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22)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22화(22/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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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1
이곳의 여름은 그리 덥지 않다.
동중부쪽이지만 북부에 가깝게 있기에 한 여름에도 30도 이상 올라가는 기온은 대략 3주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나름 여름 기후에 대한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다고나 할까?
그건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문제는 아니다.
야생 동물들에게도 이곳의 여름은 지나기 좋은 계절인 것이다.
그리고 그 놈들은 생각보다 똑똑하다.
삼촌의 비명소리에 나와 엄마가 동시에 튀어나갔다.
우리가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벌써 3년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째려만 보다가 여행가기 직전 삼촌은 큰 맘 먹고 뒷 야드 펜스를 손보기로 했다.
산기슭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뒷마당.
조금만 조심성이 없으면 굴러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경사가 급해서 그 근처로는 잘 가지도 않는다.
이 동네에서 야드 농사를 짓지 않는 집은 우리뿐이다.
대부분이 작은 텃밭을 가꾸는데 상추부터 방울토마토, 고추, 호박 등을 직접 재배해서 길러 먹는다.
생각보다 그거 쏠쏠하다.
그래서 우리도 내년부터는 텃밭을 가꾸기로 했다.
텃밭을 지으려면 그 전에 펜스부터 다듬어 동물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 후 땅을 다지고, 철조망을 두르는 작업이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펜스 작업.
홈디포(Home-depot)는 집 수리, 관리, 보수 등 집에 관한 모든(?) 재료들을 파는 커다란 마켓이다.
다른 유명 체인마켓들도 몇 개 있지만 우리 집에서 20분 거리엔 홈디포 밖에 없다.
진짜 웬만한 물품들은 다 있다.
6월 7일, 금요일.
5학년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삼촌과 나는 홈디포에 다니며 펜스 보수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다 날랐다.
작은 트럭을 빌리는 데도 돈이 들기에 소형 SUV를 끌고 진짜 몇 번을 들락거리며 발품을 팔았는지 모르겠다.
인터넷으로 대충 주문하면 되지 않냐 했지만 삼촌의 엉뚱함은 또 이런 데서 발현이 되었다.
꼭 직접 보고 결정해야 한단다.
할 수 없이 일주일 내내 홈디포를 들락거리며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었다.
첫 삽을 뜬 후, 너튜브를 보고 또 보고.
아무튼 그렇게 삼촌은 한달 가까이 퇴근 후와 주말을 펜스 작업에 바쳤다.
그리고 여행 일자 며칠 전 가까스로 그걸 완성 했던 거였다.
남은 여름 동안엔 텃밭의 터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려고 했었는데.
삼촌의 엄청난 굉음에 뛰어나가 보니 펜스 한쪽이 완전 박살이 나 있었다.
앞번 집주인의 자전거가 떨어져 있던 딱 그 지점에서.
전부 망가진 게 아니니 다행이긴 하지만 삼촌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듯 하다.
나도 마찬가지고.
“으으. 도대체 어떤 놈이야!”
“곰이야. 곰.”
갑자기 툭 튀어나온 마크 아버지.
내가 이 동네 어린이계의 홍반장이라면 이 아저씨는 어른들계의 홍반장이시다.
“네? 진짜 곰이요?”
“어? 너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무슨 일이야? 누가 이렇게 만들었어? 어?”
“그냥 작은 시비가 붙었었어요. 괜찮아요. 그나저나 곰이라니요?”
“흠. 그게 3일 전에 곰이 새끼 둘 데리고 나타났었어. 이 집을 시작으로 온 동네를 다 들쑤셔놨다니까. 개들이 얼마나 짖어대던지. 근처에 토끼 굴이 큰 게 있었던지. 담날 나오니 여기저기 털들이…어우. 암튼 며칠 동안 애들도, 개들도 야드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니까.”
“헐.”
“넥스트도어에도 경고 올라오고, 우리 골목은 특별히 따로 단체메일도 뿌렸었는데 못 봤지?”
“아. 네. 여행하느라 확인을 못했어요.”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이렇게 직접 왔지. 근데 제이든. 진짜 괜찮냐? 혹시…”
마크 아버지가 삼촌을 슬쩍 본다.
억울한 표정의 삼촌이 마크 아버지를 끌고 사라진다.
나이아가라 호텔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러 가는 거겠지.
‘얘 트라우마 있으니 자꾸 캐묻지 마라’면서 있었던 일을 아주 상세히 말해 줄 게 뻔하다.
본인의 누명도 벗어야 될 테니.
비밀이 없는 씨족사회라니까.
