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Weakest Mai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06)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106화(106/160)
*
“후작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고개를 드니 퀸텀 공작이 나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간 모은 로라의 정보도 그렇고 퀘스트도 생각하느라 나도 모르게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 아니에요. 그냥 새삼……. 할아버지, 이거 초대장 비앙카한테 먼저 주셨던데요.”
나는 퀸텀 공작에게 아까 비앙카에게 받았던 초대장을 들어 보였다.
“그것 때문이로구나. 네가 걱정할까 봐 미리 조력자한테 부탁을 좀 했지.”
“오늘 그래서 비앙카한테 속성 수업도 받았어요. 기품 있게 거절하는 표정이래요.”
나는 비앙카가 했던 표정을 따라 살짝 눈을 내리깔며 무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퀸텀 공작이 껄껄 웃었다.
“그날은 널 위한 날이 될 거란다. 나가서 네가 퀸텀의 유일한 후계자라는 걸 똑똑히 보여 주렴. 네가 무슨 일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이 할애비가 뒤에 있으니 그건 걱정하지 말고.”
“제가 황궁에서 사고라도 치면 어떻게 해요?”
“이 할애비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칼춤을 춰도 이 할애비가 다 해결하마. 누가 너를 화나게 하거든 수도에는 발도 못 들이밀게 할 테니 걱정 말거라.”
퀸텀 공작이 콧김까지 뿜으며 엄포를 놓았다. 테이블 위에 올라가 칼춤이라도 추라니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감사해요, 할아버지.”
퀸텀 공작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너도, 나도 그동안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서 해 보지 못한 것이 많다. 어색하고 서툴더라도 하나하나 해 보자꾸나.”
“……할아버지.”
“실수하면 뭐 어떠냐. 다시 하면 되지. 네 부모의 빈자리는 채워 주지 못하더라도 이 할애비 자리는 꽉꽉 채워 줄 테니 말이다.”
실수하면 다시……. 실수를 하면 아침 6시로 돌아가는 지금의 내 상황을 빗댄 것만 같았다.
“네, 그럴게요.”
“누군가 널 흠집을 내려 하거든 꼭 기억하거라. 네가 퀸텀의 핏줄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빙그레 미소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참 이상하다. 어떻게 이렇게 맹목적인 지지를 해줄 수 있을까? 어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고 묵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족이 없었던 내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감정이기에 혼란스러운데도 그 느낌이 조금도 싫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 같은 그 기분.
그의 인자한 미소에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져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
집에 돌아오니 원로들은 거의 다 떠나고 데릭 후작과 마야 백작만 아직 남아 있다고 했다.
체리의 말로는 엘도 후작은 돌아가며 사교계에서의 활약을 기대한다고 말하며 갔다고 하던데…….
나는 체리의 보고와도 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생각했다.
흥, 지켜보라지. 잘 보려면 시력이 7.0 정도는 되어야 할걸!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이래 봬도 허약의 끝을 달리던 1성 때부터 어지간한 퀘스트는 깔끔하게 완료했던 나였다.
기필코 소가주 타이틀까지 얻어서 금수저의 삶도 한번 누려 보겠다, 이거야.
비앙카를 보고 오니 한결 자신감이 솟는 것 같았다.
“아가씨, 그거 혹시 무도회 초대장인가요?”
체리가 눈을 초롱초롱 반짝이며 내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초대장을 쳐다봤다.
“응, 맞아. 재밌을 것 같아?”
“그럼요! 무도회잖아요! 꺄아! 그곳에서 아가씨께서 주인공이 되시는 거예요! 저 로즈 님께 다 들었거든요!”
체리는 두 손으로 뺨을 감싸며 꺅 소리를 질렀다.
“아하하, 그렇지…….”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에 나는 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체리가 입술을 오므리며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 황후 폐하 탄신일 무도회도 열렸던 것 같은데. 여름에 주인님이 가장 바쁘셨던 것 같아요!”
“아, 정말? 므…… 어?”
나는 체리의 발랄한 얼굴을 흐뭇하게 쳐다보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탄생일 무도회에서는 15층짜리 케이크도 나온다는데 드레스처럼 아름답다고 들었어요. 저도 아가씨를 따라가면 두 눈으로 볼 수 있겠죠? 다른 하녀들이 엄청 부러워할 거예요!”
“…….”
“왜 그러세요, 아가씨? 혹, 혹시 저 이번에도 따라가지 못하나요?”
체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부러 쉬라고 후작저에 데려가지 않은 게 서운했던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 너도 같이 가야지. 그런데 무슨 무도회라고?”
“황후 폐하 탄신이요!”
“…….”
