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8)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9화(8/203)
009
마나를 운용해 뇌를 활성화했다.
딸깍, 스위치가 켜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마나를 관측하는 세 번째 눈이 뜨였다.
‘이게 마법사들이 보는 세상······.’
여태껏 보아왔던 세상이 낯설었다.
말로는 설명이 힘들었다. 흑백인 세상 속에서 총천연색 꽃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잠시 넋이 나가 있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유령손에 시선을 집중했다.
“아!”
평생 나를 따라다닌 유령손의 본질을 이제야 이해했다. 자동으로 시선이 시야 구석에 박아놨던 상태창들을 향했다. 저것들도 유령손과 마찬가지.
마나였다.
왜 다른 마법사들은 유령손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걸까? 내 미미한 마법적 지식으로는 아직 알 길이 없었다.
마법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고 조사해보면 되니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 마나 감응도가 떨어졌던 게 아니야.’
오히려 갓난아기 때부터 마나 덩어리나 마찬가지인 유령손을 볼 정도로 뛰어났던 거였다. 그것도 연공을 시작함과 동시에 마나를 느끼고 코어를 연성할 만큼.
감응도 테스트 당시 골랐던 공. 괜히 눈에 밟혔던 게 아니었었다. 정답을 골랐었던 거다.
으드득.
내게 마법사는 힘들 것 같다고 단칼에 선언했던 빡빡이 자식을 향해 이를 갈았다.
‘그 자식, 누구의 사주를 받았던 거지?’
1왕비? 2왕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너무 많았다. 왕실만큼 자라나는 새싹을 짓밟고 싶어 하는 이들이 널린 곳도 찾기 힘들 거다.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도 아니고, ‘당신은 재능이 없습니다.’라며 가스라이팅 한번 하는 것뿐이었으니 일을 벌이기도 쉬웠을 테고.
‘그래도 연공을 시작하자마자 마나를 느낄 줄이야.’
신화, 전설 속 인물들이 순식간에 마나를 느꼈다는 기록들은 허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앞으로 그런 이들의 주장은 느긋한 마음으로 들어줄 수 있겠다는 실없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만약 안전한 선택을 한다고 리오넬 마나 연공법을 익혔으면······.
‘상상하기도 싫네.’
빡빡이 마법사의 가스라이팅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던 재능을 스스로 묻어버릴 뻔했다.
내가 이 정도로 마나 감응도가 높다는 걸 알았다면, 무난하게 사대마탑의 입문 마나연공법을 익혔을 것 같다.
이내 의미 없단 생각에 미련을 털었다.
그나마 [무극 마나연공법]을 택했기에 마법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뭔가 바뀐 건 없나 상태창을 꼼꼼히 살폈다.
[마력 : ★]이 눈에 띄었다.알파벳이 아닌 별 문자로 성취를 평가하고 있었다. 2성이 되면 두 개려나? 게임 캐릭터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그 외에는 그다지 변한 게 없었다.
‘남은 RP는 9,287.’
저렴한 가격으로 [무극 마나연공법]을 익힌 덕분에 아직도 지갑이 든든했다.
정보이용료로 사용할 일부를 남겨놓는다 해도 상당한 양. 또 어떤 스킬을 익힐까 즐거운 고민을 시작하려는 순간.
똑똑, 똑똑.
음흉한 놈이 돌아왔다.
“왕자님! 청소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어, 앞으로 연무장 쓸 일이 있을 것 같으니까 그쪽도 청소해.”
“비를 쫄딱 맞았습니다.”
“그래. 수고해.”
“······.”
스킬 쇼핑 전에 관계가 ‘우호’로 개선됨으로써 알폰소의 상태창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
에메랄드궁의 사용인들은 요즘 모일 때마다 에반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기 바빴다. 욕실을 청소 중이던 두 하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혹시 그 이야기 들었어?”
“무슨 얘기?”
“얼마 전에 에반 왕자님이 주방 막내한테 서둘러 집에 가보라고 하셨던 거 기억나?”
“당연하지. 한시가 급하다고 쫓아내듯이 내보냈다며? 대체 왜 그러셨던 거래?”
터벅터벅, 산더미 같은 책을 들고 복도를 걷던 알폰소는 욕실문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그녀들의 대화에 잠시 발을 멈췄다.
“어제 그 주방 막내가 돌아왔는데, 왕자님 덕에 할머니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하더라.”
“세상에! 그걸 어떻게 아신 거래?”
“그러니까 말이야. 소문처럼 파투라시트의 성흔이라도 내려진 거 아니야?”
알폰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흔을 받은 자들이 사용하는 이적은 마법처럼 쓰고 싶을 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거기다 더해 알폰소는 소문이 절대로 사실일 수 없는 이유를 알고 있다.
‘저 여자들, 파투라시트의 성흔을 얻은 자는 맹인이 되는 천형이 함께한다는 걸 모르나?’
