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16)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16화(116/280)
개천에서 용이 날 때 3
― 딩동. 딩동. 딩동.
급하게 울리는 초인종 소리.
안 그래도 나가 보려고 했었다.
아무리 총소리가 무섭더라도 바로 집 앞에서 큰 소리가 들렸으니 안 나가 볼 수 없는 노릇이잖아.
“다들 여기 있어. 내가 나가 볼게.”
“같이 가요, 삼촌. 혼자는 위험해. 엄마, 마커슨 좀 부탁해요.”
“그래, 조심하고.”
1층으로 올라와서 현관문을 여니 마커슨의 엄마가 서 있다.
몰골이 엉망이다.
얼굴 여기저기엔 피멍이 들어 있고, 보이는 곳은 대부분 상처들로 엉망이다.
10월 초라 약간 쌀쌀한데도 반팔에 파자마 차림이다.
“미세스 워녹!”
“우, 우리 마커슨은? 마커슨은 잘 왔지?”
“네, 공부방에 있어요. 다친 곳 없고요.”
― 털썩.
그대로 주저앉는 마커슨의 엄마.
상처들을 자세히 보니 방금 난 상처가 아니다.
최소 몇 시간은 지난 상처들이다.
낮에 나와 마커슨이 공원에서 숨을 고를 때 집에선 육박전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흑인들의 신체는 상당히 우월하다.
다른 인종들과는 힘을 쓰는 근력 자체가 다르다고나 할까.
여자라고 다르지 않다.
특히나 덩치 좋은 40대 중년 흑인 여성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모르긴 몰라도 마커슨의 아빠 역시 몸이 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방금 그 총소리, 마커슨 집 맞죠?”
“어, 애 아빠가 돌아 버려서. 미친 새끼, 저기 있네.”
마커슨 엄마가 주저앉아 겨우 가리킨 곳은 우리 집 맞은편의 작은 공터.
그 순간 눈에 들어온 반파된 차 한 대.
골목이 어두워서 몰랐다.
검은색 차 한 대가 오래전 벼락 맞아 죽은 나무둥치에 박힌 채 꼼짝도 안 하고 있다.
엔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제대로 박은 것 같다.
“제이든, 옥외등 좀 켜 봐.”
“네.”
“미세스 워녹, 일단 들어오세요. 참, 할머니는….”
“아. 맞다, 우리 엄마. 내가 마커슨 때문에 정신이 빠져서. 마커슨 괜찮다니 가 봐야지. 집 정리될 때까지만 좀 부탁할게.”
“네, 그건 걱정 마세요. 근데 저기 저 차 안에 마커슨 아빠 아직 있는 거예요?”
“모르지. 도망을 쳤는지, 그대로 처박혀 있는지. 911에 신고했으니까 금방들 오겠지. 술 처먹고 운전한 것도 모자라서 지 마누라랑 자식새끼 사는 집에 총질하는 새끼는 죽어야 해. 경찰한테 끌려가서 아주 제대로 굴렀으면 좋겠다, 아예 죽어 버리면 더 좋고. 염병할 *&^$#$@@#$%&$#%^@$#%^#$%# 새끼.”
꼼짝도 안 하는 차에 대고 온갖 욕을 뱉어 내는 마커슨의 엄마.
나름 여러 욕들을 들어 봤고, 알고 있고, 직접 해 보기도 했지만 마커슨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어나더레벨이다.
삼촌과 내가 얼이 빠져 잠깐 멍하니 있는 사이 마커슨의 엄마는 비척비척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삼촌. 앰뷸런스를 기다리는 게 맞겠죠?”
“어. 저렇게 다친 사람 잘못 손대면 오히려 안 좋을 수도 있어. 차가 폭발할 위험만 없다면 그냥 두는 게 낫겠지. 기다려 보자. 금방 올 거야.”
“네.”
― 위용. 위용. 위용.
삼촌의 말이 끝나자마자 골목 어귀에서부터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우리 엘리 깨겠네.
