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Weakest Mai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14)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114화(114/160)
나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봤다.
저 말투는 도대체 뭐람.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뭐가 어째?
말이 관리자지 골드 폭스는 방관자나 다름없었다.
더 어이없는 건 나도 까무러칠 정도로 놀랍지는 않다는 거다.
살겠다고, 탈출하겠다고 그간 아등바등했던 게 내게는 너무 커서 패닉 상태라도 온건지.
“……하아.”
다시 정신을 차리니 어느덧 아까 내가 들어왔던 집무실의 모습 그대로였다.
도대체 또 언제 변한 거야.
나는 소파에 쓰러지듯 기대서 머리를 짚었다.
차라리 게임 속이라고 믿고 있던 때가 나았을지도.
고작 등급이 올랐다고 로라를 해치우기 훨씬 편해졌을 거라고 착각했던 내가 우스워졌다.
애초에 나와 다르게 모든 걸 깨닫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위해서 관리자인 골드 폭스마저 뒤통수 친 존재를 내가 어떻게 이겨?
말도 안 된다.
“골드 폭스.”
“예.”
“제가 모르는 게 또 있나요? 제가 협조적일 때 말하는 게 좋을 거예요.”
나 지금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거든요.
나는 눈으로 욕하면서 골드 폭스를 노려봤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개입할 수 없습니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고 하시는 말은 아니죠?”
“그저 안내 차원에서 몇 가지 알려드린 것 뿐…….”
“말 돌리지 말고요. 날 돕는 거 보니 로라를 못 막으면 당신네도 무사하지는 못할 거면서?”
골드 폭스가 잠시 움찔하는 게 보였다.
나는 불만을 담아 눈썹을 비뚜름히 올렸다.
골드 폭스는 끙 소리를 내며 고민하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신전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세계의 구축과 로라의 몰락을 위해선 여전히 지금 당신에게 엮인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
“관리자가 직접 개입을 하면 당신마저 소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정중하게 말하는 척하지 말아요.”
“……죄송합니다.”
골드 폭스가 멋쩍은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그에게 더 도움을 요청하는 걸 포기하고 내가 궁금했던 걸 더 해결하기로 했다.
“그럼 제가 들어오기 전 에블린 피어스는 어떤 존재였어요? 그건 알려 줄 수 있지 않아요? 제 기억은 고작 몇 달 전부터 시작인데 그 전에 내가 무의식으로 움직이진 않았을 거잖아요.”
백번 양보해서 영혼 여행자니 뭐니 다 이해한다고 해도 나는 정말 내 삶이 있었다. 외로워도 나름 씩씩하게 해내던 과거가 있었다.
이전의 에블린 피어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음.”
나는 골드 폭스의 입이 열리길 바라며 조급하게 다시 물었다.
“난 분명히 내가 살던 삶이 있었다고요. 정보를 모아 보니 내 눈동자 색도 몇 달 전에 바뀌었었다고 하던데 설마 내가 에블린이 된 시점인가요? 그래서 바뀐 거예요?”
“그건 아닙니다.”
“아니라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바뀐 시기가 아니라 각성한 시기였을 뿐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이해하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골드 폭스가 무릎을 교차해 다리 위에 깍지 낀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유나비 씨와 에블린 씨는 동일인이라고 말씀을 드린다고 해도 표정을 보니 이해하지 못하시겠군요.”
“당연하죠! 그리고 왜 하필 그때 각성을 하게 된 거고요?”
나는 궁금함을 풀어야 했다. 그러나 그 뒤에 말이 조금 충격적이었다.
“당신이 처음으로 죽음을 맞이한 시점이기에 그렇습니다.”
“…….”
내가 에블린의 몸으로 기억했던 죽음이 처음이 아니었다니.
“모든 세계는 같은 시간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세계는 침입자로 인해 시작부터 잘못 설계된 세계라고 할 수 있죠.”
“시작부터 잘못…….”
아니 왜 나만. 괜히 또 억울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부작용이 생겨 유나비 씨와 에블린 씨 사이에 균열이 생긴 것입니다. 모든 게 원래대로 퍼즐이 맞춰지면 유나비 씨께서도 스스로 모든 기억을 깨우치실 겁니다. 아주 자연스럽게요.”
“이미 자연스럽지 않은데요.”
“면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 것 같군요.”
저렇게 사과해도 그는 더 내게 도움을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뭐 그렇단 말이지.
“……뭐 알겠어요. 여전히 이해는 가지 않지만.”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나는 미간을 팍 찌푸렸다.
“무엇보다 당신한테 응원을 받고 싶지는 않아요. 오늘 내가 여길 나간다고 당신이 사라지거나 하진 않겠죠?”
“아직 당신이 깨야 할 시나리오가 남아 있으니까요.”
“후, 좋아요. 그럼 지금 이후로부터의 죽음도 전과 같아요? 이제 와 갑자기 죽으면 끝난다거나……그런 게 아니라?”
“당신이 세계를 완성할 때까지.”
후우,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해, 말아야 해?
