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Weakest Mai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59)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59화(59/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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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저에서의 이틀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이곳에서 강아지로 신세 졌을 때와 비앙카의 시중을 들면서 적응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는 시선 집중 그 자체였다.
비앙카의 그 뒤로 나와 레이나, 엠마가 지나갈 때면 공작저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에 다 모이는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비앙카와 레오니안 사이에 무슨 관계 진전이라도 있는 건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복병이 있었다. 이곳에 오면 거의 매일 레오니안과 비앙카가 만날 줄 알았다.
하다못해 저녁 식사라도 함께할 줄 알았는데, 첫날 불편한 곳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던 그 저녁을 제외하고 레오니안과 비앙카는 단 한 차례도 만나지 않았다.
이틀 동안이나!
비앙카에게 로라의 마수가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이지만 얘네도 진전이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비앙카는 공작저에서 여유롭게 그림을 그리거나 꽃꽂이, 자수를 놓고 또는 독서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가씨.”
나는 옆에서 턱을 괸 채 구경을 하다가 넌지시 비앙카를 불렀다.
“그래, 에블린.”
“그거 완성하면 누구 주실 거예요?”
나는 두 손으로 턱을 받친 채로 기대감에 눈을 반짝이며 손수건에 자수를 놓고 있는 비앙카에게 물었다.
“아버지께.”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뱉는 말에 나는 약간의 실망감을 안고 입술을 오므렸다. 이내 다시 웃으며 말했다.
“주인님께서 엄청 좋아하실 것 같아요. 걱정 많이 하셨는데.”
“응, 누구보다 날 많이 아끼시니까. 편지와 함께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전할 거란다.”
“되게 좋아하실 것 같아요.”
비앙카가 자수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빙그레 웃었다.
“그러셨으면 좋겠구나.”
비앙카의 손이 좀 더 빨라졌다.
여주라서 그런가 스킬을 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자수를 놓는 손길이 굉장히 능숙하고 빨랐다.
저대로라면 작은 자수는 하루에 두세 개도 거뜬할 것 같았다. 잠깐. 두세 개?
“그럼 어제 먼저 자수 놓으신 건요?”
“그건 어머니께.”
나는 턱을 받친 채 듣다가 그대로 무너질 뻔했다.
“아가씨.”
“응? 오늘따라 날 많이 부르는 것 같은데? 심심하니? 자수 배워 보고 싶어?”
하지만 불편한 기색은 아니어서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헤헤, 아니요. 다른 게 아니라 아직 자수를 놓지 않은 손수건이 많아서요. 그럼 공작님 것도 있어요?”
“응? 그게 무슨 소리니?”
비앙카가 고개를 들었다. 마치 자수와 공작이 왜 관계가 있느냐는 듯 의아한 눈길이었다.
“아, 어…… 잘은 모르지만 감사 인사를 할 때도 그런 걸 전한다고 들은 것 같아서요. 아하하, 저는 해 본 적 없지만요.”
“감사 인사라. 나쁘진 않지만 자수 손수건 선물은 아무래도 오해하기 쉽지.”
그래, 여주야. 오해라도 해 보자 좀.
“그…… 그렇겠네요.”
나는 실망감에 입을 불퉁하게 내밀었다.
나한텐 친밀도 팍팍 올려 줬잖아, 여주야. 남주한테도 그렇게 해 보자, 응?
“이번 일에 보답을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에블린 네 말대로 하나 정도는 괜찮을지 모르겠구나. 파티에서 내미는 것도 아니니 오해할 일도 없을 테고.”
“정말요?”
고개를 반짝 들며 묻자 비앙카가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다 이내 초승달처럼 눈꼬리를 휘었다.
“어쩜 네가 더 좋아하니. 누가 보면 네게 선물하는 줄 알겠다.”
“아하하. 그냥 아가씨 자수하는 걸 보는 게 좋아요. 재미있어요. 신기하고요.”
단지 말만 그런 게 아니라 가정 시간에만 했던 자수가 저렇게 우아한 것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보기 좋았다.
“이게 뭐가 그리 재미있어서?”
비앙카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고는 다시 자수로 눈을 향했다.
나는 그에 맞춰 비앙카가 쓸 짙은 노란 실과 파란 실을 미리 꺼내 놓았다.
레이나 어깨너머로 가끔 보며 배운 것이다. 뭐, 나도 직속 하녀 흉내를 내긴 해야 하니까.
“아버지 드릴 것을 완성하면 공작님 손수건을 해 보자꾸나. 뭘 수놓으면 좋을까?”
“으음.”
나는 다시 안정감 있게 턱에 손을 괴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가씨께서는 필기체도 잘 놓으시니까 이름도 괜찮을 것 같고, 작은…… 음 작은 꽃도 좋을 것 같아요. 아니면 동물…… 동물은 하실 수 있어요?”
