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3)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3화(3/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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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스 카렌 2
돌려까기는 돌려까기로.
아이답게 어려운 용어는 배제하고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아아~ 미세스 윌슨은 제가 눈이 작아서 오해했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근데요. 눈 크기만 놓고 보면 아줌마나 저나 비슷한 거 같은데요.”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아줌마. 제가 아무리 어리지만 절 노려보는 것과 진짜 미안해서 사과하는 정도는 알아요. 아줌마는 진짜로 절 노려보셨어요. 인정할 건 인정하세요.”
“어린 것이…당돌하구나.”
“당돌한 것이 아니고 당당한 것이고요. 전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왜 잘못한 아줌마가 절 노려보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혹시 제가 아줌마처럼 눈이 푹 들어가지 않아서 그러시는 거예요?”
베티 엄마의 말을 그저 농담으로 치부하려던, 혹은 실질적으로 알아듣지 못한 자들을 위해 핵심을 짚어주었다.
이 아줌마 엄청난 인종차별자라고.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 대답에 찐 당황하는 베티 엄마.
할리우드 액션은 어디가고, 인상이 험상궂어졌다.
상황을 눈치 챈 몇몇이 베티 엄마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거나 헛기침을 하며 주변을 돌아본다.
내 부모가 누군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부모들 중 동양인이 보이지 않자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
눈빛에 호의가 깃들기 시작하네.
필시 험한 일을 하는 바쁜 부모가 오지 못한 거라 생각하고 있을 거다.
정신을 팔고 있던 담임선생님이 상황을 파악하고는 튀어와 수습에 만전을 기한다.
“제이든. 우리 먼칭마우스 미스터 M. 얼마나 쿠키를 맛있게 먹는지 한번 볼까…”
– 드르르륵.
“…요?”
엄마가 뒷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섰다.
“엄마!”
냅다 엄마를 부르고는 크게 손을 흔들었다.
모두의 눈동자가 엄마를 향했다.
아시안 여자가 아닌 금발의 백인 여자가 들어서니 낭패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베티의 엄마.
십중팔구 조심스럽게 들어서는 아시안 엄마였으면 적당히 사과하며, 무마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다른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큼큼- 거리다가 넘어갔겠지.
배에 힘을 빡 주고, 어깨를 폈다.
한 발짝 앞으로 나선 후 짧은 팔다리를 최대한 크게 흔들며 쿠키를 베어 먹는 흉내를 냈다.
– I’m Mr. M, with a munching mouth~
“와. 미스터 M이 정말 쿠키를 맛있게 먹는구나. 그럼 곧바로 코가 길쭉한 미스터 N도 만나볼까요?”
“네. 선생님.”
아득히 멀어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있는 듯한 선생님.
신임교사로 첫 부임이라는데 좀 불쌍하네.
잘해주자.
장난스런 목소리로 불렀던 Mr. M과는 달리 최대한 굵직한 목소리를 내어 Mr. N을 불렀다.
말했잖나.
나 한량이었다고.
노는 건 무조건 자신 있다.
그게 비록 킨더 재롱잔치라도…
흠. 갑자기 자괴감이…
– I’m Mr. N who’s got fancy clothes,
Nifty fingers and nummy toes,
But my nose!
My nose!
My nobody-else-has-got nose!
Noisy Nose! –
“와우! 브라보!!”
“천재다!”
“멋지다! 미스터 M & N. 용기를 잃지 마!”
한쪽 구석에서 서로의 한쪽 어깨를 붙인 채 앉아있던 젊은 남자 둘이 큰 소리로 응원을 해 준다.
딱 봐도 게이커플이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자신들의 설움을 대입시킨 건가?
누구든 도와주면 고맙지.
그들의 격려?를 시작으로 나머지 어른들이 휘파람을 불며, 크게 박수를 쳐 준다.
다들 짧은 순간 상황 파악을 끝내고, 내 편으로 돌아선 거다.
여기서 박수를 안쳤다간 무식한 중부백인으로 찍힐 테니.
저쪽 끝에서 미스 V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베티의 표정이 시무룩하다.
잘 모르는 나이라고 해도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만으로 대충 사태를 파악한 것이다.
그 후로는 무난하게 Mr. Z까지 끝이 났다.
교실 뒤쪽으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쿠키와 물, 음료가 차려졌다.
오늘은 오전 수업만 있는 날로, 이벤트가 끝나면 학교가 끝난다.
자리에서 가방을 싸고 있는데, 아줌마 몇 명이 우리 엄마를 붙잡고 한참을 이야기한다.
베티 엄마는 이미 베티와 함께 바람처럼 사라졌다.