하긴, 파투라시트 교단의 신관들은 전부 눈가리개를 하고 다닌다. 성흔을 지닌 이가 진짜로 눈이 멀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극소수. 무지몽매한 이들 사이에선 그런 소문이 나돌 수 있겠지. 그는 그렇게 이해하기로 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맞다. 너 어젯밤에 어디 갔었어? 어서 이실직고해.”
“그게, 그러니까······ 로니가 잠시 보자고 해서······.”
발걸음을 옮기려던 알폰소는 다시 멈칫했다.
“어머, 어머, 그래서! 뭐래? 뭐래? 설마 고백받은 거야?”
“······ 응.”
“대박, 대박! 너도 로니를 괜찮게 생각했잖아.”
로니, 로니라.
그러고 보니 엊그제 서재를 청소하러 들어온 녀석에게 에반이 툭 한마디 했었다.
– 로니. 최근에 큰 고민이 있지 않아?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 넷? 그걸 어떻게!
–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네가 용기를 내야 한다는 사실이지. 그러면 반드시 그 보답을 받게 될 거야.
– 지, 진짜인가요?
– 속고만 살았나?
– 아, 아닙니다! 왕자님 말씀대로 용기 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래, 마음먹었으면 빨리 실천하도록 해.
무슨 소리인가 했었는데, 별 시답잖은 연애 이야기였을 줄이야.
‘근데, 진짜로 귀신같긴 해.’
왕궁에 들어온 목적을 캐물었던 날.
– 내가 물어본 사람은 너야, 알폰소 아인베르크. 하임델 남작가의 셋째가 아니라.
그때부터였다.
에반이 툭툭 던지는 말 하나하나가 잔잔한 에메랄드궁 사용인들의 삶에 파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사이 맺어진 커플만 해도 벌써 5쌍.
“그래서 로니랑 사귀기로 했어? 빨리 말해봐.”
“으, 응.”
‘아니, 이제 6쌍인가······.’
쓰게 웃은 알폰소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였던 서재에 도착한 그는 괜히 주변을 서성이는 하녀 셋을 발견했다.
면면을 보아하니 우연을 가장해 에반과 마주쳐 덕담 하나씩 듣고 싶어 하는 외로운 영혼들이었다.
“비켜주세요~ 지나갑니다!”
쿵!
문 앞에 산더미 같은 책더미를 내려놓은 그는 큼큼, 헛기침을 하곤 문을 노크했다.
똑똑, 똑똑.
“왕자님, 말씀하신 책들 가지고 왔습니다.”
“들어와.”
“옙! 끙차.”
문을 열고 서재에 들어간 알폰소. 책상에 앉아 마법서를 펼쳐놓고 펜대를 바삐 놀리는 에반이 보였다.
“가져온 것들은 책장에 정리 좀 해줘.”
“넵! 금방 정리하겠습니다.”
알폰소는 가져온 책들을 책장에 하나씩 꽂기 시작했다.
『수속성의 이해』
『수류를 조작하는 36가지 방법』
『파도와 함께 춤을』
.
.
.
전부 청탑에서 나온 기초 마법서.
‘저번엔 적탑의 마법서였었는데.’
아무리 기초 마법서라지만 청탑, 적탑의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일종의 미끼.
마법은 독학이 불가능에 가까운 학문이다.
시중에 풀려있는 기초 마법서의 이론을 독학으로 마스터한 천재들은 숨겨진 메시지를 볼 수 있다는 소문이 있다.
어떤 마법사의 집 주소 같은.
– 반가워. 마법서에서 내 집 주소를 발견한 거라면, 너는 마법에 입문을 충분한 자격을 증명한 거야. 마나 감응도 테스트는 해봤고? 안 했다고? 빨리 들어와. 공짜로 해줄게. 뭐? 마나 감응도가 기준 이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도 팔자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고 일단 들어와 봐. 돈 달라고 안 할 테니까.
혹시나 해 그곳을 찾아가면 마법사로부터 격하게 환영받을 수 있다는 것이 소문의 내용이다.
마법사를 선별하는 첫 관문인 감응도 테스트.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쁜 이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걸 넘어 불가능에 가까운 검사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빈민가에도 찬란한 재능은 존재할 수 있는 법. 그런 진흙 속 진주를 찾기 위한 각 마탑의 안배였다.
알폰소는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그런 이야기가 헛소문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가 보기에 에반의 학습 능력은 썩 훌륭한 편이었다. 특히 어학. 외국어는 물론이고 고대어로 쓰인 책들을 원서 그대로 읽는 걸 꽤 자주 봤다.
그래서 에반이 천재 같냐면······.
알폰소는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는 소위 천재라 불리는 이들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들 특유의 광기라고 해야 할까? 에반에게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표본이 한 손으로 꼽히는지라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알폰소도 알고 있다.
