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Weakest Mai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63)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63화(63/160)
“에블린이 의뢰한다는 게 그 초상화가 맞나요?”
레오니안은 잠시 비앙카를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비앙카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혹시 그 초상화가 에블린 본인의 초상화라고 하던가요?”
레오니안이 눈썹을 치켜떴다. 비앙카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아니요, 시장에서 얻었다고 하던데.”
“시장에서요?”
“예, 사례금이 있다고 그거 얻으려고 찾는다 하더군요. 영애께 말을 하지 않았나 봅니다.”
비앙카가 끄덕였다.
“네, 개인적인 일로 보여 일부러 묻지 않았거든요.”
“그렇습니까.”
“하긴 에블린에게 귀족 사례금은 제법 될 테니까요.”
“예.”
“그렇군요. 한데 얼굴은 알아볼 수 없고 머리색이 워낙 똑같아 보여서 혹시나 했는데.”
“분홍색 머리카락이 에블린 단 한 명은 아닐 겁니다.”
레오니안은 언젠가 에블린이 했던 말을 그대로 비앙카에게 전했다.
“그렇긴 한데…….”
차를 가지러 간 케인은 세바스찬과 함께 들어왔다.
“두 분께서 이야기를 나누시는 줄 모르고 늦었습니다. 마침 오늘 아침 들어온 찻잎 질이 좋아 제가 직접 내렸답니다. 비셔스 아가씨, 드셔 보시지요.”
“고맙네.”
“그럼 편히 이야기 나누시지요.”
세바스찬은 흐뭇한 웃음과 함께 둘을 지켜보더니 이내 케인에게 눈짓을 하고 나갔다.
케인이 나가는 세바스찬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단지 궁금해서 물어보러 오신 것은 아닐 테고요.”
레오니안이 차를 앞에 두고 물었다.
“음.”
비앙카가 찻잔을 감싸듯 쥐고서 차를 마셨다.
“에블린에게는 가족이 없어요. 처음에 갈 곳이 없는 아이인 것을 알고 거둬들였거든요. 물론 독보적으로 눈에 띄기도 했지만.”
“그렇습니까.”
에블린에게 들은 적 있는 이야기지만 레오니안은 일부러 말을 아꼈다.
“네. 그런데 가끔 음, 뭐랄까. 제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예법이 몸에 배어나더군요. 본인은 모르는 눈치지만.”
레오니안은 그 어느 때보다 흥미롭게 비앙카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에블린을 가꿔 주면 제법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겠단 생각도 문득 들었었답니다.”
“그렇습니까.”
“네, 처음부터 그런 분위기나 자세가 잡힌 아이는 드물거든요. 공작님께서도 시종을 직접 뽑으시나요?”
레오니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믿고 둘 이만 직접 확인하는 편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공작님께서도 제가 무슨 말을 드리는지 잘 아시겠네요. 그래서 혹시 가족을 찾는 건지 싶어서 여쭤본 것이에요. 제가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주고 싶거든요. 다른 아이도 아니고 더구나 에블린은 저를 제 목숨처럼 아껴 주는 아이라.”
“이해는 합니다만 본인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비앙카가 레오니안의 말에 빙긋 웃더니 차분히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도 휴가 때 쉬러 갈 곳이 있고, 말 못할 정도로 힘들 때 기댈 곳이 있다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 대화의 연장선입니까?”
비앙카가 끄덕였다.
“뭐 그런 셈이죠. 그리고 에블린이 고민하고 결정하는 건 찾은 후에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떤가요?”
비앙카의 말이 맞았다. 결정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을 터.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진 가족이라면, 그게 또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이라면 그녀의 말대로 하는 것이 나았다.
하지만 나는 왜 이렇게 신경 쓰고 있는 거지. 그것도 진심으로.
그냥 호의라고 생각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진심으로 도우려고 고민하는 게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자신의 행동에 혼란하거나 당황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 말도 일리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레오니안이 순식간에 감정을 갈무리하고 느긋한 척 대답했다.
“조금은 신경 쓰이시나요?”
“왜 그렇다고 생각합니까?”
비앙카가 어쩐지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공작님, 방금 제가 들어올 때 누군가 찾지 않으셨나요?”
*
[탈수 증상으로 인해 생명력이 10 감소합니다.] [다리에 마비 증상이 느껴집니다. 생명력이 감소할 수 있습니다.] [체력 고갈로 인한 휴식이 필요합니다.]1성 때도 뜨지 않았던 경고가 주르륵 떴다. 이제 알람조차 지친 듯했다.
