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73)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73화(73/280)
워크캠프 3
할머니는 머리가 새하얀 완전 꼬부랑 할머니고, 할아버지는 듬성듬성 검은 머리가 있고, 허리를 펴고 있다.
“아이고. 수고들이 많네. 엄마. 저 청년들이 엄마 휠체어 올라올 수 있게 경사로 만들어 준대.”
“…응? 뭐라고?”
“엄. 마. 휠체어. 경사로. 만들어 준다고. 편하라고.”
“아아. 고마워요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상황을 설명해 준다.
이가 듬성듬성한 할머니가 귀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헐.
모자(母子)관계였어?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엄마’라고 하니 뭔가 이상하다.
훗날의 나와 엄마의 모습일지도.
갑자기 저 할머니 할아버지가 막 친근하게 느껴진다.
패트릭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마주 소리를 질렀다.
“어르신들. 며칠만 기다리세요. 저희가 아주 튼튼한 휠체어 경사로 만들어 드릴 테니까.”
“어이쿠. 이 더운 날에 고생이 많아. 근데 여기 물기둥(downspout)도 좀 봐줘. 물길이 이상하게 틀어져서 앞마당이 그 모양이 됐다니까. 물길 틀어지니 앞마당 잔디도 다 죽어 버리고. 흙은 다 씻겨 나가고 자갈만 남았어. 이젠 뭐 완전 자갈밭이라고 불러야겠어.”
“에고. 처음 등록하실 때 그것도 미리 말씀을 하시지. 일단 캠프 측에 말은 해 둘게요.”
“그냥 땅 조금 파고, 위치만 다시 잡으면 되는데. 물길 만드는 거 뭐 어렵다고. 내가 지금이야 늙어서 다리를 구부리기 힘들어서 이렇지. 젊을 때는 그 정도는 혼자 다 했어.”
할아버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집 지붕과 연결된 기다란 물기둥의 중간이 뒤틀려 있다.
물기둥은 기다란 파이프 2개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중간 것이 틀어져 있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엔 분명 그쪽으로 물이 빠져나왔을 것이다.
국지성 호우가 빈번한 이곳에서 저러면 집 본체까지 상할 수도 있겠다.
이미 외벽 중간중간 썩은 곳이 많아 본래의 색이 뭔지 알아보기도 힘들지만, 더 나빠지는 건 막아야지.
그렇다고 내가 나설 수는 없다.
외벽을 만져보며 상황을 살피던 패트릭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뭐. 이 정도면 우리 손으로도 해결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보고는 해야 해요.”
“그래그래. 그럼 잘 좀 부탁해.”
“네. 걱정 마시고 들어가세요. 날이 더워요.”
“고마워요들. 수고해.”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부축해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계속해서 곡괭이질과 삽질이 이어진다.
휠체어 경사로의 기둥은 양쪽으로 두 개가 한 세트다.
보통 첫 번째 세트를 끝낸 후 다음으로 넘어가지만 우리는 2인 1조로 한 조가 한 세트를 책임지고 만들기로 했다.
나와 마커슨이 첫 번째 줄,
크리스틴 조는 두 번째 줄, 기둥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고 있고, 부 리더인 닉과 다른 학생이 세 번째 줄을 하고 있었다.
나의 현란한 곡괭이질에 우리는 벌써 두 개의 구덩이를 다 팠다.
“이 정도면 다 된 거 같은데?”
“와. 우리가 제일 빨리했어.”
“그럼 첫 번째 거 기둥 한번 세워 볼까?”
“좋지.”
한쪽에 마련되어 있던 기둥을 가져와 첫 번째 구덩이에 세우는데,
― 후둑. 후두둑.
“…비?”
“으악. 안 돼!”
“괜찮아. 그냥 해. 비 오면 땅이 부드러워져서 파기 더 쉬워. 잠깐 오고 말면 오히려 도움 되지.”
“근데 이거… 빗방울이 엄청나게 굵은데?”
“…그러네. 이러면 시멘트 작업은 오늘 못하겠는데.”
