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Weakest Mai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60)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160화 (완)(160/160)
나는 빠르게 눈을 깜박였다.
“이런 말 하기 조금 이를지 모르지만 널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됐어. 이제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그래서 널 내 곁에 묶어 둬야겠다고 생각했어.”
나는 조금 놀라고 벅찬 느낌이 들었지만 그 감정을 주체 못 하게 될까 봐 조금 심술을 부렸다.
“고생만 했으면서. ……나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좋아요?”
분위기를 흩트려 놓는 말에도 레오니안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레오니안이 내게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아까처럼 빈손이 아니었다.
레오니안의 손바닥 위에는 작은 상자가, 그 안에는 그가 직접 준비했을 반지가 있었다.
그가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어느새 그가 날 올려다보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네 유일한 남자가 되는 것을 허락해 줘.”
“당, 당연…….”
아, 정말…….
대답, 대답해야 하는데.
괜히 말문이 막혔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다, 당연하잖아요. 또 레오니안, 당신 같은 남자가 어디 있을까 봐.”
“그럼 나야 영광이지.”
“나중에 후회해도 안 놔줄 거예요.”
“그 말도 내가 원하는 말인데.”
“아…… 정말.”
“그래서 허락해 줄 건가?”
“……말했잖아요. 나한테 레오니안 같은 사람 또 없다고.”
“응.”
그의 담백한 답에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허락할게요.”
너무나 당연해서 더 말할 것도 없으니까.
내가 반지를 쥐자 레오니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이하게도, 아니 특별하게도 물방울 모양의 보석은 신비한 색을 내고 있었다.
겉은 분명히 연한 분홍색인데 가운데는 터콰이즈 블루색이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꼭…… 내 머리카락과 눈 색이랑 같아요.”
“보석 이름이 궁금하지는 않아?”
“보석이에요?”
이런 특별한 색의 보석은 본 적도 없는데?
“나일리브.”
“네?”
“그 보석 이름.”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반지를 봤다. 이 보석 이름이 내 이름이라고?
하지만 그가 과장했다거나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직접 마탑에 부탁해 만든 것이었으니까.
그들은 돈이 된다면 뭐든 해낸다고 했던가. 그 말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두 개의 색을 가진 희귀한 보석을 합쳐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하고 그 어떤 보석보다 빛이 났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색을 가진 보석이라는 것도 정말 신기하고 특별했다.
레오니안이 반지를 다시 가져가더니 내 손을 잡았다.
그 신비로운 색을 가진 반지는 보기 좋게 약지에 쏙 들어갔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맞았다.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들었는데.”
“……응?”
“그래도 긴장이 되더군. 이제 못 물러. 안 놓아줄 거야.”
그가 내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며 보기 좋게 미소 지었다.
“저도 안 놓아줄 거거든요. 누구 좋으라고 놔주겠어.”
그러자 레오니안이 정말 편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까치발을 들어 그의 뺨을 감싸 쥐었다.
그러자 그가 살포시 내게 키를 맞춰 주었다.
“나는 레오니안에게 줄 반지를 준비하진 못했지만 다른 걸 줄게요.”
“이미 받은 것 같은데.”
나는 그의 말에 빙그레 웃었다.
“나도 아주 많이 좋아해요, 사랑해요.”
그리고 그대로 그에게 입을 맞췄다.
입술을 떼어 내려는 찰나 그에게 허리가 당겨지며 다시 그와 입술이 맞부딪쳤다.
이번 입맞춤은 아주, 아주, 아주, 아주 길었다.
*
“그런데 이걸 대체 언제 준비한 거예요?”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빴는데.
잠시 레오니안의 얼굴에 아차 하는 기색이 스쳤다.
설마.
나는 의심을 담은 조금 뾰족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설마…… 그때 아니죠?”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레오니안!”
나는 레오니안을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얼마 못 가 레오니안이 마탑에 환각의 저주를 눌러 줄 약을 부탁한 게 아니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도 이 보석을 만들어 달라 의뢰했던 게 탄로가 났다.
그는 버틸 만했다고 변명했지만 그 변명 하나로 풀릴 일이 아니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신전에서도 풀 수 없고, 로라가 사라져야만 풀린다고 했는데 그걸 마탑에서 뚝딱 해냈을 리가 없지.
