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in the Academy as a Warlock RAW novel - Chapter 180
179화
“네, 네가 그 이름을 대체 왜…….”
“제가 누군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한 순간, 요한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스모데우스 같은 고위 마신이 그를 비호하고, 본인도 반신의 경지에 도달한 흑마술사다.
그렇다면 자신의 몸에 깃든 저주 따위는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 것이다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계약자여. 근데 너는 왜 새로운 사본도 얻었으면서 다음 마신을 만나기 위해 나서지 않는 것이냐? 네놈 근처에 나와 레이바탄과 같은 7대 죄악의 마신이 떡하니 있는데 말이지.
-내 근처에 그런 마신이 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어디?
-정확히는 그 마신의 흔적이 있지. 설마 그것도 모르고 있던 것이냐?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말해주지 그랬어. 그게 누군데?
-요한 크루이프. 그 인간이 나태의 마신 벨페고르의 가호를 받은 인간이지 않느냐.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교수님에게 상당한 은혜를 빚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건 도와드리고 싶고요.”
꿀꺽.
요한이 침을 삼켰다.
일이 이렇게 수월하게 풀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긋지긋하게도 자신을 괴롭혀오던 저주.
마신을 숭배하는 광신도들은 그것이야 말로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증표이며, 신의 축복이라고 지껄여댔지만 요한의 입장에서는 원치도 않은 시한폭탄을 달고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기에 수많은 방법을 찾았고, 또 시도했지만 미약한 단서를 찾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찾아낸 마지막 가능성, 어쩌면 유일한 가능성이 먼저 손을 뻗고자 하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자일 지그하르트의 눈에도 요한의 얼굴에는 온갖 감정들이 엿보였다.
평소에 그와 다르게 상당히 상기된 얼굴.
그것은 그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우선 확인을 위해 여쭙겠습니다. 교수님의 몸에 있는 그 마기. 나태의 마신 벨페고르의 가호로 인해 생긴 것이 맞습니까?”
“가호(加護)라…. 이건 끔찍한 저주에 불과하지. 평생토록 내 몸을 갉아 먹는 기생충처럼 들러붙어 나를 조롱하는 저주. 네가 이 저주를 말하는 것이면 맞다. 그 나태한 마신께서 도통 어떠한 이유로 내게 저주를 건 것인지 알 수가 없더군.”
아스모데우스에게 들은 바로는 나태의 마신 벨페고르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간들이 권태로움을 느끼며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 망가진 영혼을 자신이 삼키는 걸로 만족을 느끼는 자칭 미식가라나.
하여튼 별난 마신이었다. 허나 그만큼 강력한 마신이기도 하고.
“이 지긋지긋한 저주를 풀어줄 수 있겠나?”
간절한 어조.
간절한 눈빛.
지금껏 보여준 적 없던 그의 진심.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의 눈이 빛났다.
그는 자일 지그하르트에게 그간 자신이 살아왔던 얘기를 간략하게나마 들려줬다.
본래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나태의 저주에 걸린 뒤 하루도 편히 살아본 적 없었다는 것과 초월적인 마력을 얻었지만 매일 잠에 시달리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맥도웰과 있던 얘기까지 전부 해주었다.
“…그 빌어먹을 늙은이가 결국 죽었군요. 역시 마신숭배자들과 손을 잡은 거였습니까? 거기에 자신의 제자들의 목숨을 희생시켜가며 강함에 집착하더니 검귀라는 이명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인간이군요.”
자일 지그하르트의 전신에서 진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장면들.
자일 본인이 맥도웰과 만나면 어떤 식으로 복수했을지 그 방법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쓰레기는 더욱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죽어갔어야…아니, 죽어서도 평생을 고통 받았어야 하는데……. 지은 죄에 비해 곱게 간 편이군. 그건 그렇고 역시 요한 교수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강자다. 나태의 저주가 있었다고는 해도 본래 지니고 있는 재능부터가 대륙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인간이지. 이제는 사실상 초월자의 반열에 들었다고 해도 무방하겠군.’
그렇게 대화를 마친 뒤 나는 본격적으로 그의 저주를 해주할 준비를 시작했다. 말이 준비지 사실상 정신을 다듬는 게 전부인 작업이다.
“준비되셨습니까?”
“그래. 잘 부탁해.”
요한이 눈을 감았다. 나는 천천히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 뒤 마기를 끌어올렸다.
촤아아아아악.
내 손끝에서 퍼져 나간 마기가 그의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엄청난 마력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호수를 보는 것 같았다.
‘진짜 괴물이군. 나태의 저주가 아니었어도 이 이상의 마력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야.’
조금 더 아래 쪽까지 내려가자 아주 강렬하고 짙은 마기가 느껴졌다.
그 순간.
…두근!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바뀌었다.
“저건…….”
심연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거대한 눈동자.
그 크기는 내 몸의 수십, 아니 수 백 배에 달했다.
* * *
“여기는 어디지……?”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눈앞에 거대한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압도적인 크기.
그 크기 앞에 나는 개미 수준도 안 되는 듯 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온통 짙은 어둠 뿐 이었다.
