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Weakest Mai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85)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85화(85/160)
그때 퀸텀 공작이 낮게 기침했다. 독한 약으로 한껏 잠재우고 왔건만 약효가 떨어지는지 다시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퀸텀 공작의 뒤에서 묵묵히 있던 로즈가 약을 챙겨 퀸텀 공작에게 내밀었다.
약을 마신 퀸텀 공작이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로즈, 노바 녀석은 뭘 하고 있지? 또 노름질이나 하고 있겠지?”
“가문 회의에 참석 가능한 원로들을 만나러 다니는 모양입니다.”
“왜, 이빨 빠진 호랑이 대신 자신을 택하라고?”
로즈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원로들은 설득보단 능력을 보여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큰놈이 있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을.”
노바 리들리버 퀸텀은 제 자식이지만 우두머리가 될 능력이 없는 녀석이었다.
허구한 날 노름을 하고 술과 약, 여흥에 즐기다 못해 취해 살았다. 욕심이 많고 남의 말에 쉽게 휩쓸리며 성질이 급하다.
가문의 재산을 탕진하는 것은 둘째 치고 가문 자체를 지키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퀸텀 공작이 속이 갑갑해져 근심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았어야 했는데…….
퀸텀 공작은 저 멀리 열심히 뛰어가는 에블린의 뒷모습을 아쉬운 듯 다시 한번 바라봤다.
*
“토끼를 잡았는데 불쌍해서 놔줬어.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얼마나 웃으셨는지 모른단다.”
사냥에서 돌아온 비앙카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결국 비앙카는 착하디착한 심성대로 마물은커녕 작은 동물조차 잡지 못한 것이다.
“숲속에 마물도 나와요?”
레이나가 묻자 비앙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소형 마물이긴 하지만 마물들은 이마에 새카만 마석이 박혀 있었어. 더 큰 마물은 깊은 숲에 있는데 깊은 숲은 5일째부터 들어갈 수 있다고 해. 아버지와 공작님은 아무렇지 않게 잡으시던데 난 도저히 못 하겠더구나.”
“그래도 마물을 잡으면 나오는 마석을 가공하면 엄청 신비로운 보석을 만들 수 있다잖아요. 비싸기도 하고요.”
“그렇긴 하지. 에블린, 얼굴이 핼쑥해 보이는 데 무슨 일 있었니?”
나는 멍하니 있다 바짝 정신을 차렸다.
“네? 아,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래? 내 기우였나 보다. 평소보다 얼굴이 창백해 보여서.”
“남정네들이 하도 눈빛을 쏴서 그럴걸요. 제가 모자를 씌워 주긴 했는데요.”
엠마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좀 전의 일을 꺼내기 싫어 미소만 얼굴에 둥둥 띄운 채 물었다.
“아가씨, 오후에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오후에는 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냥 대회를 더 즐기거나 천막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이동 게이트를 통해 집에 가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다.
“천막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다가 저택으로 돌아갈 생각이야. 열흘 동안 사냥 대회에 참가하려면 첫날은 일찍 쉬는 게 좋겠어.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곧 돌아가실 거라고 하더구나.”
비앙카 말고도 다른 귀족들도 보니 돌아갈 생각에 바쁘게 움직이는 듯했다.
귀족의 체력 증진과 모범, 협력심 등 황제가 원하는 대회의 취지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안전이 더 중요한 나는 오히려 더 좋지만.
“공작님께서도 아가씨와 함께 돌아가세요?”
비앙카가 일어서며 말했다.
“글쎄, 모르겠구나. 아까 황제 폐하께서 불러 가셨으니 늦게 가실지도 모르겠는걸. 우선 천막으로 가자.”
“네, 아가씨.”
나는 비앙카의 뒤를 따르면서도 계속 귀를 열어 두었다.
“이게 누군가요, 비셔스 영애.”
누군가 웃으며 비앙카의 앞을 막았다. 곱게 옆으로 땋은 금발에 시푸른 벽안을 가진, 유독 얼굴이 작고 쌍꺼풀이 짙은 여인이었다.
저 묘사…… 누구더라.
비앙카도 반갑다는듯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세이자 후작 부인.”
비앙카의 말에 불쑥 생각이 떠올랐다.
리리 세이자!
★★★
세이자 후작 부인
성별 : 여
나이 : 27세
특이 사항 : 귀족형, <신혼을 즐기는> 타이틀 보유.
결혼 전 이름은 리리 헤일로. 그녀는 비앙카의 소꿉친구이기도 한 세이자 후작 부인이었다.
신혼을 즐기는 중이라고 원작에서도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 여기서는 아예 타이틀까지 붙어 나왔다.
더구나 아예 결혼 후에 등장해서 이름마저 달라졌구나.
리리 헤일로, 아니 <신혼을 즐기는> 세이자 후작 부인은 비앙카가 어려서부터 곧잘 언니처럼 따르며 인연을 이어 가던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비앙카의 든든한 아군인 셈이었다.
