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94)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94화(94/203)
094
왕도 바로나의 빈민가.
무너진 신전의 창문 없는 방.
가뜩이나 작은 방이 널브러진 신문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그곳에서 마르스가 홀로 독주를 마시고 있었다. 잔에 가득 찬 술을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켠 그가 텅 빈 잔을 쾅! 소리가 나게 테이블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쓰윽, 입가를 닦은 마르스의 시선이 바닥을 나뒹구는 신문들로 향했다.
『5왕자님과 백사자기사단, 삼색 지팡이단의 본거지를 급습하다』
『키리나 자작가, 삼색 지팡이단의 본거지가 영지에 있는 줄 전혀 몰랐다고 밝혀. 과연 진실은?』
왕실기무대가 20년간 쫓던 삼색 지팡이단의 본거지가 단 하루 만에 무너졌다.
6성 기사가 둘이나 포함된 전력에 하늘에는 5왕자의 개인 비공정이 떠 있었다고 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생존자는 전무.
현장에 있던 삼색 지팡이단원은 누구 하나 살아나오지 못했다고 알려진 상태.
격렬한 저항 탓에 포로를 잡을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큭, 웃긴 이야기야.’
마르스는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한 단원도 있었을 터.
5왕자가 후환을 남겨두지 않은 것이다. 그는 그렇게 확신했다.
『왕실기무대,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았던 것으로 밝혀져』
사살된 삼색 지팡이단 인원 중 야비한 가면을 쓴 인간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초췌한 얼굴로 왕실기무대를 걸어 나온 5왕자님의 수석 시종』
자연적으로 왕실기무대에 구금되었던 알폰소가 풀려났다.
다시 콸콸 잔에 독주를 가득 채운 마르스가 한 신문의 헤드라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삼색 지팡이단, 그 충격적인 실체』
그의 청춘을 바쳤던 삼색 지팡이단이 단지 귀족들의 더러운 짓을 도맡아 하던 지하 조직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마르스는 술이 찰랑이는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크으······.”
사실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힌트는 많았다.
핵심 간부인 그가 삼색 지팡이단의 리더인 지팡이로 걷는 자를 직접 만나보지 못한 것부터 그랬다.
그렇기에 진실을 알기 전에 삼색 지팡이단에서 자유 단원들을 데리고 독립하려 했었다.
조금 늦었다.
이미 삼색 지팡이단의 실체를 알고 충격을 받은 자유 단원들이 절반 넘게 탈퇴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공화정이란 이념에 일생을 바친 이들이었다.
마르스는 술기운으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최근 자 신문을 주워 펼쳤다.
『충격! 삼색 지팡이단의 본거지에서 발견된 지령서. 익명의 제보자, 모리아 룬티아 공작의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혀』
『모리아 공작이 삼색 지팡이단의 배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명백한 모략이라 주장하는 룬티아 공작가』
『입을 연 5왕자님의 수석 시종, 당당하다면 일단은 성실히 조사에 임해야』
난리도 아니었다.
삼색 지팡이단의 본거지에서 남부 귀족들의 부정부패, 비리가 가득한 문서와 함께 일부 귀족을 제거하라는 지령서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이다.
도대체 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삼색 지팡이단의 본거지에서 그랬다는 증거품들이 나왔단다.
남부 귀족 대부분은 5왕자 측의 모략이라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의심 탓에 머릿속이 복잡할 터였다.
모리아 공작이 지금처럼 해명 없이 병을 핑계로 계속 영지에 박혀있다가는 남부 세력이 자연스레 와해할 상황이었다.
“······ 멋지게 이용당했군.”
– 꼭두각시 인형처럼 춤을 추다 필요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미래뿐이 안 그려져.
네이브에게 내뱉었던 말처럼 되지 않기 위해 마스터란 인간이 5왕자라는 결정적 증거를 찾으려 했다.
위기가 닥쳐왔을 때 자신과 자유 단원들을 지키기 위해서.
한데 이렇게 단시간에 상황이 급변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마르스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잔에 독주를 콸콸 따랐다.
그때.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마르스는 고개를 들고 덜컹 열리는 문을 바라봤다.
유령가면, 네이브였다.
“오랜만이군요. 이제 제 차례가 온 겁니까?”
“무슨 소리지?”
“삼색 지팡이단의 몰살해야 5왕자님의 계획이 완성되는 것 아닙니까?”
“아, 내 마스터가 5왕자라고 생각하는 건가?”
“······ 놀리시는 겁니까?”
네이브를 흘겨본 마르스는 독주가 찰랑이는 술잔에 손을 가져갔다.
“이미 삼색 지팡이단은 몰살당하지 않았나? 오늘 자 신문은 안 봤나 봐?”
네이브의 말에 마르스의 몸이 멈칫 굳었다.
무슨 소리지?
신문이 날라왔다.
그는 엉겁결에 그걸 받았다. 신문의 헤드라인이 돋보기로 확대한 것처럼 보였다.