그 뒤로 앰뷸런스와 또 다른 경찰차들이 속속 도착했고, 소방차까지 등장했다.
좁은 골목이다.
골목길에 주차된 차는 없지만 앰뷸런스부터 소방차까지 다 들어오기엔 좀 좁다.
이에 경찰차 2대가 큰길까지 막아 버린다.
그렇게 뻥 뚫린 길을 소방차가 끝까지 밀고 들어와 마커슨의 아버지가 타고 있는 차를 살폈다.
에어백이 터진 건 물론이고, 차의 앞부분까지 완전히 찌그러진 상태라 사람들은 여러 기계를 동반해 마커슨의 아버지를 꺼냈다.
마커슨의 아버지는 곧바로 앰뷸런스에 실렸지만, 몸은 축 처진 상태다.
하얀 천이 머리끝까지 덮여 있다.
죽었구나!
“아빠아!!”
마커슨이 울부짖는다.
하지만 마커슨을 제외한 그 누구도 눈물을 흘리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와 장모마저도.
곧이어 지역 방송국과 신문사 기자들까지 몰려왔다.
골목이 소란스러워졌다.
더 이상 보고 있기가 그래서 안으로 들어왔다.
11시 뉴스에서 ‘Breaking News ― Live’라는 글귀가 나타난다.
경찰차와 소방차로 인해 불빛이 번쩍번쩍한 골목길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 이곳은 만취 운전자 미스터 데렉 힐이 사망한 곳입니다. 오늘 낮, 전 부인의 집에서 자녀 양육권을 놓고 육박전을 벌였던 그는 집으로 돌아간 후, 몇 시간이 지난 뒤 되돌아왔습니다. 만취한 상태였던 그는 운전석에 앉아 집 안에 대고 5발의 총알을 발사했으나 다행히 모두 빗나가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곧바로 저쪽 나무의 둥치를 들이박는 사고를 냈습니다. 경찰은 미스터 힐이 사고를 내기 전 이미 심장 마비가 온 것으로 보고 있으며, 사격을 멈춘 이유가 아마 가슴 통증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했습니다. 이는 약물과 음주를 동시에 복용한 것 때문으로…(중략)…이웃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미스터 힐의 전처인 워녹은 이 집 가족은 평소 이웃들과 사이좋게 잘 지냈으며, 금요일마다 음식도 나눠 먹는 등….(하략).
리포터의 말이 끝나자 화면엔 미스터 힐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떴다.
그리고 곧 뉴스는 다음 이슈로 넘어갔다.
아마 내일 오후까지는 이 뉴스가 계속 반복되어 나올 것이다.
잘 사는 동네는 아니지만, 이 정도로 큰 사건이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는 동네다.
울다 지친 마커슨은 기절하다시피 잠이 들었고, 마커슨의 엄마와 할머니는 경찰들에게 불려 갔다.
그 후 소방관들은 몇 시간 동안이나 사고의 잔해들을 치웠다.
덕분에 우리 집은 새벽 내내 번쩍거리는 불빛을 마주해야 했다.
언제 잠이 들었나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마커슨이 없다.
“엄마, 마커슨은요?”
“아, 새벽에 집으로 갔어.”
“혼자서요?”
“할머니가 데리러 오셨더라고, 한… 5시쯤?”
“할머니는 괜찮으셨어요?”
“일단 겉모습은 멀쩡해 보이셨는데… 걷는 게 좀 불편해 보이기는 했어. 오늘 저녁쯤 들러 볼까 싶네. 같이 갈래?”
“네. 안 그래도 오늘은 크로스컨트리 빠지는 날이라 학교에서 일찍 올 거예요. 저녁엔 밥스가든 가야 하지만요.”
“그래. 밥스가든 가기 전에 잠깐 들르자. 마커슨이 충격이 큰 거 같아.”
“그럴 만하죠. 제가 잘 달래 볼게요.”
“에효. 우리 아들, 닳아 없어지겠네. 큼. 이거 한번 맛 좀 볼래? 볶음밥 만들었는데.”
“볶음밥을요? 엄마가요?”
