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38)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38화(38/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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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커나스
오디션은 길었다.
총 250명의 학생들을 한명씩 오디션을 보니 어쩔 수 없었던 거다.
학교에서 바로 왔기 때문에 본인 오디션이 끝난 학생들은 이쪽저쪽 바닥에 주저앉아 숙제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어디 대회 나간다고 선생님들이 봐주는 경우는 없다.
수학은 수학이고, 밴드는 밴드다.
수학 선생님이 밴드부의 사정을 봐주는 경우 따위는 없다.
각자의 과목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설사 전국대회에 나간다고 하더라도 해당 과목의 숙제는 해야 한다.
간혹 선생님의 성격이 좋은 경우 시험을 숙제로 대체해 주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주말에 타주로 수영 대회를 나가더라도 수학 숙제는 꼭 해야 하고, 월요일 시험도 치러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체육특기생이라고 해서 성적을 바닥 친다면 좋은 학교는 못가는 거다.
운동과 음악, 성적을 모두 잡는 학생.
거기에 봉사활동 시간도 많고, 수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전국 탑을 한번 찍은 데다, Paid Job도 가지고 있으면서 인간성까지 좋은 학생이라면?
아이비에서 모셔간다.
처음엔 저 Paid Job 개념이 좀 신기했다.
대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학생을 더 선호한다니.
한 한달 일한 건 원서에 쓰지도 못한다.
적어도 여름방학부터 대학 원서를 쓸 때까지는 일하고 있어야 한다.
이유는 직접 돈을 벌어봄으로써 느끼는 사회생활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효율적인 시간 관리 구성, 체력관리 등등을 본다고.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 싶을 테지만 의외로 그런 괴물들이 널린 곳이 또 이 미국이다.
공립 사립 다 합쳐 고등학교만 대략 4만개.
자그마치 전교 1등만 4만명.
아이비리그 8개 학교에 1년에 들어가는 학생 수는 4~6천명 가량.
그 중 미국 외에서 오는 인터내셔널들, 가족 중 처음 대학가는 퍼스트 제너레이션들, 부모가 그 학교 출신인 레가시들, 그리고 운동특기자들을 뺀 나머지 자리를 두고 일반 학생들이 다투는 거다.
거기다 입학생 수는 또 해마다 다르다.
줄어들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하고.
엄청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한 자리가 아쉬운 입시생들에게는 그마저도 중요하다.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
일단은 제일 쉬운 공부부터.
우리 공부방 녀석들도 어느 새 숙제를 하고 있다.
몇 년 같이 했더니 척-이면 착-이다.
나도 옆에 앉아 숙제를 했다.
처음엔 30분이면 끝나던 숙제가 점점 많아진다.
특히 영어 숙제가 끝장이다.
무슨 에세이를 이렇게 매일 내어주는지.
6C팀의 영어 샘이 숙제를 많이 내주기로 악명이 높다.
– 오디션 끝났습니다! 학생들은 각자 짐을 챙겨 타고 왔던 스쿨버스에 타세요. 학교 마스코트 꼭 확인하고요. 남의 학교 스쿨버스 타지 않게 조심하세요!
“와. 드디어 끝났구나. 길다.”
“에이. 2시간 30분 정도 밖에 안걸렸는데 뭐. 나 전에 갔던 YMEA(Youth Music Educators Association) 오디션은 5시간 걸렸어. 집에 도착하니까 12시더라. 그때는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
궁시렁궁시렁 거리며 짐을 챙기는 우리들.
또다시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
도착하니 밤 9시 30분.
마크 아버지가 골목 대표로 차를 가지고 나와 있었다.
모두 녹초가 된 탓에 우리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마크의 기분이 많이 다운되어 있는 것도 한 몫 했다.
전에는 어떤 것에도 상관없어하던 마크였지만 공부방을 드나들면서 공부에도, 음악에도 조금씩 욕심을 부리는 마크.
내년에는 학생회에도 도전해 볼 거라고.
가끔은 나에게 불편한 눈길을 보낼때도 있다.
질투와 동경이 뒤섞였다고나 할까.
한 학년 위의 제이콥과 매튜, 동급생인 크리스틴마저 나를 대장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올라오는 시기심을 누르며 조용히 지내는 것 같다.