“시멘트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구덩이도 다 못 팔 거 같은데?”
“그러게. 사람이 더 있어야 할 거 같아.”
“으아아. 내 깁스에 비 들어오면 안 돼에에.”
알렉스가 기겁을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서 있던 지붕 아래로 폴짝폴짝 뛰어 들어갔다.
중간에 계단도 있는데 목발로 잘도 짚으며 올라간다.
저거… 좀 부려 먹어도 될 거 같은데.
― 후두두두. 쏴아아!!
내가 제이든으로 처음 눈을 뜨고 엄청 놀란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미국 땅의 국지성 호우였다.
비가 그냥 비 수준이 아니다.
양동이 100개를 한 번에 들이붓고는 끝―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5―10분 정도 짧게 엄청난 폭우를 쏟아내고는 곧 말짱해지는 하늘.
그 날씨 변덕이 무척 놀랍고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10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사이 또 환경이 달라져 요즘엔 국지성 호우보다는 토네이도가 많아졌다.
뉴스에서 보듯 엄청난 규모의 토네이도보다는 잔잔하게 지붕 정도 날리고, 나무를 기둥째로 뽑아 내는 정도의 토네이도 말이다.
아무튼 겨우 구덩이 2개 다 파고, 기둥 세우는데 비에 의해 망가지게 둘 순 없다.
마커슨에게 ‘기둥을 잡고 있으라.’ 시키고는 아까부터 봐둔 큰 돌 몇 개를 주워 기둥부터 고정시켰다.
첫 번째 기둥이 끝난 후 곧바로 다음 구덩이의 기둥도 고정시켰다.
덕분에 우리는 쏟아지는 비를 쫄딱 맞아야만 했다.
“어이구. 시워어언하다.”
“제이든. 할아버지 같아.”
“…….”
“근데 이제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제대로 했는지 패트릭 아저씨한테 검사받아야지.”
“그다음엔?”
“그다음? 두 기둥을 연결하는 뼈대를 넣어 길이랑 수평 맞춰보고. 물이랑 시멘트 가루 잘 섞어서 시멘트 만들어서 부은 후에 고정해야지. 12개 기둥 전부 다 되고 나면 그 뒤엔 저기 있는 나무판자들 길이 맞춰 잘라서 경사로 바닥 만들고. 못으로 고정하고. 그리고는… 음. 이 기둥들은 휠체어 높이에 맞춰서 비스듬하게 잘라서 난간 만들어야 하고. 아직 할 일 많이 남았어.”
“넌 뭔데 그렇게 잘 알아?”
“…아까 패트릭 아저씨가 다 말해 줬잖아.”
“그니까.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고…됐다. 캡틴인데 뭘. 당연한 거겠지. 어우. 비 한번 시원하게 내린다. 다들 선크림 다시 발라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난 그거 끈적거려서 싫던데. 쟤들은 꼭 바르더라.”
“너나 나나 햇볕 좀 받으면 살 좀 벗겨지고, 좀 타고 말지만, 쟤들은 진짜 화상을 입더라고. 백인들이 멜라닌 색소가 부족해서 피부암에 잘 걸린다고도 하고.”
“암튼 피부는 우리 흑인들이 최고지.”
“그건 그래.”
삽질하던 우리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오는 비를 맞으며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마커슨과 단둘이 이런 소소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나쁘지 않다.
― 으아악. 안 돼에!
한쪽에서 물기둥을 수리하던 패트릭 아저씨의 외침.
물기둥을 잠시 떼어놓은 상태에서 지붕의 거터(gutter)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있던 것이다.
물기둥의 시작점과 끝부분에 쌓이는 온갖 낙엽과 자갈들을 치우지 않아 물길이 막혔고, 결국 물기둥에 무리를 준 것이다.
겨우 거터에 쌓인 쓰레기들을 치우고, 아래에 쌓인 쓰레기들을 치우며 물길을 만들고 있었는데, 집중 호우가 쏟아진 거다.
애써 파 놓은 배수로가 엉망이 되었다.
