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739)
게임 속 바바리안으로 살아남기 739화 뒤바뀐 운명 (2)(739/740)
739화 뒤바뀐 운명 (2)
잿빛 구름이 위로 보이는 공터.
원래 이곳은 바바리안들이 평소에 여럿이 모여 의논할 일이 있거나 공지할 일이 있을 때 쓰이는 장소였다.
뭐, 다른 종족들이야 격식이나 보안을 따진다고 보통 실내에 이런 공간을 만들지만…….
바바리안들이 느끼기에는 비효율적인 짓이었다.
얘기를 나누는데 뭣하러 실내에 모이고, 단단한 두 다리로 그냥 서서 들으면 되는데 어찌 의자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런 이유로 바바리안족 성지에는 회의실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고, 베르실 또한 수십 명이 모여 얘기를 할 공간을 빌려달라 했을 때 행정사무총장에게 이 공터를 안내받았다.
물론 이 정도 규모가 되는 집단에 그런 건물이 하나도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하나하나 이해하려 하지 마세요. 그냥 그렇구나 하는 게 훨씬 더 정신건강에 이로우니까.]해탈한 듯한 행정사무총장의 말을 듣고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듣자마자 진심 어린 조언인 게 느껴졌을뿐더러…….
애초에 생각해 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사실 수십 명이 모여 대화를 나눈다면 거대한 회의실은 오히려 의사소통이 어려웠으니까.
‘이렇게 모여놓고 보니 자연스레 수평적인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고 말이지…….’
어쩌면 이게 바로 바바리안의 장점일지도 몰랐다.
납득을 하고 보면 의외로 장점이 보인다.
공터로 불려 나온 각 클랜의 수뇌부들은 아직 납득을 못한 모양이지만.
“크흠…….”
“아침부터 공터로 불러낸 이유가 무엇이오?”
“이런 데서 어떻게 중요한 얘기를 한다는 건지… 바바리안족엔 회당 같은 곳도 없단 말이오?”
“없어요.”
“허허……. 많이 발전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그만하세요.”
베르실이 보기에 이들은 현재 처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야 자신들은 손님이 아니니까.
따라서…….
‘이것부터 말해야겠지.’
베르실은 본격적인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이것 하나부터 짚고 넘어갔다.
“다들 모르고 있나 본데, 우리는 전쟁통에서 도망쳐 온 피난민 입장이에요. 바바리안들은 그런 우리들을 받아 준 주인 입장이고요.”
“……크흠.”
“그런 의미에서 안전하게 머물 공간과 식량을 나눠주신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하는데 어떠세요?”
“…….”
“혹시 모르잖아요? 그분들이 우리를 추방하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저 7구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그 말을 끝으로 베르실이 아이나르를 힐끗하자, 아이나르도 씨익 웃으며 앞으로 나왔다.
“그래, 식충이들아! 살려줘 재워줘 먹여줘. 너희가 사람이면 존경과 감사의 의미로 전투 함성이라도 한 번 크게 외치는 게 도리 아니냐!”
“…저, 전투 함성?”
“그… 베, 베헬라를 말하는 건가?”
“물론!! 싫으면 거절해도 된다! 우리 바바리안들은 자유 의지를 존중하니까!”
“아… 그, 그렇다면 나는 종교적인 이유로 거절을—.”
“오! 그럼 지금 바로 성지에서 나가면 되겠군!”
“아까는 자유 의지를 존중한다고 하지 않았소!”
“자유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인데, 그것도 모르나?”
이내 아이나르가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내자, 거절을 표하려던 남성이 꿀 먹은 벙어리로 변했고, 이는 다른 클랜의 수뇌부들도 마찬가지.
베르실이 보기에 슬슬 당근을 줄 타이밍이었다.
“아이나르 씨, 그만하세요. 아까 말씀하신 저분도 종교적인 이유로 거절하려 했을 뿐, 바바리안족에게 감사하는 건 분명할 테니까요.”
“오, 그러냐?”
“무, 물론이오. 사람이라면 당연하지 않소?”
사내가 이때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 앞에서 전투 함성을 외치는 것보단 고맙다는 말로 넘어가는 게 훨씬 이득이었고, 그 생각은 모두 동일했는지 다른 클랜 수뇌부들도 한마디씩 치사의 말을 해왔다.
“프넬린 양.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우리 파르티아 클랜 역시 마찬가지오. 이번에 받은 은혜는 평생 잊지 않으리다.”
그 장면을 보며 베르실은 아무도 모르게 흡족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얼핏 보면 당연하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런 사소한 게 쌓여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었다.
“고울랜드 부단장.”
“말씀하세요. 에르타 단장님.”
