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74)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74화(74/203)
074
『하믈 제국, 좌한 지역을 봉쇄하다』
『좌한, 지금 그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처음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뉴스였다.
어린아이가 황실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마을을 봉쇄한 후 무자비한 학살을 벌였던 게 하믈 제국 놈들이다.
또 어떤 착한 하믈 제국인이 입을 잘못 놀렸나? 그 정도 생각들이었다.
하지만.
『속보! 하믈 제국이 좌한을 봉쇄한 이유는 전염병 때문!』
『검은 연기로 뒤덮인 좌한의 하늘』
『파투라시트 성녀가 남겼던 예언은 프리홀로호 사태가 아닌 좌한역병?』
『만신전, 좌한역병이 아닌 붉은별열병이라 불러야』
『하믈 제국, 효과적으로 붉은별열병을 통제중이라 밝혀』
그게 유례없는 전염력을 가진 역병이란 건 금방 밝혀졌다.
세계 각국은 재빨리 국경의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붉은별열병의 잠복기는 최대 두 달.
‘지나치게 길어.’
좌한 지역에서 첫 환자의 목에 붉은 별이 떠올랐을 때, 이미 하믈 제국 전역에 퍼진 상태였을 거다.
대륙의 문명 수준을 수십 배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던 열차와 비공정. 그것들이 이번엔 붉은별열병을 세계 전역으로 실어 나른 원흉으로 지목될 터였다.
“왕자님, 오스틴 선배로부터의 연락입니다. 북부의 국경지대에서 붉은별열병이 돌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이라한테 북부로 보내는 제네롤이 모자라지 않게 재고관리 철저히 하라고 전해.”
“넵!”
제네롤은 슈이츠가 제네센을 이용해 만들어낸 해열제다.
만들자마자 만신전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임상시험 후 바로 인증을 신청했었다.
당연히 그들의 자체적인 임상시험 후 부작용에 관한 장기간의 추적 관찰 뒤 통보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은 상태.
– 그래서 언제쯤 임상이 들어갈 수 있을지 물어보니 그 쥐새끼수염을 한 신관이 뭐라고 한지 아세요? 빠르면 삼 년? 그러면서 실실 쪼개더라니까요!
제네롤의 생산, 유통을 담당하게 된 아이라가 만신전에 다녀온 후 내게 했던 푸념이 떠올랐다. 어지간히 무시당하고 왔었다.
‘지금쯤이면 만신전의 연락이 올 때가 되었는데.’
기존 해열제 시장을 꽉 잡고 있던 아스놀, 레이펜이 전혀 들어먹지 않는 붉은별열병이다.
만신전에서는 그동안 승인 보류 중이던 해열제들을 부리나케 시험, 제네롤이 탁월한 성능을 보인다는 걸 확인했을 터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창문 밖으로 프란이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보나 마나 나를 찾아올 모양인데···.
‘무슨 일이지?’
어지간해서는 본관으로 잘 오지 않는 그녀였다. 특히 뛰어난 마공학자인 이자벨이 그녀의 연구실 옆에 자리 잡은 후부터는 더더욱.
둘이 연구도 공유하고, 내 뒷담도 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 슬슬 하얀 마왕이 나타날 때인가.’
하얀 마왕.
본래는 마족의 지배자, 72 마왕 중 하나의 이명이다. 새하얀 백발, 거기에 대비되는 까만 피부를 가진 엘프의 외형이라고 알려져 있다.
‘미래’에서는 붉은별열병이 발발한 이후 백발을 하게 된 엘프들을 뜻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걸 하나 의미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건 지금 시점에선 언급할 내용이 아닌 것 같고.
중요한 건.
‘붉은별열병에 가장 취약한 종족이 엘프야.’
타 종족은 마력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붉은별열병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엘프들은 6성 이상의 강자도 쉽게 감염된다. 물론, 그런 이들은 하루이틀 콜록거리다 말지만, 문제는 평범한 엘프들.
‘후유증도 치명적이야.’
일반적인 붉은별열병의 후유증은 후각 상실, 폐 기능 약화, 만성피로같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게 대부분.
하지만 유독 엘프들은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된다.
노화와 백발.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신화시대부터 이어져 온 ‘엘프는 늙지 않는다’라는 진리가 산산이 박살 나버렸다.
그 탓에 붉은별열병은 엘프를 타겟으로 한 하믈 제국의 비윤리적 실험이 탄생시킨 인위적인 전염병이라는 음모설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었다.
[도서관]을 이용하면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소모할 RP도 천문학적일 것 같고, 그걸 이용해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아이멘 제국 같은 초강대국이 그럴싸한 증거를 들이대도 ‘아닌데? 그거 조작 아님?’으로 일관했던 놈들이다.