외출하고 지금까지 혼자 퀘스트 깰 때도 아껴 먹던 수련자용 활력제(Ⅰ)를 10개나 먹었다.
2성? 3성? 스킬?
엠마 앞에선 그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필요한 건 오직 체력과 대답뿐이었다.
엠마는 월급을 다 털어 넣을 기세로 할인된 물건들을 구매했다.
“엠마……. 이제 그만 좀 사. 아니면 조금 쉬었다 사…….”
도대체 축제 때 왜 이렇게 준비물이 많이 필요한 거야…….
“50% 할인, 80% 할인이라잖아. 이걸 어떻게 안 사? 언젠가 다 쓸 일이 있어. 오늘은 지르는 날이야. 아가씨께서 용돈도 주셨잖아? 너희는 안 사?”
그렇다. 비앙카는 우리에게 편히 사고 싶은 걸 사고 오라며 각자 10골드씩이나 주며 외출을 허락했다.
셋이 하는 외출은 처음이었는데 이게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평소 멀쩡했던 레이나까지 지친 기색을 보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나마 멀쩡한 건 엠마와 호위 기사들이었다.
“그럼 저거 하나만 더 사자. 머리핀 2개 사면 하나 더 준대.”
그 말과 동시에 엠마가 머리핀 판매 매대로 쌩하고 달려갔다.
“오늘 작정했나 봐.”
레이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있나 살피며 둘을 따라갔다.
엠마와 함께 머리핀을 고르는 데 집중하던 나는 어디선가 날카롭게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들어 그 시선을 찾았다.
어디지? 로라의 수족은…… 아니겠지?
이렇게 대낮이고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거기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 서 있는 호위도 4명. 하녀의 수보다도 많았다.
하지만 오싹할 정도의 시선이 자꾸만 느껴졌다. 도대체 누가 어디서 보고 있는 거야?
나는 머리핀을 고르면서 곁눈질로 눈이 빠져라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팩 돌리는 순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는 시선과 마주쳤다.
중년의…… 남자?
후줄근한 셔츠와 면바지 그리고 덥수룩한 수염과 대충 쓸어 넘긴 머리카락. 하지만 눈빛만큼은 매섭고 거칠었다.
분명 나를 보고 있어. 제법 멀리 떨어진 곳인데도 혼자 있었다면 오싹할 정도의 시선이었다.
저 남자는 도대체 누구지?
“에블린.”
엠마가 옷깃을 잡아당겼다.
“어?”
“이거 너한테 어울릴 것 같은데 어때? 네 눈 색이랑 비슷하다. 보석은 아니고 수정석이래. 잘 보면 약간 금색도 있어.”
“아.”
나는 재빨리 나를 보던 시선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남자는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연히 찌를 듯이 느껴지던 시선도 사라졌다.
“……갔나.”
“응? 별로야?”
“어? 아니. 예쁘다. 비싸지 않을까?”
나는 엠마의 말에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다.
“그렇게 안 비쌀걸? 이거 얼마예요?”
엠마가 내게 어울린다며 고른 머리핀을 주인에게 내밀어 보였다.
오늘은 좀 조심하는 게 좋겠어. 혹시 모르니 이따 축제 참가할 때 호위를 배로 늘리자고 해야겠다.
*
“아가씨, 저희 다녀왔습니……. 응? 어디 가셨지?”
엠마의 극성에 못 이겨 나와 레이나도 액세서리와 물건을 한가득 사고 돌아왔다. 그런데 별채에 비앙카가 보이지 않았다.
“본관 가셨나?”
“그런가 봐. 그쪽으로 가 보자.”
서둘러 짐을 내려놓고 비앙카를 찾아 나섰다. 공작저 안에서 문제가 일어날 일은 없겠지만 아까 시장에서 느꼈던 불안감 때문인지 얼굴을 제대로 봐야 할 것 같았다.
“어?”
앞서 걷던 엠마가 두 팔을 벌려 우리를 막았다.
“뭐야, 왜 그래?”
“앞에 봐 봐.”
엠마의 말에 고개를 들어 보니 저 멀리 비앙카와 레오니안이 단둘이 정원을 걷고 있는 게 보였다.
“어머.”
레이나가 깜짝 놀라며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나는 내 두 눈으로 본 게 믿겨 지지 않아 손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봤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비앙카가 레오니안 앞에서 보기 드물게 웃고 있었다.
뭐지, 저 갑작스러운 핑크빛 분위기는?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