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in the Academy as a Warlock RAW novel - Chapter 93
92화
마물 소동으로부터 삼일이 지났다.
제국은 여전히 축제 중이었지만 학교 측은 아카데미 전면 봉쇄를 선언했다.
외부인들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한 결정에 시민들이 상당히 반발했지만, 이사장인 아슈타르는 그런 의견들을 모두 묵살하고 당당히 선언했다.
“불만이 있다면 직접 찾아오십시오.”
그녀의 한 마디에 여론은 금세 가라앉았다.
아카데미 이사장 이전에 초월자인 그녀였다.
제 아무리 담대한 성미를 지니고 있다 해도 그녀에게 직접 따질 인간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아카데미 내부에는 외출 금지령이 떨어졌다.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될 때까지는 학생, 교관, 교수, 사용인 등 아카데미 내부의 모든 인간들이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꽤나 강경한 조치였지만 대부분 수긍하는 눈치였다.
진상 조사를 위해 특별 수색팀이 꾸려졌지만 아직까지는 큰 수확을 거두지 못한 듯 했다.
이번 사건의 사상자는 총 7명.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였다.
그중에 학생은 2명, 교관은 4명, 교수가 1명이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오랜 조교 생활 끝에 이제 막 교수 직위에 오른 인물이라고 하였는데 처음 시체를 발견 했을 때 전신이 날붙이에 썰린 것처럼 갈기갈기 조각 나 있었다고 했다.
이러한 이야기들 때문인지 학생들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아카데미 내부에 흑마술사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모두가 지니고 있었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이미 한 번 불이 붙은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제국 최고, 최강의 명성을 지니고 있는 아카데미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내 학우가, 내 선생님이, 내 사용인이 어쩌면 마신숭배자가 아닐까? 어쩌면 흑마술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모두의 마음속에 싹트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고, 서로가 서로를 경계했다.
의심이 커질수록 자연스럽게 학생들 사이에 거리는 멀어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붙어 다니는 일들이 없어졌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마신숭배자를 확인하는 일종의 테스트 같은 것들이 돌고 있었다.
직접 손을 맞잡고, 서로의 마나를 확인하는 것이었는데 진짜 흑마술사인 내가 보기에 그닥 신빙성 있는 테스트는 아닌 듯 했다.
마기를 잘 다루지 못하는 흑마술사라면 이러한 행동을 했을 때 무심코 마기가 새어나올 수는 있었지만, 그 정도도 할 줄 모르는 흑마술사가 아카데미에 잠입했다는 것부터가 오류였다.
그 외에도 다양한 테스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었지만 내 기준에서는 민간요법과 다름이 없었다.
학생들도 이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행동들을 하는 이유는 안정감을 얻기 위해서 일 것이다.
이렇게라도 확인을 해서 내 학우가, 내 친구는 흑마술가 아니라는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기 위해 하는 것일 테고, 그만큼 학생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번 사건을 꾸민 이들은 이러한 점들을 노린 것일지도 모른다.
의심암귀(疑心暗鬼).
학생들의 마음속에 작은 의심을 심어주어 장차 제국의 기둥이 될 이들의 결속력을 흩뜨려 놓는 것.
뭐.
전부 내 추측에 불과한 얘기다.
허나 내 직감은 이번 사건을 꾸민 이들이 마신숭배자들의 연합인 ‘게티아(Goetia)’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애시 당초 그들 외에는 마땅한 용의자로 떠오르는 이들이 없었다.
어쩌면 이 마저도 확증편향의 오류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직감을 믿기로 했다.
아카데미 내부에 퍼져 있는 72교단의 교인들에게 이번 사건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모으라고 명령하였고, 교단 측에는 연합이 접근해오면 곧장 내게 알리라고 전달했다.
이미 한 번 교단에 접근했던 이력이 있는 이들이니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다시 접촉해 올 것이라 확신했다.
아마 푸른달 쪽에도 연락이 올 터였다.
──이제부터가 관건이었다.
힘은 숨기면 숨길수록 좋다.
들에게 나라는 존재가 노출되면 안 된다.
72교단의 교주와 푸른달의 실질적 지배자가 ‘자일 지그하르트’라는 사실은 철저히 숨겨야만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그들은 아군이 아닌, 적일 확률이 높았다.
…아니.
확실했다.
그렇기에 최후의 최후까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천악천만 해도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이외에도 신경 써야 할 게 한 둘이 아니었다.
“…지그하르트. 자일 지그하르트!”
“네, 네!”
“내가 몇 번을 불렀는 줄 아나? 마신숭배자로 몰리기 싫으면 멍 때리지 말고 똑바로 임해라! 이제 곧 네 차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아카데미 내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신숭배자들을 색출해내기 위한 검사를 하는 날이었다.
“들어가라.”
이제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내 뒤에도 수많은 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니 교수 쪽은 이미 검사가 끝난 것 같았다.
나는 방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선하게 생긴 여인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어서 오세요. 형제님.”
“반갑습니다.”
“앉으시지요.”
이번에는 입학시험과 다르게 신성석(神聖石)으로 검사를 하는 것이 아닌 주교급 성직자가 직접 한 명, 한 명 검사를 하는 방식이었다.
아카데미 내에서 악마와 마신숭배자들이 나타났으니 이러한 검사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 또한 이미 그에 대한 대비를 한 상태고.
‘아르스 폰티움(Ars Pontium)’을 손에 넣은 이후로 마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나는 별 다른 걱정이 없었지만 72교단의 교인들은 아니었다.
‘미리 대비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싹 다 잡혀갈 뻔 했군.’
사건이 터진 당일.
나는 아카데미 내에 잠입한 모든 교인들을 소집해 그들의 마기를 추출했다.