뒷정리를 해야 할 룸맘이 없으니 선생님이 몸이 2개라도 모자라 보인다.
그 와중에 게이 커플 중 한명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헤이. 제이든. 아까 정말 멋지더구나. 완전 똑 부러졌어.”
“안녕하세요. 해리슨 아빠시군요. 해리슨이 아빠들을 정말 좋아해요. 늘 친절하고 잘 놀아준다고요.”
“흑. 그랬구나. 제이든. 우리 해리슨이랑 계속 친구해줄 수 있지?”
“그럼요. 해리슨은 착한 친구예요.”
“와우. 넌 어쩜 그렇게 어른스럽니? 나이스하고 친절한데다 당당하기까지. 멋있다. 오늘 한 수 배웠어.”
“칭찬 감사합니다.”
입이 또 헤벌쭉.
큼. 어른이 칭찬해 줄 땐 빼는 거 아니다.
그 순간 엄마가 다가와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제이든. 괜찮니? 엄마가 미안해. 오늘 엄마 뒤 시간 알바가 늦게 오는 바람에 늦어졌지 뭐니. 정말 미안해.”
“괜찮아요. 엄마.”
“말 들어보니 용기있게 행동했더구나. 정말 자랑스러워. 엄마도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어떻게 다른 곳도 아니고 학교에서. 후우. 아무튼 다른 엄마들이 같이 항의해 준다니까 나도 용기를 내 볼게.”
백인 여자로 자라면서 한 번도 당해보지 못한 상황이라 꽤나 당황했을 것이다.
아시안, 특히 아시안 보이인 이상 이런 미묘한 차별은 앞으로도 비일비재할 텐데.
한국에서 막 와서 상황 파악이 안 되거나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부모라면, 아이는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다.
오늘 같은 경우엔 차별을 당한 줄도 모른 채 십중팔구 진짜 실수라 여기고 넘어갔을 수도.
베티 엄마는 오늘 분해서 잠도 오지 않을 것이다.
본인의 잘못은 되돌아보지도 않겠지.
그저 밥으로 보았던 어린 동양인에게 속내를 들키고, 그걸 사람들 앞에서 강제로 까발려진 것에 대한 분함일 것이다.
털털거리는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 엄마는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베티 엄마를 죽일지 작전 짜고 있는 듯.
총기소유가 합법인 이곳에선 무조건 교장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
기분 나쁘다고 베티네 집에 찾아가 따져댔다간 총 맞기 딱 좋지.
몸은 사리면서 족칠 땐 확실히.
내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엄마.
나를 입양했을 때처럼 아마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다.
나도 용기를 더 내야겠다.
조용하고, 웬만한 억울함은 참아 넘기며, 공부만 열심히 하는 티피컬 아시안(typical asian)이 아닌 똑똑한 전사 같은 사람으로 자라야겠다.
아.
이게 그 남자가 말했던 아이비리그 스펙을 위한 환경 조성인가?
쩝. 나 아직 킨더구나.
아직 머나먼 미래의 일이다.
잊자.
***
한 달 후.
베티는 근처 사립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 동네에서 나름 부자들만 다닌다는 사립학교.
전학을 가려고 해도 재학 중인 학생의 부모나 재직 교사, 혹은 지역 유지 2명의 추천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학교.
초딩 생일파티 테마가 ‘승마’라고 해서 겨우 승마복을 구해서 입고 갔더니, 참석자 모두 자기 ‘말’을 끌고 왔다는 그 곳.
베티 엄마가 어떤 수완을 발휘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더 좋은 사립학교로 전학을 했다곤 하지만 결론은 우리 학교에서 쫓겨난 것이다.
엄마가 ‘제대로 일처리 하지 않으면 교육부부터 언론사까지 모든 역량을 동원해 알리겠다.’고 교장을 협박한 덕이다.
웃음이 많은 친구였던 베티.
제 엄마 같은 사람처럼 자리지 않길 바란다.
카톨릭 사립스쿨이니 인성교육은 제대로 시키겠지.
머릿속에서 베티와 그녀의 엄마를 지웠다.
***
킨더의 점심시간은 오전 10시 30분.
크지 않은 학교의 카페테리아를 전교생이 나눠 사용하는 탓에 학년별로 점심시간이 다르다.
킨더는 나이가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가장 먼저 밥을 먹는다.
대신 나중에 간식시간이 따로 있다.
식사시간은 단 20분.
도시락을 싸온 아이들은 바로 자리를 잡고 먹을 수 있지만, 사 먹어야 하는 아이들은 줄을 서서 받아와 먹는 것까지 20분 안에 해결해야 한다.
엄마는…
요리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다.
