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98)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98화(98/280)
커리어(Career) 데이와 삽질 2
학교가 끝나자 라이언이 친히 내 락커로 다가왔다.
오늘따라 내 락커에는 더 많은 캔디가 붙어있다.
그걸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는 라이언.
“야. 그거. 나 보라고 붙여 둔 거냐? 나. 나도 그 정도는 매일 받거든?”
“풋. 누가 뭐래냐? 잠깐 기다려. 그래도 준 사람들 성의가 있으니 가져가야지.”
“넌 아시안 주제에 어떻게 그런 걸 많이 받지?”
“넌 백인 주제에 왜 이런 것도 못 받지?”
“미친 거야?”
“누가? 내가? 니가 아니고?”
“…빨리 떼라고!”
“내 앞에서 소리 지르지 마라. 나도 너 고막 터지게 소리 질러 줄 수 있다.”
“아저씨 기다려. 가야 해.”
“1분이면 돼. 그러니까 기다려.”
전생의 형제들 앞에서만 제외한다면 어디 가서 기 싸움에서 져 본 적은 없다.
당시에도 내 잘못은 아니지만 어쨌든 본인 가족들에게 생채기를 낸 건 사실이니까.
물론 내 부모 앞에서는 당당했지.
말했듯이 내가 태어난 건 내 의지가 아니었으니까.
그 형제들에 비하면 이런 피라미 정도야 껌이다.
* * *
라이언이 의외로 운전은 또 부드럽게 한다.
운전을 하려면 적어도 16살은 넘어야 한다.
아무리 늦게 학교를 들어와도 2년이나 늦게 왔다고?
난 2009년 7월생이고, 14살이 된 지 얼마 안 됐다.
보통 내 나이 또래들이 14―15살인 걸 생각하면 라이언은 적어도 1년 반이나 늦게 들어왔다는 소린데.
“너. 생일이 언제야?”
“그딴 건 왜 물어?”
“면허 있는 거 맞아?”
“하. 4월생이다. 어쩔래. 지난 4월에 16살 됐고, 이 차는 그때 생일 선물 받은 거고.”
“근데 왜 9학년이야?”
“킨더 때 아파서 1년 꿇었어. 됐냐?”
“…….”
“불쌍하게 보지 마라. 죽여 버린다.”
“어디가 아팠는데?”
“뭘 또 그렇게 대놓고 물어?”
“나도 아팠었어. 킨더 들어가기 전에.”
“그래? 얼마나 아팠는데? 나처럼 뭐 한 1년 병원 신세 졌냐?”
“1년까지는 아니고 3개월. 심장에 이상이 있었거든. 지금은 완치됐고. 넌 왜 1년이나 병원 신세 졌는데?”
“…암.”
“고생했네.”
주변에 왜 이렇게 평범한 인간들이 없냐.
알고 보면 모두들 하나씩 짠한 스토리들을 가지고 있다.
간만에 빡세게 삽질 좀 하려고 했는데, 살살 봐 줘 가면서 해야 하려나.
“…동정하냐?”
“뭐래. 나도 아팠다니까.”
“갑자기 말이 없으니까 이상하잖아.”
“어릴 때 그 정도로 아팠으면 남들보다 좀 성숙하고 뭐 그러지 않나? 뭐가 이렇게 덜 컸어?”
“시바. 내려!”
“삽질 안 해도 돼?”
“아니. 해야 해.”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
“엘리가 누군데?”
“그게 왜 궁금하냐? 아니. 말 나온 김에 좀 묻자. 도대체 누가 좋은 건데? 엠마가 좋은 거냐? 아님 베티가 좋은 거냐? 아님 그냥 내가 싫은 거냐? 뭐. 백인 아닌 인간은 인간으로 안보이는 병 같은 거 걸린 거야?”
“그런 거 아니거든!”
“니 평소 행동으로 보면 그런 거 맞는 거 같거든?”
“…니가 거슬리긴 해.”
“아하. 그러니까 내가 싫은 거네?”