뒤늦게 내가 너무 멍청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해결됐잖아.”
“그게…… 할 말이에요?”
“미안. 네가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
“어떻게 그걸 아무렇지 않게 버티면서, 그것도 날 지키겠다고 계속.”
“리브, 정말이야.”
“……다신 그러지 말아요. 그렇게 두지도 않을 거지만.”
“응, 그럼 넘어가는 거겠지?”
그가 은근슬쩍 다시 허리에 손을 감아 왔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눈을 흘겼다.
“얄미워지려고 하는 거 알아요?”
“그래도 봐줘. 예뻐해 주면 안 될까?”
그가 은근하게 야살스러운 눈매를 하고서 물었다. 진짜 얼굴 쓸 줄 안다니까!
“으으, 정말. 다, 다신 그러지 말아요.”
“그럴게.”
우리는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커튼 하나부터 주변이 내 취향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봤다.
하나하나 마음에 들어서 눈에 담기 위해 걸음을 멈출 정도였다.
시폰 같은 새하얀 커튼, 파스텔 색감의 밝은 꽃들.
그 외에도 꼭 지중해에 와 있는 듯 시원하고 밝은 느낌이 들었다.
“어…….”
“마음에 들어?”
“무척요.”
그와 동시에 비앙카가 찾아와 밤새 질문을 던졌던 게 떠올랐다.
“무슨 색이 좋아?”
“로망 같은 거 있어? 만약에 네가 청혼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떠올려 봐.”
“또 뭘 좋아해?”
어쩐지 유난히 집요하더라니.
뒤늦게 모든 걸 깨닫자 헛웃음이 나왔다.
“아…….”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잠깐. 그럼 내 결혼식 로망도 레오니안이 안다는 거 아니야?
처, 첫날밤 로망에 관한 이야기도 들은 건 아닐 거야. 그, 그렇겠지?
흥에 겨워서 그리고 비앙카와 레이나, 엠마 체리의 재촉에 별말을 다 쏟아부었는데!
나는 불안한 눈으로 레오니안을 보며 물었다.
“레오니안, 설마 비앙카한테 다 들었어요? 아…… 아니죠? 아닐 거예요.”
내 불안함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갑자기 그가 씨익 웃었다.
“글쎄, 어떨까. 일주일?”
그 단어 하나로 나는 지옥에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쪽팔려, 창피해, 사라지고 싶다.
더 물어볼 것도 없었다. 다 들은 게 분명해.
창피해서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꺄악!”
레오니안이 순간적으로 나를 안아 올렸다.
“미리 시험해 보는 것도 괜찮은데.”
“……뭐, 뭘요?”
“정말 일주일이 가능한지 궁금하다며.”
나는 다시 한번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그냥 농담이었어요. 그냥 판타지적인.”
“진짜일 수도 있잖아.”
“진짜인지 아닌지 몰라도 돼요. 그냥 잊어요, 응? 잊어버려…….”
내 애원에도 레오니안은 웃으며 나를 안은 채 성큼성큼 어디로 걸어갈 뿐이었다.
*
한 달 후.
레오니안의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별채에 다녀온 뒤 많은 것이 변했다.
가장 큰 변화는 우리가 정식으로 약혼을 했다는 것이었다.
실은 결혼은 아주 훗날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입이 방정이었다.
별채에서 하룻밤을 묵고 난 뒤 여기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그게 덜컥 현실로 다가와 버렸다.
말을 꺼낼 때만 해도 지금 당장 결혼식장에 달려가자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정원이 너무나 싱그러웠던 것뿐이다.
그냥 ‘나중에’, ‘나.중.에’ 여기서 결혼식을 하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어차피 앞으로 남자는 이 사람 하나뿐일 것 같아서 확실하게 마음속 도장을 쿵 찍어 놓으려는 심보에 미리 밑밥을 깔아 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눈도 주지 못하게.
“정말 그러려던 것뿐인데.”
정말로.
그게 바로 결혼 준비로 직행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고 또 다른 커다란 변화는 모르트바에 특별 제도 하나가 추가되었다는 점이었다.