리오넬 왕국 같은 소국의 왕도 아닌 왕자가 그걸 입증한답시고 난리 쳐봐야 얻을 게 하나도 없다.
타이탄의 설계도를 얻어야 할 소중한 RP다. 아끼고 아껴야 한다.
“알폰소, 곧 프란 님이 올 것 같으니 문 열어놔.”
“넵.”
잠시 뒤, 프란이 집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7번째 가지에서 연락이 왔어. 붉은별열병을 앓던 중 노화하는 엘프들이 나타났대. 네가 말했던 하얀 마왕, 이걸 말한 거지?”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치료할 방법이 있는 건가?”
“노화는요.”
“백발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노화는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야?”
“네. 치료하면 아마 서서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 방법을 알려주는 대가로 엘프들에게 원하는 건 뭐야? 공짜로 알려주지는 않을 거 아냐.”
나와 1년 가까이 투덕거리면서 프란도 나를 꽤 많이 파악했다. 나는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7번째 가지의 뿌리 길. 언젠가 제가 요청할 때 그걸 한 번만 사용하게 해달라 하세요.”
“너······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이면 세계인 뿌리 길을 통해 세계수의 가지가 있는 어디로든 한순간에 이동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쉽게 말해 워프 게이트다.
사단급 병력이 이동할 수 있는.
숲지기가 일생에 단 세 번 열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뿌리 길을 여는 건 기존 숲지기가 다음 대의 숲지기를 ‘줄기’로 인도할 때와 여왕을 만날 일이 있을 때뿐이야!”
줄기는 뿌리 길에 존재하는 세계수의 근원을 뜻한다. 그곳에 엘프의 여왕이 산다.
“게다가 뿌리 길을 여는 건 7번째 가지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야! 다른 모든 가지에서 협의해야 하는 일이라고!”
당연한 일이다.
어느 엘프의 숲으로든 이동할 수 있는 데다 여왕이 사는 줄기에까지 접근할 수 있으니.
“왜 프란 님이 열을 내세요. 엘프들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요? 일단 그렇게만 전해주세요.”
“그런 단순한······ 하··· 됐다. 네 말대로 내가 열 낼 일은 아니지. 그래서 치료는 어떻게 하는 건데?”
“아, 치료제를 만들어야죠. 열매를 하나 가져오라 하세요. 그게 주재료거든요.”
프란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 너, 엘프들이 네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아?”
지금은 아니겠지.
하지만, 결국 연락이 올 거다.
“전해만 두세요.”
붉은별열병의 전염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엘프에게는 더더욱. 어떤 경로인지는 몰라도 여왕의 후계자를 감염시킬 만큼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엘프들이 자체적으로 치료제를 만들어낼 거다. 현존하는 세 개의 열매를 모두 소모해서 말이다.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걸로 치료제를 만들겠다는 거다. 나한테는 딱 하나만 갖다주면 해결될 일이다.
물론, 쓰고 남는 건 내가 잘 사용할 생각이긴 하다만.
“아, 그리고 제네롤을 무상으로 공급해줄 테니 메어튼 영지에서 받아 가라 하세요. 치료는 못 해도 열을 내리는 효과는 확실하다는 말도요.”
무료 체험판 격인 제네롤을 사용해보면, 조금 더 빨리 연락이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붉은별열병, 하믈 제국의 황족조차 검은 연기로 화하다』
『동대륙에도 끝내 붉은 별이 떴다! 공포의 질린 아이멘 제국인들』
『하믈 제국, 붉은별열병은 사실 아이멘 제국에서 왔다』
『리오넬 왕국의 신약 ‘제네롤’. 붉은별열병에 통하는 유일한 해열제로 밝혀져』
『만신전, 제네롤의 장기적인 부작용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며 사용 자제를 권고』
붉은별열병이 무서운 기세로 퍼져나갔다.
세계 각국은 하루건너 하루꼴로 비상 회의를 열어 대책 마련에 고심했다.
리오넬 왕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긴급 국무회의가 소집되었다.
생판 안 보이던 국왕까지 얼굴을 비쳤다는 것이 얼마나 급박한 상황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 5왕자님······.
– 정말로······ 해석··· 역병······.
– ······ 제네롤이··· 효과···.
다들 나를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역병의 출몰을 맞췄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유독 나를 뜨겁게 바라보는 두 시선이 있었다.
당연히 1왕자와 2왕자.
1왕자와는 4분기 정기 국무회의가 있고 얼마 안 되어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드래곤이 판 땅굴을 통해 와이트 백작가의 저택에 침입했던 다음 날이었나? 갑자기 에메랄드궁으로 쳐들어와서 내게 대련을 요청했다.
