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78)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78화(78/203)
078
[꺼지지 않는 불] [타오르는 번개의 폭풍] [어둠을 관통하는 번개].
.
.
구축, 설계, 발현을 위해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7성급 마법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낌없이 투자한 상급 마정석의 도움을 받아 한순간에 발현되었다.
동이 터오던 숲이 정오처럼 환해졌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앙!
리오넬 전역에 울릴 것 같은 굉음이 울려퍼졌다.
쿠과과과과──
바이스가 있던 자리에 버섯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대인용 핵폭탄이 떨어진 걸 목격한 것 같았다.
휘오오── 우지끈!
후폭풍으로 인한 충격으로 대지가 분쇄되고, 몇백 년은 산 듯한 거목들이 뿌리째 뽑혀 나갔다.
“그오오오오오!”
칠미호의 심장에 취해 해롱거리던 지드래곤조차 화들짝 놀라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당연히 이런 후폭풍을 고려해 프란이 준비한 방어마법도 있었다.
[불멸자의 요새]– 땅을 디딘 발만 움직이지 않는다면 털끝 하나 안 다칠 거니 안심해도 돼. 아무리 7성 기사의 오러라도 절대로 못 뚫을 거야.
분명 그렇게 장담했었는데······.
슈우욱─ 콰아아앙!
요새의 벽에 구멍이 뚫렸다.
피슛-!
나를 길동무로 데려가겠다는 바이스의 어마어마한 의지가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주르륵, 볼을 타고 흐르는 핏물이 느껴졌다.
싸늘한 느낌에 고개를 살짝 꺾지 않았으면 위험했을 것 같다.
나는 프란을 바라봤다.
“털끝 하나 안 다칠 거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 내가 움직이지 말랬잖아. 약간 움직였나 보지.”
그녀가 내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픽 웃은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볼에 흘러내린 피를 닦았다.
고오오오오······.
후폭풍이 가라앉았다.
바이스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사람 한 명 서 있었다는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소멸이었다.
“뼈 한 조각 찾아볼 수 없군요. 갑자기 땅속에서 튀어나오진 않을까 괜히 걱정되는군요.”
클리앙의 무덤덤한 목소리.
걱정되는 게 맞나 의심스러운 표정이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땅속에는 지드래곤이 있으니까요.”
“아까 그 거대한 마수 말씀이시군요. 칠미호를 상대하는 모습이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것 같더군요. 대체 그런 마수를 어떻게 길들이신 겁니까?”
지드래곤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극소수. 이제 클리앙이 알게 되며 한 명 더 늘었다.
“제가 서부에 갔을 때 인연이 닿았죠.”
“서부라면······ 검은 모루 부족! 5왕자님이 대체 어떻게 마정석 광산의 지분을 가지게 되신 건지 항상 의문이었는데, 대충 어떻게 된 건지 알 것 같군요.”
“나중에 자세히 말해드리죠. 그리고 바이스의 흔적이라면 저기 있네요.”
나는 뒤를 돌아 나무 하나를 가리켰다.
그곳에 바이스의 검이 박혀있었다.
아까 [불멸자의 요새]를 뚫고 내 볼에 상처를 남긴 게 저거였다. 팔뚝 중간에서 절단된 바이스의 손이 검자루를 꾹 쥐고 덜렁거리고 있는 것이 보기가 좀 그랬다.
주변에 뒹구는 나뭇가지를 하나 들고 다가갔다. 탁, 탁, 만지기 싫은 놈의 손을 쳐낸 후 검을 뽑았다.
‘멀쩡하네.’
유령손으로 확인해 보니 미스릴 함량이 굉장히 높았다. 왕국에 단 셋뿐인 7성 기사 중 실력은 제일 뒤떨어진다는 평이었는데 검은 제일 좋은 걸 쓰고 있던 모양이었다.
“왕자님, 레이나 경이 오는군요.”
검을 관찰하고 있던 내게 클리앙이 말했다.
고개를 들어 그가 바라보는 곳에 시선을 주니 양손에 무거운 짐을 하나씩 들고 오는 레이나가 보였다.
아미카 아르야, 그리고 그녀를 호위하던 6성 기사의 머리였다.
‘검을 선물로 주면 좋아하겠지?’
검은 모루 부족의 족장, 길루드에게 바이스의 검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여서 레이나의 검을 만들어 주면 아주 좋아할 것 같았다.
***
며칠 전.
평소와 마찬가지로 재정경제부의 불을 모두 끄고 나가던 클리앙의 옆에 누군가 따라붙었다.
밀로아였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클리앙의 발걸음에 맞춰 마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와이트 백작가의 마차에 올라가던 클리앙이 그녀에게 물었다.
“탈 건가?”
“그러려고 온 거잖아요.”
클리앙이 내민 손을 잡은 밀로아가 마차에 올랐다.
“가지.”
