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80)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80화(80/203)
080
다미안이 행사한 불체포특권을 무효화하기 위해서는 왕실위원회 과반 출석에 과반 동의가 필요하다.
즉, 현재 청문회에 모인 29명의 의원 중에서 15명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생각할 수 있는 머리가 있는 인간이라면 다미안을 돕는 미친 짓을 할 수가 없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매국 행위에 연루되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2왕자님이 2왕비님의 궁을 방문한 이후, 곧바로 2왕비님이 아르야 왕국으로 떠나셨습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구두로만 진행하셨던 겁니까?”
지금 다미안을 공격하는 저 의원도 본래는 놈을 지지하던 인간이었다.
“이익! 아니다! 단지 어머님이 고향을 그리워하셔서 잠시 다녀오시라 조언을 한 것뿐이다!”
“붉은별열병이 한창인 이런 시국에 굳이 마력 각성자도 아닌 2왕비님에게 여행을 권유하셨다는 이야기이시군요. 대단한 효심입니다.”
다미안을 비아냥거린 의원이 나를 한 번 바라봤다. 자신은 2왕자와 손절했다고 애타게 외치는 듯한 눈빛이었다.
분수에 맞게 욕심만 안 부리면 그럭저럭 왕국 행정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그런 인간이다.
내가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니 그가 좋다고 방긋 웃었다.
“제네롤 거래 목적으로 입국을 허가받은 아미카 아르야의 비공정이 로브르크 공작가로 직행한 사실은 당연히 알고 계셨겠죠?”
“모른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나!”
“신기하군요. 5왕자님의 협조 요청으로 그곳에서 2왕자님이 부리는 그림자를 생포했는데 말입니다.”
“······ 아랫것들이 멋대로 한 일이다!”
.
.
.
다들 어떻게든 불체포특권 무효화에 숟가락을 보태기 위해 필사적이었고, 수많은 증거에도 다미안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놈이 자백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모두가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길게 끌 것 있습니까? 이미 5왕자님이 바이스 공작이 실토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습니까.”
“조작! 조작이다! 저 녀석이 만든 영상은 다 조작이라고!”
다미안이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는 게 저것 같았다. 내가 편집한 영상 기록이 조작이길 바라는 것.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바라봤다.
그리고 서류 뭉치 하나 꺼냈다.
“여기 이 서류들은 적탑, 청탑, 녹탑, 세 개의 마탑에서 영상구의 진위를 판별한 결과입니다.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 빨리 보내주더군요.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세 곳 다 ‘조작 없음’이라는 결과를 보내왔습니다.”
편집을 좀 하긴 했지만, 영상 자체가 거짓은 아니니 당연한 결과였다. 슬쩍 다미안을 바라보니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후······ 충격이군요. 왕국의 2왕자라는 분이 어찌 그런······.”
의원 중 하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한탄했다. 1왕자를 지지하는 이였는데, 그래도 개념이 있는 인간 중 하나였다.
“······ 사술! 사술을 부린 거다! 저 녀석이 사술을 부려 바이스 공작이 헛소리한 거야!”
공허한 다미안의 외침.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내가 7성 기사에게 사술을 부릴 수 있었다면 옛날옛적에 옥좌에 올랐겠지.
발버둥 치는 그를 기무대원들이 우악스럽게 제압했다.
“놔! 이거 놔! 이 새끼들아!”
의장을 맡은 베르트 의원이 그를 차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굳이 투표까지 해야 할까 싶지만, 절차는 지켜야겠죠.”
빠르게 투표가 진행되었다.
결과는 만장일치.
“이렇게 왕실위원회의 의견이 일치하는 날이 오더니 감개무량합니다. 이로써 왕국의 2왕자, 다미안 리오넬이 발휘한 불체포특권이 무효화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땅! 땅! 땅!
“이럴─ 웁, 웁! 웁!”
