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19)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19화(119/280)
알바를 하다 보면 1
점심시간을 이용한 단 30분간의 클럽 활동.
준비하는 데는 오래 걸렸는데, 다 먹어 치우는 데는 10분이면 족했다.
살짝 허무하기도 했지만 단 한 명도 음식이 별로라든가, 재미가 없었다든가 하는 말 따위는 뱉지 않았다.
이만하면 대성공이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었던 모양이다.
5교시는 밴드였기에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6교시 미스터 칼의 영어 수업 때는 자꾸 몸이 나른해지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차라리 딴생각을 하자.
다음번엔 진짜 그냥 인도 음식으로 가 볼까?
ACC 임원진에 인도인이 둘이나 있으니 살짝 게으름을 피워도 되지 않을까?
어느새 눈이 감겼나 보다.
누군가 어깨를 짚는다.
미스터 칼이다.
“어우, 우리 제이든 속눈썹도 기네? 그거 보여 주려고 눈 감고 명상하는 거야?”
“허억, 미스터 칼.”
“그래그래. 김밥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어? 김밥 3알에 만두 2개, 떡볶이 3개 따로 싸 줘서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고.”
그걸 또 세고 있었던 거임?
지금 양 적었다고 돌려 까는 거지?
“…죄송합니다.”
“별말씀을. 이번 주말엔 푹 자 두는 걸 권고한다.”
― 딩딩딩딩.
“수업 끝! 제이든은 특별히 에세이 2개다.”
“네….”
푹 자라며?
에세이 2개 무엇?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요즘 좀 바쁘긴 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밥스가든에서 노가다를 하는 것도 제법 품이 들고.
그나마 요즘엔 날씨가 좀 쌀쌀해져서 엄마가 출퇴근을 시켜 주니 낫기는 한데.
이번 토요일은 모처럼 아무 스케줄이 없다.
미스터 칼의 조언대로 체력 비축 겸 좀 자 둬야겠다.
― 띠링.
밥스가든의 딜런에게서 문자가 왔다.
어쩐 일이지?
― 제이든, 라이언, 둘 다 이번 토요일에 일 없으면 알바 좀 하자.
― 난 오케이. 근데 무슨 알반데?
― 나도 뭐 딱히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뭔데요?
― 그냥 주택 정원 손질. 주말인 데다 급하게 잡힌 거라 일당은 더블이래.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고.
― 오호, 드디어 가드닝에 손을 대게 해 주시는 거임? 난 무조건 콜!
― 나도 뭐, 콜!
일당이 더블이면 무조건 해야지.
좀 쉬고 싶긴 했지만 그렇게 피곤한 건 아니다.
숙제도 조금만 부지런 떨면 금방 한다.
돌도 씹어 먹을 나이다.
각성하자.
* * *
토요일 오전 8시.
엄마는 그냥 쉬는 게 어떻겠냐며 말렸지만, 시간당 40불에 9시부터 4시까지란다.
점심시간 1시간을 빼더라도, 총 6시간 일하고 240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거기다 뇌진탕이라면서도 열심히 싸돌아다니는 라이언도 한다는데 내가 안 할 수는 없지.
라이언이 차를 끌고 데리러 왔다.
마크도 튀어나온다.
“나도 태워 줘.”
“오, 너도 가?”
“어. 밥 아저씨가 아빠한테 전화했더라고. 오늘 가는 데가 엄청 부잣집이래. 하루 만에 정원 싹 갈아엎으라고 오더 들어왔다는데? 사람은 많을수록 좋다고 하고.”
“그럼 공부방 놈들 몇 데려갈까?”
“아서라. 이런 건 힘쓰는 게 달라. 워크캠프 때보다 강도가 훨씬 세다고. 너네야 평소에 일을 해 봤으니 데려가는 거지. 나도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 좀 있고.”
“그래도 마커슨은 데려가자. 마커슨도 힘 잘 써. 라이언, 딜런한테 연락 좀 해 봐.”
“오키, 기다려 봐.”
잠시 후.
“데려오래.”
“오케이, 마커슨!”
전화고 뭐고 그냥 차 안에서 냅다 불렀다.
마커슨이 졸린 눈을 비비며 창문을 연다.
“왜에?”
“시간당 40불, 6시간. 나와.”
“1분!”
눈에 눈곱이 그대로 끼어 있는 걸 보니 세수와 양치는 건너뛰고 화장실만 다녀온 것이 분명하다.
손에는 식빵 한 봉지가 달려 있다.
아마 급히 나가는 손자를 위해 할머니가 던져 준 것일 거다.
우리는 다 같이 빵을 나눠 먹으며 밥스가든으로 향했다.
밥 사장님을 비롯해 직원 20명 정도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밥스가든 전 직원이 다 동원된 거 같다.
포클레인부터 덤프트럭까지 시동을 건다.
흙을 퍼 담을 수레와 삽은 물론이고, 꽃이 잔뜩 든 트럭까지.
우리도 눈치껏 빨리빨리 물건들을 옮겨 담았다.
적당한 길이로 자라 있는 잔디 매트(sod mat)를 실은 트럭도 빠져나간다.
