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23)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23화(123/280)
인연의 끈은 어디까지 2
숫기가 하나도 없는 놈들.
그렇게 좋다고 날뛸 때는 언제고, 내 눈짓 한 번에 자라목들이 된다.
그나마 클럽 회장인 잭은 넉살이 좀 있다.
그래서 회장이 됐나?
“그, 사람이 너무 많잖아. 저기 봐 봐. 완전 탑 사립에서도 왔다니까? 그리고 나랑 저기 저 제시는 6라운드까지 올라왔었다고. 그냥 상대가 좀 나빴을 뿐이야.”
“…….”
“맞아, 맞아. 사실 우리가 6라운드까지 올라온 것도 엄청 발전한 거지.”
“그래도 우리가 맨날 지는 건 아냐. 지난번엔 2등도 했었어.”
“야, 그때는 5개 학교밖에 없었잖아. 오늘은 자그마치 22개 학교에서 왔다는데, 6라운드도 과분하지.”
실패에 인이 박여 버린 자들의 비겁한 변명들이 계속 이어진다.
듣고 있기 힘들다.
마커슨도, 오디도, 알렉스도 심지어 라이언까지도 힘든 환경이지만 이겨 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며 사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6라운드에 올라온 것조차 과분하다며 당연한 듯 현실에 안주해 버린다.
“그럼 니들, 나한테 더 기대하는 거 없는 거지?”
“그, 그럼. 당연하지. 에이미를 그렇게 발라 버렸는데. 우리 소원은 이미 성취됐어.”
“맞아. 속이 다 시원하더라.”
“제이든, 이거 샌드위치 맛있다. 먹어 봐.”
“빌리, 눈치 좀 챙겨.”
“내가 뭐!”
.
.
.
한섬이고, 상금이고, 그냥 집에 갈까?
이런 애들이랑 무슨 미래를 논하겠나.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뒤돌아보게 될 때쯤 잭이 툭 말을 던졌다.
“제이든, 그래도 난 네가 이왕 나온 거 1등 먹었으면 좋겠어.”
“…….”
“우리라고 뭐 지는 게 좋겠냐? 우리도 당연히 이기고 싶지, 비록 1등은 못 해 봤지만 가끔은 2등도 해 봤고. 근데 안 되는 걸 어떡해. 졌다고 분해하면서 맨날 죽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이게 뭐라고.”
“…….”
“그래서 우리가 타협한 건 각 대회 나갈 때마다 그날의 목표를 정하는 거야. 오늘은 3등까진 누구 하나 올라가자. 오늘은 1등 한번 해 보자. 목표 달성이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슬프지만 괜찮아. 다음에 또 나가면 되니까.”
“…….”
“이번 목표는 에이미를 이기는 거였어. 우리 힘으로 몇 번을 도전해 봤지만 안 됐거든. 그런데 니가 이겨 줬어. 그러니까 오늘의 목표는 이룬 거야. 근데 넌 우리랑 다르잖아. 너, 체스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1등 하는 체스 천재라며?”
“뭐? 누가 그래?”
“에이미. 디베이트 판에 아리아가 있다면 체스판엔 네가 있다고 그러더라. 너 킨더 때 고등학생들까지 다 발랐다며? 뭐, 비록 시작하는 애들이긴 했지만, 난리 났었다고 그러던데. 그리고 6학년 때는 7― 8학년들 다 발라 버리고 1등하고. 왜 체스를 계속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오면 네가 1등일 거라고 하더라.”
어?
이건 자각하지 못했던 건데?
디베이트 천재 아리아의 성공 신화가 나 때문에 깨지긴 했다.
하지만 내가 체스판에서 그런 이미지인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사실 6라운드에서 에이미가 정신을 제대로 부여잡고 플레이했으면 내가 졌을 가능성도 크다.
킨더 때도 그렇지만 6학년 때도 한 번 나가고 더 이상 체스에 미련을 두지 않은 것은 내 실력이 뽀록날 거 같아서였다.
전생에서도 체스는 심심풀이로 가끔 하던 것이었고, 프로들하고 붙어서는 무수히 깨졌었다.
이거, 이거.
갑자기 부담이 확 되네.
이 체스 너드 놈들이 실패에 익숙한 거라면 난 도망자인 건가?
비겁한 변명이라도 변명은 해 두자.
나중에 망신당하기 전에.
“그건 아냐. 나 사실 체스 실력 별로야. 어쩌다가 운이 좋은 거였을 뿐.”
“흔히들 운도 실력이라고 하지.”
“…….”
“암튼 너무 부담은 갖지 마. 7, 8라운드는 너 마음 가는 대로 해. 이기면 좋고, 져도 상관없고.”