“꼭 싫다기보단 그냥 거슬린다고.”
“그 말이 그 말이거든? 좀 봐줄까 싶었더니 안 되겠다. 오늘 참교육 좀 받자. 나중에 삽질에 져서 울지나 마라.”
“뭐래. 미친놈이.”
“내가 미친 거 맞는 거냐?”
“…내려. 다 왔어.”
― 탁.
학교에서 30분 거리의 공장 지대.
넓다.
저쪽에 정돈되지 않은 곳까지 합하면 우리 학교 부지 전체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대충 동네 조경 회사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동네 유지급 아닌가?
한쪽엔 온갖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고, 다른 한쪽엔 커다란 창고에 머치(mulch)부터 각종 비료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 뒤로는 곡물 창고처럼 보이는 아주 커다란 원통형 사일로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각자의 시설물들마다 그 크기가 엄청나다.
“어이. 왔냐들?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저기 가든 뒤쪽으로 가봐. 난 돼지 좀 픽업해 올게.”
“돼지요?”
“일이 생각보다 커졌어. 구경꾼이 한 60명은 될 거 같아. 그래도 우리 회사 손님들인데 그냥 보낼 순 없지. 일단 가 있어.”
작은 트럭에 올라타 있는 밥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는 대충 손짓을 하고는 가 버렸다.
“뭐야? 파티야?”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암튼 일 크게 만드는 데는 선수라니까. 그냥 작은 시합 한 번이면 되는데.”
“근데 너 저 아저씨 잘 알아?”
“어. 아빠 친구.”
― 헤이. 이쪽으로!
― 라이언 상대가 쟤야?
― 아시안이네?
― 덩치 괜찮은데? 잘하면 라이언이 질 수도 있겠는데?
― 이미 한 번 졌대. 팔굽혀펴기에서 발렸다는데?
― 오우. 이런.
.
.
.
옛날 영화에서 보면 껄렁한 청년들이 이상한 포대 자루들 잔뜩 쌓인 곳에 올라앉아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는 장면들이 있다.
꼭 그런 모습들로 작업복을 입고, 느긋하게 앉아있는 20―30대 젊은이들 3―4명이 우리 둘을 두고 품평회를 하고 있다.
그리고 속속들이 들어오는 차들.
“헤이. 미세스 영!”
“미스터 칼!”
“미스 주카이!”
“미스터 크롭스키!”
“미스터 앤더슨!”
.
.
.
뭐야? 다들 아는 사이들이야?
미스터 앤더슨?
마크와 헤나의 아버지다.
제법 친한지 서로를 부르며 반가워하는 사람들.
마크 아버지가 어디서 매번 정보를 물어오나 했더니 여기 사람들한테서인 모양이다.
“오늘 재미난 일 있다고?”
“미스터 밥이 머치 10파운드짜리 다섯 포대나 걸었다고요.”
“오호. 헤이. 제이든. 니가 라이언 상대라며?”
“아저씨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
“여기 다 내 친구들이야.”
한동안 잊고 있었던 사실.
여기 씨족 사회였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떠날 놈들은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서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한 10년쯤 전만 해도 고등학교 12학년 중 대략 70% 정도의 학생들만 대학 진학을 했다고.
요즘엔 80%대로 늘어났다.
정상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퍼센티지도 지금은 87%에 달한단다.
교장과 이사회에서 학군 점수를 끌어올리고자 총력을 다한 결과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비싼 등록금을 내며 대학을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다.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고임금 인력들은 아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데는 크게 지장 없는 직장들을 잡아 한가롭게 일하고, 적당히 벌면서 작은 집에 살며 가족들과 알콩달콩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얘들아, 저기 보이냐? 니들을 위해 우리가 일 좀 했다.”
포클레인 옆에 커다란 구덩이가 2개 있다.
생각보다 구덩이가 깊다.
이 사람들, 제정신인가?
“땅을 파는 게 아니라 메우는 거예요?”
