러면 이제 수상 후보를 공개하겠습니다.))
따악-!
진행자가 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움찔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프랑켄 폭사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인 것 같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별다른 일 없이 스크린에 세 가지 논문 주제가 떠올랐다.
『마그네트론』
『마나보존법칙』
『마력학 제2법칙』
– 오오, 대부분이 예상한 대로 저 세 논문이 후보로 올랐군.
– 역시 황탑주의 마력초전도체는 빠졌어.
– 당연한 거 아니야? 남의 연구를 도용한 파렴치한 인간의 논문을 후보로 올릴 리가 없잖아.
사람들의 수군거림.
앨리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깡총깡총 뛰었다.
“있다, 있다! 스승님 마그네트론이 있어요!”
“앨리스, 촐싹거리지 말고 조용히 있으렴.”
짐짓 엄하게 말하는 프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박빙인가?’
마력초전도체와 스텔라만 피하면 어느 시기에 발표되더라도 수상을 노려볼만한 우수한 논문들이었다.
‘근소하게 우위일지도.’
이론뿐 아니라 실제로 실생활에서 사용 가능한 전자레인지를 선보였다는 것, 무엇보다 마력초전도체 연구자료를 세상에 공개한 프랑켄이 공동연구자였다는 것이 크게 가산점을 받을 만했다.
호라이즌 측은 프랑켄에 대한 부채감이 막대할 터였다. 세상에서 사라진 그에게 뭐라도 쥐여주고 싶지 않겠나.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이번 호라이즌 최고의 논문으로 선정된 건 바로!))
진행자가 말을 끊고 청중을 한차례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긴장감이 최고조로 이른 순간,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마그네트론입니다! 메달을 수상하실 7성 마법사 프란 님은 앞으로 나와주시죠.))
우와아아아─ 짝짝짝.
사람들의 함성과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프란이 단상으로 걸어가기 전 나를 보고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연구하던 마그네트론에 뒤늦게 합류했는데 혼자 메달을 목에 걸게 되어 그런 것 같았다.
나는 빙긋 웃으며 나가보라 손짓했다.
호라이즌 메달을 목에 거는 건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겠지만, 나에겐 그보다 훨씬 중요한 과업이 존재한다. 그걸 위해선 명예 따윈 백번 천번이고 갖다버릴 수 있다.
프란이 호라이즌 메달을 받게 되면서 내게 화나 있던 게 누그러드는 정도면 보상으로 충분했다.
***
수상식이 있고 이틀이 지났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객실로 돌아온 나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펼쳤다.
『황탑주, 자신은 프랑켄을 살해하지 않았다며 질문을 한 기자를 위협』
『황탑주가 프랑켄을 제거해야만 했던 이유』
『익명의 하믈 제국 고위 인사, 황탑주의 독단적인 행동이라 밝혀』
『하믈 제국인들, 우리는 황탑주를 지지한다』
아주 만족스러운 상황이다.
현재 아덴의 길거리로 나가 프랑켄을 죽인 범인이 누구냐 물으면 동네 꼬맹이조차 황탑주라 말할 정도였다.
심지어 하믈 제국인 대부분도 황탑주가 프랑켄을 살해한 걸로 알고 있다.
『문명의 수준을 진보시킬 수 있던 마공학자 프랑켄. 그를 보호하지 못한 아덴에 세계 각국의 비난이 쏟아져』
『무능한 아덴. 보호비를 지불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는 부족들』
아덴에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다.
‘원래 사이가 나빴으니 별 상관없겠지.’
이종족들에게 가장 많은 만행을 저질러 왔고, 현재도 저지르는 것이 하믈 제국이다. 아덴 사람들은 리오넬 왕국의 북부인들만큼이나 놈들을 싫어한다.
『강철? 폭사의 토르릭이라 불려야』
『드디어 입을 연 강철. 황탑, 황탑주, 그리고 하믈 제국에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것』
이번 일로 하믈 제국과의 외교에 있어 강경일변도인 걸로 유명한 토르릭의 지지도가 하락한 것이 조금 걸리긴 했다.
아덴의 국가원수는 연임이 가능한 자리.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그가 국가원수를 연임하는 것이 리오넬 왕국 입장에선 이득이었다.
뭐, 조만간 그의 지지도가 다시 반등할 일이 있으니 크게 걱정할 건 아닌 것 같았다. 혹시라도 투표가 다가온 시점에서도 그의 지지도가 바닥이면 그때 가서 고민하기로 했다.