베르트 의원이 의사봉을 내려치는 소리와 기무대원들에게 제압당한 다미안이 발버둥 치는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이어서 1시간 뒤, 다미안 리오넬이 벌인 만행에 대한 재판이 이어질 예정이니 다들 휴식을 취하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웁- 웁- 거리는 다미안이 끌려 나가고, 사람들이 하나둘 청문회장을 나갔다.
기무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문회장을 바로 재판장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기존 협소한 재판장으로는 오늘 모인 이들을 수용할 수도 없거니와 바로나 광장으로의 영상송출 문제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그들의 작업을 지켜보았다.
크게 바뀌는 건 없었다.
의장석이 재판장석으로 바뀌고, 나와 다미안이 마주 보게 바뀌는 정도.
오늘은 예전처럼 ‘피고’가 아닌 ‘검사’의 입장으로 재판장에 설 예정이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와 함께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대단하시네요. 분명 엊그제까지만 해도 저 자리에 계셨던 분이었는데. 당시에 직접 보지 못한 게 아쉽네요.”
밀로아였다.
그녀의 시선이 다미안이 서게 될 자리를 향하고 있었다.
“밀로아 백작님은 안 쉬십니까?”
“이래 봬도 왕실기무대 정보부 차관이니까요. 5왕자님이 준비한 것에 숟가락은 얹어야 욕을 덜 먹겠죠?”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내가 가장 염려했던 것은 1왕자 진영의 인사들이 2왕자를 살려두자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불체포특권 무효화부터 애를 먹게 되는 상황.
물론, 내가 제네롤과 제네시아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짓을 벌이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언제든 예상치 못한 변수는 튀어나올 수 있는 법이고, 진흙탕 싸움을 하게 되면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왕국민들 뿐이다.
“저희도 이번 일 만큼은 그 어떤 사심 없이 진행하기로 했어요.”
“듣던 중 반가운 말이군요.”
“5왕자님이 제네롤을 공정하게 공급해주신 덕분이에요.”
“왕국민을 살리는 일에 사심이 섞여선 안 될 일이죠.”
내 답에 밀로아가 잠시 말이 없었다.
기무대원들의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을 무렵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일로 또 한 번 날아오르시겠네요. 클리앙 백작님의 기분이 궁금하네요. 침몰선을 탈출해 최신 비공정을 탄 기분은 어떨지······.”
“궁금하면 같이 타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밀로아 백작님 정도면 언제든 태워드릴 수 있습니다.”
밀로아가 픽 웃었다.
“제가 그래도 한 번 밀어주기로 한 인간을 버릴 만큼 신의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클리앙 백작님의 경우처럼 배가 침몰하는 상황이면 모를까.”
“아쉽군요.”
“그러게요. 그러길래 왜 그렇게 늦게 태어나셨어요. 한 5년만 일찍 태어나시지.”
나도 그 점이 참 안타까웠다.
“아, 저기 제 부하가 재판을 일찌감치 끝낼 서류를 가지고 오는군요.”
밀로아가 바라보는 방향을 보니 기무대원 하나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서류를 전달받고 쓱 읽어본 그녀가 내게 건넸다.
서류를 훑어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없어도 되지만, 확실히 재판이 시작됨과 동시에 끝낼 수 있는 서류였다.
“일찍 돌아가서 쉬고 싶었는데 잘 되었군요. 잘 사용하겠습니다.”
그리고 1시간 후.
국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 년 만에 직접 얼굴을 보는 것 같다. 재판장석에 앉은 그와 눈이 마주쳤다. 질투, 무력감, 원망, 기대······ 말로 형언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엿보였다.
“콜록, 콜록.”
기침을 토해낸 국왕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다급하게 달려가 그의 시종이 손수건을 내밀었다.
“별거 아니다. 어제 연초를 조금 많이 피운 탓인 것 같군.”
국왕은 손수건에 손을 닦은 후 재판장을 내려다봤다.
“재판을 시작하겠다. 다들 정숙하도록.”
땅! 땅! 땅!
