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21)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21화(121/280)
찾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1
다시 월요일.
ACC 임원 미팅을 기점으로 11월이 시작되었다.
“우리 ACC 임원에 인도인이 2명이나 있잖아. 인도 음식으로 가자.”
“근데 인도인들은 다 손으로 음식 먹지 않아? 괜찮을까?”
“포크 사용하면 돼. 굳이 인도인들의 관습을 배우고 싶으면 일회용 비닐장갑을 써도 되고.”
“아, 그래도 되겠네.”
“그럼 이번에도 먹는 걸로 가는 거야? 난이랑 커리 같은 거?”
“고기! 고기는 꼭 들어가야 해. 브라만들이 먹는 거 노! 노!”
“베지테리언들을 위한 코너를 따로 만들면 되지. 그쪽을 오디가 맡으면 되겠네.”
“구, 굳이? 이런 날이라도 고기 쪽 맡으면 안 될까? 학교 행사라 어쩔 수 없이 말이야.”
“크크큭. 오디, 브라만이라는 고귀한 혈통의 아드님께서 그러면 어떡하냐?”
“뭐래. 나 집안에서 내놓은 자식인 거 몰랐어?”
“이그, 그래. 내가 한다, 내가. 내가 베지테리언 코너 맡을 테니까 오디 넌 치킨 쪽 맡아. 됐지?”
“오예~”
고기를 맛보기 위한 오디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미아가 자진해서 베지테리언 쪽을 맡기로 했다.
“그럼 오늘도 해산. 다음 주 월요일에 다음 단계 논의하자고.”
“오케이!”
오디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10분간의 회의는 딱 10분으로 끝.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철칙이다.
마지막으로 미스터 칼의 고개가 끄덕여지며 ACC의 11월 행사가 결정되었다.
1교시 수업을 위해 찾아간 내 사물함.
아리아가 새초롬하게 서 있다.
“뭐야?”
“얼굴도장.”
“그런 거 안 찍어도….”
“이크, 나 간다. 쟤는 진짜 무슨 제이든 안테나가 달려 있나. 타이밍 한번 끝내주네. 또 보자.”
― 야! 아리아! 제이든 나랑 사귄다고!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맞짱 한번 떠?!
크리스틴의 목소리가 복도에 쩌렁쩌렁 울린다.
주변에서 다 돌아본다.
크리스틴을 여친으로 만든 건 잘한 선택인 걸까?
아리아가 급히 도망가는 걸 보면 제대로 한 선택이 맞긴 한데 왜 창피한 건 내 몫인지.
뛰어오는 크리스틴의 팔을 낚아채 황급히 복도를 벗어났다.
* * *
이번 주는 ‘칼리지 데이(College Day)’ 행사가 있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일간 이어지는 행사로 12학년 대상이다.
9월의 커리어 데이(Career Day)가 대학 진학을 포기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라면 칼리지 데이는 동네 주립대와 작은 사립대, 혹은 전문대 등이 본인 학교를 홍보하기 위해 찾아오는 거다.
이 칼리지 데이가 지나가면 본격적으로 전국의 대학 입학 사정관들이 학교를 찾아온다.
사실 아이비를 비롯한 좋은 학교들은 이 깡촌까지 오진 않는다.
몇 년 전에 교장의 간곡한 요청으로 컬럼비아랑 스탠포드에서 한번 들러 줬다고는 하더라.
모두가 기대했던 그해 우리 학교 학생들 중 그 학교들로 진학한 학생은 없었다.
칼리지 데이 행사는 순전히 이 근방 작은 대학들을 위해 장소를 제공해 주는 거다.
커리어 데이처럼 이런저런 쓸 만한 선물들을 나눠 주는 것도 아니라서 나에게는 아예 관심조차 없는 행사라고 할 수 있겠다.
라틴 수업 시간이 끝나자 오디가 다가온다.
“제이든, 칼리지데이 행사 안 가?”
“거길 뭐 하러? 바빠. 그리고 체스 클럽 가야 돼. 오늘까지 제치면 진짜 잘릴 듯. 근데 왜? 너 거기 가게?”
“고민 중, 알렉스가 너 데리고 얼굴만 비치고 가라고 몇 번이나 말을 해서. 알렉스는 학교 신문에 낼 사진 찍는다고 어제부터 가 있잖아. 너한테 반가운 사람 있을 거라던데?”
“반가운 사람?”
“어, 나도 몰라.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어디 한번 궁금해서 죽어 보라’면서 말 안 해 주던데.”
“뭔 꿍꿍이래. 그렇게 말하니까 가고 싶잖아.”
“그치? 나도. 그래서 말인데 진짜 가서 얼굴도장만 찍고 올까?”
“…그래, 그러자.”
점심시간.
알렉스는 사진 찍으러 다닌다고 없고, 나와 오디, 마커슨이 행사장에 들렀다.
“오, 생각보다 큰데?”
“그러게. 커리어 데이 때랑 맞먹는 거 같아.”