‘마나 감응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걸로 아는데 갑자기 웬 마법?’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생전 몸을 움직이지 않던 에반이 [리오넬 제식검술]도 수련하기 시작했다. 서재에 교본이 있었나?
알폰소는 4왕자에게 대가리가 깨진 후 변해버린 에반의 모습이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확실한 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함께 무기력해지는 것 같던 예전보다는 지금이 훨씬 나았다.
***
나를 훔쳐보는 알폰소의 시선이 따가웠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이 갔다. 뜬금없이 웬 마법? 대충 그런 거겠지. 신경 쓰지 않고 보고 있던 마법서에 집중했다.
마나 연공법을 익힌 이후, [도서관]을 이용해 에메랄드궁 사용인들과의 관계를 개선해나갔다. 한참 혈기 왕성한 나이대의 인원들이 많아서 그런가 연애와 관련된 조언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예상대로 상대방의 지위, 능력 등에 따라 얻게 되는 보상이 차이가 났었다.
그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얻는 RP는 지니에게 지불한 정보이용료를 제하고 나면 진짜 용돈벌이 수준.
‘여태껏 알폰소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얻은 RP가 가장 많았어.’
잡생각에 집중이 끊긴 나는 보고 있던 마법서에서 시선을 떼고 책장을 정리하는 녀석을 바라봤다.
알폰소 아인베르크.
관계가 ‘우호’로 개선됨으로써 [?]였던 녀석의 스탯을 일부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알폰소의 유연성 항목에서 처음으로 B라는 알파벳을 봤다.
대체 어느 정도일까?
‘목이 360도로 돌아가기라도 하나?’
하여튼 그런 놈이 스트레칭하는 나를 보고 연체인간 같다고 호들갑을 떨곤 했으니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감춰져 있던 녀석의 스킬도 일부 확인했다. 기사 가문인 아인베르크 출신답게 여러 기초 검 외에도 창, 도끼, 단검 등 각종 무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녀석의 스킬창에는 여전히 [?]가 많다.
다른 사용인들의 것을 봐도 그렇고, 스킬의 등급이 높을수록, 그리고······ 이건 추측이지만 감추고 싶어 하는 사실일수록 확인이 힘든 것 같다.
‘뭐, 됐어.’
알폰소는 요즘 나를 관찰하느라 딱히 허튼짓은 안 하는 것 같으니 조금 더 관망하기로 했다.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이 친해지려고 들이댈수록 더 멀어질 수도 있는 법이다. 나는 다시 보고 있던 마법서에 시선을 옮겼다.
『불의 근원』.
불속성 마법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발화]를 다루는 마법서였다.
[무극 마나연공법]을 배운 후 남은 RP로 기초 마법들을 익혔다. 스킬을 익힘으로써 각인되는 이론과 시중에 풀려있는 마법서에 담긴 이론이 어떤 차이가 있나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별다른 차이점은 아직 찾을 수 없었다.
사락, 사락.
쓱쓱 속독으로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
+ + +
적탑의 수련 마법사 찰스는 벽난로의 불을 피우기 위해 발화를 시전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은 찰스가 짰던 술식이다. 바르게 고쳐보시오.
벽난로는 찰스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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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풀어볼까?’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3차원 입체여야 할 것을 종이에 억지로 옮겨 놓은 탓에 조금 헛갈렸다.
마나를 운용해 세 번째 눈을 뜨고 마법서에 그려진 술식을 머릿속으로 설계 후 손바닥 위에 구축했다.
겉과 내부에 마나회로가 꽉 들어찬 핸드볼 크기의 술식이었다.
힐끔, 알폰소를 바라봤다.
책 정리를 다 끝내고 멀뚱히 서 있었다. 특유의 실눈 탓에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뭐, 보이지도 않을 텐데 상관없나.’
기초 마법 스킬들을 익히면서 각인된 마법 상식 하나, 마법사가 구축한 술식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본인만 볼 수 있다.
그 이유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이야기하면, 한 번 정제된 마나는 마법사만의 고유한 마력 파장을 지니기 때문. 아마도 유령손 또한 비슷한 이유로 다른 마법사들이 눈치채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알폰소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문제의 술식을 바라봤다.
‘공간좌표부터가 엉망인데? 제대로 발동했어도 벽난로가 아니라 엉뚱한 곳에서 발화가 일어났을 거야.’
‘여기서 병렬 연결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네. 마나가 역류했을지도 몰라.’
‘여기서는 세 점을 잇는 것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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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내가 뜯어고친 술식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핸드볼 크기의 구 형태였던 것이 하트 모양으로 변했고, 술식 외부에 그려진 마나회로가 문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왕도 바로나 여왕삼거리 34-231번지, 문 앞에서 ‘미녀 마법사님. 제발 제자로 받아주세요.’라고 크게 외치며 9번 절하기?’
······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