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in the Academy as a Warlock RAW novel - Chapter 54
53화
“끄윽!”
극심한 두통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지끈거린다.
기침을 하자, 검붉은 핏덩이가 한 웅큼 튀어나왔다. 마치 장기가 불타는 것처럼 끔찍한 통증이 전신에 엄습한다.
시야가 흐리다.
힘이 풀린 나는 바닥을 짚은 채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서너 번 깊게 호흡을 하자, 점차 통증이 가라앉으며 서서히 컨디션이 돌아왔다.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대한 대검.
‘분명 내 몸이…….’
나는 다급히 손을 들어 내 상반신을 더듬었다.
뢴달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지?”
……몸이 붙어 있다.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라다무스는 여전히 가부좌를 튼 채 생각에 잠겨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방금 일어났던 것처럼 선명한 감각.
결코 꿈 따위가 아니다.
그 고통, 그 느낌은 진짜였다.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상반신이 잘려 나갔다.
내 두 눈으로 덩그러니 서 있는 하반신을 똑똑히 보았다. 그 광경을 떠올리자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어제 일, 아니 방금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다.
…죽음.
확실하다.
나는 분명 죽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음성.
【죽음을 맞이한 소감은 어떤가, 계약자여. 네놈 덕분에 기분 나쁜 기억이 되살아났구나.】
‘아스모데우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 몸의 권능 중 하나인 원시회귀(元始回歸)란 것이다. 주신(主神)의 시간을 탐하여 타천한 대가로 얻어낸 것이지.】
‘이게 권능이라고…? 이런 권능을 지니고 있었단 말이야?’
【고작 치천사에 불과했던 이 몸이 지옥의 왕과 맞설 수 있었던 이유가 하나 뿐 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냐? 애초에 이 권능을 탐내지 않았더라면 내가 지옥에 떨어져 마신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권능이 있다고 왜 말하지 않았지?’
【원시회귀(元始回歸)란, 죽어야만 발동되는 권능이다. 본디 주신이 다루던 힘이었던 만큼 이 몸이 지니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지. 바알에게 도전했던 때라면 모를까. 지금의 나는 죽음이란 것을 경험하지 않은 지 10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런 권능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을 만한 시간이지. 뭐, 어찌됐건 그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으니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더냐?】
정말 내가 한 번 죽음을 경험했다는 건가.
……믿기지가 않는다. 그러나 내 뇌는 그것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손이 덜덜 떨린다. 심장이 곤두박질친다.
두렵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죽음이란 것을 경험했다.
역설적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실감했고, 생명이란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아스모데우스. 이 권능은 얼마나 지속되지…?’
【내 마기가 무한한 이상 끝없이 계속될 테지만……. 그 전에 네 정신이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 네놈도 알다시피 나약한 인간의 몸으로는 권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부하가 간다. 더군다나 레게메톤도 얻지 못한 지금의 네놈으로서는 권능조차 제대로 다룰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을 맞이할수록 회귀하는 시간대는 점점 더 짧아질 것이고, 결국에는 몸도 정신도 붕괴된 채 내게 이 고통의 연쇄에서 해방시켜 달라 애원할 테지.】
‘그놈을 죽이지 못하면 계속해서 죽음을 반복해야 된다는 얘기인가? 죽음을 거듭할수록 회귀하게 되는 시점은 점점 짧아지게 될 테고?’
【그렇다. 마기에 침식당해 미쳐버리거나 그 전에 네가 그 놈을 죽이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지. 신격을 얻은 나조차도 제어하지 못한 불완전한 힘이니라. 애초에 ‘시간’을 탐낸 내 욕심이 만들어낸 인과인 것이지.】
……원시회귀(元始回歸). 설명만 들어보면 세계의 법칙을 무시하는 초월적인 권능이라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의 내가 다루기에는 과분한 능력이었다.
최상위 마신인 그녀조차 불완전하다 칭하는 힘.
나 따위가 다룰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처럼 제어는커녕, 권능에 잡아먹혀 무한한 시간의 굴레 속에 죽음 보다 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 게 분명했다.
강제로 권능을 발동한 탓인지 몸 안에 마기가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이대로 몇 번을 더 버틸 수 있을까.
5번? 4번? 어쩌면 그 이하일까.
…모르겠다.
지금 상태로 보았을 때 앞으로 4번도 채 버티지 못하고 정신이 붕괴하거나, 부하를 이기지 못한 영혼이 갈가리 찢겨나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이대로 끝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자충수(自充手)다.
권능이 도리어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죽음보다 더 끔찍한 형태가 내 미래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인해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
밑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심해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무력감이 전신을 뒤덮는다.
그대로.
계속해서.
가라앉는다.
짙은 심연이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는 듯.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린 채.
나를 향하고 있다.
“……그만.”
짝!
이빨이 부서질 각오로 이를 악물며, 있는 힘껏 뺨을 때렸다.
고개가 뒤틀릴 정도의 충격과 동시에 비릿한 철분 맛이 입안에 맴돌자 머릿속 어둠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지, 지그하르트? 갑자기 왜 그러는 것이냐?”
마기 침식에 영향 때문인지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리를 맴돈다.
태어나 처음 경험해 본 죽음은 내 정신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죽고 싶지 않다. 소스라치게 두렵다.
-포기해. 포기@%면 편해. 어차피 이 끝은 지옥이야.