『삼색 지팡이단의 잔당. 핵심 간부 ‘자유’를 소탕한 레이나 남작』
『새부리가면 속에 숨겨졌던 그의 정체는?』
『라드완의 만행이 폭로된 건 삼색 지팡이단 내부의 갈등 탓?』
마르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네이브를 바라봤다.
“이, 이게 무슨. 5왕자님은 저를 살려줄 생각인 겁니까?”
“5왕자의 생각을 왜 나한테 묻는지 모르겠군.”
“······ 됐습니다. 그래서 저를 찾아온 용건이 뭡니까? 제 청춘을 바쳤던 이념을 버리고 쥐 죽은 듯 살면 살려준다는 겁니까?”
“전달하라고 하셨던 선택지 두 개 중 하나로군.”
“두 가지 말입니까? 다른 선택도 있습니까?”
“정 공화정을 실현해보고 싶다면 리오넬 왕국 말고 하믈 제국으로 건너가라고 하시더군. 만약 그 선택을 한다면 일정 수준의 지원을 지속해서 해주신다고 하셨지.”
“저는 왕국민을 계몽하고 싶은 거지, 때놈들을 계몽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하믈 제국에도 리오넬 왕국인은 많아. 특히 150년 전, 왕국이 빼앗긴 엘렌베이라지역에 말이야. 그들이 소수 민족의 하나로 취급되어 때놈들에게 핍박받는 건 잘 모르나? 거기에 터를 잡아.”
“······ 만약 쥐 죽은 듯 살지도 않고, 왕국을 떠나지도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잘 알면서 왜 물어.”
네이브가 엄지로 목을 싹 그었다.
“내 마스터가 그래도 상도의가 있으신 편이지만, 후환을 남기지는 않아.”
“언제까지 결정하면 되는 겁니까?”
“이틀 주신다더군.”
“······ 알겠습니다.”
“잘 생각해봐. 그럼 이만.”
저벅저벅.
마르스는 멀어지는 네이브의 발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술잔을 들이켰다.
***
『휠체어를 타고 비공정에서 내린 모리아 룬티아 공작』
『청문회에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선언한 모리아 공작』
『과연 7성 마법사를 쓰러지게 한 병은 무엇이었는가?』
.
.
.
리오넬 왕국에서 가장 강한 권력은 어디에 있을까?
왕?
국무회의?
왕실기무대?
왕실위원회?
전부 아니다.
단연코 귀족의회라 할 수 있다.
총 300명으로 이루어진 귀족의회의 의원들은 국무회의와 왕실위원회에서 통과된 안건을 철회시킬 수 있으며, 각 행정 부처의 장관과 왕실위원회 의원을 탄핵할 권한 또한 가지고 있다.
만약 200명 이상의 의원들이 뜻을 모으면 나라를 왕정이 아닌 공화정으로 바꾸는 것조차 가능하다.
그런 귀족의회의 절반을 가까이 장악하고 있는 남부 귀족들. 그들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모리아 룬티아가 드디어 청문회장에 서게 되었다.
‘이번 청문회는 특별해.’
견고했던 남부 귀족들의 유대에 균열이 생긴 덕에 드디어 모리아를 청문회에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여태껏 참석한 청문회의 주체는 왕실위원회.
이번엔 아니다. 귀족의회였다.
그런 만큼 참가 인원이나 규모, 진행 방식이 꽤 달라졌다. 또한 여태껏 내가 겪은 청문회가 왕국민에 공개되었던 것과는 달리 오직 귀족들만 방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리아가 라드완의 만행을 몰랐다는 것과 삼색 지팡이단과 접점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건 변하지 않는다.
만약 증명하지 못한다?
후에 있을 귀족 재판을 재미있게 구경하면 된다. 증인으로 불러주면 주둥이도 좀 털어주고 말이다.
“선서. 나, 모리아 룬티아는 본 청문회에서 숨김과 보탬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할 것을 맹세한다.”
나는 휠체어를 탄 채 선서를 낭독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원래는 본래 나이보다 20살은 어려 보이는 차가운 중년미를 뽐내는 그였다.
오늘은 밤새 술을 진탕 마셨는지 술병이 난 얼굴이었다. 환자처럼 보이고 싶었다면 그럭저럭 합격점을 줄 만했다.
“그럼 누가 먼저 발언하겠나?”
청문회의 진행을 맡은 국왕이 좌중을 바라보며 물었다.
청문회의 참가자들이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서로 눈치를 봤다.
어차피 대부분 이번 청문회의 조연.
주연인 내가 당당히 손을 들었다.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왕국의 5왕자이자 국무회의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참석하는 내가 이번 같은 왕국의 비상 사태로 인해 열리게 된 청문회에 빠지는 건 말이 안 되었다.
삼색 지팡이단을 급습한 현장에서 모리아의 서명이 들어간 지령서를 ‘찾아낸’ 장본인이기도 하고.
“발언하도록, 에반 리오넬.”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휠체어에 앉은 모리아 공작과 시선을 맞췄다. 술병 난 얼굴임에도 눈동자만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선······ 최근 일부터 볼까요? 제가 백사자기사단과 함께 삼색 지팡이단을 급습하고 얻은 지령서부터 보도록 하죠.”