“오호. 바로 알아보네? 그래도 고딩들한테 땅 파라는 건 아니지. 우리가 대충 파 뒀으니까 빨리 메우는 놈이 이기는 거. 어때?”
“그래그래. 우리도 삽질은 잘 안 해. 포클레인 있는데 뭐 하러 그래. 사서 고생하겠다니까 말리진 않겠다만, 그래도 파는 것보단 메우는 게 나을 거야.”
“맞아. 내일 학교도 가야잖아. 굴러떨어지지 않게만 조심하라고. 생각보다 저거 깊어.”
“삽. 잡을 줄은 알지?”
“네.”
“…….”
“라이언은 모르는 거 같은데? 이리 와봐. 내가 특별히 가르쳐 주지. 괜찮지?”
“그럼요. 잘 가르쳐 주세요.”
원래 삽질은 군대 선임한테 배우는 거다.
― 잘 봐봐. 지금 너처럼 그렇게 팔 힘으로만 계속 삽질을 하면 1시간 후엔 어떻게 될까? 요요. 팔꿈치랑 어깨가 또각― 나가 버린다고. 이렇게 어? 허리와 허벅지의 힘을 함께 이용해서 어? 잘 보라고. 각도가 중요해요. 이 각도로 꾸준하게 퍽― 어? 퍽― 이렇게 퍼서 여기다 팍― 뿌리는 거지. 이 뿌리는 것도 요령이 있어. 툭툭 뿌리다간 있는 것도 다시 딸려 온다고. 팍― 뿌리고 바닥 한번 툭―. 오케이? 해 봐.
― 에헤이. 고것이 아니랑께. 너처럼 하면 내일 일어나지도 못해요. 젖은 흙을 버릴 때는 요놈의 습기 때문에 흙이 삽에 딱 달라붙어서 버려지지도 않아. 그럴 땐 요렇게 바닥 한번 찍어. 근데 이것도 잘못하면 팔꿈치 나간다. 그냥 삽을 이렇게 세우고 발로 한번 요렇게 여기를 툭―치면 바로 떨어져 나간다니까.
― 이그. 젊다고 막 달리면 어떻게 되겠어? 급하다고 그렇게 서두르면 숨차서 뒈져요. 일정하게. 어? 마라톤이다 생각하고 일정하게 페이스 조절해가면서 해야 한다고. 그렇다고 너무 느리게 하라는 소리는 아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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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군대 선임들에게 갖다 바친 내 닭튀김과 과자들이 이제야 제 노릇을 할 모양이다.
한쪽에서 삽질 레슨을 받고 있는 라이언이 안쓰럽다.
그런다고 대한민국에서 삽질만 하다 만기 제대한 육군 병장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가소롭다는 표정을 한번 날려 준 후 삽을 살폈다.
* * *
구경꾼들이 다 모였다.
한쪽에선 돼지 통구이가 돌아가고 있고, 다른 쪽엔 급하게 공수해 온 야채들이 놓여 있다.
예전에 헤일리와 클로이 졸업 파티 때 보았던 예의 당근, 샐러리, 오이 같은 것들이 잔뜩 놓여 있는 트레이.
모양새가 똑같은 걸 보니 저렇게 파는 곳이 있나보다.
어른들의 손에 맥주가 들린 건 이미 오래됐다.
“준비이.”
“시작!”
― 라이언! 라이언!
― 제이든! 제이든!
― 풋볼 선수의 진면목을 보여 줘!
― 제이든. 너드는 대가리를 쓰는 거야! 발라 버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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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이 갈렸다.
스포티키즈들과 너드들로.
아무리 봐도 우리가 ‘너드’라 불릴 정도로 공부만 파는 족속들은 아닌데 말이다.
내가 자라는 동안 ‘너드’의 개념이 또 달라진 건가.
아무튼 시합은 시작됐다.
일찌감치 얻은 목장갑을 끼고, 균형 있는 속도로 삽질을 시작했다.
― 퍽퍽퍽퍽퍽.