나는 얼른 초대장을 열어 다시 살폈다. 분명히 아까 몇 번이고 봤는데……?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정말 탄신을 축하하는 무도회잖아! 아까 도대체 난 뭘 본 거지? 아마도 정신이 딴 데가 있던 게 분명하다.
아니야. 이건 지력을 코딱지만큼 달랑 올려 준 시스템 탓이다. 그래서 늦게 보인 거야. 그래야만 해! 흐흑…….
나는 암담하게 초대장을 내려다봤다.
이건 축하 무도회가 절대 아니다. 죽음의 무도회지!
가면무도회에서 납치를 당했던 건 그야말로 예고편이라고 보면 된다.
이 연회에서 비앙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납치를 당하고 그야말로 절망으로 치닫는……!
“아니, 왜!”
나 아직 금수저의 삶도 즐기지 못했는데, 왜! 왜! 왜! 조금은 누려야 하는 거 아니야? 등급만 올려 주면 다냐고!
사냥 대회 끝난 지가 언제라고 바로 메인 이벤트가 나오면 어쩌자는 거야…….
나는 체리가 곱게 단장해 준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머 어머! 아가씨, 왜 그러세요! 제가 마, 말실수를 했나요? 죄송해요, 아가씨! 그러지 마세요!”
체리가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연신 사과하며 나를 말렸다. 이미 머리는 잔뜩 부풀어 올라 체리가 만져 준 게 무용지물이 되었다.
“체리, 미안.”
“아니에요, 아가씨. 그보다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이럴 때가 아니야. 어쩌면 이번 기회를 잘 이용하면 방법이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레오니안이 비앙카를 구하러 가면서 로라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그 뒤에 저주에 걸리는 등 온갖 절망적인 에피소드를 겪어야 하지만 지금은 내가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을 거니까.
“으으.”
고개를 드니 체리의 얼굴이 다시 흙빛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러다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아서 나는 잠시 생각을 거두고 허허롭게 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나 봐. 걱정 안 해도 돼.”
“정말요?”
“그럼 당연하지. 내 첫 무도회나 마찬가지니까 긴장해서…… 그래.”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마구 끌어올렸다.
체리가 표정을 풀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그러면 다행이에요. 저는 제가 실수한 줄 알고…….”
“에이, 그럴 리가 있나.”
체리를 안심시키긴 했지만 내 불안은 여전했다. 어쩐지 지금껏 내가 겪은 것보다 훨씬 더 큰 먹구름이 다가올 것 같았다.
아직 데릭 후작과 마야 백작은 설득도 못 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일을 한꺼번에 해결하게 생겼다.
*
“체리, 오늘도 고생했어.”
“아가씨, 오늘도 좋은 꿈 꾸세요! 그럼 아침에 뵐게요.”
“응, 체리도 좋은 밤 돼.”
그날 밤, 체리를 보내고 나는 잠들지 않은 채 침대에 기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지혜의 심장 획득에 실패하였습니다. 재도전하시겠습니까?]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지 생각밖에 안 들었다. 수십 개의 게임을 해 본 경험으로 보자면 저건 퀘스트였다.
어쩌면 최종 빌런인 로라가 나와 비슷한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진짜 말도 안 되는데.”
로라는 말 그대로 <로라 크로니클>을 대표하는 최종 보스다. 성녀나 다른 NPC처럼 캐릭터로 고를 수도 없는 존재란 뜻이었다.
최종 보스를 캐릭터로 고르는 게임이 어디 있어. 거기다 애초에 솔로 플레이를 선택했는데 두 명이 플레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지금껏 수십 개의 게임을 해 왔어도 그런 적은 없었다. 물론 이렇게 게임 속에 풍덩 빠져 버린 것도 처음이긴 하지만.
하지만 저 정보는 분명히 내가 시스템에 알림을 받을 때와 흡사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게 뜰 리가 없지.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럴 수 있다 치고, 로라도 무언가 목표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거라면 그건 도대체 뭘까.
나처럼 탈출……? 아니면 원작대로 악신 바르모트의 부활?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
“누군가 개입한 게 아니라면 이게 말이 안 되는…….”
나는 생각을 뚝 멈췄다. 다른 쪽으로 생각이 팽팽 돌아갔다.
누군가의 개입? 그럴 수가 있나? 그렇다면 떠오르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골드 폭스!
어쩐지 그는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원래 세계관에 없던 캐릭터. 쓸모가 있든 없든 그가 가지고 있는 방대한 정보들.
아무리 길드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정말 그럴 수가 있나?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거기다 그에게서 받은 퀘스트 보상도 몇 가지는 의아하기까지 했었지. 이건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확실히 그는 의심스러운 존재였다.
“알고 보니 그가 진짜 최종 흑막……인건 설마 아닐 거야……?”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