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in the Academy as a Warlock RAW novel - Chapter 195
194화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생존본능이 경고한다.
당장 이곳에서 도망치라고.
신격을 얻어 완전한 마신이 됐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더욱 소름이 끼치는 사실은 그에게서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기도, 마력도, 내공도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무생명체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감각.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약해진 걸까? 어떤 사고로 인해 가지고 있던 힘을 전부 잃어버리게 된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만 그건 나만의 바램의 불과할 것이다.
방금 전 내 두 눈으로 이곳을 날려버리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으니까.
그렇다면….
‘반박귀진(返朴歸眞).’
그가 있던 무협 세계관에서는 어느 정도의 경지, 아니 정점의 경지에 도달해 깨달음을 얻게 되면 다시 평범했던 사람처럼 돌아오는 현상이 있다.
그것을 반박귀진이라 일컫는다.
힘이 전부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겉으로만 일반인과 다를 것 없이 느껴지는 것이다.
‘화경 따위는 진즉에 넘어선지 오래겠군. 저 괴물 같은 새끼.’
지금의 나도 충분히 강해졌지만 아직은 모든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
적어도 저놈과 대적하려면 레메게톤을 얻고 난 뒤여야 한다. 만반의 준비를 해도 모자란 상대다.
어쩌다 저놈이 이곳에 온 건지는 몰라도 우연히 마주친 이상 굳이 싸울 필요가 없었다.
황급히 몸을 숨기려는 순간.
이번에는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자일!”
“프…레이……?”
저 멀리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프레이가 보인다.
아직 사태 파악이 되지 않은 것인지 해맑게 미소를 짓고 있다.
그녀의 어깨에는 아스모데우스가 앉아있다. 어째서 저들이 이곳에 온 건지는 중요치 않다.
그저 저 괴물 같은 놈에 눈에 띄지 않게 이곳을 벗어나는 게 최우선이다.
“여기 다 자일이 이렇게 만든 거에요? 자일이 아무리 강해졌다지만 혼자서 제발…….”
“프레이!!!!!!”
──콰아아아앙!
벼락 같은 폭음.
동시에 밀려오는 거대한 힘의 파동.
자욱하게 피어난 흙먼지가 걷히자 전신에 피칠갑을 한 프레이의 모습이 드러난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그녀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그녀가 서 있는 자리를 제외한 주변 일대에는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찰나에 순간.
내가 마기를 사용해 그녀를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프레이 본인이 검을 들어 자신의 몸을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그녀 또한 옆에 있던 지형지물과 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에 식은땀이 났다.
“하아…. 하아…. 이게 대체 무슨…….”
프레이가 부들거리는 몸을 고정한 채 전방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이질적인 기운을 풍기는 한 사내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 그 존재감은 태산 같은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응당 무인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기운들이 일절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호오……. 이걸 막을 수 있는 인간이 있을 줄 몰랐는데 그쪽 계집은 꽤나 흥미롭구나.”
그러나 그 귀기가 넘쳐흐르는 그의 붉은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저것이 인간의 탈을 쓴 무엇인가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재앙’이라는 이름의 귀신이 인간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은 감각.
이쪽 대륙에서는 흔히 접할 수 없는 검은 머리칼은 군데군데 바래져 새하얗게 물들어져 있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 때문일까.
시리도록 차갑다.
마치 예리한 날붙이를 보는 듯하다.
옷깃만 스쳐도 살갗이 베일 것 같은 그런 인간.
그의 눈동자는 핏물을 가득 담아 보석으로 만든 것처럼 아름답다.
저것이 과연 인간이 맞는가.
그러한 생각을 한 순간, 그녀 본인도 모르게 저절로 누군가의 이름을 내뱉었다.
“소천마 천악천…….”
한껏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그의 얼굴이 자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 차갑게 굳었다.
탁.
단 한 번 발을 내딛었을 뿐인데 어느새 그는 프레이의 앞에 다가와 그녀의 목덜미를 쥔 채였다.
“계집. 본좌를 아느냐?”
“!”
프레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허공에 매달린 그녀가 안간힘을 다해 몸부림을 쳤지만 그의 손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마치 무쇠 같은 단단함을 자랑했다.
오러를 입힌 손으로 쥐어뜯어도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할 정도니 프레이의 입장에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찌 이런 힘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말해라.”
그 순간.
천악천의 발밑과 사방에서 쏟아지는 칠흑의 사슬.
촤르르르르륵!
강력한 마기를 품고 있는 사슬 수 십 개가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지면에서만 등장한 것이 아닌 허공에서도 모습을 드러냈기에 천악천의 입장에서는 공간이 열린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과거 자일이 쓰던 부패의 사슬과는 같은 선상에서 비교를 하는 것조차 실례일정도로 차원이 다른 기술이었다.
애초에 지금 자일 지그하르트는 완벽한 신격을 얻은 마신이기도 하고, 그의 마기는 다른 마신들과 비교해도 훨씬 정순하고 짙었다.
자신의 힘만이 아닌 다른 마신들마저 사역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의 마기가 한데 뒤섞여 매일 같이 다투고 있었고, 자일 지그하르트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 기운들을 자신의 것으로 갈무리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마기였다.
그가 지닌 고유 속성과 합쳐져 은은한 검보랏빛을 띄는 마기.
“이곳에서 느껴지는 이질적 기운이 바로 네놈이었구나.”
투둑.
천악천이 힘을 주자,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쇠사슬들이 힘없이 끊어졌다.