개정을 선포한 그는 다미안을 바라봤다.
“피고 다미안 리오넬은 석함도의 해군 대장 바이스 로브르크 공작에게 아르야 왕국과 협력하여 슈이츠 레밍을 납치 후 살해하라 사주하였다. 이를 인정하는가?”
“인정할 수 없습니다! 모든 건 저 녀석이 조작한 증거입니다!”
“그렇다는군.”
국왕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존경하는 국왕 폐하, 그리고 재판을 보고 계신 청중, 왕국민 여러분. 이미 청문회의 결과로 다미안이 벌인 만행은 대부분 인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조금 전! 다미안이 절대로 부인할 수 없는 증거 하나가 더 도착했습니다.”
밀로아로부터 받은 서류를 모두가 볼 수 있게 들어 올렸다.
“이건! 아르야 왕국에서 보내온 공문입니다. 중요한 부분만 읽어 드리겠습니다.”
목을 가다듬은 후 중요한 부분만 읽었다.
“자체적인 조사 결과 2왕자의 사주를 받은 2왕비와 접촉한 아미카 아르야가 본국에 어떠한 통보도 없이 단독으로 벌인 짓임을 밝혀냈다.”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였다.
“사전에 이를 알아차리지 못해 리오넬 왕국에 커다란 혼란이 발생한 것에 심히 유감을 표한다.”
아마 붉은별열병의 발발 후 제네롤을 만든 것이 리오넬 왕국이 아니었으면 이런 사과의 문구는 절대 안 넣었을 것이다.
오히려 자국의 7성 소환사를 살해했다며 길길이 날뛰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조사 도중 리오넬 왕국의 2왕비가 극도의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을 맸다. 본국의 불찰로 인해 타국의 왕비가 자국 내에서 사망한 것에 대해선 어떠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리오넬 왕국이 요구하는 배상안을 겸허히 수용하겠다.”
아르야 왕국은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2왕비의 입을 아예 막아버림으로써 이번 사건을 아미카 아르야 독단으로 만들어버리는 걸 택했다.
– 헉! 진짜 2왕비가?
– 증인을 아예 없애버린 거야?
– 허······ 대단한 놈들이군.
이건 좀 충격이었는지 정숙했던 분위기가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솔직히 나도 이 부분에서는 좀 놀랐었다.
왜냐면.
‘2왕비, 아직 살아있으니까.’
[인명록]에 2왕비의 이름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나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지금 당장은 중요한 게 아니니 일단 재판이 끝난 이후에 고민해 볼 생각이다.
“다행히 2왕비가 진술하는 장면은 영상구에 저장된 상태다. 후에 보면 알겠지만, 타국의 왕비에게 그 어떠한 고문이나 강압을 한 적이 없음을 밝힌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될 것 같았다.
나는 서류를 탁상에 놓고 다미안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인정할 수 없나, 다미안?”
“이, 익! 어찌 왕국과 수백 년을 다퉈온 섬나라 놈들의 말을 믿을 수 있겠나!”
전혀 반성의 여지가 없었다.
재판을 길게 끌어봤자 의미가 있나 싶었다. 나는 국왕의 눈을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왕국을 팔아먹는 매국 행위에! 일체의 반성도 없는 저 뻔뻔함! 이에 저는 놈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함을 간곡히 진언합니다!”
– 사, 사형?!
– 왕족에게 단 한 번도 집행된 적이 없는데!
– 관례를 깨는 일이야!
소란스러워진 재판장.
– 우와아아아아아!
바로나 광장에 모인 왕국민의 함성이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다미안의 멍청한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사형을 언급할 거라곤 상상도 못 한 것 같았다. 최악의 경우 베링턴 요새나 벨카스 산맥으로의 유배 정도 생각했겠지.
어림도 없다.
“왕국의 왕자가! 왕국민을 지켜야 할 왕자가! 감히 해서는 안 될 매국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선례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특히 왕족들.