“후작 부인보다는 리리 헤일로가 아직 더 익숙해.”
<신혼을 즐기는> 세이자 후작 부인이 자신의 뺨을 감싸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처연하게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거짓말. 신혼이라 행복하지?”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신혼을 즐기는> 세이자 후작 부인이 살포시 웃었다.
“오늘 비셔스 가문도 참가한다기에 와 봤어. 전에 네가 편지했을 때 외출을 하지 못할 것 같다기에 안 올 줄 알았거든.”
“참가하길 잘했네.”
“괜찮은 거지?”
<신혼을 즐기는> 세이자 후작 부인이 비앙카의 손을 끌어 잡으며 작게 말했다.
비앙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괜찮지. 요즘 오히려 덕분에 여유롭게 독서도 즐기고 행복한걸.”
<신혼을 즐기는> 세이자 후작 부인이 눈을 흘겼다.
“진심이길 바라. 걱정되어 죽는 줄 알았거든. 아까 들어 보니 펜들러 공작님과 염문이 있던데……. 어떻게 된 거야? 후작님이 결국 밀어붙이신 거니?”
비앙카가 주변을 살짝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냐, 잠시 도움을 받는 거야. 그냥 언니만 좀 알고 있어.”
“정말? 다른 건 없고?”
이번에도 비앙카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사냥 대회가 끝나고 언제 초대해 줘.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해 주라.”
<신혼을 즐기는> 세이자 후작 부인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럴게. 안 그래도 네게 해 줄 말이 많았거든.”
<신혼을 즐기는> 세이자 후작 부인이 고개를 살며시 내렸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따라 내려갔다. 그녀는 알게 모르게 자신의 배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처럼 부드럽게 문질렀다.
“설마 언니.”
비앙카도 바로 알아챈 것 같았다.
“응, 이번 겨울이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
“축하해, 리리.”
“고마워. 그리고 비앙카.”
“응?”
<신혼을 즐기는> 세이자 후작 부인이 비앙카의 손을 잡았다.
“먹구름이 잠시 지나간다고 생각해. 안 좋은 일이 지나가면 더 좋은 일이 생긴다더라. 난 늘 네 편이니까 알았지?”
“리리…….”
“나도 그이가 찾을지 모르니 가 봐야겠다. 오늘 여기 나오는 것도 얼마나 반대했는지 몰라.”
“어서 가 봐. 후작님께서 걱정하시겠다.”
“오늘 봐서 너무 즐거웠어, 비앙카. 다음에 초대하면 꼭 올 거지?”
“응, 당연하지. 조심하고 다음에 봐. 선물 챙겨 갈게.”
<신혼을 즐기는> 세이자 후작 부인은 손을 흔들며 자신의 남편에게로 돌아갔다.
비앙카가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우리를 쳐다봤다.
“우리도 가자꾸나.”
“네, 아가씨.”
Chapter13. 귀족 사냥 대회
사냥 대회의 첫날은 마지막 정보 하나를 습득하지 못하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둘째 날은 하필이면 새벽부터 예고 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해 아침이 되어도 계속 내렸다.
추적추적 쉼 없이 내리는 비에 사냥 대회에 참석한 귀족들은 천막에 모여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비가 많이 오면 비를 피해 숨는 동물들과 달리 마물들은 더 날뛰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도 더 안전하고 넓은 곳이 낫지 않겠냐며 비앙카를 살살 꾀어내 레오니안의 천막으로 비앙카를 데려가는 데 성공했다.
공사가 다망한 레오니안은 비가 오는 중에도 잠시 천막을 나간 상태긴 하지만…….
레오니안이 자리를 비운 사이 비앙카는 넓은 천막 안에서 고요히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나는 반쯤 열어놓은 천막 입구에서 서성였다.
응……?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흐릿하게 숲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비도 오는데 웬 청승이래. 그냥 천막 안에나 있지.
하지만 천막 안에서 가만히 있는 게 심심해 그마저도 눈길이 갔다.
나는 천막에 기대서서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그들을 지켜봤다.
그들은 꼭 교묘하게 숨어 작전 회의 하는 것처럼 보였다. 살짝만 몸을 옮겨도 그 사람들의 모습이 나무에 가려졌다.
제법 가까운 거리임에도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사람이 있는 줄 모를 정도다.
연신 뭔가 지휘를 하다가 홀로 길가로 나온 남자는 젖은 머리를 거칠게 넘기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쥐 꼬랑지처럼 묶은 검은색 머리, 사납게 올라간 눈썹에다 여기서도 보일 만큼 앞 광대와 코가 붉어 꼭 고주망태 같았다.
저 사람이…… 노바 퀸텀인가? 퀸텀 공작의 차남이라던.
세계관 최약체
하녀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