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37)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37화(37/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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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12월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지는 크리스마스 장식 전쟁.
이 동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크리스마스 장식을 모으는 것 같다.
집집마다 나무든, 집 기둥이든, 집안이든 보이는 모든 곳이 크리스마스 장식품이다.
커다란 사다리까지 동원해 온 지붕을 전구로 덮은 집이 3집이나 된다.
우리 집은 처마 끝을 죽 따라 전구를 둘러쳤다.
아파트에 있을 때는 집도 작고, 나도 어리고, 돈도 없고.
그러니 작은 트리에, 아파트 베란다와 창문에만 장식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여기저기 지출이 심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걸로만 장식을 했는데, 올해는 엄마가 아주 작정을 했다.
5주간의 빡센 수업이 지난 주 끝났고, 이제 3개월 실습에 들어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습기간엔 돈이 나온다.
얼마 전 야드 세일에서 건진 검은색 대용량 쓰레기봉투 2개와 매일매일 집으로 배달되던 알 수 없는 물건들.
그게 전부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이었던 거다.
덕분에 지금 우리 집은 아주 눈이 부실 지경이다.
삼촌 키만 한 크리스마스트리에, 벽난로를 타고 거실 전체를 두른 전구들, 지하와 2층 계단 역시 초록색 풀잎에 금빛의 전구를 둘둘 말아놔 번쩍번쩍 한다.
‘금광인가.’
그러면 우리 집만 그렇냐?
아니다.
온 동네가 다 그렇다.
9집 중 누가 사는지, 살기는 하는지 소재가 불분명한 2집을 제외하곤 7집이 전부 번쩍번쩍 거린다.
매주 수요일에 있는 아너스 밴드가 끝난 후 5시 15분에 운행되는 액티비티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장관이다.
골목의 입구와 나와 제이콥, 알렉스, 마크가 섰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린다.
제이콥의 앞마당엔 헬리콥터를 타고 있는 산타의 풍선인형이 비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다.
왼쪽 세 번째 집은 전구가 깜빡깜빡한다.
아무리봐도 설정이 아닌 합선의 조짐 같다.
“음. 저기 저 집 괜찮을까? 불 날까봐 살짝 무서운데?”
“가끔 불이 나기도 하지. 뉴스에 나오잖아.”
“불나면 안되지.”
“안되지.”
“알렉스. 너 남의 동네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 아니다.”
“우리 동네도 저런 집 많아. 비오니까 불 나도 금방 꺼지겠지. 괜찮아.”
“…”
“말은 해 줘야겠지?”
“아서라. 주인도 다 알아. 그냥 놔두는 거지.”
“안전불감증 아닌가?”
– 타탁! 슈이이익.
그 순간 전구 하나가 터지더니 작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비에 맞아 그대로 사그라드는 연기.
그 집의 야외 전구들이 모두 꺼져버렸다.
– 아! 시펄. 내가 새로 사자고 했잖아! 비 안왔으면 어쩔 뻔 했어!
– 닥쳐! 돈 없다고!
“봤지? 비오니까 괜찮다니까. 다 알지만 혹시나 이번 시즌 지나갈까 해서 그냥 두는 거라니까.”
알렉스의 뻐김.
우리는 그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1월의 세 번째 일요일쯤이 되면 이 요란벅쩍지끈한 장식들이 사라질 것이다.
***
오늘은 미세스 알링턴이 주선해 준 TYT(The Youth Titans)의 오디션이 있는 날이다.
학교가 끝난 후 스쿨버스를 타고 오디션 장소로 이동한다.
내가 버스에 올라타자 공부방 친구 놈들이 깜짝 놀라며 환호성을 지른다.
“어? 제이든! 너도 가는 거야?”
“너 6학년이잖아!”
“그렇게 됐어.”
“와. 미스 알링턴이 이번에 6학년 중 한명이 같이 간다더니 그게 너였구나.”
“난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고. 혹시나 아닐까봐 말을 못하고 있었을 뿐이지.”
“야야. 그 말은 나도 하겠다.”
“진짜라고!”
“네네.”
“근데 우리 팀들이 다 속해있는 줄은 몰랐는데. 다들 자랑스러운데?”