청문회장 구석에 있는 마법사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가 마도구를 조작함과 동시에 청문회장 스크린에 내가 ‘발견한’ 지령서가 떠올랐다.
“다들 이 지령서를 보시죠. 요약하면 여기 이름이 올라간 자들을 제거하라는 지령입니다. 언론에는 세부 내용까지 흘러나가진 않았지만, 얼추 비슷하게 보도되었더군요. 여기 빨간색으로 그어진 이름들이 보이실 겁니다.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 말루스 자작? 그루스 남작?
– 전부 이번에 살해된 남부 귀족 아닌가?
방청석이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이건······ 아직 빨간색으로 그어지지 않은 이름들을 제가 따로 정리한 문서입니다. 어떤 인물들인지 아시겠습니까?”
마법사에게 내가 사전에 지시한 대로 아래에서부터 위로 천천히 이름들을 보여줬다.
– 헉! 내 이름이 있어!
– 뭐라고? 진짜다! 앗! 내 이름도 있다!
동부 귀족들이 시끄러워졌다. 지령서에 적힌 제거 대상 대부분이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 크, 클리앙 백작의 이름도 있어!
점점 굵직한 인물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 5, 5왕자님의 이름이다!
– 최종 목표는 5왕자님이었나!
에반 리오넬이란 이름이 그곳에 있었다.
짝짝짝.
나는 손뼉을 쳐 좌중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저는 이 지령서를 발견하고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누가 이걸 삼색 지팡이단에 보냈을까? 그래서 왕실기무대가 제 수석 시종을 구속했던 것에 영감을 얻어 필적을 조사해봤지만,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더군요. 역시 필적 같은 걸로는 범인을 잡기는 무리라고 판단했습니다. 서명 같은 거야 한두 시간 연습하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말하면서 청문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밀로아를 힐끔 쳐다봤다.
왕실기무대 정보부 장관이자 귀족의회 의석을 하나 소유한 크리스티 백작가의 가주가 이번 청문회에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녀의 얼굴이 푸르딩딩했다.
나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곤 다시 발언을 이어나갔다.
“다들 저처럼 엄지를 들어 올려 보시죠.”
나는 모두가 볼 수 있게 엄지를 척 올렸다.
다들 내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뭇거리던 청중이 슬금슬금 엄지를 들어 올렸다.
“자, 이제 엄지의 안쪽을 자세히 보시죠. 무엇이 보이십니까?”
한동안 청문회장이 침묵에 휩싸였다.
내가 정답을 알려주어야 하나 싶을 때, 누군가 말했다.
“혹시 지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클리앙이었다.
나는 칭찬의 눈빛을 그에게 보내준 후 청중을 바라봤다.
“방금 클리앙 백작이 정답을 말했군요. 맞습니다. 지문이 있습니다. 이 지문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건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저희는 서명 대신 지장을 찍기도 하죠.”
나는 이번에 단상에 하얀 종이를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강하게 쾅! 내리쳤다. 그리고 종이를 다시 들어 청중에게 보였다.
“무엇이 보이십니까?”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하다. 눈으로 보기에는 하얀 백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까.
나는 입을 열었다.
“지금, 이곳에 제 지문이 남았습니다.”
– 자넨 보이나?
– 나도 안 보이네.
– 스읍··· 5왕자님······.
–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청문회장이 소란스러워졌다.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더 늦기 전에 품 안에 손을 넣어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검은 가루가 들어있었다.
‘지문채취제’였다.
에메랄드궁의 한편에서 마력초전도체 개발에 한창인 이자벨이 만들었다.
사람의 피부에는 특별한 화학 물질이 상시 분비되고 있고, 특수한 가루나 용액과 만나면 지문을 채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힌트를 주니 금방 만들어줬다.
역시 구리를 금으로 바꾸는 꿈을 꾸었던 남자의 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법사에게 신호를 주었다.
스크린에 확대된 하얀 종이가 떠올랐다.
순백의 종이.
나는 유리병의 가루를 하얀 종이 위에 살살 뿌렸다. 하얀 물감을 잔뜩 묻히고 검은 종이에 찍어낸 듯, 내 손 모양이 그대로 스크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 저럴 수가!
– 세상에!
– 아무것도 없던 종이에서!
나는 다시 손뼉을 짝짝 쳐 술렁이는 청중을 진정시켰다.
“그럼 이제 이 가루를 아까의 지령서에 뿌려보죠.”
마법사가 신호를 주기도 전에 센스 있게 스크린의 화면을 지령서로 바꿨다.
솔솔솔 지문채취제를 뿌렸다.
여기저기 손가락 지문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 오오!
– 저런 놀라운 방법이!
필적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수사기법. 힐끔 밀로아를 바라봤다. 입을 살짝 벌리고 경악한 눈을 하고 있었다.
픽 웃은 나는 청중을 한차례 둘러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과연 누구의 지문일까요?”
모두의 시선이 모리아 룬티아에게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