“대박, 이게 도대체 뭔 난리야?”
“이 정도면 새집 짓고 마무리로 가드닝 단장 하는 정도 아니냐?”
“그러게. 오늘 빡세겠는데. 괜히 더블 부른 게 아닌 모양이야.”
트럭 4―5대가 연이어 나가고, 우리는 딜런이 모는 밴에 몸을 실었다.
[Private Road] 라고 적힌 팻말이 붙은 좁은 오솔길.커다란 나무들에 가려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는 오솔길로 트럭들이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더니 넓은 정원과 함께 커다란 저택이 나타난다.
“우와, 우리 동네에 이런 집이 있었어?”
“이 길 지나간 적 몇 번 있지만, 안이 이렇게 되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네.”
“그러게. 밖에서 안이 전혀 안 보여. 와, 이 좁은 길에 이런 집이 숨어 있었다니.”
“사생활 보호 한번 완벽하네.”
우리 골목에서 가까운 하트우드 공원 제일 위쪽엔 옛날에 상원의원을 지낸 하트우드가(家) 사람들이 살았다는 커다란 맨션이 있다.
그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문제는 그 앞마당의 한쪽이 엉망으로 뭉개져 있었다는 거다.
밥 아저씨가 일꾼들을 불러 모았다.
“자, 다들 일 시작하자. 여기 이쪽 보면 잔디가 완전 망가졌잖아. 얼마 전에 큰 파티가 있었는데, 그때 말들이 좀 놀라는 일이 있었나 봐. 이참에 잔디들 싹 걷어 내고 수석 정원처럼 예쁘게 만들어 달라신다.”
“네.”
“거기 고딩들은 와서 꽃이랑 머치(mulch) 좀 나르고, 자잘한 심부름들 좀 해라.”
“네!”
“풋, 우렁차서 좋네.”
작업이 시작되었다.
있던 땅을 완전 갈아엎은 후 다지고, 근처로 커다란 바위들을 예쁘게 진열해 틀을 잡았다.
수레에 꽃과 자갈들을 옮겨 담는 등 잔심부름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 또각또각.
점심으로 나눠 주는 햄버거를 먹고 있는데,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보니 남자애 하나, 여자애 하나가 말을 타고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여자애는 아리아.
남자는 어디서 봤다 싶었더니, 디베이트 원정 대회에서 아리아가 들어갔던 방의 주인이다.
“어? 아리아?”
“와, 뜻밖의 만남이네? 니들 여기서 뭐 하냐?”
“우리는 일하러 왔지, 너는?”
“난 여기가 우리 집이라서. 아, 얘는 내 약혼자 해럴드.”
“뭐?”
“아아, 제이드은? 나 너 알아. 지난번 디베이트에서 아리아를 제치고 LD 부문 우승했지? 풋, 이런 데서 그런 모습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어떤 모습을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뜻밖이긴 하네.”
― 대박. 여기가 아리아 집이었어?
― 뭐야, 약혼자까지 있으면서 그렇게 들이댄 거야?
옆에서 마크와 마커슨이 소곤거린다.
라이언은 묘한 표정으로 아리아와 해럴드를 보고 있다.
나도 어이가 없긴 하다.
“우리 일해야 해서, 그만 가던 길 가.”
“왜? 난 만나서 반가운데. 더 말하면 안 돼?”
“훗, 계속 이야기하고 싶으면 말에서 내려오던가. 목 아프다.”
“아, 미안, 미안.”
― 착.
아리아가 내리니까 해럴드도 머뭇거리며 말에서 내린다.
그냥 가라는 소리였는데 또 굳이 내려설 것까지야.
“아, 여기이. 우리 집에 성질 사나운 너구리 가족이 이사 왔거든. 그 말 아냐? 너구리 가족이 이사 오면 사람이 이사 나가야 한다는 말. 뭐, 우리 집이야 워낙 넓으니까 상관은 없지만. 아무튼 그놈들 이사를 왔으면 조용히 살 것이지, 우리 맥스랑 루나를 건드려서 난리가 났었다니까. 아, 맥스랑 루나는 얘들이야. 애가 맥스, 애가 루나. 멋지지?”
아리아가 뒤쪽에 서 있는 말들을 가리킨다.
지들이 잘난 걸 아는 놈들이다.
머리를 흔들며 뽐을 내는 두 마리의 말들.
어째 우리를 보는 눈빛이 마치 하등 동물들을 보는 듯하다.
“너구리가 개진상인 거 알지? 뭐, 옛날부터 엄마가 여기 바꾸고 싶어 했는데 이참에 잘 됐다 싶은 모양이야. 바로 사람을 부르네.”
“너구리들 중 성질 사나운 놈들은 얼굴에다 침도 뱉어. 잘못 맞으면 실명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라.”
“와. 제이든, 넌 그런 것도 알아? 암튼, 지금은 없어. 가드너 아저씨들이 엄청 큰 트랩 설치해서 너구리 가족 5마리나 잡았거든. 성질이, 어우. 저쪽 멀리 산에다 풀어 줬는데, 풀어 줄 때도 오만 성질을 다 냈다고 하더라고.”