“넵, 클리앙 백작님.”
마부가 마차를 천천히 몰았다.
그는 얼마 전 본래 마부가 붉은별열병에 걸리는 바람에 급하게 클리앙의 마차를 몰게 된 임시 마부였다.
마부가 힐끔 시간을 확인했다.
정확히 6시 15분에 정문을 통과해야 클리앙이 헛기침하며 눈가를 꿈틀거리지 않는다며, 붉은별열병으로 병상에 누워있던 이가 신신당부했었다.
클리앙은 비밀로 한다지만, 그를 오랫동안 보필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강박증을 눈치챈다.
그렇게 마차가 시간을 맞춰 왕궁의 정문을 통과할 무렵.
꼬르륵.
밀로아의 배에서 굉음이 울렸다.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저, 점심을 안 먹어서 그래요. 붉은별열병 탓에 워낙 일이 많았어야지.”
“아무 말도 안 했다.”
“어차피 집에 가서 저녁 먹을 거잖아요. 그때 저 좀 끼워줘요. 할 이야기가 있어요.”
그녀의 말에 클리앙은 대답 대신 마부 쪽 창문을 똑똑 두들겼다.
“골든크리미로 가지.”
“넷? 네! 알겠습니다.”
약간 당황한 듯한 목소리의 대답이 들려왔다.
“원래 7시 30분에 저녁 먹는 거 아니었어요?”
“점심에 소식했더니 배가 조금 고프군.”
“잘됐네요.”
밀로아는 배를 살짝 어루만졌다. 골든크리미의 크림파스타를 먹을 생각에 민망함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문득, 잊을만하면 올라오던 클리앙에 관한 보고가 떠올랐다.
강박증, 결벽증이 의심된다나?
‘그 머저리 같은 놈들, 진짜.’
골든크리미는 시장 근처에 있는 파스타 전문 포장마차였다. 밀로아가 최고급 레스토랑보다 좋아하는 곳이었다.
천막 안에서 간이 식탁과 의자에 앉아 식사해야 한다. 좋은 말로도 깨끗하다고 할 수 없었다.
골든크리미에서 클리앙과 같이 식사한 적이 꽤 많았다. 결벽증 같은 게 있는 인간이 그곳에서 포크를 들고 음식을 입에 넣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알기로 클리앙은 그저 자신이 정한 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조금 깔끔한 숨 막히는 인간 정도.
‘······ 그게 강박증이고 결벽증인가?’
치료사가 아닌 밀로아는 조금 헷갈렸다. 결국 경계성 정도로 생각하며 잘못된 보고를 올린 부하들을 이해하기로 했다.
“그런데 붉은별열병이 유행 중인데 밖에서 먹어도 되겠어요? 아직도 1성이죠? 마력 각성자는 거의 면역이라 해도 1성이면 좀 위험하지 않아요?”
클리앙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러는 너도 1성 아니냐?”
“훗. 얼마 전 마나 연공 중에 새로운 별을 하나 품었죠. 이제 저도 2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요.”
“축하한다. 마법에 입문하고 거의 20년 만인가?”
“······ 먼저 시비 건 걸 사과하죠.”
“잘 생각했다.”
밀로아는 상처뿐인 전쟁을 그만두었다.
따그닥, 따그닥, 따닥.
마차가 멈췄다.
클리앙이 먼저 내려 밀로아의 손을 잡아줬다. 둘은 골든크리미의 천막을 걷어 안으로 들어갔다.
거의 만석이었다.
붉은별열병 탓에 음식점 대부분이 파리만 날리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여주인이 마력 각성자라서.
손님 대부분이 마력 각성자라서.
무엇보다 밀로아가 인증한 맛집이라서.
“이게 누구야! 밀로아 백작님이 왜 이렇게 오랜만에······ 어마나! 클리앙 백작님도 오셨네! 다들 나가!! 나중에 오면 배 터지게 먹여 줄 테니 빨리 나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여주인이 손님들을 쫓아냈다. 그녀가 말하기 전에도 몇몇 사람은 들이붓듯 파스타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익숙한 일이었다.
밀로아가 찾을 때면 언제나 가게 손님들을 모두 쫓아내는 여주인이었다.
그녀는 포장마차 구석에 간직해둔 밀로아 전용 간이 식탁을 가지고 와 천막 중앙에 설치했다.
“고마워, 마릴다. 늘 먹던 걸로 2인분 부탁해.”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여주인이 입구에 장사 끝이라는 팻말을 달고 주방으로 갔다.
서로를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
먼저 입을 연 건 밀로아였다.
“와이트 백작가에서 가주를 교체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다고 들었어요.”
“소식이 느리군.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녀의 눈에 당황이 깃들었다.
“벌써 해결한 거예요? 그럴 리가 없는데······.”
“흥, 내가 그 탐욕스러운 늙은이들조차 감당 못 할 줄 알았나?”
