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9)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0화(9/203)
010
나는 상식이 부족한 편이다.
책으로 세상을 배운 탓. 왕궁 밖으로 나가본 경험은 한 손에 꼽는다. 그것도 8살 이전, 유모와 호위기사들의 동행하에서였다.
그 이후에야 뭐······.
“그러니까 마법서를 독학으로 마스터한 ‘천재’는 마탑 마법사들이 숨겨놓은 메시지를 볼 수 있다고?”
“하핫, 그렇죠. 소문입니다, 소문. 시골 남작령의 동네 꼬마들도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알폰소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몰라도 딱히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술식에 보이는 메시지를 읽어봤다.
– 왕도 바로나 여왕삼거리 34-231번지, 문 앞에서 ‘미녀 마법사님. 제발 제자로 받아주세요.’라고 크게 외치며 9번 절하기.
참 자기애가 넘치는 마법사다 싶었다. 솔직히 얼마나 미녀일지 조금 궁금해졌다.
하지만 찾아갈 생각은 없다.
나는 이미 마력을 각성한 상태로, 술식을 실제로 구축한 상태로 문제를 푼 데다 왕궁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 힘들까? 어릴 때야 승인 없이는 절대 외출 불가였지만, 지금은 아무도 신경 안 쓸 것 같기도 하다.
내 한 몸 지킬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면 그때 가서 다시 찾아가 볼지 말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천재라······.’
머릿속에 그린 술식을 현실에 투영하는 과정을 전문용어로 ‘구축’한다고 한다. 그게 불가능한 사람이 메시지를 발견한다면 그건 천재라 불려야 하는 게 맞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보더니, 캔버스에 사진처럼 그려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야 뭐······ 세 번째 눈을 개안하며 술식을 구축할 수 있으니 편하게 푼 걸 테지.
‘생각보다 스킬창을 통해 익힌 마법들이 이해가 잘 돼서 다행이야.’
마나 감응도만 뛰어나고 학습력이 떨어지거나 그 반대인 반푼이 마법사는 마족의 먹음직스러운 계약자 후보다. 그들이 흑마법의 길로 빠져들었다 퇴치당하는 건 어린이들 동화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수학 개념과 공식을 모두 외웠다고 올림피아드 경시 문제들을 술술 풀 수 없는 것처럼, 이론만 머릿속에 들어오고 하나도 이해가 안 되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비교 대상이 없어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그래도 마법사들 사이에 껴 있으면 뒤떨어진다는 소리는 안 듣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생각을 마친 나는 탁! 소리가 나게 마법서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왕자님, 어디 가시려고요?”
“연무장.”
“아, 검술 수련하시려고요? 준비하겠습니다.”
“됐어. 네 볼일 봐.”
“에이 어떻게 그런 섭섭한 말씀을.”
알폰소의 말을 무시하고 서재를 나섰다.
먼지 하나 없는 창틀을 닦고 있던 하녀 셋이 황급히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나의 눈치를 살폈다.
‘부담스러워 죽겠네.’
그녀들의 최대 관심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도서관]을 이용해 얻은 정보를 근거로 조언을 해줄 뿐이다. 존재하지 않는 그녀들의 짝을 만들어낼 재주는 없다. 어색하게 웃으며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곤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아······.”
“흑, 우린 틀렸나 봐.”
“에효······.”
뒤에서 들려오는 그녀들의 한숨 소리에 괜히 미안해져 발걸음을 빨리했다.
“왕자님~! 같이 가요! 왜 이렇게 빨리 가세요.”
목검과 수건, 물통을 챙긴 알폰소가 헐레벌떡 따라왔다.
“목검.”
“제가 들고 가겠습니다.”
“됐어, 줘.”
녀석이 건넨 목검을 받아들고 다시 앞서 걸었다.
“왕자님! 이쪽은 연무장이 아닌데요!”
“뭐가 아니야.”
“이쪽으로 가면······ 아! 3기사단의 연무장! 왕자님 진짜 가시려고요?”
나는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청사자기사단.
적사자기사단.
백사자기사단.
세 개의 기사단으로 구성된 리오넬 왕국의 근위기사단은 편하게 1, 2, 3기사단이라고도 부른다.
– 리오넬 왕국의 근위기사는 오직 실력만으로 뽑는다!
······ 라는 창설 시의 이념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1기사단과 2기사단은 출신성분을 철저히 따지는 편이다.
리오넬 왕국은 왕세자가 누구인지 정해지지 않았다.
1왕비 태생의 1왕자.
2왕비 태생의 2왕자.
23살 동갑내기인 그 둘이 유력후보이긴 하다. 깊게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는 이야기고 핵심만 말하면 1기사단은 1왕자를, 2기사단은 2왕자를 지지한다.
그리고 3기사단은······.