한쪽 주차장을 완전히 채우고 있는 각 대학들의 깃발들.
현재 US 랭킹으로 60―70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주립 대학과 200위권의 자잘한 4년제 대학들의 부스가 주르륵 줄을 서 있고, 한쪽으론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부스마다 1―2명의 사람들이 앉아 자기 학교의 홍보물들을 쌓아 두고 있었다.
개중엔 학교 티셔츠나 모자를 나눠 주는 곳들도 있었지만, 솔직히 밖에서 사용하기는 좀 그렇다.
부스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 열의를 가지고 자기 학교 홍보를 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대충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느낌.
기대도 없었다.
그저 예상했던 딱 그만큼의 그림이었다.
“헤이, 제이든!”
멀리서 알렉스가 부른다.
동네 커뮤니티 칼리지 부스다.
익숙한 얼굴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든다.
“어? 엄마!”
“아들, 왔어?”
“와. 엄마, 여기 어쩐 일이에요? 입학 사정관도 아닌데 어떻게 온 거예요? 설마 어제부터 있었어요? 왜 말을 안 했어요?”
“어우. 제이든, 숨 쉬어, 숨. 하하, 학교 행정실 친구가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지원 나온 거야. 마침 나도 시간이 비고, 너도 볼 수 있고, 좋잖아.”
“아, 그럼 아침에 말을 하지 그랬어요?”
“서프라이즈 하려고 그랬지, 하하. 근데 너 안 오려고 했다며?”
“네, 별로 관심 가는 대학은 없어서요.”
“하긴. 그렇긴 하겠지. 내 아들이지만 정말 자랑스럽다니까. 샘, 얘가 내 아들이야.”
옆에서 아까부터 인사할 타이밍만 재고 있는 사람.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바로 손을 내민다.
“안녕, 난 샘이라고 해. 만나서 반갑다. 리사한테 니 이야기 많이 들었어.”
“아, 네, 반갑습니다. 제이든입니다.”
악수는 나하고 하는데 왜 이렇게 엄마를 의식하는 거냐고.
어쩐지 너무 뜬금없는 방문이다 했다.
엄마가 시간 빈다고 이런 행사에 오는 사람이냐고.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은 썸 타는 중이다.
지난번에 밖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던 간호사는 아니고.
커뮤니티 칼리지의 입학 사정관이라….
나쁘지는 않지만, 성에 차지는 않는다.
그래도 엄마가 은근히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으니 예의는 지키자.
“엄마, 근데 저 이제 체스 클럽 가야 해서요.”
“어어, 얼굴 봤으니까 됐어. 가 봐.”
“아, 이거 챙겨 가. 생각보다 잘 나온다.”
부스에 들르는 학생들에게 기념으로 나눠 주는 학교 볼펜 한 뭉텅이를 집어 주는 샘.
“네, 고맙습니다. 가자, 오디.”
“어? 어.”
딱 봐도 오디와 마커슨은 눈치를 못 챘다.
알렉스는 실실 웃는 것이 벌써 눈치 깠고.
라이언이 없어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제이든! 달링! 어? 리사 아줌마, 안녕하세요!”
“어, 크리스틴. 근데 달링? 제이든? 뭐지? 뭘까?”
― 계약 관계예요. 걱정 마세요. 요새 제이든 귀찮게 하는 애들 많아서 크리스틴한테 부탁한 거예요.
알렉스가 옆에서 귀띔한다.
모호하던 엄마 얼굴이 밝아진다.
엄마도 며느릿감으로 크리스틴은 성에 안 차는 모양이네.
“리사 아줌마, 그럼 또 봬요. 제이든, 나온 김에 구경 좀 하고 가자.”
“체스 클럽 가야 돼.”
“그래? 그래. 그럼 잘 가라. 오늘 방과 후에 디베이트 클럽 있지?”
“어, 왜?”
“나도 가 줘? 아리아가 이제부터 클럽 활동 열심히 할 거라고 벼르고 있던데.”
“…아냐. 잘 헤쳐 나가 볼게.”
“그래, 힘내라. 헤이, 엘사! 같이 가!”
크리스틴이 멀어져 간다.
상위 5% 안에 드는 우월한 외모를 가지고도 아직 남자친구가 없는 건 다 저 성격 때문일 거다.
초딩 때 잭나이프 같은 거 좋아하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마크가 자기 마음을 알쏭달쏭해하는 게 이해 가기도 하고.
카페테리아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사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이제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얼굴이라도 비쳐야지.
뛰다시피 걸었다.
도서관 문을 열자 여기저기서 체스 게임이 한창이다.
― 야호! 이겼다.
― 3분 체스는 가짜야! 난 생각을 많이 해야 된다고!
― 그럼 어떡하냐? 시간이 없는데.
― 다음 주에 세인트 마가렛 스쿨에서 컴피티션(competition, 대회) 있는데, 갈 사람!
.
.
.
혼잡스럽네.
되돌아갈까 고민하는 중에 체스 클럽 회장인 잭이 다가온다.
“헤이, 잭.”