“동물? 해 본 적은 없다만 못 할 것 없지.”
“어으, 네. 그 뭐랄까 공작님 보면 어쩐지 흑표범이 생각나는 느낌이라서요. 아, 그런데 아가씨 절대 비밀이에요!”
비앙카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래, 내 하녀가 벌을 받게 할 순 없으니 비밀로 해 주마. 그렇게 생각하니 또 그렇구나. 신기한 걸. 동물에 비유해 본 적은 없었는데……. 그럼 나는 무슨 동물 같니?”
“아가씨요? 음 되게 털이 긴 고양이 같기도 하고 우아한 흑조 같기도 해요.”
“흑조라. 네 눈에 내가 그렇게 보인다니 기분 좋구나.”
흑조가 그렇게 기분 좋을 일……. 아 맞다. 모르트바에서는 흑조를 길조라고 하고 있었지? 흑조가 은근하게 떠올랐던 이유가 있었구나.
나는 뒤늦게 깨달으며 어색하게 볼을 긁적였다.
비앙카는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인자한 딸 바보> 비셔스 후작의 손수건과 레오니안의 손수건까지 마무리했다.
“에블린, 이걸 공작님께 전해 드리렴.”
“제, 제가요? 이렇게 귀한 걸요?”
“내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는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구나. 어서 다녀오렴.”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건만 이대로 선물을 주면서 저녁까지 먹나 했던 내 기대는 와장창 무너졌다. 역시 여주는 쉽지 않았다.
나는 비앙카가 건넨 작은 바구니를 들고 본관으로 향했다. 어쩐지 퀘스트도 뜨지 않았는데 퀘스트 하러 가는 기분이었다.
어제도 그렇고 나는 비앙카의 심부름을 하거나 레오니안에게 말을 전할 때마다 본관을 갔는데 어째 여주인공보다 내가 더 본관에 자주 가는 느낌이었다.
비앙카가 다녀오라는데 네가 직접 가라고 버틸 수도 없고.
그래도 이번 주말에 열린다는 축제는 같이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때 한번 열심히 둘을 이어 줘 봐야지.
“에블린 씨.”
본관에 들어가다 케인과 마주쳤다.
“어, 케인! 안 그래도 공작님 뵈러 가는 길이었어요.”
나는 케인에게 다가가며 비앙카가 전해 주라고 시킨 작은 바구니를 들어 보였다.
“그렇습니까?”
“네…….”
나는 케인을 요리조리 살폈다. 오늘도 케인은 프로필이 뜨지 않는다.
아니 도대체 왜 안 뜨지? 케인이 날 먼저 불러 인사할 정도로 친해졌는데?
“저…… 혹시 제게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케인이 나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요. 죄송해요. 저희 아가씨께서 공작님께 전하라고 한 게 있어서요. 공작님 혹시 안에 계신…… 거 맞겠죠?”
지나가던 하녀에게 물었을 땐 있다고 했는데 케인이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외출을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 지금 집무실에 계십니다. 저도 가는 길이었습니다.”
“다행이다. 같이 가면 되겠네요.”
“예.”
별채에서부터 다닥다닥 끈질기게 따라붙던 하인들의 시선이 케인과 인사하자마자 귀신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공작저에 온 이후 아침에 문을 열 때마다 선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건 사라졌지만 어딜 가나 붙는 시선은 오히려 더 심해져서 불편할 정도였는데 말이다.
케인이 무서운가? 공작의 직속 호위라서?
어쨌든 케인과 걸어가니 시선이 전혀 따라붙지 않아 아주 편했다.
“지내는 건 편하십니까?”
안으로 들어오자 따갑게 괴롭히던 햇빛이 가려졌다.
“그럼요. 별채에 없는 게 없더라고요.”
“각하께서 정말 신경 많이 쓰셨습니다.”
케인의 말에 나는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케인의 말을 듣고 나니 손수 뭔가 준비하는 레오니안의 모습이 상상이 됐기 때문이다.
하긴 여주에 푹 빠지고 나면 뭔들 못 할까. 사랑의 콩깍지는 정말 무서운 법인데 도대체 언제 씌워질지 다시 또 답답해졌다.
케인과 대화를 하다 보니 금방 레오니안의 집무실 앞에 다다랐다.
“각하, 들어가겠습니다.”
“들어와.”
안에서 레오니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시죠, 에블린 씨.”
“고마워요.”
케인이 집무실 문을 열어 준 덕분에 나는 손 하나 대지 않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레드 룬이 의뢰 잘 받아?”
들어가자마자 레오니안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물었다.
나는 케인을 살짝 본 뒤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공작님.”
내 인사에 레오니안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한쪽 눈썹이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왜 둘이 같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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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