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Weakest Mai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08)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108화(108/160)
“……공작님?”
남주가 여기 왜 있지? 펜들러 공작저도 아닌데!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오히려 그는 더 가까이 다가올 뿐이었다.
“에블린.”
이제는 다들 날 ‘공녀님’, ‘나일리브’로 부르는데 그는 여전히 이전 이름을 불렀다.
그래서일까, 그의 듣기 좋은 목소리로 부르는 이름까지 듣고 나니 정말 생생해졌다. 모든 게 새로운 이곳에서 그를 보자 괜히 얼떨떨하면서도 반갑기까지 했다.
“…….”
“오랜만이네.”
실은 며칠 되지도 않은 것 같지만, 그는 오래간만에 본 것처럼 말을 건넸다. 계단 하나를 아직 남겨놓은 탓에 그와 시선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나는 반가운 기색을 감추고 물었다.
“공작님이 왜…… 여기 계세요?”
“오면 안 되나?”
그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건 아닌데.”
반가운데 그와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 머릿속에 주입했더니 입은 뻣뻣해지고 표정이 굳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딜런 백작 부인에게 표정이 좋다는 칭찬을 몇 번이고 들었는데…….
레오니안이 나를 빤히 내려다보다 손을 내밀었다.
응?
레오니안의 손이 뺨 언저리에 닿았다. 그의 손가락이 뺨 끝을 조금 쓸어내리는 느낌에 나는 그대로 꼿꼿하게 굳었다.
“……머리카락이.”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손이 뺨에서 떨어지더니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허리를 뒤로 물리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지나치게 가까웠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오고 있던 터라 뒤꿈치에 계단이 걸려 삐끗했다. 나는 가까스로 계단 난간을 붙잡았다.
“흐트러졌군.”
레오니안의 목소리가 좀 전과 다르게 낮아졌다.
“아. 그, 그러게요. 바, 방금까지 침대에 누워 있어서 헝클어졌나 봐요. 아하하, 놀라라.”
괜히 열이 오르는 느낌이라 나는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얼굴이 빨간데.”
나는 가까스로 계단을 하나 더 위로 올라갔다. 다행히 거리가 조금 멀어졌다.
“더, 더워서 그래요. 여름이잖아요?”
“뭐 그렇지.”
어쩐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그, 그런데 공작님이 정말 여긴 어쩐 일이세요?”
“잠시 일이 있어서.”
“무슨 일인데요?”
“궁금해?”
나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레오니안이 어딘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알아맞혀 봐, 내가 왜 왔는지.”
진짜 궁금한데 수수께끼라니. 나는 미간을 와락 구겼다.
“아, 뭐예요. 무슨 일이 있으신 건 아니죠?”
그러자 레오니안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응, 그냥 네가 보고 싶어서.”
“네에? 에, 에이, 농담하시지 말고요.”
나는 괜히 웃으며 손을 저었다. 저런 얼굴로 저런 말을 하면 그 누구라도 얼굴이 빨개지며 당황스러운 거라고.
“정말인데.”
“아하하…….”
나는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슬쩍 시선을 피한 채 말했다.
“저도 공작가 사람들하고 비앙카도 무척이나 보고 싶어요. 항상 붙어 있다가 떨어지니까 허전도 하고……하하. 그, 그러네요.”
레오니안이 미묘한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공작께 부탁받은 일이 있어서 잠시 온 거야. 적응은 잘하고 있고?”
“그럼요! 제가 또 적응력이 좋아서요. 허허벌판에 데려다 놓아도 금방 적응할걸요?”
“너다워.”
“공작님 뵈러 왔다고 하셨죠? 아마 집무실에 계실 거예요. 오늘 계속 일하실 거라고 하셨거든요. 아까 헤임도 그랬고요.”
“각하, 오셨습니까? 안 그래도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가씨께서도 계셨군요.”
때마침 로즈가 그를 데리러 왔다.
“앗, 마침 오셨네요. 그럼 어서 가 보세요, 공작님.”
나는 인사와 동시에 곧장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에블린.”
그가 바로 걸음을 옮기지 않고 나를 불렀다.
“네?”
“혹시 이따가 내게 시간 좀 내어줄 수 있나?”
“시간이요?”
“응. 잠시면 되는데. 안 될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날 밤, 숨겨져 있던 그의 진짜 친밀도를 보고 난 이후 그와 거리를 두기로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시선의 높이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남주의 긴장된 표정 때문인지 그가 날 올려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간절하게 부탁하듯 말해버리면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아, 아주 잠깐이면…….”
레오니안의 표정이 일순간 밝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응, 잠깐이면 돼. 실은 네가 피하면 없는 일도 만들어 내려고 했는데 다행이군.”
