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84)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84화(84/203)
084
베르트 의원이 에메랄드궁을 방문했던 그 날 저녁. 집무실에서 [도서관]을 이용 중이었다.
똑똑, 똑똑.
다급한 노크 소리.
“왕자님! 급보입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알폰소의 얼굴이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뛰어온 것 같았다.
“뭔데?”
“폐하가 쓰러지셨답니다.”
나도 모르게 눈가가 꿈틀했다.
“다행히 신관과 치료사들의 빠른 조치로 금방 의식을 찾으셨답니다만······.”
“뜸 들이지 말고 말해.”
“좌반신이 마비된 증상을 보이셨다 합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미래’에서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국왕의 병이 발발했다. 거의 2년 이상 빨랐다.
무엇 때문일까?
내가 한 행동 중에 그에게 악영향을 미칠만한 것이 있었나?
‘······ 모르겠어.’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전생을 자각하고 약 2년.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바꿔놨다.
국왕이 쓰러진 것은 앞으로 벌어질 미래가 내가 알던 ‘미래’와는 전혀 딴판이 될 거라는 예고 같았다.
‘앞으로 5년 정도인가?’
알폰소는 당장 국왕이 오늘내일할 것처럼 다급하게 말했지만, 생각보다 오래갈 거다. 신관과 치료사가 달라붙는 연명치료는 지구의 최신의학보다도 질긴 면이 있다.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는 건 약 2년.’
추정치일 뿐이다.
이미 발병 자체가 2년 이상 빨라진 시점이라 훨씬 더 단축될 수도 있었다.
‘국왕은 내가 왕위 계승을 확정 짓기 전까진 쓰러져선 안 돼. 내전이 일어날 거야.’
‘미래’에서도 그랬다.
지지부진 생명을 연장하던 국왕이 끝내 숨을 거둔 직후 내전이 발발했었다. 제 살 깎아 먹는 짓이었다.
같은 왕국 사람끼리 죽고 죽이는 그런 참상이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
“알폰소, 내일 오전 일정을 비워둬. 폐하의 병문안을 간다.”
“넷? 알겠습니다.”
***
레온궁.
건국왕의 이름을 따서 붙인, 리오넬의 국왕이 거주하는 곳이다.
500여 년 동안 수많은 왕족이 레온궁을 차지하기 위해 흘린 피가 커다란 호수 하나는 너끈히 채울 수 있을 정도라는 걸 현 국왕, 필리프 리오넬은 잘 알고 있다.
“폐하, 당장 급한 불은 껐습니다만, 생활 습관을 개선하지 않으면 금방 병세가 악화할 것입니다.”
그는 입술을 천천히 움직여봤다.
물의 여신, 룬디네의 주교의 솜씨가 확실히 남달랐다. 마비되었던 좌반신이 많이 호전되었다.
“알겠소. 내 주의하지.”
자신의 조언을 귓등으로 흘린 것 같은 필리프의 대답에 주교는 나직이 한숨을 쉬곤 조용히 등을 돌렸다.
필리프는 주교가 나간 후 품에 손을 넣어 담뱃갑을 꺼냈다. 5왕자가 누명을 썼던 왕실 재판 당시, 2왕비가 선물했던 그것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스읍─ 하아─
스읍- 하아─
“콜록, 콜록.”
예전엔 한 개비로 충분했는데, 이제는 두 개비가 기본이었다. 초조하던 기분이 안정되고 떨리던 손이 조금 진정되었다.
필리프는 시종이 가져다 놓은 신문에 눈을 가져갔다.
『세계를 노리는 에이츠 상회』
『5왕자 전하, 향후 리오넬 왕국에 마탑을 유치할 것이라 선포. 그 주인은 8성 마법사 프란이냐는 물음에 그저 미소만』
.
.
.
5왕자에 관한 기사가 반은 되는 것 같았다.
똑똑, 똑똑.
“폐하, 5왕자 전하가 도착했습니다.”
“들라 해라.”
시종이 열어준 문으로 에반이 들어왔다.
그는 방안을 가득 채운 담배 연기에 코끝을 찡긋거렸다. 그러다 침상 옆 테이블에 놓인 재떨이와 담뱃갑을 발견하곤 인상을 찌푸렸다.
“공기가 탁하군요. 환기해도 괜찮겠습니까?”
“알아서 하도록.”
에반이 창문을 열고 방 안의 공기를 환기하는 모습을 지켜본 필리프가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거지? 네 유모가 잡혀갔을 때 이후로 처음이군.”
“그때는 문전박대 하지 않았습니까? 오늘도 안 만나주시면 어쩔까 걱정했습니다.”