“한데 아침부터 우리를 이곳에 불러모은 연유를 들을 수 있겠소? 설마 이 많은 사람들한테 감사 인사를 하라고 부른 건 아닐 테고.”
“아, 그거요?”
마침 말을 잘 꺼냈다는 듯 베르실이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듯 큰 소리로 대답했다.
“1시간 전부터 성지와 7구역 사이를 막아 주던 결계가 약해지고 있어요.”
툭 던진 그 말에 담긴 내용은 성지에 오고서부터 마음 놓고 있던 탐험가들의 머릿속에 벼락이 치기에 충분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요?”
“성지에 결계를 쳐서 가둔 건 노아르크 놈들 소행 아니오! 왕가와 싸우며 우리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으니까!”
정확히는 우리가 아니라 성지에 주둔 중인 바바리안들이지만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한데 왜 이제 와서… 대체 무슨 연유로—.”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요.”
베르실은 단호하게 말을 끊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결계가 약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확인해보니 마력 공급이 끊기며 자연적으로 해제가 되는 중인 것 같더라고요.”
“부단장,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오?”
베르실의 물음에 한 인물이 차분히 되물었다.
라브라임 클랜의 단장이었던가?
한 대씩 때려주고 싶던 여타 수뇌부들과 다르게 성지에 오기 전에도 온 후에도 항상 이성적인 모습만 보여 줬던 인물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저는 약 1시간 정도로 보고 있어요.”
“1시간이라…….”
“아무튼, 일이 그렇게 됐으니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해요. 제가 생각했을 때 저 결계가 갑자기 해제되고 있을 이유는 두 가지뿐이니까요.”
“들어볼 수 있겠소이까?”
“첫 번째는 정말로 뭔가 문제가 생겨 마력 공급이 끊긴 것.”
“하면, 두 번째는?”
그 물음에 베르실은 좀 전에 소리쳤던 한 남자를 보며 말했다.
“이제 노아르크 측에서도 생겼다는 거겠죠.”
“……?”
“우리를 처리할 여력이.”
사실 베르실은 이 가능성을 가장 높게 보고 있었고, 그게 목소리에서부터 느껴졌을까?
“…….”
“…….”
무거운 침묵이 이어진다.
수십 명이 모였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조용한 공터.
정적을 깨고 입을 연 것은 한 여성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글쎄.
마음만 같아서는 베르실 역시 나도 모르겠다고 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부터 네가 우리 클랜의 부단장이다.]그래서는 안 되겠지.
이내 베르실은 눈을 감고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다시 눈을 떴다.
“모두 싸울 준비를 해야겠죠.”
“전략이 어떻게 되는지 들을 수 있겠소?”
“일차적으로는 수비에 전념할 거예요. 성문 앞에 진지를 구축하고 막으면 적들도 쉽게 뚫지는 못할 테니까요.”
“일차적으로라면 그다음도 있다는 뜻이겠구려?”
“예. 전황을 보다가 틈이 생긴다면,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하지 않겠어요?”
“미, 밀고 나간단 말이오……?”
생각하지도 못한 전략을 들었다는 듯 눈을 크게 뜨는 각 수뇌부들이었으나, 베르실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비록 포지션은 ‘마법사’, ‘원거리 공격수’였지만, 이제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네. 공격이야말로 최선의 방어니까요.”
정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선 때릴 줄도 알아야 한다.
***
바바리안족의 행정사무총장, 샤빈 에무어.
그녀는 현재 부족 내 어느 누구보다도 바빴다.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이놈의 성지는 터가 좋지 않은지 또다시 전란에 휩쓸렸고, 애석하게도 그녀는 성지 내의 모든 업무의 책임자(대리)였으니까.
그러니까, 어떻게든 정신을 바짝 차리고서—.
“에무어 양, 차를 가져왔으니, 잠시 목이라도 축이고 하시오.”
“…네, 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차 한 잔 할 시간은 있지 않소이까? 혼자서 너무 많은 부담을 느낄 필요 없소.”
“…마, 말뜻은 알겠어요. 근데 이제 곧 적들이 들이닥칠 거라는데 어떻게 쉬어요……!”
에무어는 미칠 거 같았다.
그도 그럴 게, 그녀의 전문 분야는 행정에 치우친 사무 계열이었으니까. 전쟁이 아니라.
“그렇다면야 더 권하지는 않겠소만… 옆에 두고 갈 테니, 타 온 성의를 봐서라도 중간중간 마셔주시구려. 일의 능률을 위해선 때론 일부러라도 차분해질 필요가 있는 법이니.”
“아… 네… 고마워요, 로트밀러 씨.”
정말 차 한 잔을 타주기 위해 온 것인지 로트밀러는 그 말을 끝으로 차를 내려놓고서 등을 돌렸고, 그제야 샤빈 에무어도 로트밀러의 변한 점을 깨달았다.
