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89)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89화(89/203)
089
1왕자의 거처인 토파즈궁.
챙-! 챙─!
“하아아압!”
“옆구리가 비었습니다!”
굳건한 인상의 중년 기사가 루카스와 검을 나누고 있었다. 왕국에 단 두 명 남은 7성 기사, 갈라드 리온이었다.
밀로아는 연무장 구석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그와 루카스의 대련을 지켜보았다.
“하하하! 좋습니다. 오러를 사용해보시지요!”
“다치셔도 모릅니다!”
“영광이지요.”
두 사람의 검에 6성 기사의 상징, 오러가 휘감겼다.
챙-! 깡-! 까아앙─!
밀로아는 눈으로 좇을 수 없는 둘의 대련에 곧 흥미를 잃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얼마 전 루카스가 오러를 다루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좋은 소식이다, 분명 좋은 소식인데······.
‘1년만 빨랐으면 좋았을걸.’
밀로아는 그 점이 못내 아쉬웠다.
5왕자의 성장세가 그만큼 위협적이었다.
15살에 4성 기사.
현재 그게 공식적으로 밝혀진 에반의 무위였다.
하울링이라는 독특한 기술을 터득해 검사(劍絲)를 사용하지 못함에도 천부적 검술 재능으로 5성 기사들과 대등, 때론 압도했다는 건 왕궁을 들락날락하는 이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다.
‘뭔가 더 숨기는 게 있어.’
작년 이맘때, 아직 5왕자가 3성 기사로 알려져 있을 무렵, 그가 베록을 쓰러트렸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만취했던 베록의 헛소리가 와전된 거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밀로아의 감은 그게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5왕자 뿐만이 아니다.
그의 곁에 있는 기사들의 성장세가 무서웠다.
특히, 레이나.
불완전하나마 7성 기사의 상징과도 같은, 상대에게 자신의 법칙을 강요하는 강제(强制)의 묘리를 터득했다는 소문이 은밀히 떠돌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대련을 마친 두 남자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하하하! 이제 오러를 완숙하게 사용하시는군요. 이대로 쭉 정진하시면 분명 얼마 안 가 7개의 별을 품으실 수 있을 겁니다.
“과찬입니다. 세상엔 저보다 뛰어난 재능이 넘쳐난다는 걸 깨달은 지 꽤 되었습니다. 레이나 남작은 한참 전에 저를 뛰어넘었고, 에반 녀석은 무섭게 따라오고 있지 않습니까?”
루카스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갈라드는 구태여 입을 열지 않았다.
얼마 전, 기사단의 개편이 완료되었다.
청사자기사단.
백사자기사단.
기존 2기단이라 불렸던 적사자기사단의 인원들이 사방으로 찢어지고 두 개의 근위기사단이 남게 되었다.
관례상 1기사단, 3기사단처럼 불렸던 것도 금지되었다. 근위기사단 사이에 서열을 조장하는 것 같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그리고 있었던 기사단 합동 훈련.
1왕자는 청사자기사단과 5왕자는 백사자기사단과 함께 참여했었다.
훈련 내용은 간단했다.
각 기사단과 함께한 왕자를 지킬 것.
모두들 청사자기사단의 승리를 점쳤었다. 무려 7성 기사인 갈라드 리온이 있었다. 아무리 훈련이라지만 1기사단이 지는 것이 상상이 안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5왕자가 함께한 백사자기사단의 승리였다.
‘귀신같았지······.’
갈라드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분명 그는 훈련 도중 마주치는 적을 모두 궤멸시켰다. 최종적으로 백사자기사단의 단장인 게르트를 이탈시키고 5왕자를 사로잡기 직전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레이나를 위시한 백사자기사단의 결사대가 한발 앞서 1왕자를 포로로 잡았다.
훈련에서 이탈된 단원은 백사자기사단이 못해도 세 배는 많았다. 하지만 그럼 뭐하나, 청사자기사단은 결국 1왕자를 지키지 못했다.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전쟁에선 진격이었다.
후에 알았다.
백사자기사단의 모든 전략이 5왕자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것을.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야.’
루카스, 갈라드, 밀로아의 머릿속에서 똑같은 생각이 떠오르는, 확률적으로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세 사람은 점심 식사 후에 티타임을 가지며 급변한 왕위 계승 싸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러다 답답함에 두 남자가 일어나서 땀을 흘리고 온 것.
“그래, 밀로아 백작. 뭔가 떠오른 건 있는가?”
“······ 붉은별열병이 가라앉기 전까지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게 현실이에요. 왕도는 일상을 거의 회복했다지만, 지방은 아직이니까요. 그동안의 행적을 보아 5왕자님이 제네롤, 제네시아로 장난치실 분은 아니지만, 저희가 도발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어요?”