– 에반, 네가 3기사단의 베록을 대련에서 꺾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입단속을 철저히 한 일이었다.
거의 반년 동안 퍼지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다. 즉석에서 [도서관]을 통해 확인해보니 베록이 만취한 뒤 혼자 중얼거린 걸 누가 들은 모양이었다.
아마 본인도 자기가 흘린 줄 모르고 있을 거다. 충분히 무마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치미를 딱 잡아뗐다.
–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저는 이제 겨우 3성 수준입니다. 베록 경은 검사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5성 기사고요. 뭐, 그래도 저와 대련하시고 싶으시다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충 3성 기사 정도의 수준으로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마지막에 분하다는 의미로 입술도 질끈 깨물어줬다.
1왕자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꽤 훌륭하게 연기한 것 같은데 미묘한 괴리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지금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에는 의심이 가득하다.
‘뭐 알 바 아니지.’
나를 완전히 드러내는 건 그러니까······.
최소한 저기 1왕자 반대편에서 나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2왕자의 세력을 완전히 흡수했을 때 정도?
그렇게 생각하며 슬쩍 클리앙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까딱 고개를 끄덕였다.
연기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누가 보더라도 클리앙이 2왕자라는 큰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 중이라곤 상상도 못 할 터였다.
클리앙의 합류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나를 지지하는 이들조차도 그를 격하게 환영할 수 있는 그럴 때.
그래야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생각해보니 박혀있는 돌이 거의 없어서 언제라도 상관없을 것 같긴 하다. 그래도 2왕자의 심장에 비수를 박아넣을 수 있는 그때 합류하는 게 맞다.
땅! 땅! 땅!
국왕이 의사봉을 두드리자 소란스럽던 회의장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다들 온 것 같군. 긴급 국무회의를 시작하겠소. 보건복지부 장관, 현 상황을 거짓 없이 자세히 보고하시오.”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보좌가 큼직한 리오넬 왕국의 지도를 펼쳤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영지가 붉은별열병이 발발한 지역 같은데, 멀쩡한 곳이 없었다. 다만 옅은 붉은 색으로 칠해놓은 곳들이 몇 군데 있었다.
나의 조언을 듣고 대비를 한 지역이었다.
입과 코를 가릴 천을 미리 충분히 구비해라.
따뜻한 차를 자주 마셔 면역을 높여라. 특히 제네센을 이용해 만든 차가 효과가 좋다.
손발 깨끗이 씻어라.
.
.
.
그런 기본적인 것들.
무엇보다.
일차적으로 제네롤이 공급된 지역들이다.
이쁜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내 조언을 들은 영지들에 제네롤을 시범적으로 뿌렸었다.
“사실상 왕국 전역에 붉은별열병이 퍼졌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일부 지역은 치료사, 신관들마저 쓰러졌습니다.”
“5왕자님! 제네롤! 제네롤이 필요합니다! 영지에 지내고 있던 제 아내와 딸도 붉은별열병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저희도! 저희 영지도 제네롤이 필요합니다!”
“당신네는 그래도 아직 치료사들이 걸어 다니잖아! 우리는 신관과 치료사들이 죄다 쓰러졌다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막 서두를 뗐을 뿐인데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이건 뭐 회의장인지 약국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땅! 땅! 땅!
“정숙! 정숙하시오!”
국왕의 말에 그제야 진정된 회의장.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펼쳐놓은 지도 앞으로 다가갔다.
“국내에 유통할 제네롤을 밤낮 가리지 않고 생산하고 있습니다. 곧 제 휘하의 상단에서 위급한 지역부터 차례대로 배부가 될 겁니다. 우선······.”
어느 순서로 배부할지 지도를 가리키려는 순간.
“만신전에서 부작용에 대한 입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들었다! 전 왕국민을 상대로 임상시험을 할 생각이냐!”
2왕자의 태클이 들어왔다.
동부는 애초에 제네센을 향신료로 사용하던 지역이 많은 만큼 붉은별열병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했다.
조금 전 내게 제네롤을 애원하는 남부 지역과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그로서는 붉은별열병이 더욱 활개를 쳐야 이득인 셈.
저건 그러니까 반대를 위한 반대였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밀었다.
일단 2왕자의 입부터 다물게 하고 발언을 이어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미안 형님은 약속했던 상선대나 빨리 주시죠. 제가 붉은별열병이 발발한 후 아이멘 제국과 마정석 무역을 담당하던 상선대를 달라 한 게 언제인데 여태 감감무소식입니까?”
마법처럼 그의 입이 꾹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