“그, 너튜브 보고 하긴 했는데…. 암튼 먹어 봐 봐. 밥은 내가 하면 매번 이상하게 돼서 햇반이란 걸 샀어. 중국 마트 아줌마가 추천해 주더라고. 먹어 보니까 완전 괜찮아. 뭐, 약간 시큼한 맛이 나긴 하는데 그건 수출용이라 그런 거래. 썩지 않게 하려고 산미? 뭐 그런 거 넣어서 그렇다더라고.”
“하하하. 엄마가 햇반을 다 사 오고. 음, 주세요. 우리 엄마가 해 주는 볶음밥은 무슨 맛이 나려나.”
요즘 슬슬 시간이 나는 것 같은 엄마.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보다 굳은 머리도 좀 풀린 것 같고, 병원 일도 적당히 손에 붙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아시안 마트도 가끔 들르고, 너튜버에서 요리 채널도 자주 들여다보는 것 같다.
간장도 진간장, 양조간장, 국간장 등 종류가 여러 개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던 때가 엊그젠데.
요즘 우리 집 냉장고엔 여러 종류의 간장들이 놓여 있다.
그래 봤자 워낙 요리에는 재능이 없어 내가 만든 게 더 맛있긴 하지만.
접시에 담아내는 건 제법 그럴싸하다.
웨이트리스를 오래 한 게 이런 데서 빛을 발하네.
“으음, 먹을 만해요.”
“진짜?”
“네. 잘 볶았네요. 간도 적당히 맞고.”
“호호. 별점 4.9에 리뷰가 4천 개 달린 걸로 따라 했지. 한글로 달린 리뷰 중에 몇 개 긁어서 번역기 돌려 보니까 다 맛있다는 말이더라고.”
“어우, 그냥 나한테 말하지. 내가 쉽게 가르쳐 줄 텐데.”
“우리 아들 공부하는데 서프라이즈 해 주고 싶어서 그랬지~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지만.”
“하하. 보람이 있네요. 맛있어요. 근데 그럼 새벽에 마커슨 보내고 그 뒤로 안 잔 거예요? 도대체 이거 만드는 데 몇 시간을 들인 거예요?”
“음…. 2시간? 뭐, 집 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갔는데 잠이 와야 말이지, 좀 무섭기도 하고. 새벽에 물어보니까 타운십에서 저 나무둥치도 완전히 없애 줄 거라고 하더라고. 집 앞이 텅 비겠어.”
“저 땅은 주인이 없대요?”
“그것까진 모르겠네.”
“암튼 잘 먹었습니다. 학교 다녀올게요.”
“그래. 오늘도 좋은 하루.”
“네, 엄마도요.”
스쿨버스를 타러 가려면 마커슨 집 앞을 지나야 한다.
고요하다.
새벽쯤에 모두 잠에 빠진 게 확실하다.
마커슨 아빠의 차가 섰던 곳에 서서 집을 살폈다.
1층과 2층 창문엔 각기 하나씩 총알이 통과한 게 확실한 구멍이 나 있고, 집 외벽에도 총알 자국이 남아 있다.
총 5발을 쐈다고 했는데, 눈에 보이는 건 4개.
“한 개는 빗나간 거 같지?”
“으헉. 제이콥, 마크, 기척 좀 내자.”
“니가 뭐 하나 궁금해서 조용히 지켜본 거지. 난 4개 찾았다.”
“나도 4개.”
“1개는 저기 어디 풀숲에 떨어져 있지 않을까 싶네. 다친 사람은 없었다고 하니까.”
“그럴지도. 그나저나 마커슨은 아직 너네 집에 있어?”
“아니. 새벽에 할머니가 와서 데려갔대. 난 자고 있어서 못 봤어. 다행히 엄마가 일어나 있었나 봐.”
“마커슨은 괜찮아?”
“모르겠다, 나도.”
“마크, 생각이란 걸 좀 해라. 마커슨이 괜찮을 리가 있겠냐. 친아빠가 엄마랑 자기한테 총질했는데? 마커슨이 제이든 집으로 도망간 거 걔네 아빠는 몰랐잖아.”
