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6)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6화(6/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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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날갯짓은 1
체스는 장기나 바둑보다 배우기가 쉬운 종목이다.
그래서 전생에서도 주로 체스를 두었었다.
물론 그것도 좀 하다가 말았지만.
뒤로 갈수록 머리싸움이 많아져 지는 일이 많았거든.
지다보니 하기 싫어지고, 내가 하기 싫다는데 강요할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래도 초딩 5학년짜리들이야 찜쪄먹고도 남지.
한번 이길 때마다 탄성이 울려 퍼졌다.
이기니 재밌네.
신이났다.
처음 나한테 진 5학년짜리는 울었다.
하지만 본인 후로도 4명이 연달아 지니 그제야 웃었다.
암튼 애들이 해맑다니까.
숨기는 법을 몰라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사람들이 점점 모이고, 결국 어른들마저 예배를 끝내고 아이들을 픽업하러 왔다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 누군데? 처음보는데?
– 그. 제이든 패터슨이라고. 링컨엘리다니는 꼬마.
– 아. 한국인 입양아?
– 근데 어떻게 저렇게 체스를 잘 두지?
– 쟤는 이번 초등 체스대회에서 1등한 애 아냐? 지금 쟤를 이긴 거야?
.
.
.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다 들린다.
감탄과 경악과 질시 등등이 담긴 목소리들.
예배 끝났으면 일찍일찍 집에 들어갈 것이지.
이쯤에서 끝내야할까 보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제이든!”
“아. 엄마.”
“오오오오. 우리 제이든이. 보셨어요? 우리 제이든이 체스를. 아. 근데 제이든. 너 언제 체스를 배웠지?”
“음…너튜뷰 보고?”
– 왓!
– 왓더!
– 동네에 천재가 나왔구만. 허허.
.
.
.
엄마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팔불출이 되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은 그런 엄마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고, 또래 엄마들은 경시의 눈빛을 보낸다.
천재로 소문나면 안 된다.
좀 잘하는 고딩하고만 붙어도 질 게 뻔하다.
그…신?이 내게 천재적인 두뇌를 준다고 했을 때 받았어야 했나?
뒤늦은 후회가 되네.
“가요. 엄마. 얘들아. 학교에서 보자.”
“잘 가. 제이든. 담 주에 또 와.”
“꼭 와라아.”
“그래그래.”
기분이 좋아진 엄마가 다른 엄마들과 좀 더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끌고 나왔다.
지금은 도망쳐야 할 시점이다.
밑천 뽀록나기 전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대충 옷만 갈아입은 채 인터넷 폭풍 검색을 하는 엄마.
“난 또 우리 아들이 이렇게 체스를 잘 두는지 몰랐잖니. 가만 보자. 여기 커뮤티니 센터에 체스 클럽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엄마. 배고파요.”
“어. 냉동실에 냉동피자 있어.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으렴. 할 수 있지? 엄마가 좀 바빠서.”
냉동피자…지겹다.
엄마가 정신없을 때를 틈타 요리를 하자.
냉장고로 가 문을 열었다.
지난 주말에 사 왔던 야채들이 조용히 썩어가고 있었다.
자그마치 웨이츄레스라는 직업을 가진 엄마.
어떻게 이렇게도 요리에 관심이 없는지 모를 일이다.
지난번에 근처에 있는 ALDI라는 곳에 갔다가 1파운드(450g) 정도 되는 쌀 한봉다리를 사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작은 발판위에 올라선 채, 냄비에 밥을 안쳤다.
다음으로 파를 다듬었다.
썩은 부분을 떼어내다보니 앙상해져 버린 파.
몇 개 더 꺼내 손질했다.
파프리카도 씻고, 브로콜리도 씻고, 달걀도 풀고.
사놓고 쓰지 않아 유통기한이 끝나가는 마늘가루도 새로 뜯고.
볶음밥을 만들었다.
간장이 없어 대충 소금과 후추로 간을 했다.
아직 여린 팔이라 칼질이 좀 서툴긴 했지만 나쁘진 않다.
한때 너무너무 심심해서 요리 강습을 들었던 것이 이럴 때 또 도움이 되네.
냄새가 고슬고슬 올라온다.
“어? 이게 무슨 냄새…어머! 제이든! 위험…한데…근데 너 요리도 할 줄 알아?”
“전에 혼자 있을 때 한 번 해 봤어요.”
“진짜? 난 왜 몰랐지?”
“한번 드셔보세요. 간장이 없어서 대충 소금으로 간했는데 맛이 어떨지는 모르겠어요.”