“그렇지만, 이기면 진짜 좋긴 하겠다.”
“나도. 응원할게.”
“으히히. 나도.”
방금 전까지 속으로 욕한 애들이 나를 응원한단다.
새로 태어난 후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다른 이를 무시하는 찌질함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미안하네.
반성하자.
잭 말대로 체스 따위 뭐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전생의 인연이 연결되다 보니 괜히 혼자 의식을 했던 것 같다.
사람 참 변하지 않는다.
“미안.”
“어? 네가 왜?”
“그냥.”
“아, 너, 속으로 우리 욕했구나?”
“뭐?”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래. 우리 다 떨어지고 한 번 참석했던 네가 올라갔으니 욕할 수도 있지. 괜찮아.”
“아, 아냐, 그런 거.”
“아님 더 좋고. 헤헤.”
식은땀이 다 난다.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지?
인연을 길게 이어 갈 클럽은 아닌 거 같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다.
― 삐. 7라운드 시작하겠습니다.
점심을 다 먹고 좀 쉬다 보니 어느새 7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총 20명의 플레이어가 남았다.
1,200명이 넘는 플레이어들 중 살아남은 강자들.
이길 수 있을까?
기다란 일직선으로 테이블 5개가 놓였다.
팀당 4명씩 5개의 팀.
각 팀에서 1등을 한 사람만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
단순 승패로 판가름이 나지 않으면 살아남은 말들의 점수를 환산해 우승자를 가린다.
25%의 확률.
다들 에이미 수준 정도면 해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20명 중 10명이 인도인을 포함한 아시안이고, 나머지 10명은 백인과 라티노, 흑인이 섞였다.
다들 참 똑똑하게도 생겼다.
― 시작.
난 3번 테이블의 C 주자다.
A 주자가 일어나 B에게 다가간다.
말이 하나씩 옮겨진다.
A는 다음 C인 내게로 와서 폰 하나를 옮긴다.
B의 판에서 움직인 말을 내 판에서도 움직인다.
난 B와 다른 말을 움직였다.
A의 눈썹이 살짝 들썩여진다.
D의 판으로 옮겨간 A.
이번에도 A는 같은 말을 움직인다.
D가 우리 판을 한 번 쓰윽 보더니 역시 다른 말을 움직인다.
B, C, D의 판이 모두 제각각이다.
3번 테이블 A ― 1승 2패.
곧 결과가 나왔다.
떨어질 확률이 높다.
다음 B 주자가 일어선다.
A의 눈에 순간 살기가 일고, 그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친다.
그럼 나는 이번 판은 살살 가 볼까?
방어진을 펼쳤다.
D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숍을 먼저 건드리는 실수를 한다.
3번 테이블 B 결과 ― 2승 1패.
B의 입에 미소가 깃든다.
우승 확률이 높다.
대충 놈들의 전술을 봤다.
내 차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라 버렸다.
3번 테이블 C 결과 ― 3승 0패.
이겼다.
D가 우리 셋을 다 이기지 못한다면 내가 올라갈 확률이 높다.
멀리서 체스 너드들이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만세를 부르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한다.
물론 행동만이다.
그 입에선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이 커다란 강당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22개의 고등학교에서 몰려온 학생들과 코치, 선생님, 자원봉사로 따라온 학부모, 한섬 회사 관계자들, 그리고 심사 위원들 등등.
어림잡아도 2천여 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선수들의 경기를 관람하는 거다.
간혹 작은 실수 때문에 탄식을 내뱉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조용하게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주자인 D는 제 페이스를 잃어버렸다.
멘탈이 유리 멘탈인 모양이다.
내가 3승을 해 버리자 어차피 해도 안 될 거란 판단이 선 건지 3패를 해 버렸다.
― 삐―
호각이 울리고 선수들은 모두 체스판에서 손을 내렸다.
“7라운드 결과 발표합니다. 1번 테이블 승자 어퍼 세인트 클레어 하이스쿨의 오웬 질러, 2번 테이블 승자…. 3번 테이블 승자 센트럴 팍스 하이스쿨의 제이든 패터슨, 4번 테이블 승자…. 5번…. 이로써 총 5명의 수상자들이 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우수상이 남아 있죠. 수상자들은 15분의 휴식 후 8라운드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 와아아아아!
― 우와와와아!!
그제야 터지는 함성 소리.
관중석에서 숨죽이고 있던 학생들과 코치들이 튀어나온다.
아직 1등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제부턴 꼴등을 해도 5천 불이 학교로 들어온다.
“으어어어. 진짜로 해낼 줄은 몰랐다고.”
“내, 내, 흐억, 내 고딩 시절에 우리 학교에서 상금을 타는 걸 보게 되다니. 흑.”