“제 의견에 반대하시는 분이 있다면 발언 부탁드립니다. 왜! 다미안이 왕국을 팔아먹는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목숨을 보전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한동안 재판장에 침묵이 감돌았다.
***
리오넬 왕국의 국왕, 필리프 리오넬.
‘사형, 사형이라······.’
그는 에반이 내뱉은 말을 곱씹으며 좌중을 훑었다.
왕족들의 표정이 재미있었다.
자신이 왕이 된 초창기.
무슨 말만 하면 기를 쓰고 반박하던 인간들이 입을 꾹 다물고 신음하는 모습이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비록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게 자신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콜록, 콜록.”
작게 기침을 한 필리프는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 비릿한 피를 조심스레 삼키며 시선을 에반에게로 옮겼다.
그가 꿈꾸었던 모습으로 당당하게 서 있었다.
픽 웃은 필리프는 법봉을 손에 쥐었다.
“판결하도록 하겠다. 피고인 다미안 리오넬의 매국 혐의에 대해 유죄 판정을 내린다. 피고의 행위는 왕국의 안전과 안정을 심하게 위협한바, 이에 본 재판관은 피고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마, 말도 안 됩니다! 웁- 웁─”
날뛰려는 다미안을 기무대원들이 거칠게 제압했다. 그 모습을 잠시 힐긋 바라본 필리프는 다시 입을 열었다.
“본 재판관은 왕국의 안정과 안정을 위협한 피고의 행위를 엄격히 규탄하며, 이 판결은 왕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왕국민의 안전을 위해 내려진 것임을 강조한다. 설령 왕족일지라도 왕국, 왕국민을 기만할 경우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됨을 명심하길 바란다.”
땅! 땅! 땅!
***
삼 일 후.
바로나 광장에 단두대가 설치되었다.
바글바글한 사람들.
다미안이 기무대원들의 손에 질질 끌려갔다. 아직도 삶을 포기하지 못했는지, 거세게 반항했다.
결국 기무대원들에게 제압당해 거대한 칼날 밑에 목이 고정되었다.
– 죽여라! 죽여라!
– 이 매국노 새끼!
– 튀겨 죽일 놈!
사방에서 돌멩이, 오물 등이 녀석을 향해 날아갔다. 커다란 돌멩이에 머리통을 맞고 나서야 바둥대던 몸이 멈췄다.
기절이라도 한 걸까?
나는 레이나, 알폰소와 함께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사형을 집행하라!”
집행관의 외침과 함께.
쿵- 서걱─
허무하리만치 손쉽게 다미안의 목이 떨어졌다.
– 우와아아아아!
– 비켜! 비켜!
사형수의 시신 일부를 가지고 있으면 행운이 온다는 미신이 있다.
심지어 왕족 출신 사형수.
몰려든 사람들이 가위, 칼 따위로 다미안의 신체 일부를 뜯어갔다.
“설마 시체까지 저렇게 방치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레이나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보기에 썩 좋은 광경은 아니었지만, 왕국을 팔아먹으려 했던 놈의 결말로는 저만한 것도 없었다.
“그나마 깔끔하게 단두대로 보내준 걸 감사해야 할 겁니다. 돌아가죠.”
여운에 잠겨있을 틈은 없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이제야 새로운 출발선에 선 것에 불과했다.
“참, 왕자님. 2왕자한테 받기로 했던 상선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혹시 그대로 묻히는 건가요?”
알폰소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다미안이 매국 행위를 벌이기 전에 있었던 내기였어. 당연히 내 소유가 되겠지. 그리고 그런 걸로 내게 시비 걸 인간이 있을 것 같아?”
“음······ 밀로아 백작?”
“······.”
정말 출발선에 다시 섰을 뿐이란 것이 체감되었다.
“아르야 왕국의 외무대신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준비하라고 한 건 다 해놨어?”
새 시작은 음······ 아르야 왕국 벗겨 먹기부터 하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