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86)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86화(86/203)
086
“그럼 저는 왕자님이 시키신 공무를 수행하러 이만 출발하겠습니다.”
누가 보면 엄청 어려운 일을 떠맡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알폰소가 나갔다.
홀로 남은 나는 의자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봤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국무회의를 마치고 나면 탈력감이 엄청나다.
하늘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을 감상하며 잠시 머리를 비웠다. 정신적 피로에 점심 후의 식곤증까지 몰려온 탓인지 눈이 절로 잠겼다.
똑똑, 똑똑.
살짝 졸았다.
노크 소리에 빠르게 눈을 떴다.
“왕자님, 클리앙 백작이 찾아왔습니다.”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2시.
한참 재정경제부에서 업무보고 있어야 할 인간이 웬일이지? 강박증이 있어서 루틴을 벗어나는 걸 싫어할 텐데.
“들어오라고 해.”
잠시 뒤, 시종의 안내를 받아 클리앙이 들어왔다.
“어쩐 일이야? 미리 연락도 없이.”
“국무회의에서 왕자님이 올리셨던 안건, 무슨 의도셨는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도무지 업무에 집중이 안 돼 찾아왔습니다.”
“짐작 가는 게 전혀 없나?”
“왕자님이 왕위를 계승하신 직후라면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법의 정비는 왕권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의 하나니까요. 하지만 지금 시점은······ 왕자님을 지지하는 이들도 썩 달가워하지 않을 안건을 올리신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벌써 말해줘도 될까?
새어나가면 안 될 이야기다.
자칫 잘못하면 여태껏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성문법의 도입을 위해 국무회의 도중 장관들 앞에서 발언하신 내용들도 이해가 안 갑니다. 자칫 잘못하면 공화주의자로 오해받을지도 모를 예시를 드셨습니다. 실제로 밀로아 백작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탁탁 두들기다 오랜만에 유령손으로 열변을 토하는 그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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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앙 와이트
성별 : 남
나이 : 29
종족 : 인간
[스탯] [스킬] [관계 : 가신]━━━━━━━━━━
아직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가신’. 그중 한 명인 클리앙. 시스템이 인정한 그를 안 믿으면 누굴 믿을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클리앙 백작, 자네는 내가 왕위를 계승할 확률이 어느 정도 된다고 생각하나?”
“100%입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클리앙의 즉답. 어쩐지 조금 쑥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가 곧바로 부연 설명을 했다.
“아무것도 없는 맨몸에서 단 2년 만에 1왕자님과 비등비등한 세력을 일구셨습니다. 앞으로 왕자님의 모든 행보에 견제가 들어올 걸 고려해도······ 5년, 5년 정도 후에는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왕위를 계승하실 수 있을 겁니다.”
“높게 평가해주니 고맙군.”
“왕자님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나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5년은 너무 늦어. 2년, 2년 안에 왕위 계승을 확정 지어야 해.”
“네?”
그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언제나 한결같던 그의 표정이 무너진 것.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발언이었나?
“어찌 그렇게 서두르십······ 설마! 폐하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것도 없지 않아 있지. 불시에 왕좌가 비어버리면 같은 왕국민끼리 피를 흘릴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 하지만 그것뿐만은 아니야.”
“또 무엇이······.”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집무실 벽에 붙어있는 지도 앞으로 다가갔다. 리오넬 왕국을 중심으로 하믈 제국 일부와 아르야 왕국이 그려져 있었다.
쾅!!
나는 그 지도에서 왕국이 빼앗긴 서북부 지역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려치며 클리앙을 바라봤다.
“최대한 빨리 여기를 수복해야 해. 왜인지는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지?”
“그레이스틸······.”
“그래, 마력초전도체 라크를 만드는 원재료인 그레이스틸이 대량 매장되어 있지. 정확한 매장량은 모르지만, 하믈 제국이 움직였을 정도면 못해도 최상급 마정석이 생산되는 광산 서너 개 값어치는 하지 않을까?”
“그 사실을 왕국의 귀족들이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왕자님의 외가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진 않았을 겁니다.”
나는 클리앙의 위로에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 과연 그랬을까?”
“······.”
“그 문제는 됐고, 나는 최소한의 피해로 서북부를 탈환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길어봤자 5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국내 상황을 안정시켜야 해.”
하믈 제국의 황제는 연로하다.
앞으로 10년은 더 황좌에 앉아있겠다며 떠드는 인간이지만 갑자기 기력이 쇠해지며 순식간에 가버릴 거다.
‘미래’에서는 리오넬 국왕이 사망한 지 반년인가 지나서였다.
자연사다.
