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Weakest Mai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28)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128화(128/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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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정신없이 퀘스트를 수락한 나는 레오니안과 함께 신전을 찾았다.
도작하자마자 나는 신전의 웅장한 자태에 말을 잃었다.
이제 막 뜨기 시작한 햇볕이 내리쬐자 정말 건물 전체가 신성한 빛에 휩싸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관이었다.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했던 겉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신전 안쪽의 규모도 상당했다.
심지어 신전의 복도가 끊임없이 이어져 한참을 걸어야 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었다.
간밤에 치료를 돕느라 고생했던 요하네스를 또 볼 수 있었다.
어쩐지 조금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그는 조금의 구김살도 없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요하네스 사제님.”
나는 반가움 반, 미안한 마음 반을 담아 인사했다.
이 일이 모두 끝나고 나면 골드 폭스를 협박해서라도 요하네스한테 크게 한자리 주라고 해야지.
이왕이면 교황 정도의 자리로!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긴급한 상황이기에 바로 성녀님이 계신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요하네스가 오른쪽으로 꺾었다. 나는 주변을 살피면서 그를 졸졸 쫓아갔다.
“천천히 걸어.”
레오니안이 내 발을 보며 말했다.
“이제 괜찮아요. 어제 치료 다 받아서.”
“지금도 뛰면 아파하잖아. 안고 가 줘?”
그 말에 나는 기겁하며 속삭였다.
“사제님 계신데 그런 말씀을 하세요?”
“무슨 상관…….”
나는 손을 올려 그의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천천히 걸을게요.”
신전 안쪽으로 갈수록 주변은 고요해지고 구둣발의 울림이 더욱 커졌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가. 복도는 아직 그늘이 진 상태라 조금 춥게도 느껴졌다.
지나가며 그늘이 진 기둥을 쓸어 보니 차가운 돌의 느낌이 선명하게 와 닿았다.
햇빛이 비치는 기둥은 적당히 달궈져 따뜻하게 느껴졌다.
한참을 걸은 끝에 반쯤 열린 커다란 문 앞에서 요하네스가 멈췄다.
“이곳입니다. 성녀님께서는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마워요, 요하네스 님.”
“아닙니다.”
요하네스가 빙긋 웃으며 문을 열었다.
예배당 한쪽 벽 전부를 차지한 창문 때문인지 안에서도 햇빛이 환하게 들어서고 있었다.
우아한 하얀 옷을 입은 여성이 예배당 안쪽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창문 전체에서 사선으로 내리쬐는 햇볕 때문인지 성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나는 그 모습이 정말 신이 강림한 모습 같아서 잠시 멍하니 올려다봤다.
또각또각 울리는 구두 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내게 가까이 온 성녀를 마주했다.
곱슬기 하나 없이 허리까지 직선으로 찰랑거리는 은발의 긴 생머리.
투명하고 채도가 높은 푸른 눈이 나를 상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
성녀 아니타
성별 : 여
나이 : 18세
특이 사항 : 신전의 성녀. 신성형. 축복형.
피부까지 창백할 정도로 밝아서 보기만 해도 소다 맛 아이스크림이 생각날 정도로 신비롭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여인이었다.
정말 로라가 흑의 상징이라면 성녀 아니타는 그야말로 백의 상징이었다.
“신성의 축복이 그대들을 비추길. 반갑습니다, 퀸텀 공녀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성녀님.”
성녀 아니타는 한 걸음 더 디뎌 내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정말 많은 힘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군요.”
“아……?”
내가 깜짝 놀라자 성녀 아니타가 싱긋 웃었다.
성녀라서 그런가……? 그런 것도 느낄 수 있나?
“흑마법사 로라에 대응할 무기가 필요하다고 하셨나요?”
“네, 할 수만 있다면 가장 강대한 신성을 가진 것으로요.”
성녀 아니타는 내 말에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 입을 열었다.
“그런 무기를 내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신성 스킬을 한 번도 써 보지 못한 분은 강대한 신성을 가진 무기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네……? 그럼 무기가 있어도 못 쓴다는 말인가요? 전혀?”
성녀 아니타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아닙니다. 적응하는 데 다소 시간이 필요합니다. 6일의 시간이 남았다고 하셨지요?”
“네, 맞아요.”
“적어도 한 달은 스킬을 사용하여 몸에 신성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성녀 아니타가 내가 아닌 레오니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분께 무기를 드릴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한 분만 사용하실 수 있을 것 같군요. 이 이상 도움을 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낭패감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자 뒤에서 요하네스가 한 걸음 다가왔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하급 흑마법사나 마물 퇴치용 무기라면 공녀님께서도 충분히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나는 레오니안한테 다 맡기고 조무래기를 막고 있어야 한다는 뜻일까……?
신성 스킬이라니, 죽을 고비를 넘기며 얻은 하녀 스킬은 왜 이렇게 쓸데가 없는 것인가!
신전에 와서 도움을 청하면 될 거라기에 기대를 안고 왔는데 진짜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게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염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쳐다봤다.
[6d:08:01:20]피루 숲에 들어가서 숨겨진 성을 찾으려면 그것도 시간이 소요될 텐데.