“뭐……라고요?”
아니, 방금 애절한 눈으로 부탁한 말 하고는 너무 분위기가 다르잖아? 어쩐지 조금 속은 기분이었다.
“금방 일보고 찾아갈 테니 이따 보지.”
레오니안은 피하지 말아 달라며 재차 말하곤 로즈와 함께 가버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불안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느닷없이 나타난 남주 때문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계단을 내려와 코너를 꺾는데 마야 백작이 서둘러 어디론가 가는 게 보였다.
저긴 별채로 가는 길인데?
별채 옆의 지하에는 노바 퀸텀이 갇혀있는 감옥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기도 했다. 임시기는 해도 가주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 출입이 금지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훤히 밝은 이 시간에 감옥에 갈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꼭 눈치를 보듯 주변을 살피며 서두르는 게 영 수상했다. 심지어 그는 보좌관도 없이 혼자였다.
하기야 지금이 한창 사용인들이 정신없이 바쁠 시간이라 늦은 오후보다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시간이긴 했다. 하기야 그 정도는 여기서 며칠 지내며 파악할 수 있었겠지.
퀸텀 공작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고, 데릭 후작은 지금 골치 아픈 문제로 정신이 없으니…….
레오니안이 할아버지랑 잠시 이야기하는 동안 혼자 얼른 다녀와야지.
나는 딴 곳을 보는 척하며 마야 백작이 사라진 쪽으로 조용히 따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마야 백작은 주위를 살피는 듯하다가 별채 옆 지하 감옥으로 내려가는 문 앞 문지기와 대화를 하는 게 보였다.
나는 몰래 귀퉁이에 숨어 계속 쳐다봤다. 제법 떨어진 곳에서도 보이는 문지기의 곤란한 표정을 보니 출입을 막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지. 그래도 명색에 퀸텀 공작가의 감옥 문지기인데 출입 금지된 곳에 쉽게 드나들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문지기가 옷소매에 작은 주머니를 숨기며 마야 백작이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는 게 아닌가!
뭐야, 저 썩어빠진 놈이!
마야 백작이 지하로 내려가는 문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지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문을 가리고 서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
퀸텀 공작이 늙고 아프다고 다른 연줄이라도 타려는 건가. 더구나 문지기는 그냥 사용인들도 아니고 기사 훈련까지 받은 경비병이었다.
공작가라고 해서 경비가 삼엄하고 퀸텀 공작에게 높은 충성을 보일 것으로 생각한 내가 바보 같았다. 저렇게 쉽게 들여보내 줄 줄이야.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들었던 것처럼 퀸텀 공작을 정말 늙고 병든 노인 취급을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아졌다.
나는 생각을 멈추고 귀퉁이에서 나와 문지기에게 향했다. 아침 수업을 열심히 들은 덕분에 저절로 걸음이 우아하게 나왔다.
별채로 가는 줄 알았던 내가 자신에게로 향하자 나를 본 문지기가 흠칫했다.
“안녕하십니까, 공녀님.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곳은 다소 위험하여 오실 곳이 못 됩니다.”
문지기는 웃으며 친절하게 말하면서도 내가 얼른 돌아가길 바라는 듯 했다.
나는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말했다.
“안에 숙부께서 잘 계신지 걱정이 되어서 왔어. 필요한 게 없으신지 해서.”
그러자 문지기가 곤란한 얼굴을 했다.
“죄송합니다만, 주군께서 모든 이의 출입을 막으셨습니다. 공녀님께서도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그럼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나?”
문지기가 얼굴을 붉히며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공녀님.”
나는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이상하다. 방금 마야 백작께서 들어가시는 모습을 봤는데……. 그분은 할아버지께서 직접 허락하신 건가?”
“예, 예?”
“방금 들어간 마야 백작은 직접 허락을 받은 거냐고 물었는데.”
문지기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공녀님. 이곳에는 아무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정말인가?”
“예! 그럼요. 제가 개미 한 마리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통방어를 하고 있습죠! 꼭 뵈어야 하신다면 주군께 말씀을 드리시는 게 어떨지요…….”
나는 그의 왼쪽 팔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자네의 그 묵직한 왼쪽 소매에 들은 건 자네의 점심 도시락인가?”
문지기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
한편, 퀸텀 공작은 오늘도 손녀와 함께할 오찬을 기대하며 레오니안을 맞이했다.
퀸텀 공작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레오니안을 떠보듯 말했다.
“그 좋은 통신구를 두고 구태여 손수 오다니. 자네는 시간이 금보다 소중한 사람 아니었나?”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