“우선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에 다시 오겠어요. 없어지기만 해요, 진짜.”
나는 그에게 으름장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럼 내가 그동안 힘겹게 쌓아 올린 등급은요?”
“그것 또한 적응 차원에서…….”
“……됐어요. 그만 말해요.”
나는 언짢은 얼굴로 그의 입을 막았다.
*
“……신전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세계의 구축과 로라의 몰락을 위해선 여전히 지금 당신에게 엮인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그의 말을 곱씹었다. 골드 폭스가 꺼낸 말로 인해 진실을 알게 됐을 뿐 달라진 게 없었다.
로라를 해치우려면 이 세계 안에서의 힘만으로 그녀를 해치워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가장 큰 어둠을 가장 큰 빛으로 없애라는 뜻인데.
말하자면 나보고 또 고생하라는 뜻이었다. 망할. 의문들이 해소되면 뭐 하냐고.
그리고 이미 먼저 신전에 도움을 받아서 비앙카를 보호한 것도 나였는데!
“기껏 찾아갔더니 도움도 안 되고 이게 뭐야. 돈독 오른 황달 낀 여우 같으니라고.”
그나마 최악까지는 아니라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뭐 어쩌겠어. 해결해야지.
나는 인벤토리에서 엘리자베스의 낡은 루비 브로치를 꺼냈다.
그 와중에 감쪽같이 구현해 놓은 인벤토리는 또 유용하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났다.
“이건 끝까지 남았으면 좋겠네.”
나는 인벤토리 한쪽에 고이 모셔 놓은 퀘스트 PASS권을 보고 그대로 잠시 넋을 놓았다.
원래라면 마지막에 딱 쓰고 멋지게 엔딩을 보려고 했었다. 끝으로 갈수록 퀘스트의 난이도는 높아질 테니까.
그리고 실은 그 이유보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처음에 각오했던 다짐과 달리 그들에게 시원하게 안녕이라 말하지 못할 것 같아서.
어쩐지 헤어짐에 눈물을 왈칵 쏟을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이곳에 남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행여나 할까 봐.
그런 두려움에 쉽사리 쓰지 못하고 마지막에 쓰자, 마지막에 쓰자 다짐했던 것인데.
골드 폭스에게 말을 듣고서도 지나치게 절망적이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나 싶기도 했다.
여길 어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생각과 그들과 헤어지기 싫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줄다리기했으니까.
“이제 와서 그 둘한테 어떻게 쉽게 작별 인사를 하겠어.”
더구나 레오니안은 인사를 받아 주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 생각에 혼자 어이없이 웃음을 터트리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저 멀리부터 길을 따라 데릭 후작이 저택으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오.”
나를 별로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퀸텀 공작에 대한 충성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여기 남아 있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퀸텀 공작의 건강이 많이 좋지 않다는 말에 퀸텀 공작의 일을 몸소 도와주기 위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터였다.
겸사겸사 나를 파악하려는 것도 같고.
거기다 나이도 나이고, 마야 백작의 일이나 광산 일 등 여러모로 골치를 앓는 중이라 지금쯤 딱 심신이 지쳤을 때였다.
어쨌든 먼저 찾아가기엔 좀 그런 사람이니 이런 기회를 잘 이용해야 했다.
하, 진짜……. 이미 퀘스트에 길들여진 몸이라니.
그러면서도 밀린 퀘스트는 재깍재깍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일어났다.
미리 체리한테 부탁해서 찾아 두었던 『마물 대백과사전』까지 한쪽 옆구리에 끼고서, 타이밍에 맞춰 계단을 내려가니 마침 들어오고 있는 데릭 후작과 딱 마주쳤다.
나는 반가운 얼굴을 하며 그에게 인사했다.
“후작님, 안녕하세요. 어디 다녀오시나요?”
데릭 후작이 고개를 까딱하며 내 인사를 받았다.
“예, 잠시 밖에 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입니다. 외출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오? 내가 외출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나?
나는 상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에게 책의 제목이 대문짝만하게 잘 보이도록 고쳐 안았다.
“네. 앗, 바쁘신데 제가 발길을 잡은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럼…….”
“괜찮습니다. 한데 그 책은 공녀께서 읽으시는 책입니까?”
데릭 후작의 눈이 책에 콕 박혔다.
“아, 이거요? 네, 제가 읽는 책 맞아요.”
나는 무기로 써도 될 만큼 두껍고 무거운 책을 거뜬히 들어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들기는커녕 데미지를 입고 바닥에 떨어뜨리며 앓는 소리를 냈겠지.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마물 대백과사전』이라니. 다방면으로 관심사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그가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아하하, 가십지도 보고 신문도 보니까 마물 때문에 고통을 받는 지역이 갈수록 늘어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뭐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군요.”
“전에 희귀 마물에 관한 책을 본 적 있는데 매우 흥미로웠거든요. 책을 달달 외울 정도로요.”
데릭 후작의 눈에 이채가 돌더니 내게 정중하게 물었다.
“그렇군요. 공녀님, 혹시 바쁘시지 않으면 저와 잠시 대화를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