아무리 내가 벌이는 일들로 미래가 송두리째 바뀌어도, 인간의 자연적인 수명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터.
‘하믈 제국의 내전이 벌어질 거야.’
거기서 조각조각 찢어지면 모두가 행복한 해피 엔딩일 텐데, 아쉽게도 단기간에 모든 정적을 숙청할 황족이 한 명 등장할 거다.
‘붉은황제······.’
현시점에서 이미 8성 기사인 인간.
아미카 아르야처럼 미래에 위협이 된다고 당장 내가 어쩔 수 있는 놈이 아니다.
어쨌든!
하믈 제국의 황제가 사망한 직후가 서북부를 탈환할 절호의 기회다.
‘이번엔 섬나라 놈들도 움직이는 게 쉽지 않을 거야.’
‘미래’에서 아르야 왕국이 리아전쟁을 일으킨 시기도 하믈 제국이 내전으로 정신없을 때.
아르야의 왕당파가 나 때문에 치명적인 피해를 보았으니 그때까지도 귀족파와 물고 뜯고 핥고 있을 터였다.
“작년에 32번째 아들을 본 하믈 제국 황제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씀이시군요.”
클리앙도 그렇고, 가끔 가신들과 대화하다 보면 나를 백발백중의 예언자라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뭐, 하믈 제국 황제의 죽음까지는 들어맞을 테니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 이후로는 너무 많은 천기를 읽은 탓에 미래를 보는 눈을 잃었다고 하면 되겠지.
······ 그런데 왜 갑자기 클리앙이 아련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
클리앙은 오늘 아침 저택을 나오면서 호수에 연꽃이 화려하게 핀 것을 보았다. 왜 5왕자와 대화하던 도중 그게 떠오른 걸까?
‘아··· 그런가.’
이르면 내일, 늦어도 삼일 안에는 호수의 연꽃들이 모두 시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5왕자도 그러하리라.
그가 파악한 것만 해도 5왕자는 붉은별열병, 국왕의 수명, 그리고 하믈 제국 황제의 수명을 읽었다.
‘왕자님의 남은 수명은 얼마나 소모되었을까?’
본인의 남은 수명도 그리 길진 않을 터였다. 왜 저리 조급해하는지 그제야 이해가 갔다.
“그렇군요. 시간이 촉박하군요······.”
담담히 내뱉은 클리앙의 말에 에반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밖에도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하믈 제국의 혼란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최대한 빨리 국내가 안정되어야 할 가장 큰 이유야.”
“이해했습니다. 한데 그것과 사법 체계의 정비가 대체 무슨 관련이 있단 말씀이십니까?”
“······ 이건 조금 위험한 이야기일 수도 있어. 어디 가서 실수로라도 발설하지 마.”
심각해진 에반의 표정에 클리앙도 살짝 긴장되었다.
“저를 어떻게 보시고.”
“특히 밀로아 백작한테.”
“······ 안 합니다.”
꿈틀한 클리앙의 미간.
에반이 픽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가끔 둘이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신다기에 혹시라도 해서 한 말이야.”
“제가 술을 입에 안 대는 것,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건 우연히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하게 된 밀로아 백작이 술김에 내뱉는 정보를 귀에 담기 위해 자리에 앉아있었던 것이 와전된 겁니다. 적을 가까이 두라는 격언을 혹시 모르시는 겁니까? 저는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뿐이니 행여나 다른 오해는 절대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알았어, 충분히 알겠으니 그만 설명해도 돼.”
클리앙은 자신이 평소답지 않게 말이 많았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정시에 업무를 끝내지 못해 야근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하급자처럼 말이다.
재차 변명의 말을 꺼내려던 그.
“삼색 지팡이단과 접촉할 거야.”
에반의 소곤거리는 듯한 말에 머릿속이 잠시 하얘졌다.
삼색 지팡이단.
공화정을 꿈꾸는 리오넬 왕국의 비밀 결사 조직이었다.
– 그래서 5왕자님이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죠? 설마 저희도 아덴처럼 공화정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건 아니겠죠?
클리앙의 귓가에 국무회의에서 밀로아가 내뱉었던 말이 계속 울려왔다.
그는 서둘러 문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덜커덩 문을 열고 주변에 아무도 없나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절대 문밖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에반의 목소리였지만, 도저히 확인해보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는 다시 문을 닫고 에반에게 다가갔다.
“진심으로 그 반역도들과 접촉하실 생각이십니까? 국가 전복을 꾀하는 무리입니다. 왕자님이 그들과 접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일 겁니다.”
“클리앙, 동부에서 활동하던 삼색 지팡이단이 최근 본거지를 옮긴 것 알아?”