“그건 그래. 죽은 사람한테 이런 말 좀 미안하지만 마커슨 아빠 하나도 안 불쌍해.”
“맞아. 안 불쌍해.”
“학교 가자.”
학교는 하루 종일 마커슨의 일로 시끄러웠다.
몇몇은 나를 비롯한 공부방 놈들 눈치를 살살 살피며 마커슨의 근황을 물어 온다.
딱 봐도 걱정보다는 흥미 있는 가십거리를 찾기 위함이다.
“불쌍한 마커슨. 이 정도면 진짜 불쌍의 끝판왕 아니냐? 잘해 줘야겠어.”
“네버 엔딩 스토리도 아니고 불쌍이 자꾸 업그레이드돼.”
“어우야. 여기서 더 업그레이드되면 안 되지. 이제 우리 마커슨 앞길엔 꽃길만 있어야지.”
“난 마커슨이 부모님하고는 사이가 좋은 줄 알았는데.”
“히익. 라이언, 넌 또 언제 왔어?”
“방금. 근데 마커슨 일 진짜야?”
“뉴스 안 봤냐? 로컬 뉴스 메인에 떡하니 박혔잖아. 인터넷에도 우리 동네 이름 치면 마커슨 아빠 얼굴부터 뜨더라.”
“라이언, 넌 어때? 머리는 괜찮아?”
“어, 괜찮아. 이 정도야 멀쩡하지.”
“그래도 몸 관리 좀 해. 어지러우면 약 먹고.”
“네네. 오늘 밥스가든에 일하러 올 거지?”
“너도 가게?”
“당연하지. 직원이 일을 해야지.”
“그래. 학교 끝나고 마커슨 집에 들렀다가 늦지 않게 갈게.”
“나도 갈게.”
“굳이?”
“어, 굳이. 먹을 거 좀 해서 갖다줘야겠다. 난 맥앤치즈 만들어 갈게.”
“그래. 그럼 난 내일 레스토랑에서 빵이랑 스프 오더해서 갈게. 난 못 만들어.”
“좋아. 그럼 난 그 다음 날 음식 싸 가지고 가야겠다. 뭘 할지는 엄마랑 상의해 볼게.”
“고맙다.”
“어우. 제이든, 네가 왜 고마워. 마커슨, 우리 친구야.”
“맞아. 마커슨, 우리 친구야. 제이든, 넌 가끔 보면 오버할 때가 있어. 네가 뭐 마커슨 형제라도 되냐?”
“하하. 그러네. 미안하다.”
미국의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다.
우리 동네에선 평소 친하게 지낸 사람이 가족상을 당했을 때, 특히 배우자가 사망했을 경우 주변에서 음식을 가져다주는 풍습이 있다.
보통의 경우는 오디처럼 레스토랑 같은 데서 투고해서 가져다주고, 정말 친한 경우엔 직접 음식을 해다 준다.
마음이 아파서 음식을 해 먹을 여유가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배달 문화가 발달된 것도 아니고.
아무리 상중이라도 배가 고프면 운전을 하고 나가서 사 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미국에도 배달 문화가 급격하게 발달하기 시작했지만, 말했듯이 이곳은 촌구석이다.
우버나 배달 어플을 설치조차 안 해 본 사람이 태반이다.
아마 우리 골목 사람들도 음식을 해다 주겠지.
이참에 닭이나 한 마리 사서 푹 고아 볼까?
요리가 귀찮긴 하지만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해 보겠나.
특히 이번 일의 경우엔 가족 사망에 대한 위로보다 놀란 가슴을 추스르라는 격려의 의미가 더 크다.
좋은 일도 아니고 가족을 해치려다 사고로 죽은 것이라 그런가?
애도는 없었고, 사람들은 냉정했다.
마치 언제 그런 사람이 살았냐는 듯 잠깐 가십으로 떠돌다 사라져 버린 불명예까지.
그리고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고, 시험은 어김없이 치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