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82)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82화(82/203)
082
번역된 외신과 자국의 신문을 보며 차 한잔 마시는 것은 아르야 국왕의 빼놓을 수 없는 아침 일과 중 하나이다.
『리오넬 왕국, 붉은별열병의 치료제 제네시아 개발 완료! 전 세계에 희망의 빛을 밝힌다』
『제네시아, 과연 그 효능은?』
『만신전, 최대한 빠르게 제니시아의 안정성을 점검한다 밝혀』
『리오넬과 외교 분쟁 중인 아르야. 제네시아 수급에 영향은?』
신문을 읽어가는 아르야 국왕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리오넬 왕국에서 비명횡사한 아미카 아르야. 정말 그녀의 독단이었을까?』
그러다 한 기사의 헤드라인에 눈이 간 그는 분을 참지 못해 와그작-! 신문을 거칠게 구겼다.
아르야 귀족파의 거두가 자금을 대는 신문사의 것이었다.
“감히! 왕실이 직접 공언한 사실을 의심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광분한 국왕은 손에 잡히는 걸 죄다 부숴대기 시작했다.
우당탕! 쨍그랑!
“이 찢어 죽일 놈들! 감히! 감히! 허억··· 허억······.”
한참 난동부리던 그는 제풀에 지쳐 침대에 걸터앉았다.
‘상황이 안 좋아.’
조 베이리 해적단이 침몰한 것도 뼈아팠었지만, 아미카 아르야는 그 격이 달랐다.
그녀는 에트림과의 은밀한 거래를 통해 소환사의 재능을 인위적으로 개화한, 8성 소환사가 확실시되는 왕실의 전략 병기였다.
대외적으로 절대 밝혀져서는 안 될 사실이지만, 신생아를 잡아가는 귀신의 괴담이 그 거래 때문에 만들어졌었다.
그런 아미카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 탓에 찍소리도 못하고 눌려있던 귀족파가 영향력 있는 신문을 통해 왕실을 성토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조선공들의 반환.
금월도.
자유무역.
치외법권.
외무대신이 들고 왔던 리오넬 왕국의 요구사항들. 어느 것 하나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거절한다?
제네롤, 제니시아가 단 한 알도 아르야 왕국으로 오지 않을 거라고 리오넬 왕국의 5왕자가 선언했다더라.
만신전이 개입한다면 그런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순서가 최후의 최후까지 밀리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
‘귀족파가 들고일어날 거야.’
만약 정말 그렇게 되면 나라가 두 쪽이 날 수도 있었다.
‘전부 다 들어줄 수는 없어.’
내어줄 것은 내줘야 한다.
아르야의 국왕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비릿한 피가 그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에트림, 하루빨리 깨어나라.’
그는 둥지에서 잠자고 있을 아르야의 수호룡, 에트림의 기상을 간절히 바랐다. 이미 2왕비라는 훌륭한 제물도 준비해놓은 참이었다.
그전까지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
클리앙과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가문 내의 문제는 이제 대부분 정리되었다죠?”
“왕자님 덕분입니다.”
“밀로아 백작님이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했다 들었습니다.”
와이트 백작 가문의 원로 중 몇이 기밀 유출 혐의로 왕실기무대로 잡혀갔다.
암묵적으로 페어플레이를 하기로 약속된 상태이기 때문에 진짜로 혐의가 있는 이들만 잡아갔다.
2왕자를 지지하며, 가주 교체를 들먹이던 이들이었기에 클리앙으로선 자동으로 가문의 질서가 바로잡힌 셈이었다.
“에반 왕자님.”
스테이크를 썰던 클리앙이 새삼 진지한 표정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왜 그러시죠?”
“왕자님은 이제 에메랄드궁의 유령왕자가 아니십니다. 더는 어지간한 귀족들, 기사들을 존대함으로써 스스로 얕보이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클리앙, 생각보다 위계질서를 엄청나게 따지는 사람이었구나.
“왕자님이 그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러시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클리앙 백작님 정도면 어지간한 귀족이 아니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저와 동급이면 편하게 대하시지요.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서 보이는 권위는 생각보다 큰 법입니다.”
딱히 어려운 것 없는 부탁이었다.
“뭐, 그러도록 하지.”
“······ 생각보다 익숙하시군요.”
그저 빙긋 웃어주었다.
다시 말없이 식사를 이어가다 클리앙이 입을 열었다.
“오다가 로이스 백작을 만났는데, 아르야와의 협상 결과가 나왔다며 싱글벙글하더군요.”