“큼. 나는 작년에도 TYT 멤버였다고. 당연히 이번에도 뽑힐 거고. 제이콥아. 그리고 7학년들아. 잘 하자. 우리 제이든 사단의 명예를 걸고.”
“와. 매튜. 멋있네. 근데 왜 말 안했어?”
“그런 걸 뭐하러 말해. 하하.”
이 동네의 좋은 점이 이거다.
누가 무슨 활동을 하는지 본인이 말을 하지 않는 이상 잘 모른다는 거.
상을 받아도 상 받을 사람들만 따로 불러서 상을 주지 전체 학생들이 알게 하지 않는다.
전생에서 내가 어릴 때는 교내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한 친구는 학급 전체가 보는 앞에서 상장을 나눠주었었다.
음악이나 미술, 글짓기 대회 같은 것도 마찬가지.
시 단위, 도 단위에서 1등을 했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교장샘이 직접 상을 전달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게 없다.
누가 어디서 무슨 상을 받는지 참석하는 사람들만 아는 것이다.
밴드부는 밴드부원들 모아놓고 상장을 전달하고, 오케스트라는 오케스트라 부원들을 모아놓고 상장을 전달한다.
학교 페이스북이나 홈페이지에 관련 내용들이 올라가긴 하지만 자세히 보는 사람은 관련자들뿐이다.
그 배경에는 워낙 다양한 활동들이 있어서 인 것 같기도 하고, 남의 일에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서 인 것 같기도 하다.
운동도 풋볼부터 프리스비(Frisbee), 농구, 야구, 필드하키 등등 그 종류가 수십가지.
모두 각자 따로 상을 수여하고, 받는다.
간혹 전국구 상을 받는 경우는 학교 신문에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학교 신문 따위 관심이 없다.
그래서인가?
서로 비교하는 문화가 덜하다.
얼굴도 모르는 엄마친구아들 때문에 열등감이 생기는 일 따위는 없다는 뜻이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1시간이나 이동한 뒤에 멈췄다.
무려 학군 점수가 8점인 곳.
같은 동네인데도 이곳은 아시안의 비율이 8%다.
아시안이 많은 곳은 학군 점수가 높고, 학군 점수가 높다보니 더 많은 아시안들이 모인다.
선순환이라고 해야할까.
TYT에 참석하는 8개의 학군 중 가장 높은 점수를 유지하고 있는 학교다.
TYT 밴드.
1년에 딱 한번 하는 공연을 위해 아이들은 오디션을 보고, 2달 후 학교를 이틀동안이나 빠져가며 연습을 하고, 마지막 날 저녁 학부모들을 불러 공연을 한다.
그리고 명예로운 작은 배지를 하나 던져주고, 학교별 단체 사진을 찍는다.
9학년부터는 대학 원서에 활동 내역을 적을 수도 있지만 8학년까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하는 이유는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교를 이틀이나 빠질 수 있다는 강점도 있다.
우리 학군에서 가는 학생은 총 27명이다.
중학생 9명, 고등학생 18명.
중학생들은 교사의 재량으로 뽑고, 고등학생은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중학생 9명 중 아시안은 나 하나, 고등학교엔 인도인을 비롯한 아시안이 3명이나 보인다.
오케스트라나 밴드에는 흑인이 잘 없다.
인원이 50명이면 1명 정도 있을까.
인도인도 잘 없다.
인도인들은 음악, 운동, 미술보다는 보통 로보틱스나 사이언스, 매스 혹은 디베이트(Debates, 토론) 같은 데에 더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내가 겪은 바로는 그렇다.
6학년은 선생의 특별 추천이 있어야 한다.
버스에서 내려 해당 학교의 강당에 들어섰다.
총 8개 학교, 250여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모였다.
그 중 60여명 가량이 뽑힌다.
우리는 우리 학군의 마스코트인 빨간 여우가 그려져 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강당 밖에 쿠키랑 음료 있으니 자유롭게 먹으면 됩니다. 잠시 후 6시에 플롯부터 심사 들어가니까 각자 악기 조율하고요. 심사위원은 총 8명이고 각 방에 4명씩 있을 겁니다. 이름 부르면 해당되는 방에 들어가 오디션을 보면 됩니다. 모두 행운을 빌어요.”
사회자의 설명이 이어지고, 우리는 복도에 비치된 안내지를 한 장씩 들고는 웨이팅 룸으로 들어갔다.