“도와드려요?”
“으흐흐흐. 다 다시 해야 해. 으흐흐흐.”
패트릭 아저씨가 정신이 나갔다.
그 모습에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예상대로 비는 금방 그쳤다.
땅 여기저기가 푹푹 패었다.
이쯤 되니 집 안에 비는 안 새는지 궁금하다.
그래도 우리의 기둥들은 지켜 냈다.
“패트릭 아저씨, 우리는 대충 된 거 같은데요. 확인 좀 부탁드려요.”
“어어. 잠깐만.”
“패트릭! 내가 먼저 확인할게. 하던 거 마저 해.”
“어, 닉. 부탁해.”
우리 그룹 부 리더 닉이 자기 구덩이를 파다가 말고 와서 우리 기둥 상태를 점검한다.
한쪽에 놓여 있던 뼈대를 가져와 길이를 맞춰 보고, 양쪽의 높이와 수평도 잰다.
그쪽도 오는 비를 모두 맞고 일을 했다.
구덩이를 지키기 위해선 할 수 없는 거다.
“와. 믿을 수가 없다. 너무 잘했는데? 처음 하는 거 맞아?”
“하하. 네.”
“헤헤. 저희 잘했죠?”
“어. 나도 분발해야겠어.”
그 사이 패트릭 아저씨가 손에 묻은 낙엽들을 대충 털어내고는 다가왔다.
“어디 보자. 애들 잘했어?”
“어. 봐봐. 완전 깔끔해. 그렇게 비가 쏟아졌는데도 단단히 세웠어. 이대로 시멘트만 부으면 끝나겠는데? 멋져.”
“하하. 리암이 조카 자랑을 그렇게 하더니. 어디 보자. 어이쿠. 진짜 잘했네.”
“저도 같이 했어요.”
“그래그래. 당연히 우리 마커슨도 잘했지. 할머니가 마커슨 칭찬 많이 하셔. 바르게 잘 자라고 있다고. 귀한 손주라고 하던데?”
“헤헤. 우리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그럼. 우리 마누라 귀에 딱지 앉을 정도라고 하더라. 하하하.”
“아저씨! 우리도 다 했어요. 와서 봐 주세요!”
크리스틴이 손을 든다.
“그래. 간다. 제이든. 마커슨. 그럼, 이제 4번째 줄 시작할래? 어차피 한 조당 2개씩이니까 먼저 하고 쉬어도 돼.”
“네.”
패트릭 아저씨와 닉은 괜찮다고 했지만 제일 처음 만든 구덩이가 살짝 기운 것 같아 불안하다.
내가 만든 거니 내 눈에 더 잘 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감독관들이 괜찮다고 하니 일단은 4번째 줄로 이동했다.
― 콕콕. 쓱쓱.
다시 곡괭이질과 삽질을 시작했다.
땅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엄청나게 쏟아부었어도 잠시 지나간 비라 그런지 물이 땅속 깊이 침투하진 못했다.
그래도 아까보단 훨씬 낫다.
곡괭이가 조금 더 쉽게 들어간다.
하지만 빗물 때문에 손잡이가 미끄럽다.
마커슨 역시 삽이 미끄러운 모양이다.
우리는 동시에 웃옷을 벗어 손잡이를 옷으로 말았다.
“시바시바. 남자 새끼들은 옷 벗기도 쉽고. 이거 삽 미끄러워서 어쩌냐고!”
“네가 여자인 게 우리 잘못은 아니잖아.”
“누가 뭐래?”
“아니. 너무 짜증을 부리니까.”
“혼잣말도 못 하냐! 마커슨. 삽으로 한판 떠?”
“악. 취소, 취소. 알렉스 옷이라도 벗겨 드려?”
크리스틴이 짜증을 부린다.
평소의 장난치는 듯한 말투가 아니라 진심 짜증이 묻은 목소리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날씨긴 하다.
알렉스의 목소리가 멀리 들린다.
뭐지?
고개를 들어보니 옆옆집에 가 있다.