나는 다시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아이멘 제국의 황실 연구원, 호라이즌에서 황탑주가 선보였던 수준의 마력초전도체 재현에 성공했다고 밝혀』
『브리센 연합. 우리도 성공! 마력초전도체 개발에 각국의 협력을 독려해』
내가 각국에 뿌린 연구자료는 굉장히 세밀했다. 금방 ‘라크’ 수준의 마력초전도체를 만들 수 있을 터였다.
‘그래도 생각보다 빠르네.’
이 일이 어떤 태풍이 되어 돌아올지는 쉬이 짐작이 가지 않았다.
연구자료를 뿌린 건 하믈 제국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세계의 집중된 지원이 황탑으로 쏟아지지 않는다면 마력초전도체의 발전이 늦어질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리오넬 왕국의 정치 상황이 안정되는 순간, 마력초전도체를 선도하는 곳은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 외에는 별다른 기사는 없나?’
신문을 접은 나는 오전 시간 동안 소파에 앉아서 졸기도 하며 오랜만에 꿀 같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프란과 만나 시내로 나갔다.
“다음부터 또 상의도 없이 그런 짓거리 하면 그 검은 머리털이 다 뽑히는 시약을 뿌려버릴 거니 각오해.”
그녀는 화가 거의 다 풀린 상태였다. 이렇게 먼저 말을 건네는 것만 봐도 그렇다. ······ 근데 대머리를 만들겠다니 너무 심한 거 아냐?
“으음··· 그냥 색깔 정도 바꾸는 걸로 해주시죠.”
“끝까지 안 한다는 말은 안 해요.”
넉살 좋은 내 대답에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장담할 수 없는걸.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편이다. 나는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적탑주는 어떤 인물인가요? 소문으로는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사람이라고 하던데.”
“직접 만나 봐.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
나와 프란은 적탑주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전자레인지’의 상용화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마탑은 마법을 수학하는 학문 기관인 동시에 하나의 거대 기업이기도 하다.
마그네트론 같은 신기술이 사용되는 마도구의 출시는 대형 마탑을 끼고 하는 게 속이 편하다.
리오넬 왕국 내에 변변한 제조 기반도 없거니와, 나중에 발생할지도 모를 특허 분쟁과 관련해서 특히 그렇다.
프란이 호라이즌 메달을 목에 걸고 수많은 마탑에서 러브콜이 쏟아졌었다. 웃기게도 황탑에서도 왔다.
진짜 양심 없는 놈들.
– 그냥 적탑이랑 해. 적탑주가 그런 걸로 사기 칠 인간은 아니야. 내 얼굴 봐서 조건도 대충 맞춰줄 거야.
괜히 인맥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프란이 마법을 수학한 적탑과 손을 잡기로 암묵적으로 합의된 상태였다.
오늘은 그러니까 그냥 적탑주 얼굴 한 번 보고 밥 먹는 자리라고 봐도 무방했다.
에란젤에서 가장 높은 건물? 나무? 하여튼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레스토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점심 동안 통으로 빌린 것 같았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에란젤 전경이 보이는 자리에 가니 한 여자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적탑주였다.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20대 초반. 살아 움직이는 불꽃 같은 붉은 머리카락. 뭔가 칙칙한 2왕비의 적발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그녀가 흐리멍덩한 눈으로 나와 프란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에요. 교수님.”
교수님?
“언제 적 얘기하는 거야. 그냥 이름으로 불러. 적탑주가 자기보다 수준 낮은 마법사한테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웃긴 일이야.”
“네, 교수님. 호라이즌 메달을 목에 거신 거 축하드려요.”
“이미 편지 보냈었잖아. 그리고 그냥 이름 부르라고.”
“네, 교수님.”
“······ 됐다. 네 맘대로 해라.”
대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게 조금 웃겼다.
아무래도 프란이 적탑 교수로 재임 시절 그녀를 가르쳤던 것 같다.
적탑주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당신이 교수님의 마그네트론 연구를 도와준 후원자?”
“네. 에반 리오넬입니다.”
“이 녀석은 신경 쓸 것 없어. 나랑 조건을 맞추면 적탑 측이 가져갈 이익을 제외한 나머지는 우리 둘이 알아서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여기 이거.”
적탑주가 쓱 서류를 내밀었다.
“교수님의 얼굴을 봐서 실무진에게 최고의 조건을 준비하라 했습니다. 확인해보세요.”
서류를 집은 프란이 그걸 내게 건넸다.