뼈가 있는 듯한 에반의 말의 필리프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베이른 후작 가문에 관련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게 당시 모두가 바라는 것이었으니까.”
“알고 있습니다.”
필리프는 창문을 열고 자신 앞에 선 에반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떤 생각을 지닌 채 자신을 보고 있을까?
모르겠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엿보이지 않았다. 그저 깊다는 것만 느낄 뿐이었다. 필리프는 슬쩍 에반의 눈을 피했다.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으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걱정하지 마라. 최소한 다음 대 왕관을 쓸 사람이 누군지 확정되기 전까지는 버텨볼 생각이니까. 이 궁에 들어올 사람이 누군지는 나도 확인해보고 싶으니까.”
“그럼 술, 담배부터 줄이시죠. 최소한······ 담배는 바꾸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새겨듣지. 당장 죽을 게 아니란 걸 확인했으면 그만 가보는 게 어떠냐? 곧 있으면 1왕자도 올 텐데.”
“루카스 형님 말입니까?”
“그래, 녀석도 내가 얼마나 갈지 궁금한 걸 테지.”
필리프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담뱃갑에 손을 가져갔다.
에반이 휙- 손을 뻗어 담뱃갑을 낚아챘다.
“뭐 하는 짓이냐!”
필리프의 얼굴이 분노로 새빨개졌다.
“섬나라 놈들이 만든 허접한 것 말고 이걸 피우시죠.”
에반이 품에 손을 넣고 한참을 뒤적이더니 겉보기부터 고급스러운 담뱃갑을 하나 꺼냈다.
“아이멘 제국의 황족들이 피우는 겁니다. 한 갑을 구하려면 같은 크기의 금이 필요할 만큼 진귀한 겁니다. 어렵게 구했습니다.”
“······ 알았다. 그만 가봐라.”
“그럼 이만.”
에반이 고개를 꾸벅이고 나간 후, 필리프는 에반이 건넨 담배를 입에 물었다.
치익, 스읍- 후우─
“뭐, 나쁘진 않군.”
***
3분기 정기 국무회의가 열렸다.
왼쪽엔 재정경제부 장관 클리앙 백작, 오른쪽은 국방부 장관 베르트 의원을 끼고 회의실에 입장했다.
나를 지지하는 5왕자파 인물들이 앞다투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외교부 장관인 로이스 백작이 가장 먼저 일어난 것 같다. 1왕자파 인사들도 미적지근 일어나 고개를 꾸벅였다.
에메랄드궁의 유령왕자였던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감개무량한 변화다.
“왕자님, 누구 옆에 앉으시겠습니까?”
베르트 의원의 물음에 5왕자파 인물들이 눈을 빛냈다. 안타깝게도 나의 선택은 그들이 아니었다.
“저분과 함께 회의에 참여하고 싶군요.”
나는 저벅저벅 걸어갔다.
“옆자리에 앉아도 되겠나? 랜스 백작.”
떡진 머리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낀,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와 있는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 네. 앉으시죠.”
– 왜 랜스 백작 옆에 앉으셨지?
– 이번 국무회의에 올리실 안건이 법무부 관련된 일인가?
여기저기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법무부 장관인 랜스 챈버스 백작.
대표적인 중립파 인물이다.
리오넬 왕국에서 사법과 관련된 직책은 그 업무적 특성상 정치적 중립을 표방한 인물들이 주로 담당하고 있다.
“랜스 백작, 이번 국무회의에 올릴 안건이 형사 사건을 전담할 전문부서의 신설이었나?”
“헉!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긴, [도서관]을 통해서 알았지.
“그냥 어디서 주워 들었네. 좋은 생각 같더군. 최근 붉은별열병이 가라앉으면서 강력범죄가 늘었다던데 전담할 부서가 생긴다면 왕국민들도 발 뻗고 잠들 수 있겠지. 적극 지지해주지.”
“······ 감사합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하는 그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내가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안 돼 왕실기무대 정보부 장관인 밀로아 백작이 입장했다.
반갑게 손을 흔들어줬다.
그녀가 랜스 백작 옆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한 번 흠칫했다 고개를 꾸벅였다.
‘1왕자는 안 왔나?’
작년에 6성 기사로의 벽에 무릎 꿇고 잠시 방황했던 1왕자. 얼마 전 국왕을 알현한 후에 다시 밤낮으로 검술에 매진 중이었다.
대체 국왕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어쨌든 국무회의까지 빠질 정도면 또다시 갈림길에 선 것 같다. 느낌상 이번에는 벽을 넘어서지 않을까 싶다.
‘6성 기사도 대단한 존재지······.’