“그렇겠지. 5왕자가 그렇게 만만하신 분이 아니지.”
“붉은별열병이 가라앉으면 1왕자님과 청사자기사단이 함께 일을 하나 하셔야겠죠.”
잠자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루카스가 자신을 언급하는 밀로아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청사자기사단과 함께?”
“동부행을 계기로 5왕자님의 입지가 어마어마하게 상승했었죠. 비슷한 일을 해주셔야겠어요.”
“어떤?”
“아직 계획 중이에요. 아직은 뜬구름 잡는 식이라······ 세부 내용이 서면 따로 말씀드리죠. 당장은 내부 결속을 단단히 하며, 행여나 책잡힐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잡힐 일?”
“베오르티오 건으로 심한 타격을 입었던 것 기억나시죠?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죠. 그러니 두 분도 혹시 뭔가 켕기는 게 있으면 숨기지 말고 저한테 미리미리 말해주세요. 알고 있으면 어떻게든 대응 가능하니까요. 알았나요?”
밀로아의 말에 두 사람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 그런 일 없어.”
“큼, 큼. 나 역시 그렇다네.”
“단장님은 한시라도 빨리 마리아 백작 부인과의 만남을 중단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단장님의 부인께서 의심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저번에 걸리셨을 때, 분명 한 번 더 걸리면 이혼이라고 하셨다죠? 그리고······ 우리 1왕자님의 아이를 밴 토파즈 궁의 하녀는 제가 잘 설득해서 고향으로 내려보냈어요.”
그녀의 말에 두 남자의 눈에 지진이 일었다.
루카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살아있지?”
“당연하죠! 행여나 나중에 확인한다고 찾아가기만 해봐요. 그땐 내가 다 폭로해버릴 테니까.”
살기등등한 그녀의 눈빛에 그는 입을 꾹 닫았다.
말이 없어진 두 남자에게서 시선을 뗀 밀로아는 찻잔을 들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계속 가슴이 답답한 탓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
“혼자 오셨습니까? 그 ‘자유’라는 새부리가면이 그렇게 말하는데 제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세요? 5성 마법사라면서요.”
마르스를 만나고 온 알폰소가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징징거렸다.
“멀쩡히 돌아왔으면 됐잖아.”
긍정적인 대답을 듣고 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혼자 보낸 거였다.
“그리고 위급할 때 쓰라고 준 것도 있잖아.”
거금을 들여 위급 상황에 ‘가신’들을 구해줄 수 있는 아티팩트를 하나씩 선물했었다.
사용반경 5km 밖 랜덤한 좌표로 공간을 도약하는 마법이 걸려있는 팔찌였다.
8성 마법사 프란이 직접 만들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는데······.
상공 500m 위로 이동한다든가, 호수 밑바닥에 처박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프란도 정말 위험한 상황 아니면 사용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저도 아돌 경의 월아창술이나 버논 경의 청염대부술 같은 거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4성이었는데······ 큭!”
“그런 건 없고 이거나 받아.
나는 서랍을 열어 내가 목에 걸고 있는 [찬란한 이아나]와 똑같이 생긴 펜던트를 꺼내 녀석에게 건넸다.
“이건······?”
펜던트를 받아 이리저리 뜯어보던 알폰소가 입을 열었다.
“코앞에서 보지 않으면 3왕비님의 유품이랑 거의 구별이 안 되네요.”
검은 모루 부족의 족장, 길루드와 프란이 합작해 만든 거다.
– 뭐라고! 또 위작을 만들어 달라고?!
– 공간이동마법 아티팩트를 만든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만들어 달래! 나 바쁜 거 몰라?
저걸 마지막으로 최소 1년은 지나야 둘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할 수 있게 되었다.
“착용해 봐.”
알폰소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펜던트를 착용했다.
녀석의 어깨가 조금 넓어졌다. 머리가 흑발로 변하고, 실눈이 커지며 검은 동공이 보였다.
누가 봐도 나였다.
키가 비슷해서 다행이었다.
“어······ 이거.”
창문에 비친 모습을 본 알폰소가 손으로 얼굴 여기저기를 만졌다.
“당분간 나 대신 에메랄드궁을 지키고 있어야 할 경우가 있을 거야. 6성 이상의 마법사는 미묘한 이질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절대 마주치지 말고.”
“드디어 제 본 능력을 발휘할 때가······.”
“개판 쳐놓기만 해 봐. 앞으로 휴가는 절대 못 나갈 줄 알아.”
“헉!”
“대신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실수 없이 일 처리를 하면······ 원혈목을 선물로 줄게.”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입니까?”
