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Weakest Mai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44)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144화(144/160)
나는 걸어가며 사제 엘라에게 물었다.
앞서 걸어가는 그녀의 단정하게 묶은 긴 머리카락이 일정하게 흔들렸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쉬고 있나요?”
“예, 휴식을 취하고 식사하러 가신 분들도 계십시다.”
“빠르다. 저희 때문에 사제분들도 많이 바빠지셨겠네요.”
“아닙니다. 저희가 힘이 될 수 있어 오히려 기쁩니다.”
그러면서 사제 엘라는 괘념치 말라며 미소 지었다.
씻는 곳은 내가 쉬던 방에서 제법 가까운 곳에 있었다.
사제 엘라는 갈아입을 옷까지 챙겨 주며 불편한 것이 없는지 연신 물어봤다.
살뜰히 챙기던 사제 엘라가 나가고 나는 오랜만에 스스로 옷을 벗고 목욕물에 들어갔다.
“흐어어.”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근육통은 별로 없었는데 따뜻한 물에 발을 넣자마자 근육이 비명이라도 지르는 것처럼 고통이 엄습해 왔다.
신음과 고통 소리를 내며 간신히 앉은 나는 한참을 옴짝달싹도 못 하고 따뜻한 물에 몸을 맡겼다.
한참 후 몸이 풀린 뒤에야 나는 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입을 벌린 천사 조각상에서 물이 쫄쫄 흐르고 양쪽 사자의 커다란 입에서 물이 폭포처럼 콸콸 나왔다.
퀸텀가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아 보였다.
“천사 입에서 나오는 물은 성수라도 되는 건가.”
궁금해서 손을 가져다 대니 그것만 찬물이 나오고 있었다. 어쩐지 개운해지는 게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공간이 큰 편은 아니었는데 온통 백색으로 된 벽돌이라 등불이 두 개뿐인데도 밝았다.
물로 몸을 적시다 문득 손목 쪽이 어두워져 있는 게 보였다.
“아.”
그림자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 피 웅덩이들이 들러붙었을 때 자국이 남았던 모양이었다.
꼭 때 같기도 하고 약하게 멍이 든 것처럼 얼룩덜룩했다.
“어헝, 찌끄레기 같은 게 진짜! 이거 얼룩 안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
차라리 퍼렇기라도 하든지, 진짜 때처럼 거무죽죽했다.
정화까지 받았는데 안 사라진 거 보면 제법 오래 갈 것 같아서 괜히 울컥했다.
꼭 몇 달은 안 씻은 거 같잖아!
하여튼 눈곱만큼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어.
어휴, 그러니 최종 악당이지!
나는 한참을 문지르다 결국 포기하고 널브러졌다. 이제 긴장이 풀리니 배도 고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행복할 것 같다. 정말로…….”
나는 지친 마음에 그대로 꼬르륵 물속에 얼굴까지 담가 버렸다.
*
“사제가…… 아닌데 이런 걸 입어도 되나요……?”
나는 엘라가 준 사제복을 입은 채로 물었다.
이런 걸 아무나 입어도 되는 건가? 차라리 하녀복을 세탁해서 입는 게 좋지 않을까?
“잘 어울리시는데요? 정식 사제복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불편하시면 가문에 연락을 넣을까요?”
나는 깜짝 놀라서 손사래를 쳤다.
“아뇨! 편하긴 엄청 편한데 죄책감이 좀 들어 가지고……. 저, 정식 사제복은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절대! 절대! 연락은 하시면 안 돼요!”
나는 마치 학부모에게 들켜선 안 되는 잘못을 한 학생처럼 당부에 또 당부를 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신지요?”
이번에 연달아 쓰러지시면 정말 큰일 날지도 몰랐다.
일이 모두 해결된 뒤에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가는 게 나았다.
비셔스 후작이 돌아가는 대로 소식이 전해질 테니 나는 최대한 걱정을 덜기로 했다.
“네, 없어요. 다른 분들을 뵙고 싶은데…….”
“아, 지금 몇 분께서 휴게실에 계신데 모시겠습니다. 밤 9시에는 기도가 있는데 참석 여부를 알려주시면 그 또한 준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강제는 아니니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제 엘라를 따라나섰다.
워낙 조용한 신전이지만 그래도 기도하러 오는 신도들이 보일 법도 한데 지나치게 고요했다.
하지만 곧 궁금증은 풀렸다.
레오니안과 비셔스 후작이 비밀 유지를 부탁했다고 엘라가 말해 줬다.
그리고 신도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이 갈 수 있기에 최대한 외부인의 출입을 줄였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는 사제도 줄어든 것이다.
그것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사제 엘라가 데려간 휴게실에는 기사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 레오니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비셔스 후작이 있다면 비앙카가 아직 성녀 아니타와 함께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도 없었다.
“비앙카는 그렇다 치고 둘 다 어디 갔담.”
어차피 외부인이라 이 건물 안에서만 움직여야 할 텐데.
나는 사제 엘라에게 양해를 구한 후 혼자 나와 레오니안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대체 어디 갔대.”
그에게 배정된 방에도 없고 쉴 만한 곳은 다 돌아다녀 봤는데도 없었다.
대화도 할 겸 저녁을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찾다가 아사라도 할 지경이었다.
한참 후에야 어느 사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비셔스 후작의 모습이 보였다.