국내에 열 명이 안 된다. 괜히 초월자라 불리는 게 아니다. 3기사단장인 게르트도 6성기사이지 않은가.
뭐······ 1년 전이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가 6성 기사가 된다고 왕위 계승 싸움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에메랄드궁의 구석에는 8성 마법사의 연구실이 있으니까.
공식적으로는 리오넬 왕국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프란. 하지만 1왕자 진영의 입장에선 그녀의 존재 자체가 어마어마한 부담일 거다.
“허허, 오는 길에 마차의 바퀴가 망가져서 조금 늦었습니다. 미안합니다.”
허총리가 드디어 입장했다.
“국왕 폐하는 다들 아시다시피 당분간 휴식이 필요하신 상태라 3분기 국무회의는 본 총리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며칠 전 만났던 국왕이 떠올랐다.
그를 생각하면 뭐라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낀다. 원망, 연민, 분노, ······ 그런 것들을 괴상하게 뒤죽박죽 섞어놓은 감정.
– 왕자님. 폐하의 시종이 찾아왔습니다. 아이멘 제국의 황족들이 태운다는 담배를 찾던데요?
오늘 아침에 국왕의 시종이 왔다 간 걸로 보아 담배를 바꿀 생각이 든 것 같았다.
‘설마 그걸 피우고 있을 줄이야.’
국왕을 만났을 때 재떨이 옆에 담뱃갑을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내후년쯤 성분 중 하나가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게 발견되어 판매가 금지될 담배였다.
대체 그걸 어디서 구했던 거지?
마침 아이멘 제국에서 갓 들어온 최고급 담배를 [만물상]을 통해 구매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최소한 급사하진 않겠지?’
“허허허, 그럼 먼저 보건복지부의 안건부터 살펴보도록 할까요?”
나는 국왕에 관한 생각은 그만하기로 하고 국무회의에 집중했다.
“왕도 바로나는 일상을 되찾은 듯하지만 아직······.”
“······ 그래서 장관님께선 어떤 해결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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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왕자와 2왕자가 대립할 때와는 조금 달라진 점이 있었다. 왕국의 발전에 도움이 될만한 건설적인 안건이 꽤 많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
“허허허, 다음은 산업자원부와 왕실기무대 정보부의 공동 안건이군요. 발언은 누가 할 거요?”
밀로아 백작이 손을 들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마력초전도체,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얼마 전 1왕비님의 친가인 룬티아 공작 가문의 공방에서 작년 호라이즌에서 발표되었던 ‘라크’보다 성능이 뛰어난, 마력 손실률 26%의 마력초전도체를 연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으음······ 라크3 정도 수준인가?
밀로아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겠지만, 에메랄드궁의 구석에서 마력초전도체를 연구 중인 이자벨이 벌써 라크11을 만들었다.
마력 손실률 16%.
“국내는 붉은별열병이 수그러들고 있지만, 외국은 한참 어수선한 때입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저희도 마력초전도체의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야 할 때입니다! 이를 국가 산업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외교부 장관, 로이스가 그녀의 의견에 반박했다.
“열강들에 마력초전도체에 대한 열망은 상상 이상이라 들었습니다. 붉은별열병이 세계를 휩쓴 와중에도 전혀 투자를 멈추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국가 산업으로 육성한다 한들 투입되는 인적 자원과 자본의 규모가 다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마력초전도체를 선도하는 국가가 미래의 패권을 장악하게 될 겁니다.”
“뒤늦은 마력초전체의 개발보다는 자국의 에이츠 상회가 주도하는 바이오산업에 국가의 역량을 집중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잘하고 있고, 잘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최근 그 뭐더라, 배, 배신? 부신?”
“백신이오. 로이스 백작.”
“아, 감사합니다. 5왕자님. 최근에는 질병을 미리 예방하는 백신이라는 것에 관한 연구도 시작했다 들었습니다. 저는 그게 마력초전도체보다 굉장해 보이더군요.”
“그, 그건······.”
밀로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안건에 사심이 섞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왕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기로 했다.
내가 거수하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허허, 발언하시죠. 5왕자님.”
“밀로아 백작의 말이 딱히 틀린 건 아닌 것 같군요. 뒤처졌다고 미래의 핵심 산업을 아예 손 놓고 있는 건 또 문제겠죠. 최소한의 지원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5왕자님······ 진심이십니까?”
밀로아가 영 찜찜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심이지. 사적으로 투자도 할 마음도 있어. 받아줄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나중에 다 내 것이 될 터였다.
완성된 기반 설비에서 이자벨이 개발한 마력초전도체를 생산할 생각을 하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