“맞아. 이런 큰 대회에선 예선 탈락이 대부분이었는데.”
“훌쩍. 너무 멋있다, 제이든.”
“클럽 활동 열심히 하자. 제이든, 내가 진짜 잘해 줄게.”
“잘해 주긴 뭘 잘해 줘? 울지나 마라.”
.
.
.
디베이트에서 처음 우승을 했을 때 미스터 크롭스키와 아벤이 서로 얼싸안고 살짝 눈물을 보이는 추태를 부리긴 했지만, 나머지들은 환호를 하면서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어깨를 두드려 주거나 대충 가벼운 포옹을 하거나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너드들은 하나같이 동그란 안경을 들어 올리며 눈물 콧물을 빼고 있다.
아니.
환호를 하려면 얼싸안고 축하를 해 주던가.
이 무슨 장례식 분위기란 말인가.
“야, 야. 울지 마. 누가 보면 내가 울린 줄 알겠어.”
“네가 울린 거 맞아. 나 이제 체스에 미련이 없어.”
“나도. 제이든, 네가 몰라서 그래. 저기 에이미가 손 흔드는 거 안보이냐? 저게 우리한테 얼마나 못되게 했는데. 흐윽.”
“맞아. 나더러는 곰 새끼라 그랬어.”
“헐, 진짜? 선생님한테 이르지 그랬어.”
“그, 그런 걸 뭐하러.”
“아, 부끄러워하지는 말고오!”
샌드위치를 건네던 너드는 의외로 소녀 감성이다.
아무리 봐도 이 클럽은 나랑 안 맞다.
도망이 살길이다.
“나 화장실 좀.”
“어, 갔다 와. 네 자리 청소해 두고 있을게.”
“뭘 청소까지. 괜찮아.”
“아냐. 우리가 하고 싶어서 그래.”
“그러든지.”
― 삐.
마지막 8라운드가 시작되었다.
5명의 선수들.
이번 라운드엔 시간 제약이 없다.
하지만 이건 바둑이 아니다.
너무 길게 끌면 무언의 압박이 들어온다.
그걸 버텨 낼 고딩들은 거의 없다.
대략 90분간의 지루한 공방전이 오가고,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A 선수 ― 2승 2패.
B 선수 ― 3승 1패.
C 선수 ― 3승 1패.
D 선수 ― 1승 3패.
E 선수 ― 2승 2패.
이번 라운드에서 나는 선수 B다.
선수 C와 동점.
오디보다 짙은 피부색을 지닌 인도 남학생.
12학년이란다.
며칠 전 프린스턴 대학에 수시 원서를 썼다고.
아이비 중에서도 HYP라고 따로 불리는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이 학교들은 ED(얼리 디시전, 원서 넣고 합격하면 무조건 가야 함.)가 아닌 SCEA(싱글 초이스 얼리 액션, 원서 넣고 합격해도 반드시 갈 필요는 없음.)를 채택한다.
대신 Restrictive Early Action(REA)을 같이 적용해 다른 학교에 수시 원서를 함께 낼 수는 없다.
오직 내 학교에만 원서를 내라는 뜻.
대신 합격해도 오고 싶으면 오고, 말고 싶으면 말아라 하는 정책이다.
에세이 역시 하나가 아니다.
메인 에세이 하나에 학교에서 물어보는 에세이만 해도 보통 3개는 된다.
그중 쉽게 답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단어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써 가며 써야 하는 게 대학 에세이다.
불과 며칠 전이 원서 마감이었던 걸 생각하면 이 대회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용하다 할 수 있겠다.
그 와중에 이 자리까지 올라온 걸 보면 확실히 보통내기는 아니다.
나의 1패도 저 학생 때문이다.
물론 그의 1패도 나 때문이지만.
“동점자가 나온 관계로 남아 있는 말의 점수로 환산을 하겠습니다. 비디오 판독을 하는 동안 관중들께서는 조용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안내 방송.
숨죽인 듯 장내가 조용해졌다.
10분 후.
결과가 발표되었다.
― 한섬 컴퍼니 주최 체스 대회의 1등, 1만 불의 주인공은 센트럴 팍스 하이스쿨의 제이든 패터슨 군입니다. 축하합니다. 수상자들은 모두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 우와와와와!!!!
― 짝짝짝짝!!!
우리 학교 너드들만 환호하는 건 아니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환호와 박수를 보내 준다.
마주하고 있던 인도계 학생 C 역시 악수를 청하며 박수를 보낸다.
속에선 천불이 나겠지만 어쨌든 밖으로는 환한 미소를 지어 준다.
이겼다!
한섬.
그 회사의 돈 1만 불을 땡겼다.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