“어우야. 우리 아들이 해 준건데 당연히 맛있겠지.”
크게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 엄마.
“우와. 되게…신기한 맛이다. 예전에 유주 어머니가 해 주셔서 먹어본 적은 있는데…좀 달라.”
“이 동네에서 간장 살 곳은 없죠?”
“1시간쯤 나가면 아시안 마켓이 하나 있긴 하다고 들었어.”
“시간되면 같이 한번 가요.”
“지금 가자. 내일부터는 또 학교가고 그러면 너무 바쁘니까.”
“아뇨. 담주에. 어제, 오늘 너무 무리했어요. 엄마도 쉴 때가 있어야죠.”
“난 괜찮은데.”
수요일이 급여날인 거 다 아는데.
어제도 없는 돈에 옷까지 사느라 무리한 거 다 압니다.
일반 직장인이 아닌 식당 알바이다 보니 2주에 한번씩 급여를 받는다.
처음 2주치로 월세내고, 남은 2주치로 우리 모자(母子)는 한달 생활을 한다.
그러니 아껴써야지.
돈의 지출입이 눈에 뻔히 들어오는데, 먹고 싶다고 다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도 단 하루만 쉬면 통장에 구멍나는 거 일도 아닐 것이다.
얼른 자라서 뭐라도 해야겠다.
가난은 한량도 철들게 만든다.
***
수요일.
엄마가 어디 좀 가자며 손을 잡아끈다.
뭐든 엄마한테 맞춰주기로 결정했기에 군소리 없이 따라갔다.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지역 커뮤니티센터.
“제이든. 인사드려. 미스터 드와슨이야. 체스 클럽 선생님인데, 오늘은 간단하게 레벨 테스트만 할 거야.”
“어…어머니?”
“응?”
“전 체스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요?”
“제이든. 괜찮아. 엄마가 일하는 시간 조금 더 늘리면 너 가르쳐 줄 수 있어. 이 선생님은 특별히 미세스 켄달이 추천해주신 선생님이야. 예전에 전국 체스챔피언십에서 우승도 하셨다고.”
아니. 진짜로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고.
“미스터 패터슨. 네가 진짜 체스에 천재성이 있는지 아닌지는 내가 보고 판단할게. 나도 아무 제자나 받지는 않아.”
얼굴에 표정이 별로 없는 미스터 드와슨.
그래.
한번 둬 보는 거야 뭐.
“네. 한번 해 보죠 뭐.”
“이쪽으로.”
미스터 드와슨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거기엔 이미 열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다.
딱 봐도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
방안에는 ‘ㄷ’자 모양으로 테이블이 구성되어 있었고, 바깥쪽으로 아이들이 각자의 앞에 체스판을 놓고 앉아 있었다.
미스터 드와슨이 나를 데리고 ‘ㄷ’의 안쪽으로 들어섰다.
“시작.”
가타부타 말도 없다.
바로 시작이다.
그러자 아이들이 아주 익숙하게 각자의 앞에 놓인 체스판의 말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미스터 드와슨이 내게 눈짓을 한다.
해보라는 뜻.
한명씩 옆으로 옮겨가며 말을 움직였다.
말을 한번 움직일 때마다 한칸씩 옆으로 이동해서, 혼자 열 명을 모두 상대하는 것이다.
폰(Pawn)은 폰으로,
나이트(Knight)는 비숍(Bishop)으로 잡고,
또 룩(Rook)은 룩과 퀸(Queen)을 적절히 움직여서 잡고.
퀸은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어떻게든 빨리 잡아 죽여야 한다.
‘근데 이거 왜 이렇게 쉽냐?’
킹(King)이 하나씩 넘어진다.
갑자기 너무 어린애가 들어와 자기들과 대련을 하는 것도 기가 막힌데, 실수 한번에 퀸을 뺏기고, 당황하니 다음번엔 킹이 넘어간다.
방문이 열려 있었기에 지나가던 이들이 들어와 구경하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한 고등학생의 킹마저 넘어가자 곳곳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머리를 쥐어뜯는 고딩을 뒤로하고 미스터 드와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박수를 친다.
그러자 앉아있던 아이들도, 고개를 빼꼼 내밀며 구경하던 이들도 박수를 쳐 주었다.
감탄과 함께 어이없음이 함께 묻어나는 박수소리들.
– 짝짝짝짝.
“미스터 패터슨. 천재가 맞았어. 조금만 더 다듬으면 전국대회에도 합류할 수 있을 것 같군. 다음 주부터 최상급반에 합류하도록.”
“헤헤. 감사합니다. 근데 저 안할래요.”