“말해주던가?”
“내일 공표할 테니 그때 들으라며 입을 다물었습니다.”
“궁금해?”
“못 들으면 오늘 밤은 잠을 설칠 것 같습니다.”
“금월도는 자국의 영토임을 인정한다고 하더군. 치외법권은 절대로 안 된다며 거품을 물었어.”
“치외법권은······ 예상하신 일 아닙니까?”
맞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치외법권을 받아들이는 건 식민지 대우를 받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정상적인 국가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조항이다.
“자유무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건 조건부. 10년간 나가포 항에서 활동하는 자국의 상인들은 면세야.”
솔직히 조금 더 강짜를 부릴까 싶었지만, 10년이면 충분할 것 같기도 했다.
그 안에 리아전쟁이 발발할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전쟁이 발발하는 순간, 모든 조약은 휴지 조각으로 변할 터였다.
“조선공들은 어떻게 한답니까?”
“제네롤과 제네시아가 자국에 수입되기 시작하면 순차적으로 보내준다더군.”
“인질인 셈이군요.”
“그렇지.”
마음 같아서는 잠재적 적국인 하믈 제국과 아르야 왕국에 제네롤, 제네시아를 팔고 싶지 않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만신전에서 압박이 들어올 게 뻔했다.
왕국 내 신관들을 철수시키거나, 제네롤과 제네시아의 특허 가지고 장난질하면 골치 아파진다.
정말 최악의 경우.
위에선 하믈 제국, 오른쪽에선 아르야 왕국이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쳐들어올지도 모를 일이다.
솔직히 그렇게 나오면 답이 없다.
“적당한 시기에 팔아줘야겠군요.”
“너무 늦지만 않으면 돼.”
“그런데 국내에서 사용할 양도 생산하기 버거운 실정인데, 수출 분량까지 맞출 수 있겠습니까? 제네센의 재고는 넉넉한 건지 걱정되는 군요.”
현재 세계 각국의 시선이 리오넬 왕국에 집중된 까닭은 약초 제네센이 토종식물이기 때문이다.
오직 왕국의 동부 해안가에서만 자생한다.
제네센을 연구해 해열제, 치료제를 만들어도 그 원료인 제네센을 재배할 수 없으면 말짱 도루묵인 셈이다.
“국내에 사용될 약을 만들 제네센은 충분해. 문제는 수출용인데······ 수출이 시작되고 한두 달 뒤면 동이 날 거야.”
“별로 안 심각해 보이시는군요. 방법이 있으십니까?”
“길러야지.”
“네? 제네센은 여름에 자라는······ 아! 온실을 이용하실 생각이시군요.”
“맞아.”
“국내의 온실 기술은 터무니없으니 역시 아덴에 협력을 요청하실 생각이십니까?”
드워프가 만든 온실에서 엘프가 재배한다. 그보다 빠르게 제네센을 생산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 아마 대부분 국가에서 온실을 이용해 제네센 재배를 시도하고 있을걸? 조만간 아덴과 접촉해야지. 로이스 백작만으로는 좀 불안하긴 한데······.”
나는 말을 흐리며 클리앙을 바라봤다.
“제가 함께하겠습니다.”
“그래 주면 나야 좋지. 외교부 일에 재정경제부 차관이 개입하는 게 보기 좀 그런데······.”
잠시 턱을 매만지던 나는 이내 손가락을 튕기며 입을 열었다.
“이 기회에 명함 하나 더 새기는 건 어때? 에이츠 상회의 해외 영업부 이사면 되겠는데?”
“에이츠 상회요?”
“언제까지 내 휘하의 상단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에반, 아이라, 슈이츠. 세 명의 창업 공신 이름을 따서 붙여봤어.”
“······ 그거 맡았다간 괜히 일만 많아질 것 같군요.”
역시 클리앙.
눈치 하나는 빠르네. 사적으로도 좀 부려 먹으려 했는데.
“상회의 지분을 좀 챙겨주시면 고려해보겠습니다.”
“됐어. 외교부의 로이스 백작한테는 내가 잘 말해놓을 테니 걱정하지 마.”
어디서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으려고. ······ 0.1%만 주고 사적으로도 부려 먹는 게 더 이득이려나?
***
『하믈 제국, 자체적인 붉은별열병의 치료제가 완성 단계!』
『제네시아는 필요 없냐는 물음에 입을 닫은 하믈 제국』
『만신전, 하믈 제국이 개발한 치료제 절대 사용하지 말라. 부작용만 수십 개인 걸로 밝혀져』
알폰소가 건네는 신문을 받는데, 헤드라인부터 재미있는 기사들이 한가득하였다.