― 퍽. 쏴아. 퍽. 쏴아. 퍽. 쏴아.
라이언이 미친 듯이 삽질을 해 댄다.
도대체 뭘 가르쳤는지 모르겠다.
저러면 금방 퍼지는데.
“제이든! 힘을 더 내!”
“라이언! 잘한다!”
생각보다 라이언의 힘은 좋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풋볼을 시작했다더니 폐활량이 남다르다.
지쳐 떨어져 나갈 때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속도감 있게 삽질을 해 댄다.
구덩이가 좀 깊긴 하지만 2시간이면 끝날 분량.
하지만 내가 질 것 같지는 않다.
라이언은 속도에 정신을 팔아서인지, 삽에 붙은 흙을 다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 삽만 무겁고, 성과는 없는 법인데.
“쯧.”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짧게 혀를 차 준 후 속도를 살짝 높였다.
― 퍼퍼퍽. 퍼퍼퍽. 퍼퍼퍽.
― 퍽퍽퍽퍽퍽퍽. 헥. 퍽퍽퍽퍽퍽퍽. 헥.
돌아보니 내 구덩이의 흙은 아직 60% 정도가 남았고, 라이언은 반 정도가 남았다.
짜증을 내기 시작하는 라이언.
“왜 안 줄어? 어? 왜 안 주냐고? 나 이렇게 빨리하는데? 구덩이 2개 똑같은 거 맞아?”
“니가 먼저 골랐거든?”
“근데 왜 안 주냐고!”
“피. 라이언. 피!”
누군가의 외침에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보는 라이언.
꼭 삽질하다 피 보는 놈들이 있다.
“그러게. 장갑을 끼라니까.”
“…….”
“삽 무겁지? 삽에 흙을 계속 붙이고 있으니까 그렇지. 흙을 잘 털어.”
“시바. 어쩐지 무겁더라. 딱 기다려. 내가 이겨. 장갑 줘!”
스포티키즈 쪽에서 누군가 목장갑을 던졌고, 라이언이 장갑을 끼는 동안 잠깐 기다려 줬다.
오랜만의 삽질이라 사실 나도 좀 허리가 아프긴 했다.
잠시 후 우리는 다시 흙을 퍼 날랐다.
나의 흙 푸는 소리는 일정했고, 라이언은 꽤 지친 듯 자주 쉬었다.
그리고,
― 탁탁.
마지막으로 바닥에 남아있던 흙을 싹싹 긁어, 꽉 찬 구덩이 위에 뿌렸다.
그런 다음 탁탁― 다져줬다.
“으아악. 미친 새끼. 넌 미쳤어! 미쳤다고!”
라이언은 이미 오래 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손바닥에 피가 나는 걸 보기 전까진 괜찮았다.
그 후부터 오만 짜증을 다 내더니 장갑을 끼고도 물집이 또 터져 버리고, 피가 배어나니 삽을 내팽개쳐 버렸다.
그리고 이 시합은 이제 내가 마지막까지 구덩이를 메우느냐, 아니냐로 주제가 바뀌어 있었다.
― 우와와와와! 저걸 했다고? 진짜?
― 우리 디베이트 클럽의 희망이지.
― 디베이트는 무슨. 니들 가서 책임지고 풋볼팀으로 영입해 와.
― 내가 말했지? 제이든은 해낼 거라고. 쟤가 내 새끼 인간 만든 애야. 암. 해낼 줄 알았지.
― 아빠! 술 좀 그만 마셔. 또 그 소리야!
― 시끄러! 이눔 시키. 내가 그때만 생각하면…
.
.
.
느닷없는 마크 아버지의 고해성사는 덤이다.
왁자지껄하다.
나도 자리에 주저앉았다.
진짜 간만의 삽질이다.
“으하하하. 내 살다살다 이런 미친놈은 또 오랜만이다. 너 내 밑에서 일 안 할래? 일당 두둑이 쳐 줄게.”
밥 아저씨가 뜬금없이 영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