마기가 없어진 이상 그들의 신체에 남은 것은 오로지 마력 뿐이었고, 제 아무리 주교라 할지라도 그들이 흑마술사인지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이든 또한 마기를 추출해준다고 하였으나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다 방법이 있다나 뭐래나.
돌이켜보면 그도 입학시험을 통과했을 터이니 나름 준비한 것이 있을 것이다.
본인 목숨 하나는 끔찍하게 챙기는 놈이니 혹시라도 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사딘 그 새끼는 어떻게 통과한 거지…? 공작가의 자제라 아예 검사를 안 했나?’
훗날 들은 얘기였지만 모든 신입생들이 입학시험에서 신성석 검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
샬럿이 말하길.
-신성석 검사? 그딴 걸 왜해. 내 신분이 곧 라파엘의 신도라는 것을 증명하는 건데. 우리 가문이 교단에 기부한 금액이 얼만지나 알아?
라고 했었다.
신분부터가 이미 출발점이 다르다는 얘기다.
‘사딘 그 망할 새끼는 이번에 확 걸렸으면 좋겠는데….’
내 앞에 앉아있는 여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자일 지그하르트입니다.”
“어머! 전설 속 영웅의 후예를 여기서 뵙게 되다니 이거 참 영광이군요. 호호.”
“저야 말로 라파엘 교의 주교님을 뵐 수 있어 영광입니다.”
“호호호! 얼굴도 잘 생기신 분이 말솜씨도 멋지십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부터 그대의 몸에 제 신성력을 주입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약간 간지러울 수 있지만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몸 안을 살펴보는 것 뿐 이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녀의 몸에서 성스러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내 그녀의 손을 타고 내 어깨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
약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주교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뒤쪽에 자리 잡고 있던 이단심문관 두 명이 검집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직업정신이 투철한 이들이었다.
주교가 무슨 말만 하면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들 기세였다. 모두가 예민한 시기였다.
심각한 얼굴을 한 주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참 이상하네요…….”
이단심문관 한 명이 거칠게 소리쳤다.
“설마. 이교도입니까!”
내 어깨에서 손을 뗀 주교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약한 마기가 느껴집니다.”
그 순간.
이단심문관 한 명이 검을 뽑아들어 내 목에 가져다 댔다. 문득 입학시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 빌어먹을 이교도 놈!”
동시에 주교가 이단심문관을 향해 소리쳤다.
“잠깐!”
이단심문관이 이를 악문 채 그녀를 바라봤다.
하는 짓거리가 꼭 나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난 놈 같았다.
“허나 여타 마신숭배자들에게 느꼈던 마기와는 그 느낌이 다릅니다. 조금 더 이질적이고, 짙은…….”
그녀의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안정감이 느껴지는 맑은 눈이었다.
“형제님. 혹시 제가 모르는 게 있다면 솔직하게 말씀해주시지 않겠습니까?”
“…….”
“아직 결정 난 게 아닙니다. 저도 무엇인가를 느끼고 이러한 얘기를 꺼내는 것이니 솔직히 얘기해주었으면 합니다.”
“사실…….”
나는 굳은 얼굴로 그녀에게 지그하르트의 일족에 얽힌 저주에 관해 얘기해주었다.
시온 지그하르트가 악룡 파프니르를 토벌하고, 얻게 된 피의 저주.
사실 그런 저주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는 모른다. 그저 입학시험 때 이사장이 그러한 얘기를 하였기에 지금까지도 쭉 이용해 먹고 있을 뿐.
주교가 내 몸에서 미약한 마기를 느낀 것도 사실은 내가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마기를 아예 감지할 수 없게 하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사장의 설정을 이용하기 위해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이다.
설마 내가 진짜 흑마술사라면 이토록 당당히 자신의 마기를 보여주지 않을 것이라는 그들의 심리를 역이용하는 것.
내 얘기를 전부 들은 그녀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다시 한 번만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번에는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잠시 동안 눈을 감고 있던 그녀가 이내 입을 열었다.
“확실합니다. 이 마기는 여타 흑마술사들에게 느낀 것과 다른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주가 틀림없는 것 같군요.”
“…사전에 미리 얘기하지 않아 죄송합니다. 그저 선입견 없이 올바른 제 자신을 검증받고 싶었습니다.”
그녀가 감격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훌륭합니다……. 영웅의 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끔찍한 저주를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며 자신을 증명해내려 하셨군요. 분명 라파엘님께서도 형제님을 축복하실 겁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내게 검을 뽑았던 이단심문관도 내게 고개를 한 번 숙이더니, 자리로 돌아가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았다.
‘뭐야. 기도 타임인가?’
나도 대충 눈치껏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았다.
계획대로 잘 흘러갔음에 만족하며, 이제 곧 나갈 준비를 하는 그 순간…….
똑똑.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흐름이 깨진 탓에 살짝 얼굴을 찡그린 주교가 물었다.
“누구십니까.”
“나일세.”
문을 열고 신부복을 입은 노인이 들어왔다. 그를 본 순간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표했다.
“추기경 님!”
“고귀하신 분을 뵙습니다!”
추기경이라 불린 노인은 너털웃음을 지며 손사래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된다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추기경……?’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힘없는 노인처럼 보였지만 그 눈에는 총기가 가득했다.
“이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이 학생에게 용무가 있어서 왔다네. 미안하지만 잠깐 나가줄 수 있겠나? 영웅의 후예에게 꼭 전해야 할 얘기가 있거든.”
“아.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주교와 이단심문관들이 곧장 방을 빠져 나갔다. 추기경은 자연스럽게 주교가 앉아있던 의자에 앉았다.
그러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
무거운 정적.
방안에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참다못한 내가 뭐라도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열려고 한 순간.
“자네. 어떤 마신의 사도인가?”
그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