포치(Porch)에 나와 우리들 일하는 걸 구경 중인 동네 주민들.
그 속에 알렉스가 끼어 열심히 재잘거리고 계신다.
어이가 없다.
우리는 일하는데.
마음속에서 슬그머니 꼰대의 기질이 올라온다.
안 되겠다.
부려 먹어야겠다.
“알렉스!”
“왜에. 알렉스 님 바쁘시다!”
“일루와. 이것 좀 잡고 있어.”
“어허. 감찰관을 부려 먹겠다는 건가?”
“빨리 와라.”
“그래.”
접이식 의자를 하나 꺼내 알렉스를 첫 번째 기둥 옆에 앉혔다.
패트릭 아저씨의 밴에서 우산도 하나 꺼내왔다.
“이거 좀 잡고 있어. 넘어갈까 봐 좀 불안해서 그래. 그리고 여기 딱 앉아서 다른 사람들 세우는 기둥들이 나란히 줄이 맞는지 감시도 하고.”
“가. 감시? 감시면… 할 만한데. 근데 히잉. 더워. 여기 깁스한 데 햇볕 받으면 엄청 간지럽단 말야.”
“그래서 파라솔까지 준비했잖아. 한 손으론 기둥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우산 잡아. 일하러 왔으면 일을 하셔야죠. 감찰관님. 잠깐만 그러고 있어. 땅 부드러울 때 지금 파는 것만 마저 파고 와서 다시 고정시킬 테니까.”
“아저씨. 제이든이….”
마침 크리스틴 조의 구덩이를 다 확인한 패트릭 아저씨와 닉이 알렉스의 어깨를 한번 두드려준 뒤 지나간다.
크리스틴 조는 퇴짜를 맞았다.
크리스틴이 시바시바 거리면서 다시 삽질을 한다.
크리스틴은 초짜고, 같이 일하는 아이는 이번에 3번째 참여라는데…
같은 조 아이가 크리스틴 눈치를 본다.
갈수록 입도 걸어지고, 성격도 드세지는 크리스틴.
언제는 영화감독이 꿈이라더니 어느 순간 펜타곤이 목표가 되었고, 지금은 군인이 될 거라고.
모병제인 미국 군대는 군인들을 모집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텔레비전 광고는 물론이고 옥외 간판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간판 등등에 군인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늘 붙어있다.
그중 하나가 공립 고등학교에 내셔널가드들을 항시 대기시켜 놓는다는 것이다.
학교 카페테리아 한쪽에 자리를 잡고, 딱 봐서 군인으로 영입할 만한 애들을 찍어 군대에 들어오라고 꼬시는 것이 그들의 주 임무다.
주(state) 방위군인 내셔널 가드 모집도 있고, 연방군 모집도 있다.
우리 동네 고등학교엔 내셔널 가드 모집을 위한 부스가 항상 설치되어 있다.
9학년부터 11학년은 콧방귀를 뀌며 지나가지만, 진로를 정해야 하는 12학년들은 한 번씩 기웃거리기도 하는 부스.
9학년인 크리스틴이 관심을 가지자 아주 신나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 줬다고.
군인을 우대하는 나라답게 군인에겐 여러 혜택이 존재한다.
귀가 얇은 크리스틴이 그 매력에 흠뻑 빠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진짜 펜타곤에서 일하고 싶으면 일반 군인이 아닌 사관학교에 가라고 조언했고, 이래저래 알아보던 크리스틴은 사관학교로의 진급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근데 저 성격으로 사관학교 입학이 가당키나 하겠냐고.
인성을 아주 중요시한다는데.
알렉스를 우리가 만들어 둔 첫 번째 구덩이 옆에 짱박아 놓은 후 우리는 네 번째 줄 구덩이를 계속 팠다.
비가 언제 왔냐는 듯 하늘은 다시 햇볕이 쨍하다.
속옷까지 젖었던 옷은 완전 바싹 마른 후 우리 땀에 의해 다시 절여지고 있었다.
설마 이거 내일 또 입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