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75)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75화(75/203)
075
나는 합죽이가 된 2왕자에게서 시선을 떼고 국무회의에 모인 이들을 바라봤다.
“제네롤을 우선 공급하는 원칙은 단 하나입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왕국민을 살리는 것. 그리고 혹시라도 다미안 형님처럼 부작용이 염려되시는 분들은 거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신전이 제네롤의 안전성을 인정하기 전까지 해당 지역은 후 순위로 밀겠습니다.”
당연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동부 지역에 기반을 둔 이들도 2왕자의 시선을 피하며 섣불리 입을 놀리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걸 다들 아는 모양이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포인터를 꺼내 길게 뽑았다.
“가장 최우선으로 공급할 지역들은······.”
지도를 가리키며 제네롤의 공급 일정을 발표했다.
필연적으로 교통망이 잘 갖추어진, 인구가 밀집된 도시 위주였다. 향후 전국 곳곳으로 제네롤을 유통할 수 있는 중간 거점들이었다.
순서에 따라 일희일비가 교차했지만, 대부분 납득하는 얼굴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이 그런 도시를 영지로 소유한 대귀족이었다.
‘문제는 중소 귀족의 영지야.’
슈이츠가 제네롤을 완성한 순간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생산하고 있지만, 당장 왕국 전역에 뿌리기에는 공급이 부족하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폭발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하루라도 더 빨리 왕국 곳곳으로 제네롤을 공급해주는 것이다.
생산 속도를 더 올려야 한다.
“몇몇 분들은 들으셨겠지만, 현재 해외 각국에서 제 휘하 상단으로 제네롤의 수입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국내의 수요도 감당 못 하는데, 수출 분량까지 생산하는 건 당연히 무리.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
“제네롤, 그리고 향후 만들어질 붉은별열병의 치료제인 제네시아를 빠르게 생산하기 위해 국가 단위의 지원과 투자를 받고자 합니다.”
자본을 끌어모아 인력과 생산 설비를 확충해야 한다.
“잠시 질문 있습니다.”
밀로아가 거수했다.
“말씀해보시죠, 밀로아 백작님.”
“방금 제네시아라는 치료제를 언급하셨는데, 개발 진척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까요?”
“한 달 이내에 시제품이 나올 것 같군요.”
“그렇게나 빨리······.”
“어떻게 운이 좋아 매우 유능한 치료사를 곁에 두게 되었습니다.”
“국가 단위의 지원이란 건 어떤 걸 말씀하는 건가요?”
“제네롤, 그리고 향후 만들어질 치료제에 대한 세금 면제 혜택입니다. 최소한 붉은별열병이 가라앉을 때까지요.”
내 말에 다들 눈치를 슬금슬금 봤다.
붉은별열병을 계기로 내가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게 될 거란 걸 알아서 그런 것 같았다.
슬쩍 2왕자를 바라봤다.
입술이 옴짝달싹하는 것이 뭔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딜레마일 것이다.
붉은별열병을 계기로 내가 자신과 비등, 그 이상의 세력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등이 머릿속에서 맹렬히 깜빡이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섣불리 입을 놀리진 못하겠지.’
동부가 붉은별열병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한 거지 없는 게 아니다.
내가 확 수틀려서 제네롤과 향후 개발될 제네시아를 동부에 판매하는 걸 차일피일 미루면, 그 원성은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일이다.
2왕자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비수를 들고 내 뒤통수를 노리는 것이다.
자신을 지지하는 동부의 귀족들조차 모르게 말이다. 내가 아는 그라면 반드시 그리할 거다.
그때, 역으로 비수를 빼앗아 심장을 찌를 생각이다.
두 번 다시 재기하지 못하도록.
나는 회의장 한편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클리앙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긴급 국무회의가 있고 며칠 뒤.
2왕자가 거주하는 오팔궁의 집무실.
신문을 읽는 다미안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만신전, 제네롤의 뛰어난 효과를 인정하다』
느려터진 일 처리로 유명한 만신전이 붉은별열병이 발발한 지 두 달도 안 되어 제네롤의 효능을 인정했다.
만신전이 인증하기 전부터 수입 요청이 쇄도했던 제네롤이다. 곧 완성되어 전 세계에 뿌려질 제네시아까지 생각하면 리오넬 왕국 사상 유례없는 초거대상단이 만들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왕국의 경사였다.
