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Weakest Mai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55)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55화(55/160)
천연덕스러운 목소리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베티도 나처럼 지나가다 들은 모양인데 감동일 정도로 고마웠다.
하지만 나 때문에 베티가 싸우게 생겼다.
“그, 그게 무슨 증거야? 그리고 우리한테 뭐라 할 게 아니라 너도 조심해. 걔가 너 이용해 먹으려는 거 뻔히 보이는데 친구는 무슨 친구.”
“내 친구가 뭘 이용해 먹는데. 말 다 했냐? 뚫린 입이라고 다 해도 되는 줄 알아?”
“틀린 말 했어? 네 옆에 있으면 더 돋보이니까 걔가 그러는 거 아니야? 그리고 솔직히 너도 콩고물 떨어질까 봐 붙어 있는 거잖아.”
“그만하자? 아무리 날 때부터 달고 나온 입이라지만 너무 저렴한 말 담지 마라. 부모님 속상하시겠다.”
베티의 목소리에 잔뜩 화가 들어갔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왜, 걔가 너도 귀족한테 붙여 주겠대?”
네가 더 말이 너무 심했다. 선을 넘었잖아.
“너희들 왜 싸워.”
이건 아니다 싶어 발을 내딛는데 다른 목소리가 또 들렸다.
레이나 목소리잖아?
내가 못 미더워서 나왔나……. 그런데 쟤네는 어떻게 저렇게 빨리 왔지? NPC특혜인가!
“쟤네들이 에블린 욕을 하잖아. 꼬리치니 뭐니. 나를 이용해 먹니 마니.”
베티가 씩씩거리는 게 눈앞에 보일 지경이었다.
“우, 우리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 엠마,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너도 걔 싫어하잖아. 같이 일하기 피곤하지 않아?”
엠마도 있었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있는 줄도 몰랐다.
“야.”
엠마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렸다.
“나?”
“너 나랑 친해?”
“어?”
“너 걔랑 친하니?”
“……어?”
“까도 우리가 까. 어차피 너희는 에블린이랑 일이 겹치지도 않잖아. 말도 안 되는 소문 퍼트리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해. 에블린 어디 있어.”
“허! 뭐? 네 일이나 잘해? 너희 아가씨께 예쁨 받고 있다고 유세 떠니? 걔를 왜 우리한테서 찾아?”
“그래. 떤다. 어쩔래. 가서 일러 보시든가.”
“엠마, 그만해. 이번에도 애들 패게? 왜 너까지 그래.”
레이나가 말렸다.
“누가 싸운대. 저거 때리면 내 주먹만 아프지. 가자. 에블린 걔는 빨래 가져다 놓고 오랬더니 또 어디로 갔어? 아우, 진짜!”
예감이 좋지 않아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모퉁이를 휙 돌아오는 엠마, 레이나와 정통으로 마주쳤다. 웁스.
“뭐야. 너 왜 여기서 나와??”
엠마가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눈을 데구루루 굴리다가 헤헤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하하, 빨래를 가져다 놓으려다가…….”
베티와 엠마와 싸우던 하녀들이 헉 소리를 내더니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어디론가 뛰어가 버렸다.
엠마가 내 뒤와 자신이 오던 쪽을 번갈아 보더니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기 식료 창고 통과하면 바로 빨래터 직빵인데 그걸 넌 또 돌아왔지?”
“아, 그래? 나는 길로 왔지. 어쩐지 생각보다 멀더라.”
“어휴. 그러니 저 모지리들이 널 씹는 거 아니야.”
모, 모지리.
엠마가 나를 싸늘한 눈으로 빤히 보더니 내 발을 가리켰다.
“에블린, 너 스타킹 벗어 봐.”
“스타킹은 또 왜?”
“빨리 벗어 봐. 쟤네들 다시 오기 전에.”
아무리 허벅지까지 오는 스타킹이라고는 하지만 노출증 환자도 아닌데 여기서 어떻게 벗어.
“여기서 어떻게 벗어.”
이 자리를 슬금슬금 피하려고 하자 엠마가 날 붙잡았다.
“저기 이불 널어놓은 곳에 가서 빨리 벗어. 아, 시간 없어!”
엠마가 다그치는 바람에 나는 하얀 이불자락 사이에 들어가서 스타킹을 벗었다.
아니 이걸 도대체 왜 벗으라는 거야.
맨발로 구두를 신게 된 나는 쭈뼛쭈뼛 나왔다. 별거 아니면 나도 안 참을 거야.
엠마가 스타킹을 받아 들더니 그대로 내가 가져왔던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
“뭐 해?”
“쟤네보고 하라고. 아가씨 건 줄 알고 기가 막히게 세탁할 거 아니야? 한번 열심히 해 보라지. 자, 가자. 가서 내 꺼 빌려줄 테니까.”
그러고선 아주 쿨하게 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황당하게 레이나를 쳐다봤다.
레이나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 손을 잡았다.