‘그나저나 곰이라니.’
가끔 이곳은 야생동물들에게 천국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다람쥐나 토끼, 너구리, 오소리, 스컹크 등은 일상이고, 한국에선 한 번도 본적 없는 새들이 마음껏 하늘을 누빈다.
옛날 노래 중에 ‘파란 나라의 파랑새를 안다’ 어쩌고 하는 가사도 있었는데.
그때는 진짜 세상에 파랑새는 없는 건지 궁금했었는데.
파랑새 많다.
온 몸이 파란 새들이 여기저기 잘도 날아다니며 떠들어 제낀다.
시끄러워서 낮잠을 잘 수 없을 정도다.
뱀들은 심심하면 아스팔트에서 나와 햇볕을 쬐고 있고, 사슴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똥을 뿌리고, 칠면조들은 운전자를 빤히 쳐다보며 도도하게 차도를 건넌다.
일전에 엄마의 트라우마를 깨운 것도 길거리 사슴이었는데.
그래도 아직까지 직접 곰을 마주친 적은 없었다.
가끔 출현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잠시 후 돌아온 마크 아버지.
내 눈치를 슬며시 보면서 말을 돌린다.
“큼. 암튼 조심해. 제이콥네랑 조나단네는 텃밭 철조망까지 엉망으로 만들어놨다니까. 야생 동물들이 아주 활개를 치고 다녀.”
“근데 동물단체에는 연락했어요?”
“어. 며칠 내로 뒷산 한번 돈대. 한 5년 전인가? 그때도 한번 나타나서 난리가 났었는데. 그땐 가족 아니고 혼자였거든. 이번엔 가족이라 찾으면 동물원에 데려가거나 국립공원으로 이동시킨다던데?”
“빨리 잡혀야 할 텐데요.”
“그러니까 너무 돌아다니지 말고, 음식 냄새 풍기는 거 밖에 내놓지 말고. 오케이? 그럼 나 간다. 제이든은 얼굴에 연고 꼭 바르고.”
“네. 들어가세요.”
엄마가 여행 동안에는 ‘사진 찍는 것 말고는 휴대폰 사용 금지’를 선언했기에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았었다.
그 사이에 이런 일이 있을 거라 누가 알았겠나.
삼촌은 틈나는 대로 확인하는 것 같았는데, 회사 메일만 체크한 모양이고.
짐까지 다 풀고 나니 삼촌이 진절머리를 낸다.
“어우. 더 이상 못하겠다. 오늘은 그냥 쉴란다. 펜스고 뭐고 더 못해.”
“그래. 오늘은 일단 쉬자. 니들 먼저 씻어. 난 일단 빨래는 돌려놓고 씻을 테니까.”
“빨래도 그냥 내일…”
“안 돼. 빨래는 지금 당장 해야 돼. 옷에 쉰내 나.”
“어. 그럼 나 먼저 씻는다.”
“네.”
운전을 그리 오래 했으니 지칠 만도 하지.
가기 전에도 펜스 때문에 그 고생을 했으니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할 정도다.
난 운전도 하지 않고, 뒤치다꺼리도 하지 않고 오로지 내 몸만 챙겼는데도 이리 피곤한데.
거기다 생전 처음으로 치고받는 싸움까지 하고.
갑자기 또 광대가 아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마크 아저씨가 끝까지 약 바르라고 했던 걸 보면 티가 많이 나긴 하나보다.
얼굴 멍이 빠질 때까지 한동안은 집구석에만 박혀 있어야겠다.
***
일주일 정도 쥐죽은 듯 지내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게 어디 뜻한 바대로 되던가.
다음날 11시쯤.
엄마와 삼촌이 모두 일하러 가고 없는데, 초인종 소리가 시끄럽다.
– 딩동딩동 딩동딩동딩동.
쉽게 문 안 여는 걸 아니 몇 번을 눌러댄다.
별 수 없이 일어나 나가보니 올 9월에 8학년이 되는 13살의 제이콥이 얼굴을 들이민다.
이 동네 꼬맹이들 중 가장 어르신인 분.
이제는 키가 훌쩍 자라 옆에서 보면 삼촌과 나를 보는 것 같지만 내 말이라면 껌벅 죽는 시늉까지 하는 착한 놈이다.
물론 본인 부모 앞에서는 지난 한 해 ‘중 2병’을 제대로 소화해내기도 했지만.
6학년 때부터 우리 동네를 본인 동네로 알고 있는 친구 매튜와 함께 동네 꼬맹이들을 다 모아왔다.
옆옆 동네 크리스틴과 알렉스까지.