“이유는?”
‘뭘 물어. 당연히 돈 때문이지.’
레슨비부터 대회 참가비까지, 잘하면 잘할수록 다른 주(State)로 원정경기까지 가야한다.
물론 아주 탁월하게 잘 하면 돈 많은 누군가의 눈에 들어 장학금 혜택이나 생활비 보조를 받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사이 드는 비용은 충당할 방법이 없다.
이런 사실을 굳이 입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지.
최대한 어린이다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헤헤. 체스도 재밌긴 한데요. 아직은 레고랑 장난감 차 가지고 노는 게 더 좋아요.”
– 으하하하.
– 옳소!
주변에서 박장대소를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암. 킨더는 놀아야지.
어차피 아이비든, 아이비 할아버지든 대입 원서에 기입할 수 있는 활동은 9학년 때부터다.
8학년 때까지 각종 대회를 휩쓸며 날고 기어도, 본격적으로 대입 원서를 작성하는 프로그램인 커먼앱(Common app)에 넣을 수 있는 건 9학년부터의 활동들이다.
벌써부터 진 뺄 필요는 없다.
물론 중학교 때부터 서서히 시동을 걸긴 해야 하지만 굳이 킨더 때부터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세상 지루하기 짝이 없는 체스.
됐다고 본다.
그냥 이렇게 한번씩 나보다 머리 큰 놈들 놀려먹는 재미만 느낄 수 있으면 족하다.
엄마가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완강한 거절.
엄마가 표정으로 아쉬움을 토로하지만 더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래 말 잘 듣는 아이들이 한번씩 부리는 똥고집은 부모도 못 꺾는 법이다.
엄마의 치맛바람이 일단은 사그라든 것 같았다.
***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는 3학년이 되었다.
삶은 특별히 변한 게 없었다.
학교에선 아직 단 한번도 ‘A-’조차 받아본 적 없는 우등생으로 모든 관계자들의 예쁨을 받고 있었다.
원래 조금 잘나면 질투하지만 너무 잘나버리면 질투도 하지 않는다.
그저 추앙할 뿐.
해맑기만 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대충 ‘눈치’란 걸 탑재하기 시작했다.
딱히 변한 건 없었다.
나를 추앙하는 인간들이 더 늘어났을 뿐.
그리고 오늘은 한달 후 있을 인터내셔널 데이(International Day) 행사를 위한 준비 첫 날이다.
3학년이 되면 하는 첫 번째 ‘뿌리찾기’ 행사라고 할 수 있겠다.
백인들도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은 어딘가에서 흘러왔으니 후손들이 고고조 할아버지 할머니의 나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다국적 나라인 만큼 백인들만 모여 있다 해도 선조들의 나라는 아주 다양했다.
독일에서 온 고고조할아버지에 이탈리아에서 온 고조할머니, 레바논에서 온 증조할아버지에 영국 할머니 등.
한 식구 사이에서도 족보가 꼬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경우 담임 샘은 선조들 중 좀 더 희귀한 나라에서 온 선조를 선택하도록 유도했다.
어쨌든 미국역사도 잘 모르는 이곳 태생 3학년 아이들이 선조들 나라에 대해 발표를 하려면 자료조사가 필수.
깐깐한 할머니 담임인 미스 브루셀라는 우리에게 총 10장의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라고 했다.
그러면서 던져 준 여러 참고서적들.
‘이런 썅!’
난 한국에 대한 조사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올 뻔 했다.
담임 샘이 던져준 책자에선 ‘독도’가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는 건 애교 수준이었다.
안 그래도 자료도 별로 없는데다, 얼마나 오랫동안 신간을 들이지 않았는지 완전 엉터리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 한국은 5천년 역사 동안 중국의 속국이었다가 1900년대 초반 잠깐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미국 덕분에 잠깐 해방되었다가 지금은 반으로 갈라진 나라. 50년만에 급속도로 성장을 했지만 성장속도에 비해 시민의식은 따라가지 못하는 나라. 아직도 개를 먹는 나라. 세계최대 입양파견국. 등등.
봐 줄 수가 없을 정도다.
“미스 브루셀라. 이 책은 완전 잘못되었어요.”
“어떤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거지?”
“한국은 5천년동안 독립된 나라였어요. 잠깐씩 중국과 일본에 침략당한 적은 있어도 늘 이겨냈다고요. 그리고 이 일본해도 동해라고 부르는 게 맞고요. 개를 먹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고 보면 되고요.”
나는 내가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담임샘을 설득했다.
미스 브루셀라가 입꼬리에 비릿한 웃음을 말았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