“근데 너구리들은 머리도 좋고, 귀소 본능도 있어서 2시간 거리 정도 떨어진 데다 버려야 하는데 그렇게 했대? 안 그럼 곧 되돌아올 거야. 알고 있으라고.”
“진짜? 그건 몰랐네. 물어봐야겠다. 근데 넌 어떻게 너구리 특성까지 잘 알아? 진심 멋지네.”
아리아와의 대화에 옆에 서서 할 일 없이 노려만 보고 있던 해럴드가 헛기침을 해 댄다.
“큼.”
“뭐? 어쩌라고? 너 소개해 줬잖아. 내가 뭐 더해 줘야 해? 먼저 가고 싶으면 가.”
“야, 아리아. 내가 자작 얼굴 봐서 너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매너 제대로 지켜라.”
“뭐래, 끈 떨어진 연 주제에.”
“사생아년 주제에.”
“뭐! 야! 해럴드. 너 지금 말 다 했어?”
“니가 먼저 시작했거든? 막말로 너네 엄마 미국 평민이잖아. 어쩌다 자작 눈에 들어 이런 저택에서 떵떵거리면서 살지만, 솔직히 니가 나랑 수준이 맞냐?”
“남작 지위만 가진 개털이 할 말은 아니지. 우리 아빠 돈으로 빌어 먹는 주제에 어디서 막말이야? 그리고 왜 너겠냐? 너네 가족들 다 영국 저택에 사는데 너만 여기 밀어 넣은 이유 진짜 몰라? 직위 줄 테니 돈 받아 오라는 거 아냐. 너도 집에서 팽 당한 거야, 새꺄.”
두 사람의 말다툼이 갈수록 험악해진다.
말릴까?
팝콘 각인데 그냥 둘까?
슬쩍 곁눈질을 해 보니 다들 팔짱을 끼고 구경하는 중이다.
― 또각또각.
뒤에서 눈치만 보던 말들이 지겨운 표정으로 저쪽으로 가 버린다.
똑똑한 것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닌 거 같네.
해럴드의 발음에 묘하게 영국 악센트가 많이 섞여 있다 했더니 태생은 영국인 모양이다.
“근데 우리 이제 점심시간 끝났거든. 저쪽 가서 마저 하면 안 될까?”
“큼! 루나!”
해럴드가 이미 저쪽으로 가 있는 말을 불러 댄다.
귀찮은 듯 또각거리며 걸어오는 루나.
그대로 말 위에 올라탄 해럴드가 우리를 한 번 쓰윽 보더니 가 버렸다.
“개새끼.”
나지막하게 해럴드의 등 뒤에 대고 손가락 욕을 날리는 아리아.
고대로 뒤돌아서 우리를 향해 방긋 웃는다.
“그럼 또 보자, 제이든.”
“그래.”
“아, 너만 괜찮으면 난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어. 말만 해.”
“…아직 안 갔냐?”
“간다, 가. 매엑스!”
귀찮다는 듯 다가오는 또 다른 말.
아리아가 말 위로 훌쩍 뛰어오른다.
예전에는 나도 말 좀 탔었는데.
그립네.
쩝.
― 또각또각.
아리아를 태운 말이 사라졌다.
무슨 시트콤 한 편을 본 거 같다.
잠시 멍하니 있던 우리는 곧 폭풍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대박, 나 지금 뭐 본 거냐? 영국 귀족들 어쩌고 하더니 별거 없네.”
“원래 영국 놈들이 제일 양아치인 거 모르냐?”
“그러는 마크 너네 조상도 영국 아니냐?”
“아니거든. 우린 독일계가 제일 많아. 증조할아버지랑 할아버지가 독일계고 할머니는 벨기에 쪽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엄마 쪽으로 영국계가 섞여 있긴 한데…. 아우, 복잡해. 암튼 독일 피가 제일 많대. 라이언, 너는?”
“오, 그래? 우린 프랑스 쪽이 압도적인데. 우리 할아버지 이름은 아예 ART야. 그 이름으로 건설업에서 일했다니까, 웃기지? 큼. 그래서 내가 예술적 감각이 탁월한가? 제이든, 너는?”
“나야 뭐 그냥 한국인이겠지. 우린 단일 민족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본 라이언과 아무 생각 없이 답한 나.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는 솔직히 아무런 타격이 없다.
솔직히 이런 대화엔 마커슨이 제일 난감하다.
본인들의 족보를 모르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같은 흑인이라도 현대에 아프리카에서 이민을 온 경우와 그 옛날에 노예로 끌려온 경우는 내적 자존감이 많이 다르다.
전생에서야 나도 내 뿌리를 정확히 알았지만 제이든으로 살고 있는 지금은 정확하지도 않고.
갑자기 상황을 깨달은 마크와 라이언이 우리 눈치를 본다.
내가 또 풀어 줘야지.
별수 있나.
“어우, 밥 다 먹었으면 이제 일하자.”
“오, 오케이!”
“아저씨들, 이제 뭐 해요?”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