학교에 입학한 후 첫 한 달은 나름 도시락을 싸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한 달이 지나자 학교 급식을 먹으면 안 되겠냐고 했다.
보통의 학생들은 한 끼에 2달러 남짓을 내고 사먹지만 우리는 저소득층이라 급식이 무료다.
그래서 웬만하면 하루 한끼는 급식으로 해결해볼까 했다.
음식 가지고 이런 말 미안하지만 학교 급식은 진짜 쓰레기 수준이었다.
보통 피자나 치킨너겟 같은 냉동식품을 데워주는데, 따뜻할 땐 먹을만하지만 식으면 정말…돈 주고 먹으라고 해도 못먹을 정도다.
학교 주방에선 따로 요리를 하지는 않는다.
워낙 음식 알레르기가 많은 탓도 있지만 다양한 민족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종교나 문화적인 이유로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라고.
‘이래도 먹고 싶은 사람은 먹어라.’라는 마인드인 것 같다.
처음 며칠은 엄마 말을 따라 급식을 받았지만, 요즘엔 집에 굴러다니는 에너지바나 바나나 같은 것을 직접 챙겨 온다.
친구들 도시락들도 비슷한 수준이다.
스틱 치즈나 과자 같은 걸 싸오는 애들도 많고, 좀 낫다 싶은 경우가 과일이나 브로콜리 데친 것들을 함께 싸오는 거다.
어떻게 저렇게 먹고 키가 크고, 살이 찌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유전자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나이가 조금 더 들면 직접 요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스타라도 싸와야지 도저히 이대로는 못살겠다.
학교 다닐 때의 큰 기쁨 하나를 강제로 뺏긴 느낌이다.
20분 후 이어지는 리세스(recess) 타임.
날씨가 안 좋을 땐 안에서 놀지만 좋으면 무조건 밖으로 직행.
실내에서 조용히 사색이나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런치티처의 지도아래 병아리 줄 맞춰 놀이터로 나왔다.
런치티처는 리세스타임 동안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이다.
“와아아아. 제이든. 미끄럼틀 타자.”
“제이든. 태그하자.”
.
.
.
열심히 놀아주었다.
미끄럼틀도 타고, 술래잡기도 하면서 다칠 만한 상황은 미리미리 예방하면서 진짜 삼촌 된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봤다고나 할까.
절대 내가 놀고 싶어 논 것이 아니다.
육체가 작다보니 미끄럼틀이 제법 높아 보여 스릴감이 어떤가 체크하는 차원이었고, 그네는 높이 올라도 뒤집어지진 않는지 안정성 체크고, 술래잡기는 나보다 빠른 놈들은 봐줄 수가 없어서…
아무튼 온몸을 불사르며 애들과 놀아주고 있으니 런치티처들의 눈에서 하트가 마구 발사된다.
알지. 그 마음.
진이 쏙- 빠진다.
교실에 들어와 손을 씻고, 우리는 각자의 매트를 바닥에 깔았다.
낮잠 잘 시간이다.
보통 킨더는 오전 수업만 있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학교는 일하는 학부모들을 위해 킨더도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학교를 운영한다.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 4시.
아무튼 그 긴 시간 중 킨더 아이들에게는 낮잠 시간이 주어진다.
그 후엔 동그랗게 모여앉아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을 듣는 ‘스토리 타임’이 있다.
말했듯이 이 동네의 아시안 비율은 1%가 채 안 된다.
고등학교에는 좀 더 된다고 들었는데, 이 초등학교에서는 나와 베트남에서 온 남매 둘까지 총 셋 뿐이다.
그 흔한 인도인과 중국인도 없다.
즉, 여기 초딩들이 평소 동양인을 직접 마주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어른들이야 직장이든 마켓이든 각종 사회활동이든 동양인들을 접할 일이 있겠지만 집과 학교, 놀이터만 전전하는 시골 동네 아이들은 상황이 다르다.
오늘은 5학년 형, 누나들이 킨더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시간이 있는 날이다.
이곳은 킨더부터 5학년까지 초등학교 6년, 6학년부터 8학년까지가 중학교 3년, 9학년부터 12학년이 고등학교 4년으로 분류된다.
총 13년의 학교생활.
자라면서 역변만 하지 않는다면 고등학교에서 치어리더로 이름을 날릴 것이 분명한 5학년 여자애 둘 헤일리와 클로이.
이 학교 모든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들이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교실로 들어섰다.
나의 일상이 번거로워지는 시발점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와아! 헤일리다!”
“클로이다!”
“하하. 안녕. 애들아. 난 헤일리야.”
“난 클로이야.”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둘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교실이 갑자기 밝아지는 것 같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