하지만.
다미안에게는 아니었다.
『왕국의 빛 5왕자 전하, 투자는 충분하다 밝혀. 조만간 붉은별열병은 정복될 것.』
어제 그림자 무영으로부터 자신의 눈치를 보느라 에반의 상단에 투자하지 못한 귀족들이 땅을 치고 후회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더 크는 걸 막아야 해.’
그가 신문을 바스락, 거칠게 구기며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똑똑, 똑똑.
“다미안 왕자님, 클리앙 백작이 찾아왔습니다.”
“클리앙이?”
다미안은 클리앙을 곁에 두면서 내심 그의 뛰어난 능력이 부담스러웠다.
언제나 무표정한 눈빛의 클리앙이지만, 은근슬쩍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 눈깔을 파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곤 했었다.
에반이 조 베이리 해적단을 소탕하며 평판이 날아오르게 된 책임을 그에게 몰아 내쳤을 당시에는 속이 그렇게 후련할 수 없었다.
······ 지금은 솔직히 후회 중이다.
생각도 못 했던 붉은별열병의 발발, 그리고 두각을 드러내며 야금야금 동부의 세력을 갉아먹는 에반.
막상 클리앙을 쳐내고 그 대책 마련을 위해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머저리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불시에 방문한 클리앙.
잠시 고민하던 다미안이 입을 열었다.
“들어오라고 해.”
시종의 안내를 받아 클리앙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다미안이 구긴 신문에 슬쩍 시선을 줬다 입을 열었다.
“고민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저거다, 내려다보는 듯한 저 눈빛.
다미안은 당장이라도 클리앙의 눈알을 파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입을 열었다.
“기별도 없이 무슨 일이지?”
“조만간 와이트 백작가의 가주를 교체하기 위해 원로들이 움직일 것 같습니다. 막아주십시오.”
다미안은 픽 웃었다.
그 원로들의 귀에 바람을 넣은 게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지간히 급했나 보군. 아무리 내가 왕국의 2왕자라지만, 와이트 백작 가문 내의······.”
“5왕자에게 몰린 업적을 2왕자님이 가져갈 방법을 찾았습니다.”
말을 끊었다는 불쾌감이 먼저 밀려왔다. 한데 분노를 토하기에는 클리앙이 내뱉은 말이 너무나 달콤했다.
2왕자는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말해 봐.”
“와이트 백작가 원로들을 막아주신다고 약조해 주십시오.”
“클리앙, 자네의 계획을 듣고 나서 마음에 들면 최선을 다해보지.”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클리앙. 이내 결심한 듯 품에서 작은 지도를 꺼냈다.
“제네롤을 만들었고, 현재 붉은별열병의 치료제인 제네시아를 만들고 있는 치료사의 행방을 알아냈습니다.”
2왕자의 눈이 번뜩였다.
제네롤을 만든 것이 누군지는 전부 알고 있다.
슈이츠 레밍.
에메랄드궁 의무실에서 일하던 치료사.
붉은별열병이 발발하고 얼마 뒤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였다. 에메랄드궁의 빈객, 7성 마법사 프란과 함께 말이다.
그 이유야 불 보듯 뻔했다.
신변 보호.
슈이츠 레밍을 납치하기 위해 리오넬 왕국의 국경을 건너던 하믈 제국의 첩자들이 리오넬수호군에게 걸려 목이 잘린 건 왕국민이라면 모두 아는 이야기였다.
여담이지만, 에반이 왕궁에 있던 그를 숨긴 것 가지고 말이 많이 나왔었다. 에반이 왕궁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찾았지? 그림자들이 흔적도 발견하지 못한 그 인간을 말이야.”
“슈이츠의 아내가 선천적으로 앓고 있던 병이 있습니다. 그가 직접 여러 약초를 조합해 만든 약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그중 독특한 재료가 몇 개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거래된 곳을 일일이 뒤졌습니다. 여기, 여기, 여기······.”
클리앙이 작은 지도에 점을 찍기 시작했다.
왕국 전역에 산발적으로 보이던 점. 멀리서 보면 삐뚤빼뚤한 원처럼 보이는 곳이 하나 생겼다.