-왜 그렇게 악착같이 돌$%^려 애쓰는 거야? 돌#$%다고 행복$%질 수 @% 것 같아?
-기억해. 네가 살던 「현실」은 이$%&*^다 더 끔직한 지옥이잖아? 꺄하하하하하.
머릿속을 울리는 부정적인 말들을 애써 무시한 채 끊임없이 되뇌인다.
무너지면 안 된다. 여기서 무너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돌아가야 한다. 나는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지금껏 어떻게 버?왔는데, 악착 같이 살아온 내 수고를 헛?게 만들 수 없다.
이제야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간의 노력들이 드디어 싹을 틔웠다.
지랄 맞을 빙의를 통해 들어온 세상에서 개죽음을 맞이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가족.
사랑하는 이들.
꿈.
목표.
부정적인 생각들을 걷어내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것이 이 세계에서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그래. 이건 내게 다시 한 번 주어진 기회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비록, 이 권능으로 인해 끝없는 회귀를 반복하게 되더라도….
애초에 이 권능이 없었다면 새롭게 시작할 기회조차 주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 다시 생각해보자.
그 괴물 같은 놈을 죽일 방법을.
저택은 이미 봉쇄된 상태다. 억지로 마법을 뚫고서 나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 전에 그 괴물 같은 놈이 들이닥칠 확률이 높았다.
검은 로브를 걸친 외팔의 검사.
말도 안 되는 크기를 자랑하는 대검.
‘정면에서 싸우면 승산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가능했다. 그가 이 방안에 있는 모두를 도륙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길게 봐줘도 15초가 채 되지 않았다.
거기에 내가 마기를 응축하여 만들어낸 창들을 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모조리 소멸시켰다.
상식의 범주 내에서 생각하면 안 되는 괴물.
최소 9서클 어쩌면 그 이상의 경지에 도달한 검사.
대체 저만한 강자가 어째서 이런 곳에 존재하는 것인가.
‘그건 무투기(武鬪技)였나…?’
다시 생각해보니 마나를 사용한 것 같지는 않았으나 워낙 찰나에 순간이었기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얼핏 마기(魔氣)를 느낀 것 같기도 하였는데…….
‘잠깐. 마기……?’
검붉은 참격.
마기.
상식을 초월한 무력.
어쩌면, 이 상황을 헤쳐 나갈 활로가 보일 것도 같았다.
그 순간, 거대한 마력이 저택 전체를 뒤덮으며 미래를 본 라다무스가 소리쳤다.
“아아…!! 벌써 이곳까지 도달한 것인가…. 이리도 허무하게 끝이 나다니, 결국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정해진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이냐! 참으로 짓궂구나, 마신이여! 희망의 끝에서 무너져 가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겠지! 결국에는 나를 능멸하기 위해 이러한 권능을 내린 것이었구나!”
또 다시 예정된 미래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어떤 미래를 보셨습니까?”
“……모두가 죽었네. 거대한 대검을 쥔 외팔 검사. 그가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일 걸세. 사신(死神) 사신이 도래했네. 우리는 모두 죽게 될 것이야.”
나는 담담하게 물었다.
“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모든 걸 체념한 듯한 목소리였다.
“……자네는 사지가 짤린 채 미소를 짓고 있었네. 죽음을 맞이한 순간 미소를 짓다니 모든 걸 체념이라도 한 것인가 보군.”
“사지라고 하셨습니까? 상반신이 잘린 게 아니란 말입니까?”
그 말에 라다무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자네… 지금 장난 하는 겐가? 이러한 마당에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제겐 중요합니다. 말씀해주십시오.”
“…정신이 나갔나 보군. 그래. 죽음이 눈앞에 닥치면 제 아무리 영웅의 일족이라도 두려울 수밖에 없겠지. 상반신이 아닌, 팔 다리였네. 내가 정확히 봤지. 이제 좀 속이 시원한가?”
미래가 바뀌었다…!
여전히 내가 죽는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조금이나마 미래가 바뀌었다. 거기다 라다무스의 말대로라면 나는 죽음을 맞이한 순간에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만약 그것이 모든 것을 체념한 끝에 지은 미소가 아니라면…….
미래의 나는 그 순간에 어떤 희망을 보았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무엇을 보았을까.
지금 내가 간절히 찾는 단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
그것을 찾아낸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생각해라, 생각해 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정해진 운명은 피할 수 없다.
최선의 수.
“일리야(Ilya).”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지며 목을 든 기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창(魔槍) 악시온(axion).”
그리고 악시온을 손에 쥔 채로 마기를 끓어 올렸다.
쿵!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저벅. 저벅. 저벅.
외팔의 사내가 방안으로 들어온 순간, 나와 일행들은 모든 공격을 퍼부었다.
“…….”
정확히 2분.
이 방에 있는 모두가 죽고, 내 팔 다리가 잘려나가기 까지 걸린 시간이다.
생소한 감각.
엔도르핀이 과하게 분비된 까닭인지 고통보다는 뭔가 허전하고,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나는 멍하니 눈앞에 사내를 바라봤다.
외팔의 사내에 오른쪽 옆구리에서는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생채기를 내는 게 고작이었던 첫 싸움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괴물 같은 놈…….’
서걱!
마지막 남은 머리통마저 바닥에 떨어지며, 나는 의식을 잃었다.
안타깝게도 내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 미소를 짓고 있지 않았을까.
이것이 내 두 번째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