쿠키와 음료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국 같으면 제대로 된 먹을 거라도 줬을 텐데.
살면 살수록 이 동네 음식 문화는 적응이 안 된다.
– 띠리. 삐잉. 뿌웅. 빠빠. 부웅.
우리는 각자의 악기를 조율하며 순서를 기다렸다.
– 마크 앤더슨!
플롯인 크리스틴이 제일 먼저 들어갔다 나오고, 다음으로는 마크가 불려갔다.
잠시 후 구겨진 표정으로 나오는 마크.
“망했어. 망했어.”
“왜? 연습 때는 괜찮더니?”
“몰라몰라. 말하고 싶지 않아.”
그대로 구석에 박혀 트럼본만 끌어안고 있다.
곧이어 같은 악기인 제이콥과 매튜가 각기 다른 방으로 불려 들어갔고, 멀쩡한 표정으로 나왔다.
확실히 1년 차이가 큰 건가?
“어떻게 됐어?”
“뭐. 그냥저냥.”
“나도. 나쁘지 않았어.”
“힝. 나도 들어가고 싶었다고!”
“마크. 진정해. 아직 결과 안나왔어. 그리고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나중엔 16개 학교들 모이는 것도 있고, 주립 밴드도 있대. 천천히 해도 된다고.”
“그래도…”
– 제이든 패터슨!
내 차례다.
물에 충분히 불려놓은 리드를 입에 물고 바순을 들었다.
“두 번째 방으로 들어가세요.”
“네.”
방에는 심사위원들 4명이 각기 약간의 거리를 두고 학생들이 쓰는 책상에 앉아 종이 하나와 볼펜을 들고 있다.
그리고 덜렁 놓인 의자 하나와 악보대.
“이름이?”
“제이든 패터슨입니다.”
“좋아. 악기 조율부터 해 봐요.”
“네.”
– 부우우우우우웅.
도레미파솔라시도를 한두번 분 후,
“준비됐습니다.”
“오케이. 시작해요.”
악보는 ‘Adagio & Allegro’로 Benedetto Marcello의 작품 중 하나인 ‘Oboe Concerto in C minor’의 두 번째 악장이다.
제법 어렵다.
그래서 연습기간도 긴 것이다.
중간에 살짝 삑사리가 났지만 이 정도야 뭐.
연주가 끝나자 네 명의 심사위원들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잘 했어요. 결과는 내일 학교로 갈 겁니다.”
“네. 땡큐.”
나도 모르게 인사를 꾸벅하고 나왔다.
그 모습에 살짝 놀란 듯 웃는 심사위원들.
제길.
몸에 배어버린 이 유교적 인사법은 다시 태어나도 잘 없어지질 않는다.
그냥 ‘땡큐’하고, 돌아 나오면 되는 것을.
물론 이런 인사를 받고 기분나빠하는 사람들은 단 한명도 없다.
솔직히 다들 속으론 엄청나게 좋아한다.
뭔가 자신이 대단한 지위를 갖게 된 것 같을 테니.
미국에서 허리 숙여 인사를 한다는 건 제법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 악단의 지휘자가 공연이 끝나고 청중들에게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것 외에는 잘 없다.
굉장히 격식 있고, 상대를 올려치는 인사법인 거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인사법에 스스로 당황했다.
사실 이번 생 들어 처음인 것 같다.
나름 대회라 생각해서 긴장했었던 모양이다.
조심해야지.
괜히 허리 숙일 필요 없자나.
살짝 우울해진 상태로 자리로 돌아왔다.
“왜? 너도 잘 못했어?”
“아니. 연주는 잘 했어.”
“근데?”
“그냥. 별일 아냐.”
“별일 아닌게 아닌데?”
“아니. 진짜 별 거 아냐. 그냥 조금 실수한 거 같아서.”
“조금 실수? 그 정도는 다들 해. 걱정하지마. 우리 중학생이야.”
“그래.”
“근데 너 6학년인거 심사위원들도 알아?”
“어느 학교 몇학년인지는 블라인드라고 하지 않았어?”
“그래도 알지 않을까?”
“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알겠지.”
“나는 이름만 딱 확인하고 말던데?”
“나도 그러긴 했는데…”
– 일라이!
우리 학교의 누군가가 또 불려간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