“이곳을 집중적으로 뒤진 끝에 결국 슈이츠 레밍의 위치를 찾아냈습니다.”
다미안은 잠시 클리앙이 검게 칠한 구역을 바라보았다.
“동부였어?”
북부, 서부가 아닌 동부였다니.
상상도 못 했다.
‘어지간한 자작령 크기야.’
저기까지 범위를 좁힌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슈이츠 레밍을 찾았단다.
다미안은 힐끔 클리앙을 한 번 바라봤다.
역시 능력 있다.
“그래서 정확히 어디에 있다는 거지?”
“우선 확답을 주십시오.”
또한 그게 거슬렸다.
“좋아, 와이트 백작가의 원로를 몇 명 만나보지.”
***
클리앙이 나가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다미안은 시종을 호출했다.
“세라스궁으로 간다.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잠시 뒤.
외출준비 중이던 2왕비가 불편한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냐.”
4왕자 아카드가 비명에 가고.
다미안은 그녀가 가진 세력을 잘게 쪼개 자신의 휘하에 두었다. 그가 클리앙의 조언하에 진행한 일이었다.
현재 2왕비가 왕국 내에 발휘할 수 있는 정치적인 힘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
그 과정에서 사이가 틀어질 대로 틀어진 둘은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 시국에 어딜 외출하려 하시는······ 설마 그라시아에게 가려고 하신 겁니까?”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붉은별열병, 하믈 제국의 황족조차 검은 연기로 화하다』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붉은별열병으로 사망한 하믈 제국의 황족. 아이러니하게도 4왕녀와 혼인했던 제국 뚱땡이였다.
안 그래도 만성질병을 주렁주렁 달고 살던 몸. 마수가 마정석 광산을 쑥대밭으로 만든 스트레스로 극도로 예민한 상태에서 발병한 붉은별열병이었다.
하필이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광산 재건 현장에 있을 때 급성으로 발병해 신관의 치료를 제때 받지 못했다. 순식간에 상태가 악화하여 그대로 사망.
광산 복구를 위하여 광산을 담보로 빚을 내어 재건하던 중이라 남긴 재산은 단 한 푼도 없었다.
4왕녀는 그야말로 무일푼, 아니 오히려 빚을 진 상태로 제국에서 쫓겨나 왕국으로 돌아왔다. 과부라는 꼬리표를 달고 말이다.
“붉은별열병의 잠복기가 대단히 길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라시아가 제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한 달 뒤에 찾아가시죠.”
“그라시아는 온전한 네 혈육이다! 어찌 그리 냉담할 수 있느냐! 돌아온 뒤부터 단 하루도 울지 않는 날이 없다고 들었다.”
“잘못 전해 들으신 겁니다. 돌아온 뒤로 울음이 끊이지 않는 건 그라시아의 시녀들로 알고 있습니다.”
“······.”
“그라시아가 다시 멀쩡한 귀족과 재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화를 푸시죠.”
“······ 그래서 어미의 손과 발을 다 잘라놓고 또 무엇을 내달라며 온 게냐?”
“잠시 모국으로 다녀와 주십시오.”
“······ 아르야 왕국으로?”
슈이츠 레밍.
그가 만든 제네롤.
붉은별열병을 단시간에 종식할 가능성이 있는 제네시아.
혼자 먹기에는 지나치게 커다란 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7성 마법사 프란.
다미안이 움직일 수 있는 최고의 패는 동부 석함도의 해군 대장. 7성 기사인 그 혼자서 그녀를 제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대규모 인원이 움직인다면 분명 낌새를 눈치채고 슈이츠를 피신시킬 터. 단독으로 움직이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마법사인 프란이 교전을 피하고 7성 마법사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동마법으로 도망가버리면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신세.
그걸 막으면서 확실히 프란을 제압할 묘수가 필요했다.
– 2왕비님의 사촌 동생. 7성 소환사인 그녀를 불러들이시죠. 그녀가 부리는 소환수 중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 주변은 공간이동이 불가능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 슈이츠 레밍의 연구자료와 왕국의 동부 지역에서 자생하는 제네센을 이용해 새로 만들게 될 신약. 지분의 절반을 공유한다 약속하십시오. 아르야의 국왕은 반드시 왕자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겁니다.
다미안은 클리앙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