“그래도 부탁드려요. 마물 퇴치용 무기도 부탁드립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싸우지 뭐. 빗자루 가지고도 싸우던 나잖아?
지금 절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 봤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뭐든 좋게 생각해야 해.
로라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두진 않겠어.
성녀 아니타가 나를 빤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준비된 무기는 모두 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두 분께 흑마법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축복도 걸어 드리겠습니다. 조금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그렇게 성녀 아니타는 우리에게 흑마법으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막이 되어 줄 축복을 걸어 주고 대흑마법용 무기와 마물 퇴치용 무기까지 넉넉하게 빌려주었다.
“그리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나일리브 씨와 따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성녀 아니타는 바로 돌아가려는 내게 대화를 요청해 왔다.
“공작님, 먼저 나가 계시면 곧 따라갈게요.”
레오니안과 요하네스가 나가고 성녀 아니타와 나만 단둘이 남았다.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나일리브 씨.”
성녀 아니타는 나를 부르더니 자신이 차고 있던 팔찌를 빼서 내게 내밀었다.
“이걸…… 왜 제게.”
“받으세요. 단 한 번이지만 강력한 흑마법으로부터 당신을 지켜 줄 것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나일리브 씨가 짊어진 무게가 제게는 보입니다. 부디 무너지지 마세요.”
“뭔가 알고 계신 게 있으신가요?”
나는 성녀 아니타에게 물었다.
“아니요, 저는 당신의 기운을 읽을 수 있는 축복을 받았을 뿐입니다.”
“아……. 어쨌든 도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절대 다치지 마세요.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찾아오셔도 됩니다.”
나는 성녀 아니타와 대화를 끝으로 신전을 나왔다. 그리고 곧장 골드 폭스의 길드로 향했다.
“정말 믿을 만한 녀석이긴 한가?”
레오니안은 여전히 골드 폭스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다.
그건 나 또한 그랬으므로 나는 골드 폭스에 대해 조금의 변명도 해 주지 않았다.
“자기 이득이 되는 일에는 반드시 움직일 여우 놈, 아니 사람이라서요. 분명히 뭔가 내놓을 거예요.”
언젠가 이 세계의 시스템과 내가 지금 수행하고 있는 이 말도 안 되는 퀘스트도 그에게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시기상조였다.
“다 왔다.”
나는 마차가 서기도 전에 내릴 준비부터 했다.
레오니안은 그런 나를 비뚜름하게 쳐다보더니 마차가 서자 먼저 마차에서 훌쩍 내렸다.
그리고 내가 내리려고 하자 두 팔을 내게 내밀었다.
“안 그럼 또 아까처럼 폴짝 뛰어내리려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
이내 그가 내 허리를 잡고 안아 땅에 발을 딛게 도와줬다.
“헤헤, 이제 정말 괜찮다니까요. 주드가 치료를 잘해 줘서 내일이면 남은 통증도 없을 것 같단 말이에요.”
레오니안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곧장 골드 폭스를 찾았다.
“골드 폭스 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계신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미리 말을 하지도 않고 왔는데 직원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바로 나를 골드 폭스에게 안내했다.
내가 온다는 걸 뻔히 안다는 거겠지.
“진짜 여우가 따로 없다니까. 거봐요, 자기가 원하면 알아서 기다린다니까요.”
“왜 그렇게 그 녀석을 잘 알아?”
“네? 그냥 몇 번 만나다 보니까 알게 되더라고요. 워낙 사리사욕에 진심인 사람이라…….”
“나일리브.”
“네?”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나 질투도 할 줄 알아.”
“……네?”
뭐라고요?
나는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그냥 알아 두라고.”
레오니안이 불퉁하게 말하고선 나를 두고 직원이 안내하는 대로 앞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지금 골드 폭스한테 질투했다고? 말도 안 돼!
나는 멀어져 가는 레오니안을 빠른 걸음으로 쫓아갔다.
“가, 같이 가요!”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몸을 기울여 그를 쳐다봤다.
“미리 말해 두지만 절대, 절대 이성적인 감정을 가질 수 없는 인간이에요, 그 사람.”
“그럼 다행이군.”
“질투하셨어요? 친해 보여서?”
레오니안이 눈썹을 삐뚜름하게 올렸다.
“당연하지.”
“그, 그러셨구나. 아하하. 진짜 그런 거 아닌데.”
아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는 내 기대보다 너무 솔직했다.
그런데 이거 좀 기분이 좋은 것 같은데.
이윽고 직원이 골드 폭스의 집무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직원이 문을 두드리더니 우리가 왔다는 걸 알렸다.
안쪽에서 골드 폭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골드 폭스가 인사를 하며 우리를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친애하는 나일리브 씨! 오늘은 어떤 일로…….”
나는 노란 옷을 입고 여우 눈을 하고 여느 때처럼 나를 반기고 있는 골드 폭스에게 곧장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집무실 책상에 손을 턱 내려놓으며 말했다.
“골드 폭스 씨, 인사는 됐고 뭘 원하는지 빨리 말해요.”
피차 아는 사이에 우리 생략할 건 생략하고 빨리빨리 갑시다. 시간 아까우니까.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