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72)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72화(72/203)
072
야심한 시간에 바로나 여왕삼거리에서 가장 왼쪽 길을 택해 쭉 가다 보면 점점 분위기가 야릇해진다.
갈수록 빨강, 노랑, 파랑 등의 원색으로 외벽을 칠한 건물이 늘어나고, 핑크빛이 가득한 간판들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당연히 조명은 오묘한 붉은색.
왕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흥가다.
최고급 마차 한 대가 지금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덜컹, 창문이 열리더니 담배를 꼬나문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밀로아였다.
‘이 자식은 언제까지 처놀려는 거야.’
그녀는 지금 1왕자 때문에 짜증이 잔뜩 난 상태였다.
한동안 미친 듯이 검만 휘두르던 루카스 리오넬. 그는 6성 기사로의 벽 앞에서 무릎 꿇은 후부터 사람이 변해버렸다.
‘벌써 몇 달째야.’
처음 한두 달은 본인의 궁에 틀어박혀 잠만 처잤다. 그 후에는 생전 안 하던 술 담배. 그리고 최종적으로 별 시답잖은 놈들과 어울리며 유흥에 빠져버렸다.
자기 자신의 재능을 확신하던 이들이 벽을 만나 무너져내렸을 때 자주 보이는 그런 상태였다.
‘스트레스받아 죽겠네.’
그 탓에 밀로아는 겨우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었다.
치익, 스읍- 하아─
스읍- 하아─
금방 하나를 다 피웠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다 다시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아가씨, 너무 많이 피우십니다.”
줄담배를 피우는 밀로아에게 호위기사가 넌지시 충언을 건넸다. 그녀가 가주가 되기 전부터 함께한 크리스티 백작가의 노기사였다.
“괜찮아. 치료사도 담배보다 스트레스가 훨씬 해로운 거라고 그랬어.”
“······ 1왕자님이 잠시 방황하시는 게 그렇게 신경 쓰이십니까? 그래도 그 정도면 양호하신 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최소한 선을 넘는 행위는 안 하시지 않습니까?”
“흥, 그런 녀석이었으면 애초에 친구가 되지도 않았어.”
“스스로 이겨내실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1왕자님이라면 이번 역경을 털어내고 일어나실 때 분명 더 크게 성장해 있으실 겁니다.”
1왕자를 지지하는 대다수 인물의 생각이 노기사의 의견과 비슷했다.
5왕자가 조 베이리 해적단의 습격을 받고, 역으로 놈들을 침몰시킨 덕분에 2왕자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동부가 크게 출렁였다.
2왕자 진영 인물들이 꽉 잡고 있던 석함도. 그곳의 해군 장성들이 줄줄이 옷을 벗고 그 자리에 자신들 입맛에 맞는 인물 몇 명을 채워 넣은 건 큰 쾌거였다.
거기에 4왕녀와 혼인한 제국 황족의 마정석 광산에서 큰 사고가 터지는 행운까지 겹쳤다.
“최근 분위기가 좋은 건 나도 알아.”
밀로아도 인정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왕좌를 위해 달려온 1왕자였다. 그의 늦게 온 사춘기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여태껏 주변인들의 기대를 배신한 적이 없었던 루카스였다.
늦더라도 언젠가 털고 일어날 터였다.
하지만.
“프리홀로호에서 우산 시위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부터 기분이 안 좋아. 루카스 녀석이 저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답변을 들은 노기사는 입을 닫았다.
그는 그녀의 기묘한 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밀로아가 어렸을 적, 기분이 별로라 했던 날이면 어김없이 암살자가 들이닥쳤었다.
따그닥, 따그닥, 딱.
건물 한 채를 통으로 사용하는 최고급 주점 앞에 마차가 멈췄다. 오직 귀족들만 이용하는 곳이었다.
마차에서 내린 밀로아는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제지하려던 종업원이 부리부리한 노기사의 눈빛을 보고 얼른 문을 열었다.