“이놈들은 뭐든 자기네 거라 우기네요.”
“붉은별열병은 자기들 게 아니라잖아.”
“아, 그건 또 그러네요.”
민트초코맛 제네센차를 홀짝이며 신문을 읽었다.
하믈 제국 관련 건은 반은 믿거나 말거나 한 기사였기에 대충 넘겼다. 그러나 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 나타났다.
『아덴, 제네센 온실 재배 성공!』
‘빠르네.’
아덴이 제네센을 수확해 리오넬 왕국으로 보내면 그것으로 제네롤, 제네시아를 생산하기로 했다.
덕분에 ‘프랑켄’ 건으로 훅 깎였던 아덴 국가원수 토르릭의 지지도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개인적으로 부채감을 좀 느끼고 있었는데 이 기회로 좀 털었다.
계약 세부 내용은 대외적으로 비밀이다. 클리앙이 칼 안 든 강도 놈이란 소리를 들었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또 별다른 소식은 없나?’
더는 흥미로운 기사를 찾지 못한 나는 신문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여니 포근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고 있었다.
정신없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응?’
멀리서 후드를 푹 눌러쓴 사람이 본궁으로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어? 프란 님이 오셨네요? 언제 오셨지?”
알폰소도 그녀를 발견했다.
엘프의 숲에 있어야 할 그녀가 왕궁으로 돌아올 이유라면······.
아! 하나밖에 없었다.
잠시 뒤.
프란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녀가 외투를 옷걸이에 걸며 말했다.
“슈이츠가 엘프들의 치료제를 완성했어.”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벌써 약효를 확인하신 겁니까?”
“눈에 띄게 주름이 사라지던데? 한 일주일 지나면 대부분 정상으로 돌아갈 것 같았어. 그 잡초들이 엘프들의 노화를 되돌리는 치료제에 들어가야 하는 걸 정말 어떻게 안 거야?”
그야 ‘미래’에서 엘프 여왕의 후계자에게 직접 들었었으니까. 꽤 친했었다. 하지만, 그걸 말해줄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언제나처럼 의뭉스레 웃었다.
“그런 거 이제 안 궁금하신 거 아니었어요?”
“됐다. 꿈에서 봤겠지. 근데 정말 백발을 돌릴 방법은 없는 거야?”
“없다기보다는 저도 모르는 거죠.”
“쯧, 어쩔 수 없나.”
“왜요? 차별이 심해요?”
“철없는 것들이 하얀 마왕이라고 떠들고 다니길래 몇 번 쥐어박았어. 뭐, 하프휴먼 정도는 아니니까 신경 안 써도 되겠지.”
“나중에는 오히려 백발이 인기를 끌지도 몰라요.”
“그런가? 하긴, 여왕의 후계자도 백발이 되었을 테니까.”
픽 웃은 프란이 주섬주섬 공간확장주머니를 뒤지더니 황금빛 액체가 든 플라스크를 두 개 꺼냈다.
“세계수의 열매를 농축한 거야. 치료제를 만드는 데 네가 말한 것보다 적게 썼어. 한 사 분의 일? 남은 걸 정확하게 반반씩 담았어.”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굳이 확인 안 시켜줘도 되는데······ 아무거나 주세요.”
내 말에 프란이 두 플라스크를 심각하게 비교하더니 하나를 내게 건넸다.
“똑같이 담았다면서 뭘 그렇게 고민하고 주세요?”
“기분이야, 기분.”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플라스크를 품 안의 공간확장주머니에 넣으며 물었다.
“바로 사용하실 건가요?”
“괜찮겠어? 별을 하나 더 품게 된다면 꽤 오랫동안 두문불출할 텐데.”
“당분간은 프란 님을 귀찮게 할 일이 없을 겁니다. 슈이츠만 왕궁으로 데려와 주시고 바로 사용하시죠.”
“그럴까? 너는?”
“고민 중입니다. 바로 사용할지, 미래를 위해 남겨둘지.”
“아끼다 똥 된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알폰소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뭐, 알아서 해라. 난 간다.”
“아! 근데 그거 먹는다고 무조건 8성으로 올라가는 건 아니에요. 아시죠?”
온전한 열매의 절반이 안 되는 양이다.
사용한 후 몸이 상쾌해지는 것에 그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잘 알거든! 악담을 해요, 악담을.”
그리고 며칠 뒤.
에메랄드궁에서 8개의 별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