좋게 말하면 중립, 나쁘게 말하면 그 어디에도 끼지 못한 이들이 모인 곳이다. 평민 출신이 반이니 말 다 했다.
딱히 리오넬 왕국만의 문제도 아닌 진부한 이야기다. 그만큼 어디서나 흔히 일어나는 일. 시골 남작가의 기사단조차 파벌이 나뉘는 게 현실이니.
개탄스러운 상황이다.
북쪽에선 리오넬 왕국을 반쯤 속국 취급하는 하믈 제국이 호시탐탐 야욕을 드러내고 있고, 동쪽 해안 지역은 해적으로 위장한 아르야 왕국의 사략선들이 제집 들르듯 드나든다는 소식이 내 귀에도 들릴 정도다.
‘그런데도 파벌싸움이나 하고 앉아있으니.’
뭐, 덕분에 내가 아직 이렇게 숨을 쉬고 있는 걸 수도 있다. 1왕자나 2왕자, 둘 중 누구 하나를 중심으로 왕국이 똘똘 몽쳤으면, 충성심 넘치는 누군가가 혹시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5왕자 따위는 옛날옛적에 처리됐을지도 모른다.
3기사단의 연무장은 에메랄드궁과 마찬가지로 왕궁의 동쪽 외곽에 있다. 걸어서 30분 정도.
“··· 누구······.”
“처음······ 유령왕자······.”
“··· 진짜······ 5왕자······.”
지나가는 길에 나와 마주친 왕궁의 사용인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리오넬 왕실의 상징 같은 흑발 덕에 다들 내가 누군지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근 5년 만에 에메랄드궁을 나온 셈이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우아아아!”
“조져! 죽여버려!”
“병신아! 그걸 처맞냐!”
3기사단이 사용하는 연무장 근처에 도달하니 육두문자가 섞인 걸쭉한 사내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도착하니 분위기가 후끈했다.
대검을 든 기사와 갈색 더벅머리 기사 둘이 대련 중이고, 다른 이들은 두 패로 갈라져 둘을 응원하고 있었다.
몇몇 기사의 상태창을 열어보니 전부 20살 전후. 갓 기사단에 입단한 예비인원들 같았다. 그들을 통제할 선임 기사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외부인의 접근을 눈치챘을 텐데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았다.
무슨 상황인지 대충 짐작되었다. 3기사단도 출신성분에 따라 두 파벌로 갈려있는 거였다. 얼핏 들은 적은 있지만, 직접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디서 평민 출신들이 같은 공간에서 땀을 흘리려 그래, 주제도 모르고.”
“아돌! 힘내라! 돼지 새끼들에게 본때를 보여줘!”
더벅머리가 평민 출신으로 보였다.
그가 사용하는 검술에서 [리오넬 제식검술]의 흔적이 진하게 보였다. 왕국의 장교, 기사들이 익힐 수 있는 [리오넬 수호검술]이 분명했다.
반면 대검 기사가 사용하는 검술은 뭔지 알아볼 수 없었다. 가문에서 전승되는 검술일 거다.
“크하하, 느려! 그래서 굼벵이라도 베겠어?”
“닥, 쳐어-!”
“아이쿠.”
더벅머리가 확연히 밀리고 있었다.
“뒤져어어-!”
“너나 뒤지세요!”
거의 농락에 가까운 대련.
쇄액- 퍽!
더벅머리의 복부에 대검 기사의 니킥이 틀어박히고.
“컥!”
부웅- 퍼억!
대검 손잡이에 턱을 얻어맞은 더벅머리가 의식을 잃으며 상황이 종료되었다.
“퉷, 어디서 까불고 있어.”
태생부터가 귀족이었던 쪽은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멋있다!”
“봤냐, 이 새끼들아!”
“자, 앞으로 네놈들은 저쪽 구석에서 수련한다. 빨리들 꺼져!”
평민 출신들은 표정을 굳히고 더벅머리를 둘러메고 연무장 구석으로 이동했다. 잠깐 쉴 그늘 하나 없는 곳이었다.
“근데··· 저기······.”
“······ 왕족······.”
“······ 설마 유령······.”
이제야 다들 나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 정체를 눈치챈 것 같은데 아무도 다가오진 않았다.
“진짜······ 그······ 피에 젖은······.”
“······ 선배··· 목··· 날아······.”
어렴풋이 들리는 그들의 대화.
유모와 하루 차이를 두고 처형된, 3기사단 출신이었던 내 호위기사들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 왕자님! 마법사의 재능이 없더라도 전혀! 걱정할 필요 없으십니다!
– 아무렴요. 왕자님의 외조부님, 그리고 건국 시조도 기사셨습니다. 왕자님에게는 분명 기사의 피가 흐르는 겁니다!