“네가 확인해. 나보다 네가 훨씬 잘 알 테니까.”
“그러죠.”
나는 서류를 자세히 살폈다.
로열티부터 시작해 어디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조건이었다. 불 마법에 정통한 적탑답게 일 처리도 화끈했다.
“흠잡을 데가 없네요.”
“그래? 그렇다네.”
“만족스럽다니 다행이네요. 이제 식사하시죠. 여기 스테이크 굉장히 맛있어요.”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바로 음식이 나왔다.
적탑주의 말대로 입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스테이크였다.
별다른 대화 없이 식사에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요리가 워낙 맛있어서 미식에 집중하느라 분위기가 어색하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다.
식사가 마무리되고,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적탑주가 프란을 바라봤다.
“교수님이 시제품으로 만들었던 전자레인지, 상품으로 만들 제품의 이름이 떠올랐어요.”
갑자기?
식사하면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저거였나.
“뭔데?”
“프란니 어떤가요?”
풉- 음식을 뿜을 뻔한 걸 겨우 입을 막아 참았다. 슬쩍 프란을 살피니 눈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나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절대 안 해!”
“만족스러우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안 한다고!”
“상표는 교수님의 캐리커처가 좋을 것 같아요.”
“야!!”
적탑주, 재미있는 사람 같았다.
기회가 된다면 친해지고 싶지만, 그녀가 지내는 적탑의 본탑은 에란젤에 있었다. 만날 일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아 아쉬웠다.
‘이제 아덴에서 할 일은 다 한 건가.’
종합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호라이즌 기간이었다.
영입하고 싶었던 마법사, 마공학자들을 대부분 놓친 게 아쉽지만, 그래도 이자벨은 낚아챘다.
남은 기간, 나도 휴가를 조금 즐기다가 귀국하면 될 것 같았다.
***
왕국으로 돌아온 지 넉 달이 지났다.
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건 하믈 제국으로부터 들어오던 마정석 무역이 중단되었다는 것.
안 그래도 리오넬수호군의 창설로 말이 많던 와중이었다. 제국 뚱땡이 소유의 마정석 광산에 최상급 마수가 출몰하며 광산이 완전히 박살 났기 때문이었다. 특히 상급 마정석이 발굴되던 곳을 다 퍼먹었단다.
참··· 무슨 마수가 그랬는지.
덕분에 지금 1왕자 진영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오! 그오!”
“알았어, 알았어. 옜다. 많이 먹어라.”
아침 산책을 하고 있던 내게 고개를 내밀고 애교를 떨던 지드래곤. 하급 마정석 하나를 툭 던져주었다.
“그오오!”
녀석이 날름 받아서 땅속으로 사라졌다.
간식으로 주기엔 엄청나게 비싼 거지만, 나는 노동에 대한 적당한 대가를 챙겨주는 좋은 주인이다.
지드래곤과 헤어진 후 뒷짐을 지고 천천히 산책하는데 연무장 쪽에서 기사들이 대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압! 받아라! 낙월!”
아돌의 외침, 월광창술의 3초식이다.
공중에서 월아극을 내려치는 강맹한 공격.
“어림없다! 청염대풍륜!”
이건 버논, 청염대부술의 6초식으로 청염대부를 이용한 방어 기술이다.
둘은 저렇게 초식명을 외치며 대련한다. 그래야 제대로 하는 기분이라나? 솔직히 구경하고 있으면 조금 오그라드는데, 실제로 저러다 5성 기사로의 벽을 넘었으니 뭐라 할 수도 없다.
나는 둘의 대련을 잠시 구경하다 다시 본궁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무실로 이동하니 책상 위에 오늘 자 신문들이 놓여있었다.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프리홀로호의 시민들. 그들은 오늘도 우산을 쓰고 거리를 나선다』
프리홀로호는 하믈 제국 남쪽에 위치한 자치령이다. 지금 그들은 하믈 제국의 지나친 개입에 반발해 격렬한 시위 중이었다.
이미 꽤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간 걸로 알고 있다. 시위의 배경과 진행 상황은 다소 긴 이야기다.
중요한 건.
– 우산을 든 사람들이 화창한 거리를 걸을 때, 붉은 꽃을 삼킨 이들이 지상을 검은 연기로 뒤덮으리라.
파투라시트의 성녀가 죽기 전 남겼던 예언이 실현될 때가 되었다. 하믈 제국에서 시작되는 붉은별열병이 곧 전 세계를 뒤덮을 거란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