“후작님.”
비셔스 후작이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휴식은 좀 취하셨습니까?”
“네, 사제분들이 배려를 많이 해 주셔서 많이 좋아졌어요. 후작님은 좀 쉬셨어요?”
“예, 아주 편히 쉬었습니다. 식사는 하셨는지요?”
“아직요. 후작님은요? 공작님과 같이 하려고 했는데 도통 보이지가 않네요.”
비셔스 후작이 잠시 낯빛을 굳히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공작 각하께선 지금 신전에 없으실 겁니다.”
“네? 왜요?”
“급한 용무가 있어 가문으로 잠시 돌아가셨습니다. 늦은 밤에는 돌아오실 것도 같은데 확실치는 않군요.”
“급한 용무가 있다고요……?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죠?”
비셔스 후작이 걱정하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주 자리에 있다 보면 언제 어디서든 곤란한 일이 생기곤 하니까요.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공녀님께 전해 달라고 하셨는데 마침 이렇게 전달해 드리는군요.”
“아…….”
그렇다면 다행인데. 제대로 살펴보려고 했더니만 타이밍이 참 나빴다.
“그럼 식사라도 같이 하시겠습니까?”
“아, 네. 좋아요. 저, 그럼 비앙카는…….”
“아직 성녀님과 함께 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방금 사제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보기 힘들 것 같다고 하더군요. 외부의 기운을 모두 차단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 비앙카도 힘들겠네요. 놀라서 좀 쉬어야 할 텐데.”
비셔스 후작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강하게 키우는 건데.”
비앙카는…… 충분히 강하던데요.
단번에 마물의 대가리를 내려찍던 비앙카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급소를 그렇게 단번에 찍어 내리는 건 나도 스킬을 써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비앙카는 스킬도 쓰지 않고 오히려 비명을 질렀지.
아, 눈도 감았던가?
나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비앙카는 강해요. 마음도 강하고요.”
“다 공녀님께서 곁에 있어 주신 덕분입니다. 염치없지만 앞으로도…….”
비셔스 후작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후작님. 비앙카와 저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군데요.”
그러자 비셔스 후작이 다시 환하게 웃었다.
“못난 아비라 송구합니다.”
“얼른 식사하러 가요. 아까부터 먹지 못해 정말 배가 고팠거든요. 비앙카는 내일이나 되어야 얼굴을 볼 수 있겠네요.”
“그러도록 하지요.”
무엇보다 이렇게 비셔스 후작과 살갑게 대화를 나누게 된 게 새삼 놀라웠다.
*
어두운 밤이 되자 신전 곳곳에 등불이 켜졌다.
새하얀 빛이 가득했던 신전은 노란 불빛에 오히려 낮보다 따스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비셔스 후작과 식사를 하고서도, 9시 기도까지 참석하고서도 레오니안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좀 심각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내심 나는 가장 위험했던 일이 지나가서 둘이 있는 시간이 좀 많을 줄 알았다.
후일을 도모하고 싶은 것도 있고, 솔직히 나는 실패를 생각하고 얼렁뚱땅 고백하듯 입을 맞춘 것도 있어서 좀 더 천천히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홀라당 바쁘다고 일을 하러 갈 줄이야. 어쩐지 서운함이 팍팍 느껴졌다.
“도대체 언제 와…….”
나는 자정쯤에는 돌아오겠지 싶어 계속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방에서 기다리다 안 되겠어서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쯤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는데 저 멀리 셰인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그를 붙잡았다.
“셰인!”
그리고 더 큰 소리를 낼 수 없어서 일어서 빠르게 그에게 뛰어갔다.
“공녀님.”
“일 마치고 온 거예요? 공작저에서?”
“예?”
“공작님하고 저택으로 돌아갔던 거 아니에요?”
셰인이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뇨, 계속 여기 있었습니다. 각하께선 다른 보좌관과 함께 가셨습니다.”
“아…….”
지금 일을 맡고 있지 않아서 데려가지 않은 건가. 레오니안이 돌아왔다 생각했더니 아니었다.
“그렇구나. 난 또 공작저에서 돌아온 줄 알았어요. 식사는 했어요?”
셰인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예.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십니까?”
“오, 아뇨. 그럼 셰인도 쉬어요. 저는 좀 더 기다렸다가 들어가야겠어요.”
셰인을 보내고 나는 다시 벤치로 돌아가 앉았다.
레오니안은 자정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사제 엘라가 나를 찾아와 걱정을 하기에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튿날.
하루 묵은 기사들은 아침 일찍 사제들의 정화를 받고 각자 저택으로 돌아갔다.
비셔스 후작은 퀸텀가에 안부를 묻는 핑계로 가서 내가 부탁한 대로 이야기를 전달해 주기로 했다.
비앙카는 오후가 되어서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한결 편해 보였다.
이곳에서 당분간 쭉 지내게 될 것이라 정식 사제복을 입은 비앙카는 정말 성녀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퀸텀가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펜들러가의 마차도 오지 않아 하루 더 묵을 수밖에 없었다.
뭔가 찝찝해.
어딘가 찝찝한데 뾰족하게 떠오르지가 않았다.
나는 시간을 더 죽일 수 없어서 먼저 사제 요하네스의 도움을 받아 대흑마법용 무기를 축적해 두기로 했다.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