“제이든, 왔어? 난 너 영영 안 오는 줄 알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칼리지 데이 행사 다녀오느라고.”
“거기에 니가 관심 가질 만한 대학이 있어? 어? 이거 커뮤니티 칼리지 볼펜이잖아. 제이든, 너 이 학교 관심 있어?”
“아냐. 그냥 줘서 받았어.”
“암튼 대학 사람들도 똑똑한 놈들은 다 알아본다니까. 저쪽에 앉자. 체스 한판 할래?”
“시간 얼마 없는데, 괜찮겠어?”
“3분 체스 하지, 뭐.”
“그래. 밥 먹으면서 해도 되지?”
“당연하지.”
자리를 잡았다.
잭은 체스에 진심인 12학년이다.
굳이 나와 체스를 두자며 끌고 오는 건 이유가 있어 보인다.
한 손으론 샌드위치를 먹고, 다른 한 손으론 체스를 두기 시작했다.
첫판 승.
“역시, 잘하네. 한 판 더?”
“시간 돼?”
“한 판 정도는?”
“오케이.”
이제 시간이 진짜 얼마 안 남았다.
본인들 게임을 끝내고 수업에 들어가려던 학생들이 주위를 둘러선다.
체스 클럽 역시 너드들의 모임이다.
너드라고 해서 모두 공부를 잘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지루한 체스를 좋아하는 괴짜들일 뿐.
누군가 클럽 회장과 대결을 벌이는 게 신기한 건지, 아님 나를 알고 모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다 말고 둘러선 것은 좀 의외긴 하다.
잭이 체스판을 정리하며 무심한 척 묻는다.
“너 혹시 에이미 ‘제러스’라고 알아?”
“에이미…. 아, 사우스팍 미들 다니던 애? 6학년 때 학교 빼고서 대회 나간 적 있는데, 그때 만났었어. 나보다 한 학년 높았던 것 같은데.”
“역시 아는구나, 혹시나 했는데. 걔가 너 안부 묻더라. 너 그 대회에서 중학생들 완전 쓸어 버렸다며? 그 뒤론 왜 안 나갔어?”
“그냥 별로 관심이 안 가서? 체스는 취미로만 할 생각이라.”
“글쿤. 암튼 에이미가 너 한번 보고 싶대. 어떻게 컸는지 궁금하다나? 키도 나보다 크다고 했더니 안 믿던데? 너 6학년 때 완전 땅꼬마였다며?”
땅꼬마라.
은근히 시비조네.
뭐지?
여기도 남녀상열지사 뭐 그런 건가?
호르몬 때문인가?
사춘기가 지나고 고딩이 되니 다들 짝 찾기에 진심이다.
어질어질하네.
“내가 7학년에서 8학년 올라가는 여름 방학에 급격하게 자라긴 했지. 에이미는 잘 지내지?”
“뭐, 그런 것 같긴 하더라. 굳이 모든 대회에 참석해서 상을 휩쓸어 가고 있지. 근데 걔도 아직 내셔널에서 우승한 적은 없대.”
“근데 어쩌다 내 얘기가 나온 거야?”
“글세, 왜 그랬지? 기억이 안 나네. 암튼 꼭 한 번만 더 나와서 붙어 보자던데? 그런 의미에서 다음 주 토요일 대회에 나가 보는 건 어때?”
“아, 그땐 디베이트 대회 있어.”
“디베이트… 를 매번 나가야 되는 건 아니잖아.”
“뭐, 그건 아니지만 난 디베이트가 재밌어서. 아, 이겼다.”
“…그러네.”
“그럼 나 오늘 출석했다. 담 주에 봐.”
“제이든, 그냥 하는 말 아니다. 한 번만 더 생각해 봐.”
“솔직한 이유를 말해. 그럼 생각해 볼게.”
“…솔직하게?”
“어.”
“너무 재수 없어.”
“뭐?”
“에이미, 그 애 너무 잘난 척 나댄다고. 뭐라더라, 본인이 있는 한 우리 학교가 1등 할 일은 없을 거라나. 이제 10학년이니 앞으로 3년간은 1등 자리 넘보지 말라더라고. 기가 막혀서.”
“…….”
생각해 보니 그 애 성격이 만만치 않았던 거 같기는 하다.
나와의 경기에서 시간 초과로 졌을 때, 스태프에게 시간 경고 안 해 줬다고 온갖 성질을 다 부렸었지.
마지막에 내가 1등을 하니 와서 사과도 했고, 또 나름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해 줘서 다행이라고도 했었다.
순간적으로 욱하는 감정은 있어도, 나름 괜찮은 애라고 생각했는데 전형적인 강약약강이었나?
그럼 가서 눌러 줘야지.
고민은 짧게.
“그래, 나가 볼게.”
― 아싸아!!
주변에서 환호를 한다.
머쓱하네.
체스는 사실 돈도 돈이지만 실력이 들통날까 봐 더 안 했던 건데.
한동안 연습을 좀 해야겠네.
공부방 놈들을 이용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