뭐.
그러면서 크는 거지.
그런다고 마크가 나를 뛰어넘을 가능성은 없다.
적당히 보듬어 주면 될 일이다.
***
오디션은 길었는데, 결과는 빨랐다.
오디션에 참가한 27명의 이메일로 심사결과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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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gratulations!
멜버른 중학교 밴드부 TYT 합격생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6학년 – 제이든 패터슨.
7학년 – 크리스틴….
8학년 – 제이콥….
공연 연습은 2월 17-18일 이틀간이며, 18일 저녁 7시 콘서트가 있습니다.
자세한 일정은 2월 즈음에 다시 공지하겠습니다.
합격한 여러분들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미세스 알링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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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군에선 총 14명 합격.
그 중 중학생은 나를 포함해 9명 중 6명이 합격했다.
우리 공부방에서는,
마크와 매튜가 불합격.
나와 제이콥, 크리스틴은 합격이다.
매튜가 불합격인 건 좀 의외였다.
마크는 매튜가 불합격인 것에 조금 안도하는 눈치다.
6학년은 애초부터 나만 갔으니 상관없지만 우리 중 본인만 떨어지면 저 성격에 오랫동안 우울해 있었을 것이다.
“진짜. 삑사리만 안 났으면 합격했을 텐데. 근데 매튜 넌 잘 했다고 하지 않았어?”
“아. 좀 찜찜하기는 했어. 이유를 몰랐을 뿐이지. 어제 집에 딱 들어오는데 알겠더라고. 중간에 2구절을 빼먹었어.”
“뭐?”
“심사위원들 표정이 좀 이상해서 신경이 쓰였거든. 이유를 알았지. 쩝. 긴장해서 그랬나 봐.”
“…”
“YMEA에나 도전해 봐야겠다. TYT 떨어졌다고 YMEA 신청 못하는 건 아니니까.”
“아 그래? 그럼 나도 할래.”
“그래. 같이 하자. 근데 그거 오디션 곡이 엄청 어려워. 일찌감치 준비해야 돼. 16개 학군 모이는 거라 신청자 수도 어제보다 훨씬 많고. 제이든. 너도 할 거야?”
“아니.”
“어? 왜?”
“벌써부터 힘 빼고 싶지 않아. 그건 빠르면 8학년, 늦으면 9학년부터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아. 너 아직 6학년이지? 가끔 까먹는다니까. 하하. 사실 6학년은 지원도 못해. 7학년부터거든.”
“그렇게 어려우면 TYT도 떨어진 나는 아예 가망 없는 거 아냐?”
“마크. 너만 떨어졌냐? 나도 떨어졌어. 그러니까 열심히 연습하자는 거 아냐. TYT 붙은 애들도 많이 떨어져.”
그 말에 마크가 힐끔힐끔 나를 본다.
“왜에? 간보지 말고 하고 싶은 말 있음 해.”
“너가 좀 도와주면 안되냐?”
“뭘?”
“연습 말야. 넌 우리보다 악보도 잘 보고, 전체 컨트롤도 잘 하잖아. 우리 연습하는 거 좀 도와주라. 어? 대신 나랑 제이콥이 너네 집 잔디 1달 동안 깎을게.”
“야! 왜 나까지 끌고 들어가. 난 됐어.”
“진짜?”
“잔디 깎는 거 보다 나아. 그냥 떨어지고 말지.”
“진짜야?”
“…쩝. 대신 딱 반반이다.”
우리 집 야드는 다른 집보다 면적이 넓다.
예전에는 11월 말부터 눈이 왔기 때문에 잔디를 깎지 않아도 되었는데, 요즘엔 날씨가 따뜻해져서 12월 말까지는 잔디를 깎아야 한다.
지금은 12월 초다.
길어야 한달 정도 더 깎으면 되는데 그걸 대신 해 주겠대네.
그러면 안 도와줄 이유가 없지.
“대신 공부하는 시간은 못 뺀다. 널싱홈 연주 연습도 마찬가지고.”
“당연하지.”
“내가 한번 시작하면 끝장 보는 거 알지? 잘 따라와야 한다들.”
“….물러도 되냐?”