“엠마 꼬이면 아무도 못 말려. 싸움도 더럽게 잘하거든. 아무래도 네가 마음에 어지간히 들었나 보다. 그리고 쟤네가 먼저 잘못하긴 했어. 우리도 가자.”
나는 빨래 바구니를 힐끗 보고서는 덩달아 레이나를 따라갔다.
*
오후가 되자 비셔스 후작이 말했던 것처럼 펜들러 공작가의 마차가 후작저로 들어왔다.
나는 창문으로 밖을 힐끔 쳐다봤다. 멀리서도 누가 레오니안인지 알 정도로 존재감이 실로 대단했다.
“아가씨, 펜들러 공작님이 오셨어요.”
“그래.”
마지막 머리핀과 브로치까지 마무리한 비앙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아버지께서 곧 부르시겠구나. 너희는 여기 잠시 있고 에블린은 날 따라오도록 해.”
“예, 아가씨.”
나를 향해 작게 손을 흔드는 레이나에게 고개를 까닥이고 비앙카를 따라 나섰다.
<인자한 딸 바보> 비셔스 후작과 레오니안이 기다리는 곳에 다다랐다.
“오, 비앙카 왔구나. 어서 들어와 앉거라.”
비앙카가 들어가고 밖에서 얌전히 기다리려던 나는 따라 들어오라는 비앙카의 말에 쭈뼛쭈뼛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회장과 사장님들 사이에 낀 새내기 신입 사원이 된 기분이었다. 따로 따로 만나면 이제 그나마 편한데 이렇게 한데 모아 놓으니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
그리고 도대체 왜 나만 바라보고 있는 건데 이 사람들아.
*
이미 <인자한 딸 바보> 비셔스 후작과 레오니안은 몇 차례 논의를 마쳤다고 했기 때문에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에서의 대화가 전부였다.
나는 셋 사이에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기 위해 비앙카가 가시 돋친 말을 하려고 하면 비앙카의 팔뚝을 툭 건드렸다.
그리고 <인자한 딸 바보> 비셔스 후작이 눈치 없이 비앙카와 레오니안을 이어 주려는 말을 꺼내 비앙카의 심기를 건들 때마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후작을 말렸다.
레오니안은 가끔 나를 빤히 쳐다보긴 했지만 대가 없이 <인자한 딸 바보> 비셔스 후작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비앙카가 펜들러 공작가에 머무는 시기는 한 달.
그 기간 동안 비앙카는 펜들러 저택의 별채에서 지내기로 했다.
직속 하녀인 나와 엠마, 레이나 그리고 밀러드 경도 함께 말이다.
출발은 사제가 정화를 시작하는 3일 후 아침 떠나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어려운 결정을 해 주어 고맙습니다, 펜들러 공작 각하. 이 은혜는 필히 갚을 것입니다.”
<인자한 딸 바보> 비셔스 후작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레오니안이 워낙 높은 위치긴 하지만 그래도 후작이 저렇게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보는 건 제법 신기했다.
“어려운 일도 아니니 그리 마음 쓰지 않아도 됩니다, 후작.”
“아닙니다. 꼭 필요할 때 말씀하십시오.”
<인자한 딸 바보> 후작은 그래도 불안했는지 공작저로 가는 길마저 레오니안에게 함께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럼 3일 후 다시 오는 것으로 하는 게 좋겠군요.”
<인자한 딸 바보> 비셔스 후작이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잠시 자리를 먼저 비키고 비앙카와 레오니안 그리고 내가 남았다.
“흔쾌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작님.”
“별말씀을.”
나는 둘이 평범하게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고 뒤늦게 긴장을 풀었다.
힘들다, 힘들어.
*
다음 날 아침.
또 여지없이 문 앞에 수북하게 쌓인 선물들이 나를 반겼다.
“이거 처리해 주는 스킬도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잠이 덜 깬 채로 반쯤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그나마 이제 편지는 스킬을 사용해서 밤새 쓰고 걸어 놓으면 되는데 말이다.
매번 아까워서 꽃을 압화로 만드는 데 쓰인 책이 벌써 다섯 권이 넘는다.
이제는 진열된 책도 없어서 창고에서 낡은 책을 가져와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선물을 두지 말라고 하려고 해도 꼭 잠들었을 때나 자리를 비울 때만 귀신같이 알고 순식간에 놓고 간단 말이지.
이쯤 되자 누군가 놓고 가는 게 아니라 다른 NPC처럼 나도 캐릭터 특성이라 무조건 문 앞에 선물이 생성되게 만들어진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덕분에 오늘도 아침부터 기운이 쪽 빠질 정도로 선물을 정리하고 출근을 했다.
먼저 와 있던 엠마가 기묘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엠마가 곱게 접힌 빨래 더미를 가리켰다.
정말로 스타킹이 상처 하나 없이 주름 하나 없이 곱게 접혀서 돌아왔다.
엠마는 그걸 보고 악당들이 울고 갈 정도로 사악하게 웃었다.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