– 내일부터 바로 수련 시작할까요? 하하하!
가슴이 욱신거렸다.
입술을 꽉 깨물며 그들을 다시 가슴 한편에 묻어두고 평민 출신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저들이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였다. 정확히는 저들이 익히고 있는 [리오넬 수호검술] 때문.
[무극 마나연공법]을 익히고 남은 것과 에메랄드궁 사용인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얻은 RP로 [발화]와 같은 기초 마법과 [리오넬 수호검술]을 익혔다.마법은 그래도 합리적인 가격이었지만, 문제는 [리오넬 수호검술].
‘비쌌지.’
[리오넬 제식 마나연공법]과 세트라고 티라도 내는 건지 가격도 똑같이 10,000RP였다.어제서야 겨우 알뜰살뜰 모은 RP를 이용해 익힐 수 있었다.
검술 중에서 [무극 마나연공법]처럼 히든 피스 비슷한 것이 없나 찾아볼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검술의 종류가 너무 많아 찾는 데 걸리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마나연공법이야 말만 안 하면 뭘 익히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검술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가 없어.’
뜬금없이 에메랄드궁에 처박혀 있던 유령왕자가 갑자기 정체불명의 검술을 맹렬히 수련한다? 심지어 그 검술이 범상치 않아 보여?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 재수가 없으면 마족과 계약한 타락한 왕자로 몰려 토벌당할지도 모른다. 실제 여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너무 간 건가?’
아니다. 몇몇 타국에는 왕위를 노린 왕자가 마족과 계약했다 토벌된 일이 실제로 존재하는데, 일부 역사학자는 그중 상당수가 정치적으로 희생되었을 뿐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마력을 다루지 않아도 누구나 익힐 수 있는 [리오넬 제식검술]의 수련은 다들 그러려니 했다.
옛날에 배웠던 거겠지, 서재에서 교본이 있었겠지, 대부분 그리 생각했을 거다.
‘리오넬 수호검술은 경우가 달라.’
장교, 기사들만 익힐 수 있는 [리오넬 수호검술]. 마나를 본격적으로 운용하는 검술인 만큼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 어디선가 교본을 구하는 일 따위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런 [리오넬 수호검술]을 내가 수련하면 다들 의구심에 찬 눈초리로 바라볼 게 뻔했다.
‘내가 수호검술을 익혀도 마족과 계약한 왕자라고 몰리는 일이 없어야 해.’
대검 기사 같은 귀족 출신은 [리오넬 수호검술]을 등한시하고 본인들 가문의 비전 검술에 매진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가문 대대로 내려온 비전 따위가 있을 리 없는 평민 출신 기사들은 대부분 [리오넬 수호검술]을 갈고 닦는다.
아마 그게 대련 시 평민 출신들이 밀리는 이유이기도 할 거다.
귀족 출신이 아무리 리오넬 수호검술을 등한시한다 해도 수련 자체를 안 하는 게 아니다. 왕국의 근위기사인 만큼 기본은 해야 한다.
나는 상대방을 모르는데, 상대방은 나를 안다? 동 실력이라면 전자가 후자를 이기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호위기사도 없는 내가 [리오넬 수호검술]을 익힐 수 있는 최소한의 개연성을 채우는 방법.
간단하다.
눈으로 직접 보면 된다.
내가 아무리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 유령왕자라지만, 그래도 왕족인지라 기사단이 수련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뜬금없이 정체불명의 검술을 익히는 왕자는 마족과 계약한 타락한 인간으로 몰리겠지만, 검술을 구경하던 왕자가 그걸 흉내 내는 건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기사들의 수련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더벅머리 기사는 여전히 의식을 못 찾고 있었다. 나머지도 패배감에 찌들어서 우울한 분위기. 다들 의욕이 없어 보였다.
함께 멍청히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목검을 들어 올렸다.
“후아, 여긴 어떻게 그늘 한점 없네요. 설마 여기서 수련하시려고요?”
“그래, 이따 휴식할 때 앉을 간이 의자랑 햇빛을 가릴 양산 좀 가져와.”
“······.”
힘없는 발걸음으로 내가 말한 것들을 구하러 가는 알폰소를 일별하고 목검을 움켜쥐었다.
– 우리 동생. 네 쓰레기 같은 재능으로는 성인식 치른 뒤 왕궁에서 쫓겨나면 객사할 게 뻔해. 이 형님이 특별히 교육해 주는 거니까 고마워해. ······ 대답 안 해 이 새끼야!
언제나 가상의 샌드백이 되어주는 4왕자의 환영. 오늘따라 유독 말이 많다. 대련, 혹은 교육을 빙자한 구타를 시작하기 전 놈이 내뱉던 단골 멘트다.
‘쓰레기 같은 재능이라······.’
오늘부터, 나는 검술 천재를 연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