“네. 가주도 어부지리로 된 거였잖아요.”
솔직한 밀로아의 말에 클리앙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곧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입을 열었다.
“어쨌든 잘 해결했으니 걱정할 것 없다.”
“걱정은 무슨. 가문에서 쫓겨나면 밑에서 좀 부려 먹으려 했는데. 시작도 해보기 전에 실패해버렸네요. 2왕자랑 다시 화해한 거예요? 그 옹졸한 인간이 그럴 리가 없는데······.”
“알아서 생각해라.”
5왕자인 에반과 은밀히 손잡았다는 건 절대로 퍼지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밀로아 백작님, 클리앙 백작님. 맛있는 골든크리미 특제 크림파스타가 나왔습니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가 될 뻔했는데 여주인이 때를 맞춰 군침이 돌게 만드는 크림파스타를 내왔다.
“배고프다 그러지 않았나? 일단 먹지.”
“뭐, 그러죠.”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며 입에 가져가는 밀로아를 바라보던 클리앙. 그도 포크를 들었다.
검은 얼룩 같은 게 조금, 아니, 솔직히 많이 신경 쓰였지만 참을만했다. 클리앙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파스타를 먹었다.
그렇게 말없이 저녁을 먹던 두 사람.
밀로아의 배가 어느 정도 찼을 무렵, 클리앙이 포크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조만간 연락할 일이 있었다.”
“저한테요?”
“그래.”
“왜요?”
“확인받고 싶은 게 있었다. 밀로아, 너라면 1왕자에게 다소 불리한 일이더라도 왕국 전체로서는 큰 이득인 일이 일어난다면 방해하지 않겠지?”
“흥, 나를 어떻게 보고 그걸 확인까지 받으려고 한 거예요. 내가 1왕자를 택한 까닭, 잘 알지 않아요?”
“소꿉친구여서도, 크리스티 백작가가 남부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도 아니다. 녀석이 가장 멀쩡한 왕자이고, 최소한 왕국을 말아먹진 않을 인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했었지.”
“우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하네요? 맞아요. 클리앙 백작님이 그를 싫어하는 것처럼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성격만 좀 고치면 될 것 같은데. 그게 또 장점일 때도 있으니까 뭐······ 그런데 갑자기 그런 걸 왜 묻는 거죠?”
밀로아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조만간 그럴 일이 생길 거란 얘기군요. 대체 뭐죠?”
“네가 직접 확인해라.”
그리고 지금.
현재.
밀로아는 그때 클리앙이 말한 게 무엇인지 드디어 알았다.
“이걸 말한 거였어······.”
그녀는 눈앞의 서류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발신자는 클리앙 와이트.
밀로아의 눈에 공문의 몇몇 군데가 확대된 듯이 크게 보였다.
+ + +
제목 : 리오넬 왕국의 왕자, 다미안 리오넬과 로브르크 공작가에 대한 구속 및 긴급 조치 요청.
······ 다미안 리오넬은 아르야 왕국과 내통······.
······ 석함도 해군 대장인 바이스와 왕국에 입국한 아미카 아르카가 협조하여······.
······ 붉은별열병을 치료할 희망인 슈이츠 레밍을 납치 후 살해를 계획······.
······ 사전에 이를 눈치챈 클리앙 와이트 본인은 결코 이를 눈감아 볼 수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 왕국의 5왕자, 에반 왕자님에 진실을 털어놓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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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공문의 내용도 상상을 초월했지만, 그 속에 등장한 인물의 이름에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왕국이 떠들썩할 일이면 5왕자가 안 끼는 일이 없었다.
밀로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아르야 왕국과 협력해 슈이츠 레밍을 납치, 살해 후 붉은별열병의 치료제를 독점하려 했다?
이번엔 선을 좀 많이 넘었다.
‘확실히 2왕자를 구속하긴 해야 하는데······.’
이 일로 5왕자의 입지가 또 얼마나 올라갈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의 이익은 최소화하며 1왕자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똑똑, 똑똑.
“들어와. 용건만 빨리 말해.”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부하가 입을 열었다.
“5왕자님이 바로나 광장에서 연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밀로아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생각할 시간을 조금도 주지 않는 5왕자였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의 뒤통수를 한 대 시원하게 후려치고 싶었다.
‘일단 움직여야 해.’
무슨 연설을 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만약 왕실기무대가 뭉그적거린 사이 2왕자가 도망친다?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터였다. 5왕자라면 그런 상황도 분명 준비해뒀을 거다.
“1기사단과 감찰부에 연락을 넣어.”
“네? 무슨 연설일지도 모르는데 막으려고 그렇게까지······”
“뭔 헛소리야! 긴급상황이다. 왕국의 2왕자, 다미안 리오넬을 구속한다.”
“넵! 넷?”
반사적으로 대답하던 기무대원은 밀로아의 입에서 나온 말에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