변수가 생겼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변수.
내가 생각했던 요한의 저주를 해주하는 방법은 바로 레비아탄의 권능인 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권능을 사용하기도 전에 마기를 탐지하는 것만으로도 이곳에 끌려오게 되었다.
“심상세계인가.”
꿈뻑.
눈꺼풀이 움직였다.
그 크기나 너무 커다란 탓인지 깜빡거린 것만으로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나오시죠. 나태의 마신 벨페고르시여.”
【호오, 나를 아는가? 그래.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군. 이 이질적인 기운…….】
다시 한번 눈꺼풀이 열렸다. 거대한 눈동자 사이로 산양의 뿔을 달고 있는 노인이 걸어 나왔다.
저벅. 저벅.
허리가 굽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왔는데 그 속도가 매우 많이 느렸다.
이쯤 되면 일부러 나를 엿 먹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간의 흐름이 없어진 공간이라 하지만 그 노인이 이곳에 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체감 상 5시간이 넘어가는 듯 했다.
【그래……. 작은 마신이여. 나를 왜 찾은 것이지……?】
미친놈아. 네가 불렀잖아.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형용할 수 없는 기운에 몸이 움츠러졌다.
노인의 형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7죄악의 마신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마기가 자연스레 뿜어져 나왔다.
“당신과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거래? 어떤 거래를 말하는 건가?】
“요한 크루이프라는 인간에게 건 나태의 저주. 그거를…….”
드르렁.
푸우.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코를 고는 벨페고르.
나태의 마신이라는 이름답게 워낙 종잡을 수 없는 마신일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잠에 들 줄은 몰랐다.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 침대가 등장했고, 심지어는 잠옷과 안대까지 차고 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왔다. 침대에 누운 채 베개를 껴안고 아주 행복한 얼굴로 잠을 자는 벨페고르.
“……벨페고르 님?”
여러 번 불러보았지만 대답도 하지 않는다.
드르렁. 푸우. 드르렁. 푸우.
“……진짜 주무시는 겁니까? 벨페고르님. 일어나 보세요.”
아무리 그를 깨워보았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호기심에 코를 막아보기도 하고, 뺨을 때려보기도 했으나 어찌나 잠을 잘 자는지 시종일관 무반응이다. 이쯤 되면 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만 중요한 건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러는 것이냐는 거다.
‘이것도 일종의 테스트인가?’
나태를 상징하는 존재인 만큼 어쩌면 일부러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일단은 그가 움직일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다.
어차피 이곳은 그가 만들어낸 심상세계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곳에서 10년, 100년이 지난다고 바깥에서의 시간이 고스란히 흘러가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설마 10년이 지나도 안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여차하면 내가 직접 이 공간을 부수고 나가는 방법도 있다.
아직 시도는 해보지 않았지만 전력을 다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그가 깨어나기 전까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로 결심했다.
아르스 디에고에게 배운 창천문의 창술과 마기를 사용하는 방법, 그리고 새로운 흑마술들과 권능의 응용법등을 천천히 심도 깊게 다룰 생각이었다.
***
한 달이 지났다.
나름대로 많은 깨달음을 얻었지만 여전히 이 노인네는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한 번은 홧김에 창으로 저 노인네의 몸통을 찔러보았지만 우연인지, 아니면 본능인지 그대로 피하는 게 아닌가. 그 이후에도 수차례 찔러보았지만 도통 맞을 생각을 안했다.
‘이 새끼 안 자는 게 분명해.’
승질이 뻗쳤지만 이 또한 그의 시험이라 생각하고 이 악물고 참기로 했다.
어차피 요한의 부탁을 해결해주고, 그와 계약을 맺으려면 지금은 참는 방법 외에는 없다.
육 개월이 지났다.
창천문의 비기에 대해 고민한 결과 어떠한 깨달음을 얻었다.
창을 휘두를 때 가장 적합한 자세, 힘을 분배하는 방법, 그리고 더 상승의 무공을 펼치는 방법까지.
상당한 수확이었다.
2년 6개월이 지났다.
새로운 흑마술 17개를 창조했다. 또한 내가 지니고 있는 권능들을 새롭게 정립하고, 나아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숨겨진 힘들까지 해방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불완전했던 신격을 완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어 마기와 신체의 합일을 이루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페고르 이 미친 마신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씨발, 벨페고르. 이 미친 늙은이야. 이래도 안 일어날 거야?”
흑마술을 이용해 그가 만들어낸 침대를 순식간에 소멸시켰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복원시키는 그였다.
그 모든 게 잠 잠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열 받았다.
얼마나 더 그의 잠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후우.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보자.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었다.
사실상 혼자나 다름없는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배움과 깨달음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아르스 디에고와 함께 했던 수련의 시간이 아니었다면 아마 진즉 이곳을 뛰쳐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씨발. 이젠 못 참아. 아니, 안 참아.”
악시온을 소환한 나는 창 끝에 마기를 주입했다.
후우.
숨을 크게 들이 마신 뒤 허공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