원혈목은 원한을 품고 죽은 이들의 피를 먹고 자란 손바닥만 한 작은 나무다. 뿌리, 가지, 잎, 어디든 혀를 가져다 대는 순간 즉사하는 맹독을 품고 있다.
그 독기를 잘 갈무리해 수련에 정진하면 4성에서 정체된 알폰소도 6개의 별을 품은 독인(毒人)이 될 수 있을 터.
아무리 생각해도 음지에서 움직여줄 가장 믿음직한 인간은 알폰소였다. 최소한 6성 정도는 되어야 자기 몸을 건사하지 않겠는가.
“근데 원혈목을 어디서 구하시려고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시키는 것만 잘해 놔.”
라드완 룬티아의 공방에서 흘러나간 핏물이 고여있는 장소가 있다. 그곳에 원혈목이 있다.
시기상 지금은 독기가 덜한 묘목 수준이겠지만, 그래서 오히려 4성인 알폰소가 사용하기 딱 좋았다.
“알겠습니다! 왕자님의 수석! 시종! 알폰소만 믿으십시오!”
“좋아, 그럼 옆에 앉아서 이 서류들 정리해 봐.”
“네?”
각종 숫자와 그래프가 가득한, 아이라가 보내온 에이츠 상단의 4분기 보고서를 바라보는 알폰소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
라드완 룬티아.
아주 어릴 적 그의 취미는 곤충채집이었다. 룬티아 공작가의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
사실 당시 라드완의 진실한 취미는 곤충들의 각 부위를 조합해 새로운 곤충을 만드는 것.
6성 마법사에 도달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그였다. 그걸 들키면 귀찮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잘 알고 있었다.
표본을 남기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일상의 모든 장면을 머릿속에 사진처럼 선명히 보관할 수 있었기에 별다른 문제가 되진 않았다.
곤충, 동물, 마수, ······ 그의 관심사는 계속 변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인간, 엘프, 드워프 등 지성을 지닌 존재인 사람에 이르렀다.
라드완은 기분이 좋았다.
얼마 전 왕도를 방문했다 특이한 아이를 발견했다. 여섯 살배기 여자아이였다.
– 꽁아, 꽁아 많이 아프지?
상처 입은 강아지의 피를 멎게 한 그건 분명 신성력이었다.
아주아주 귀한 재료였다.
은밀히 납치해 공방에 가둬둔 상태였다.
‘뭐를 만들어 보지?’
신성력을 가진 재료를 이용해 만들고 싶었던 게 무척 많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상상만 해왔던 키메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래, 그걸 만들어 보자.’
예전에 만든 인면거미가 있었다.
냉동시켜 놓은 상태였다. 간단한 지시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실패작이었지만, 재료가 된 거미가 구하기 힘든 마수였기에 보존할 가치가 있었다.
머리를 아이의 것으로 바꿀까?
아니다.
등에 상반신만 붙이는 쪽이 더 아름다울 것 같다. 기존 달려있던 남자 놈의 머리와 마주 보게 하자.
뭔가 마음에 안 든다.
아······ 어미도 같이 납치했어야 하는 건데. 생판 모르는 남보다는 모녀가 마주보는 게 더 아름답다.
거미의 심장은 들어내고 아이의 심장과 교체해야겠지?
심장은 신성력이 깃드는 장소다.
과연 마기가 담긴 거미의 육체와 반응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혹시 터져버리기라도 하면 재료가 아까워서 어쩌지?
괜찮다.
다음 실험의 밑거름이 될 터였다.
완성품을 상상한 라드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공방에 도착한 그는 천천히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 감옥을 연상케 하는 철창들. 시체의 눈을 한 재료들이 부르르 떨며 구석으로 숨었다. 라드완은 특급 재료를 가둬놓은 창살 앞에 멈췄다.
그의 시선이 바닥의 접시로 향했다.
“안 먹었군.”
질 좋은 스테이크를 식사로 넣어줬는데 먹지 않았다.
“사, 살려주세요! 으아아앙! 엄마아아아!”
따악-!
[침묵의 요람]라드완의 핑거 스냅과 동시에 금세 주위가 고요해졌다.
시끄러운 건 사양이었다.
아이가 눈물을 질질 짜며 입을 뻥긋거렸다.
따악-!
[낙원으로의 초대]라드완의 손가락이 튕김과 동시에 아이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는 흥분된 마음으로 창살을 열기 위해 손을 가져갔다.
스윽- 멈칫.
그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쥐새끼들이 들어왔군.”
공방이 있는 숲에 누군가 들어왔다.
길을 잃은 용병, 모험가들이 접근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고양되어 있던 기분이 급격히 식어버렸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지하실을 천천히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