주점 안으로 들어간 밀로아는 인상을 팍 찡그린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점에 들어선 미녀의 등장에 휘파람을 불며 희롱하려던 놈팡이 하나가 뒤따라 들어오는 노기사의 갑옷에 새겨진 크리스티 백작가의 문장을 보곤 얼른 주둥이를 틀어막았다.
풍만한 몸매가 드러나는 허벅지 옆이 탁 트인 원피스를 입은 지배인이 다급히 달려 나왔다.
“밀로아 백작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우리 인기쟁이 1왕자님, 어딨어?”
잠시 움찔한 지배인.
답변해도, 답변하지 않아도 곤란한 질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 슬쩍 3층에 있는 룸 하나를 바라본 것이었다.
밀로아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덜컹,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버렸다.
“꺄아아아아!”
“누구냐!”
“헉! 밀로아 백작님!”
“저, 전 잠깐 들린 겁니다.”
헐벗은 인간들이 고개를 숙인 채 부리나케 도망쳤다. 오직 루카스만이 소파에 앉아 흐리멍덩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여, 밀로아. 오랜만이네.”
“오랜만은 개뿔. 옷이나 똑바로 입어.”
루카스는 밀로아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키스 마크가 가득한 자신의 가슴팍이었다.
그는 씩 웃으며 주섬주섬 풀어 헤쳐진 앞섬을 잠가나갔다.
“내가 워낙 인기가 많아야지.”
“과연, 네가 추락해도 여전히 인기가 많을까?”
단추를 잠그던 루카스의 손이 멈췄다.
“그만 처놀고 정신 차려. 직접 말하지 않으면 들어 먹을 것 같지 않아서 직접 온 거야. 계속 그 상태면 열 받아서 확 열차를 갈아타 버릴지도 모르니까.”
“큭, 네 성격에 다미안하고 어울릴 수 있겠어?”
“무슨 소리야? 내가 그쪽으로 왜 가.”
“방금 갈아탄다······ 설마 에반을 말하는 거야?”
“글쎄, 어떨까. 하여튼 난 할 말 다 했으니까 앞으로 계속 주저앉아 있든, 다시 일어서든 네 맘대로 해.”
***
집무실에서 한참 업무를 보는 중에 알폰소가 서류 뭉치를 들고 왔다.
“뭐야, 그건?”
“아이라 양이 보내왔습니다. 상단의 3분기 보고서입니다.”
받아서 서류들을 살펴보니 손실을 뜻하는 붉은색 숫자가 가득했다.
‘적자도 이런 적자가 없네.’
검은 모루 부족의 마정석 광산에서 발생하는 수익 중 대부분을 제네센을 매입하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 지시대로 한 결과라지만 보내기 전 보고서를 검토했을 아이라가 참 민망했을 것 같다. 문득 얼마 전 왕궁에 잠시 들렸던 그녀가 우는소리를 했던 게 떠올랐다.
서부에서 온 호구 아가씨라고 단단히 소문났다나?
불과 반년 사이의 그녀 혼자서 제네센의 가격을 3배 이상 올려놨으니 그럴 만도 했다.
‘신약이 거의 완성단계야. 적자도 조만간 끝이야.’
슈이츠가 얼마 전 제네센에서 해열작용을 하는 성분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에 널리 사용되던 해열제들에 사용되던 것과는 전혀 별개의 성분이었다.
그걸 이용해 만들어질 신약은 붉은별열병을 치료까지는 아니더라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줄 터였다.
일단 열은 내리게 만들 테니까.
신약이 만들어지는 대로 곧바로 만신전에 인증을 신청할 예정이긴 하지만, 아마 안 될 거다.
‘충분한 임상시험을 요구하며 거들먹거리겠지.’
그 점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만신전의 승인이 없어도 약을 달라는 사람이 넘쳐나게 될 거다. 오히려 나중에 가서는 제발 약을 빨리 생산해 달라고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붉은별열병이 발발하면 치료제도 금방 만들 수 있을 거야.’