“이미 끝났어.”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보던 제이콥이 조용히 사악한 웃음을 띤다.
딱 봐도 알겠다.
TYT에 떨어진 마크와 매튜가 우리집 잔디를 깎아가며 나한테 특훈 받는 동안 옆에서 조용히 단물만 빨아먹을 생각인 거다.
그러게.
내가 누누이 ‘상황을 볼 때는 크고 넓게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해 왔건만.
마크와 매튜는 제 발등 찍은 거다.
***
시간이 지나 다시 토요일이 되었다.
하트우드 널싱홈으로 모였다.
이번 주 선정 곡들도 밝은 것 2개, 차분한 것 1개로 정했다.
일부러 리차드 커나스씨가 편곡하고, 작곡한 곡들로 골랐다.
악보를 주겠다는 사람에 대한 일종의 아부다.
내가 너에 대해 조사를 했고, 너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는 걸 알려주는 거다.
사회 생활하려면 이 정도 센스는 있어야지.
방과 후마다 1시간씩 맹렬히 연습했다.
다시는 지난번과 같은 일이 발생해선 안된다.
많은 웃음을 주었지만 계속되면 실력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널싱홈의 문을 두드렸다.
“어서 와요. 제이든 사단의 연주가들.”
지난번엔 약간 싸한 분위기를 풍기던 간호사가 밝은 미소로 우리를 반긴다.
완전히 마음을 연 것 같다고나 할까?
하긴 저러다가 또 언제 싸하게 돌변할지 모른다.
조심해야지.
지난주엔 15명 정도였는데, 오늘은 35명 정도는 되어 보인다.
다들 휠체어를 끌고 왔기에 자리가 부족할 지경이다.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리차드 커나슨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진짜 반가웠다.
우리의 새로운 물주.
“안녕하세요. 멜버른 중학생들입니다. 오늘도 지난번과 같이 3곡을 준비했습니다. 지난 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진짜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끝나고 많은 박수 부탁드려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빰빠라라라빰빠.
같은 스타워즈지만 이번에는 메인 곡.
누구나 들어도 아는 곡 ‘Star Wars Main Theme’을 첫 곡으로 선정했다.
리차드 커나스가 조금 손 봐 8명밖에 안 되는 중학생 밴드라도 웅장하게 들릴 만한 곡이다.
첫 음절이 나오자마자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 나온다.
– 우와와아.
미스터 커나스의 눈도 동그래졌다.
우리가 자신을 알아본 것을 눈치챈 것이다.
그 상황이 감격스러운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낸다.
우리 모두 리차드 커나슨을 보았다.
마치 우리 잘하고 있나요? 라고 묻는 듯이.
중학생들이라 아무래도 얼굴에 티가 많이 난다.
미스터 커나슨이 살짝 젖은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3곡이 모두 끝났다.
애시당초 난이도 높은 곡은 포기했다.
미스터 리차드 커나스가 편곡한 것들 중 도전해 볼만 하다 싶은 것들로만 추린 거다.
“훌륭했어요.”
“중학생들이 어쩜 이리 연주도 잘 할꼬.”
“오랜만에 라이브 연주를 들으니 기분이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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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어른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고 지나갔고,
– 툭.
– 악. 내 엉덩이!
– 으히히히.
알렉스는 어떤 할머니에게 엉덩이를 도둑맞았고,
– 쓰담쓰담.
오디는 어떤 할머니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졌고,
– 쭈우우욱.
– 아아아악.
마커슨은 볼이 쭈욱-늘어짐을 당했다.
사실 오늘도 완벽한 연주는 아니었다.
중간중간 삑사리들이 나왔지만 웃음을 참아내고 끝까지 연주를 마무리했을 뿐.
물론 거기에는 ‘연주하다 웃으면 한달동안 공부방 청소’라는 무시무시한 협박이 걸려있었다.
관중들이 모두 돌아가고 리차드 커나스만 남았다.
“어떻게 보셨어요?”
“하하. 녀석들. 아주 엉망이구나. 그래도 훌륭하다.”
“헤헤.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데요.”
“그래그래. 그런 것 같다. 보자…올 때가 됐는데…”
그 순간 이 동네에선 볼 수 없는 멀끔한 차림의 남자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