에반은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왕실기무대가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는 삼색 지팡이단. 클리앙은 얼마 전 기껏 그들의 본거지를 덮쳤더니 텅 비어있었다는 밀로아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옮겼을까?”
클리앙이 즉답했다.
“남부로 옮겼겠지요.”
“정답이야.”
“처음부터 사법 체계를 건드리실 생각이 없으셨군요. 왕자님이 국무회의에서 하신 발언, 해석하기에 따라 신분과 상관없이 죄에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말이 왕자님의 입에서 나온 것 자체가 중요한 거였어요. 삼색 지팡이단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 그들을 이용해 남부 귀족들을 흔들 생각이시겠죠?”
“반은 맞고 반은 틀려.”
“네?”
“오늘은 여기까지. 궁금했던 내용은 충분히 풀리지 않았어? 더 이야기가 길어지면 오늘 야근해야 하는 거 아니야? 부하들한테 야근 안 시키는 걸로 유명한데, 본인이 야근해서야 되겠어?”
클리앙은 흠칫하며 시계를 보았다.
에반의 말이 맞았다.
여태까지 잊고 있던 끔찍한 불쾌감이 그를 덮쳐왔다.
“날 잡아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때는 자세히 이야기해 주십시오.”
“아무렴.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서 일 봐.”
***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북적이는 바로나 시내를 걷고 있었다.
“이랴! 이랴! 비켜! 비켜!!”
히이이이잉!
귀족가의 마차가 미친 듯이 질주하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길 가장자리로 피하며 딸깍, 회중시계를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8시 50분.
마차가 달리다 걸리면 큰 벌금을 내게 되는 길이었지만, 이 시간에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근무 시간에 늦은 왕궁의 관료가 분명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광경.
그런데.
오늘은 한 부모에게 안타까운 날이었던 모양이다.
사과 하나가 마차의 이동 경로로 또르르 굴러가고,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 하나가 그걸 주우려 뛰쳐나갔다.
“헨리───!!”
“아이가!”
“멈춰! 멈춰─!”
히이이이잉.
당황한 마부가 고삐를 당겨보지만 늦었다. 그는 곧 닥칠 끔찍한 광경을 상상하며 고개를 돌렸다.
덥썩- 데구르르.
다행히 남자가 놀라운 속도로 뛰어들어 아이를 안고 굴렀다.
“마력 각성자!”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하나가 된 것처럼 외쳤다.
히이이이잉.
“무슨 일이지? 왜 속도를 늦췄지? 지금 한시가 급한 것 모르나!”
“아, 아닙니다. 별일 아니었습니다.”
마부는 다시 말의 속도를 올려 왕궁으로 달렸다.
“저런······.”
“하여간 귀족들은······ 쯧쯧.”
사람들은 혀를 찼다.
멀어지는 마차를 흘겨본 남자는 품에 안고 있는 아이가 다친 곳이 없나 확인했다.
“괜찮니?”
“으아아아앙.”
별안간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
“가, 감사합니다! 오, 헨리! 엄마 손 놓지 말라고 하지 않았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사례를 어찌해야 할······ 헉!”
남자에게 달려가 고개를 조아리던 여인은 후드 속, 유령 같은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괜찮습니다.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남자는 순식간에 인파를 빠져나갔다.
그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 점점 으슥해지기 시작했다. 이내 악취와 썩은 내가 진동하는 곳에까지 이르렀다.
남자의 발걸음이 쓰레기통 옆에 널브러져 있는 거지 앞에서 멈췄다. 그의 시선이 거지가 덮고 있는 신문을 향했다.
『성문법 도입을 제안하신 5왕자님』
『브리센 연합의 맹주 다이치 왕국으로 본 성문법, 법이 신분에 우선한다?』
남자의 시선을 느낀 거지가 살포시 눈을 떴다.
“처음 보는 인간 같은데, 돌아가. 여기 오래 있으면 죽어.”
거지의 이죽거림에도 그는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밤의 끝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표정이 굳은 거지가 주변을 둘러보다 입을 열었다.
“물결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는 알고 왔나?”
“우리의 열망에서.”
“희망의 꽃이 피는 곳은?”
“모두의 마음.”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선 거지가 얼굴을 남자의 코앞으로 가져갔다. 후드 속 가면을 살핀 그가 혀를 찼다.
“가면 쓴 꼬라지 하고는······ 쯧, 따라와 대장한테 안내해주지.”
한참 말없이 걷던 거지가 문득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당신이 왠지 꽤 많이 마주칠 것 같은 느낌인데, 뭐라고 부르면 되지?”
“네이브. 네이브라고 부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