이미 제네센의 모든 성분을 분석해놨다. 그중 붉은별을 잡아먹는 것만 찾아내면 치료제도 금방 개발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최종목표는 백신.’
솔직히 거기까지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 백신의 개념이 없는 상태다. 한번 병을 앓고 나면 같은 질병은 잘 안 걸리는 것 같은데? 딱 그 정도의 인식.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알폰소가 불현듯 뭔가 떠오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맞다. 그 소식 들으셨어요?”
“뭔데?”
“1왕자님이 오늘 연무장에 나오셔서 기사들과 대련을 하셨다네요.”
“루카스 형님이?”
흠······.
‘이제 정신 차린 건가?’
1왕자, 루카스 리오넬.
본인의 능력도 출중한 편이고, 사람 보는 안목도 어느 정도 있다. 거기다 호불호가 좀 갈리긴 하지만 그의 호방한 성격을 좋아하는 인간들도 많은 편이다.
‘객관적으로 괜찮은 인간이야.’
때만 잘 만나면 왕국을 발전시킨 왕 중 하나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도 있는 인물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현시대가 어지간한 현군은 암군으로 만들어버리는 격변의 시기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이 우물 안 개구리란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거지.’
1왕비가 자국 안에서 너무 끼고 돈 탓이 큰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건국왕급 재능이십니다!’ 같은 말만 듣고 자랐으니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알 것 아닌가.
하믈 제국만 봐도 그와 비슷한, 혹은 그 이상의 재능을 가진 기사가 내가 아는 것만 두 자릿수가 넘는다.
‘어쨌든 정신을 차린 거면 내일 국무회의도 얼굴을 비추겠군.’
저번 3분기 정기 국무회의는 아덴에서의 복귀와 맞물려 불참했었는데, 내일은 또 어떤 개판이 펼쳐지려나.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졌다.
***
4분기 정기 국무회의가 열렸다.
내가 처음 참석했던 국무회의와 크게 달라진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1왕자가 참석했고.
2왕자가 클리앙이 아닌 해양수산부 장관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옹졸한 인간.’
내가 동부에서 활약한 바람에 자신의 세력이 출렁인 책임을 클리앙에게 떠넘긴 거로 알고 있다.
2왕자가 능력이 영 없는 인간은 아니다.
4왕자를 칼같이 도려내는 결단력과 실행력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고 왕이 될만한 인물이냐고 물어보면 나의 답은 ‘아니오’다.
‘왕위 계승에 밀리면 곧바로 외세를 끌어들일 인간이야.’
하지만 그 애매한 능력 탓에 2왕자를 지지하는 귀족들도 많을 터였다.
이래저래 복잡한 문제다.
1왕자를 지지하는 인간 중에서도 그가 6성 기사의 벽 앞에서 무너졌을 때 박수 치고 있던 이들이 수두룩했을 거다.
“······ 그러니 동부에 더 많은 열차를······.”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이 겨울에 작업하다 얼어 죽을 일 있소! 게다가 이미 충분한 기찻길······.”
“남부에서 비축한 식량을······.”
“아니! 피땀 흘려 수확한 곡식을 헐값에 퍼주란······.”
곧 다가올 겨울.
하믈 제국과 아르야 왕국도 잠잠한 시기라 커다란 국제적 이슈는 없었다.
다만, 확실히 전보다 2왕자 진영 인물들의 목청이 작아졌다. 그에 반해 1왕자 쪽은 귓구멍이 아플 정도로 쩌렁쩌렁했다.
나는 그저 듣기만 하고 나서진 않았다.
어차피 붉은별열병이 터지면 다 백지화될 안건들이었다.
“허허허, 그럼 다음으로 베르트 의원님의 안건을 살피겠습니다.”
허총리의 말에 베르트가 내게 시선을 한 번 주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파투라시트 교단의 성녀가 죽기 전 남겼던 예언을 기억하시오?”
“으음······ 분명 우산이 어쩌고. 그런······.”
“오! 다들 기억하시는구려. 맞소! 우산을 든 사람들이 화창한 거리를 걸을 때, 붉은 별을 삼킨 이들이 지상을 검은 연기로 뒤덮으리라. 그거 말이오.”