한마디로 공부방 놈들 5명에 어중이떠중이 어린 것들, 거기다 인도 친구 오디의 얼굴까지 보인다.
“이번 주까지는 쉰다고 했잖아. 무슨 일인데 이렇게들 난리야? 어? 오디까지 왔네?”
….
“으헉! 진짜다!”
“으아악! 안돼에에에에!”
“누가 그랬어! 누가! 이렇게 귀여운 우리 캡틴을!”
“맞아. 감히 우리 캡틴을!”
“우리 모두 나서서 본때를 보여줘야 돼!”
‘캐. 캡틴? 내가? 언제부터?’
명실공히 내가 이들을 이끌고 있는 건 맞지만 한번도 캡틴이라고 나를 지칭한 적은 없었다.
그나저나 마크네 아버지 생각보다 입이 싸네.
마크 아버지가 마크와 헤나에게 내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마크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한 살 위 제이콥에게 뛰어간 것이 분명하다.
“내가 이 정도면 그쪽은 어떻겠냐? 괜찮아.”
허세를 부려본다.
“진짜?”
“오. 우리 캡틴 쌈도 잘 해?”
“그럴 거 같지는 않은데…”
“어우야. 피멍들었는데? 진짜 괜찮은 거 맞아?”
.
.
.
현관문 앞에 서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말들이 많다.
이왕 얼굴 팔린 거 그냥 문을 열어주었다.
“일단 들어와. 안 그래도 놀만큼 놀았으니 이제 남은 방학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지 계획을 짜 봐야지. 이제 한달 반 정도 밖에 안 남았는데.”
“…”
“…굳이?”
“난 가끔 쟤가 무서워.”
“크리스틴. 넌 매일 무서워.”
“아냐. 캡틴이 젤 무서워.”
갑자기 누가누가 더 무서운가 배틀인가?
“나. 나는 집에 갈래. 그냥 제이콥이 오자고 해서 와 본 거야. 제이든. 빨리 나아라.”
“아. 맞다. 이제 ‘와일드 크래프트’ 할 시간이지?”
공부방에 대한 소문을 미리 들은 꼬맹이들은 그대로 줄행랑을 놓는다.
그냥 놔주기로 했다.
나중에 밖이 시끄러워지면 슬며시 튀어나올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 공부방 인원 중에선 이제 4학년이 되는 조나단이 가장 어리다.
아직도 학교 갈 때 세수는 안하지만 양치는 한단다.
어금니가 썩어 치과에 큰돈을 들인 뒤로 아침마다 양치부터 시키고 본다는 조나단의 부모님.
아침 세수는 좋아하는 여자애가 나타나야 하지 싶다.
아무튼 그렇게 오디까지 더해져서 총 8명의 꼬맹이? 아니다 이제는 털이 수북수북 자라기 시작하는 청소년들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까지 포함하면 총 9명.
집이…좁다.
“너 진짜 괜찮은 거지?”
“어.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해. 근데 다들 점심은 먹고 온거지? 우리 집에 먹을 거 없다.”
“…”
“…배고파.”
“야!”
“피자 배달시킬까?”
“돈이 어딨어.”
“나 애플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데…”
오디의 바지주머니에서 사과 그림이 그려진 최 신상 휴대폰이 튀어나오네.
“괜찮냐? 엄마한테 안 혼나?”
“물어볼게. 잠깐만.”
– 토토톡. 톡톡.
문자가 오고가고.
“됐다. 엄마가 그냥 시켜준대. 여기 집 주소 좀 불러줘.”
“전화기 줘봐. 바로 쳐 줄게.”
“어? 어. 근데 쓸 줄 알아?”
“전화기가 다 거기서 거기지.”
나도 옛날엔 최신상 아니면 취급도 안했다고.
아무리 내가 환생한지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지만 문자하나 못 보낼까…많이 변했네.
하지만 이 정도에 굴하지 않는다.
그래봤자 문자다.
대충 주소를 입력하고 ‘send’를 눌렀다.
“역시. 캡틴은 못하는 게 없어.”
“왜 자꾸 캡틴이라 그래. 언제부터 내가 캡틴인 건데?”
“너 여기 이사왔을 때부터. 우리끼린 계속 그렇게 불러왔다고.”
“그래? 그럼 피자 오기 전까지 방학계획표를 짜 볼까?”
“으아아아아. 괜히 왔다.”
“피자가 올 건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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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아아아악! 더덜컹. 투투툭. 부르릉!
내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방학시간표를 짜고 있는데, 밖에서 무척이나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