허나 자일 지그하르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미 다음 공격을 준비해둔 상태였다.
허공을 수놓는 수 백 개의 흑창.
일렬로 줄지어선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장엄함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초가속(超加速).”
마기와 결합된 마력이 그의 전신을 휘감는다.
“마기응축(魔氣凝縮).”
오른손에 만들어낸 창에 마기를 응축시켜 더욱 강화한다.
그리고 이내 프레이의 멱살을 쥐고 있는 천악천의 손을 향해 힘껏 던졌다.
“…….”
저도 모르게 손을 놓아버린 천악천이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 일격을 피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인 자신의 행동을 복기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초월자인가 뭔가 하는 놈들과는 다르군.”
자일은 대답 대신 상공에 떠 있던 창들을 떨어뜨렸다.
그야 말로 폭격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살벌한 광경.
하나, 하나가 작은 마을 하나 정도는 가볍게 지워버릴 위력을 품고 있는 창들이 오로지 한 명의 사내를 도륙내기 위해 낙하한다.
자일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프레이를 자신의 품안으로 데려왔다.
다급히 소리치는 자일 지그하르트.
“괜찮습니까, 프레이?”
“……네. 괜찮아요. 그보다 저자가 설마 천악천입니까?”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한 괴물이군요.”
신성력은 다룰 수 없어 그녀를 치유할 수는 없었으나 다행히도 그녀가 원천속성 중 재생을 다루고 있었기에 그녀의 신체는 금세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최근 혹독한 훈련 끝에 자신의 원천속성 또한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된 프레이였다.
“프레이도 직접 마주하셨으니 알겠지만 저자는 지금 만나서는 안 될 상대입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말을 채 끝내기 전에 무형의 검기가 자일의 목덜미를 노리고 다가왔다.
자일은 당황하지 않고 레비아탄의 권능인 ‘폭식(暴食)’을 발휘해 그 검기를 먹어치웠다.
【……맛있다.】
머릿속에서 만족스러운 레비아탄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악천의 시선이 자일 지그하르트에게로 향했다.
그 또한 어떤 이질감을 느낀 것이다.
“……신기하군. 네놈 어디서 나를 본 적 있지 않느냐?”
“…….”
“역용술이나 인피면구처럼 외형을 바꾼 것인가. 아니지. 이 세계라면 구태여 그런 수법을 쓰지 않아도 외형 정도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을 테지. 안 그러느냐?”
“뭔 개소린지를 지껄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 네놈을 처음 봤다.”
“처음 봤다라……. 그런데 어째서 네놈에게 자신을 용사라고 일컫는 머저리들과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이지?”
과거, 천악천이 용사 파티의 짐꾼시절 그는 그들의 음식에 천리추종향(千里追從香)을 섞어 놓은 적이 있었다.
어쩌면 이 세계에서 천악천 밖에 맡지 못하는 냄새.
자일 지그하르트에게서 미약하지만 그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일 지그하르트가 천리추종향이 섞인 음식을 먹어서가 아닌, 최근 용사파티의 인원 전부와 만났기 때문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방금도 말했지만 나는 네가 누군지 모른다. 그리고 이곳 또한 나와 하등 관련이 없는 곳이고. 그러니 더 이상 헛소리 그만하고 가던 길 가라.”
“가던 길이라……. 처음부터 내가 찾아온 곳은 이곳이었으니 여기가 내 가던 길이겠지. 그리고 다음 목적지는 바로 네놈과 저 계집이 되겠군. 분명 네놈은 나를 알고 있다. 나 또한 네놈을 알고 있고. 그러니 네놈의 정체를 알아내야겠다. 내가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성미를 지니고 있어서 말이지.”
소천마의 시선이 내 옆에 있는 프레이게로 향했다.
“계집. 어떻게 이 몸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지?”
“…….”
프레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외통수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의 이름을 내뱉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실수라고 한들 이름을 내뱉은 것만으로 본래도 종잡을 수 없는 그저 재앙과 같은 사내의 관심을 끌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대답을 하자니 자신을 죽여 달라고 광고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프레이는 안간힘을 다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지만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을 눈치 챈 자일이 결국 입을 열었다.
“내가 말해주었다. 너의 이름에 대해서.”
“호오. 네놈이 내 이름을 말해주었다라? 그렇다면 네놈은 어찌 나의 진명을 알고 있는 것이냐? 이 몸이 이 세계에 온 이후로 진명을 밝힌 것은 몇 되지 않을 턴데……. 네놈은 나를 오늘 처음 봤다고 하지 않았느냐?”
본래 계획대로라면 대충 얼버무리고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이대로라면 저 미친놈이 프레이에게 광적으로 집착을 할 것이라 예상했다.
어떻게든 저 놈의 관심을 돌려놓는 것이 자일 지그하르트에게는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일단 내게 관심을 돌린 뒤 상황을 보다가 자리를 뜬다.’
“음……. 말하지 않겠다는 건가? 그래. 그러면 팔 한짝을 뜯겨도 그 입이 열리지 않을 것인지 한 번 실험해 보아야겠구나.”
“잠깐.”
“……무엇이지?”
“말하겠다. 내 정체에 대해서.”
평소라면 망설이지 않고 자일 지그하르트의 머리통을 뽑아버렸을 천악천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와 프레이에게 작은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그래. 어디 한 번 말해 보거라.”
“내 이름은 아벨 크로이. 용사 파티의 전 보조 마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