“허허허, 베르트 의원님, 그 예언이 갑자기 왜 나오는 겁니까? 이미 실현된 것 아닙니까?”
허총리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하믈 제국의 문장에 아이러니하게도 붉은 별이 있다.
성녀의 예언은 하믈 제국군이 평화 시위하는 프리홀로호 시민들을 무차별 탄압한 걸 의미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이다.
“본인은 파투라시트의 성녀가 죽기 전 남긴 예언이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소.”
국무회의에 모인 이들이 나를 한 번씩 힐끔 쳐다봤다. 지금 베르트가 말한 본인이 나를 뜻한다는 걸 다들 알아먹은 모양이었다.
간혹, ‘미래’의 지식 중 일부를 누군가와 공유하려 하면, 인지할 수 없는 존재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게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프리홀로호의 우산 시위가 시작되고, 붉은별열병을 직접 예언하는 건 안 되지만, 남의 예언을 해석해 역병을 대비하라 경고하는 건 허용선이란 걸 알게 되었다.
너무 늦게 알았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다지 바뀔 건 없으려나?’
생각해보면 우산 시위가 올해 시작된다는 것 또한 내가 남들에게 쉽게 떠벌릴 수 없는 일이었다.
“허허, 그럼 베르트 의원님은 그 예언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역병이오. 그것도 시체들을 태우는 검은 연기로 지상이 뒤덮이는. 그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 흐음···.”
“허, 그것참······.”
게다가 저 떨떠름한 반응들을 보라.
나를 사기꾼 점쟁이 보는 듯한 눈빛들이다. 들어먹을 인간들이 아니다. 내가 역병을 경고하는 건 그러니까 어찌 보면 나는 할 만큼 했다는 일종의 자기 위안이었다.
2왕자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에반 리오넬. 몇몇 왕궁 사람들이 네게 신통방통하단 얘기를 좀 하니 예언가로 전직하려는 건가? 그리고 그 안건이 어째서 국방부에서 나오지? 보건복지부에서 나와야 할 이야기 아닌가?”
나는 그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답했다.
“역병이 돌아 병사들에게 피해가 가면 곧 국방력 감소 아니겠습니까? 이 안건이 어째서 보건복지부에 국한되어야 하는지 의문이군요, 다미안 형님.”
2왕자의 눈가가 씰룩거렸다.
내 비꼬는 듯한 말투에 열 받은 게 분명했다.
“역병을 대비한답시고 무의미한 세금만 낭비하면 그땐 어찌할 거지? 그러고 보니 몇 달 전부터 동부에서 별 볼 일 없는 약초인 제네센을 싹 쓸어간 게 이거 때문이었군.”
“제가 하는 일에 언제부터 그렇게 관심이 많으셨습니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저는 제가 파투라시트 성녀의 예언을 해석한 내용에 강한 믿음이 있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국무회의에 참여한 인원들을 둘러보았다.
“만약. 제가 해석한 대로 역병이 오지 않고 조용히 넘어간다면! 자숙하는 의미로 성인식을 치르기 전까지 베링턴 요새에서 야만인들의 침입을 막겠습니다.”
“드디어 우리 왕국에도 세계를 놀라게 할 예언자가 나타났어. 경축할 일이군.”
비아냥거리는 2왕자.
나는 그의 눈을 직시하며 물었다.
“제 말대로 역병이 일어나면 다미안 형님은 어쩌실 겁니까?”
2왕자가 입을 꾹 다물었다.
“설마. 제 해석이 틀릴 거라는 확신도 없으면서 그렇게 반대하신 겁니까?”
주둥이만 살아서는.
마지막 문장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입술로만 말했다. 그의 얼굴이 시뻘게진 걸 보니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내가 보유한 상선대 중 하나를 네게 주지. 다만! 에반 리오넬, 너도 네 말을 지켜야 할 거다.”
아이라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였다.
상단일 중 꽃은 해상무역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