할아버지와 원로원은 내가 훗날 결혼을 한 뒤에도 퀸텀가를 이어 가길 바랐다.
정확히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싫다는 것이 이유였다.
할아버지야 그렇다고 쳐도 날 반대하거나 의심하던 원로원이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웠다.
그렇다고 펜들러의 가주를 데릴사위로 데려올 수는 없으니 아예 제도를 바꾼 것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훗날 결혼을 해서도 가문의 가주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전혀 없던 제도이기에 지금은 나만 특별하게 해당하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래도 되나 싶었지만 제국의 새로운 영웅 취급을 받게 된 것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약혼 축하 선물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마저도 내일이 지나면 결혼 선물로 명목이 바뀌어 또 한 번 산더미처럼 쌓일 터였다.
“말도 안 돼.”
레오니안이 내 등 뒤에서 허리를 감싸 안았다.
“뭐가?”
“이렇게 순조로워도 되는 거예요? 세상이 우리보고 결혼하라고 떠미는 것 같아.”
“그래서 싫어?”
그가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으으응, 그건 아니지만…….”
오히려 너무 행복하니 불안해서 그렇다. 이제 그 지긋지긋한 시스템 창에서 벗어났는데도 아직 버릇들이 남았나 보다.
그가 내 마음을 읽은 듯 속삭였다. 그것도 전혀 망설임 없이 자신감 있는 말투로.
“행복할 거야. 날 믿어.”
그래서 나는 홀린 듯이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말 결혼식이 내일로 다가와서인지 갈수록 뒤숭숭한 마음이 들었다.
“안 돼, 자자.”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띠링!” 하고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뜨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뭐, 뭐야?”
띠링!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수락/거절]나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위에 뜬 창을 쳐다봤다.
다…… 끝났다며? 왜 저게 뜨는 건데?
갑자기 로라가 부활했다거나 하는 거지 같은 상황은 아니겠지?
나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꾹꾹 누르듯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다른 한 손으로 수락을 눌렀다.
빠밤!
[축하합니다! 마지막 인사 ‘골드 폭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그리고 허공에서 바닥으로 뭔가 툭 하고 떨어졌다. 쪽지였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허공에서 떨어진 쪽지를 집었다. 열어보니 안에는 굉장히 악필의 글씨체가 보였다.
놀라셨나요?
로라에 대한 처분은 끝이 났습니다. 그녀는 안전하게 소멸하여 세계가 무사히 안정되었습니다.
모두 나일리브 씨 덕분입니다.
앞으로 세계 진입이 되지 않아 마지막 인사를 이렇게 드리게 되어 안타깝습니다만, 규정상 대면이 불가한 점 양해 부탁합니다.
그럼 멀리서나마 나일리브 씨의 미래를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사?”
분명히 길드에서 다시 보자고 했는데…….
쪽지에는 규정상 더는 세계에 머물 수 없다는 말만 적혀 있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원래 이곳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마지막 인사를 쪽지로나마 남겨 줘서 다행이었다.
“그쪽도 고생 많았어요, 골드 폭스 씨. 당신도 이제 고생하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나는 전할 길이 없어 하는 수 없이 허공에 대고 말했다.
그리고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일리브 씨의 앞날에 행복과 행운이 가득하길.
골드 폭스가.
추신. 아, 이건 결혼 선물입니다.
그리고 쪽지가 떨어졌던 허공에서 산더미 같은 보석이 바닥에 우르르 우박처럼 쏟아졌다.
나는 순식간에 천장까지 쌓인 온갖 보석을 보며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그렇게 돈에 집착하더니 그에 몇 배로 돌려준 거나 다름없었다.
그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남은 미운 감정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마지막 줄까지 다 읽자 손에 쥐고 있던 골드 폭스의 쪽지가 점점 투명해졌다.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정말 끝인가 봐.”
끝이다, 끝이다. 계속 염불을 외웠는데 이제야 정말로 끝이네.
그리고 이제 정말 제대로 시작인가보다.
나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옆에 산더미 같은 보석을 두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제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정말 행복한 일만, 행복할 일만 남은 것 같으니까.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
본편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