“로, 로트밀러 씨? 지금 그 복장은 뭐예요?”
늘 깔끔한 평상복 차림이던 로트밀러가 어째선지 장비들을 두르고 있다.
당장에라도 미궁에 들어가기라도 할 사람처럼.
“아… 그러고 보니 에무어 양은 처음 보겠구려? 혹시나 해서 예전 장비를 처분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다행이오.”
“혹시… 참전하시려는 거예요……?”
“그래야 하지 않겠소? 한 사람의 손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니.”
“하지만 로트밀러 씨는 탐색꾼이었잖아요!!”
어찌 보면 무례하다 느껴질 수도 있는 말.
하나 로트밀러는 전혀 그런 기색 없이 부드럽게 웃었다.
“하하,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탐색꾼이긴 해도 나 역시 탐험가였소이다.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미궁에 들어갔던.”
로트밀러를 보며 샤빈 에무어는 말을 잃었다.
그야 냉정히 생각해보면 자신이 말릴 수 있는 관계인 것도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인사라도 할까 왔소이다. 이제 전선으로 향하면 일이 끝날 때까지는 보기 어려울 테니.”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몸 조심하세요.”
그녀는 마음속에 있는 진심을 담아 짧게 말했고, 이에 로트밀러 역시 짧게 답했다.
“…무사히 다녀오리다.”
그 말을 끝으로 로트밀러는 방을 나섰고, 이에 혼자 남은 샤빈 에무어는 얼굴을 붉혔다.
‘다, 다녀오리다… 라니……!’
향긋한 찻물을 들이켜도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
수사자 공.
원탁에서 그런 호칭을 사용하는 인물은 딱 하나뿐이다.
아우릴 가비스의 대변자라도 된 것처럼 원탁에서 나대던 게 특징이었던 인물.
‘늑대.’
공교롭게도 상대가 쓴 ‘히르쿠무타’ 가면 역시 검은 늑대였다.
다만 이게 우연이라기보다는…….
‘원래부터 저 집단이었던 거겠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런 이유로 가면을 골라야 했을 때 늑대를 고르지 않았을까.
“하하, 경계하지 마시오.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니.”
“그럼 왜 길을 막았지?”
“나는 막은 적 없소이만?”
“그래? 그럼 비켜라.”
이내 차갑게 말하였으나, 녀석은 옆으로 길을 터줄 생각이 없었다.
“너무 경계하지 말라니까. 난 단지 어르신의 명으로 한 가지 조언을 드리려 왔을 뿐이오.”
어르신이라면 분명 아우릴 가비스 그 할배를 말하는 걸 테고…….
“조언이라…….”
한자로는 도울 조에, 말씀 언을 쓴다.
직역하자면 도움이 되는 말이라는 뜻이다.
근데 왜 저 말을 듣자마자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고 경계가 되는 걸까.
알 수 없으나, 들어보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는지 녀석이 내게 ‘조언’했다.
“이쪽으로 왔다는 건 성지로 향하시는 거겠지?”
“…….”
“성지 말고 저리로 가시오.”
그리 말한 녀석은 손가락으로 불타고 있는 7구역을 가리켰다.
하도 기가 차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막지 않겠다더니, 개소리였군.”
“막을 생각이 없다는 건 진심이오. 수사자 공이 이 길을 타고 성지로 간다고 하면 나는 비켜드릴 것이오.”
“그래? 그럼 비켜라.”
“원하신다면야.”
전혀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실제로 성벽 가장자리에 바짝 붙으며 길을 내주었다.
따라서…….
터벅, 터벅.
혹시 놈이 딴짓을 하진 않을까 속으로 경계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터벅.
이내 놈의 앞을 딱 지나치려던 때.
“아, 그리고 하나 더. 광대를 죽인 건 좋지 않은 선택이었소.”
“내 선택이 의미가 있나?”
“있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수사자 공에게는. 어르신께서는 광대가 살았다면, 당신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됐을 거라 하시더군.”
“도움이 됐을진 모르겠고, 네 어르신 오지랖이 넓단 건 알겠군.”
“자비롭고 고결하신 분이니까.”
거, 누가 아우릴 가비스 열혈팬 아니랄까 봐.
더 대화를 나눌 가치를 느끼지 못한 나는 다시금 멈췄던 걸음을 옮겨 녀석의 앞을 지나쳤다.
그리고…….
터벅.
한 걸음.
터벅.
두 걸음.
터벅-
많은 생각을 참아가며 세 걸음을 더 걸어서 나아갔을 때.
‘하, 진짜 돌겠네…….’
결국 나는 등을 돌려 묻고 말았다.
“……대체 왜.”
입을 열자마자 가면 너머로 보이는 눈깔이 휘어지는 게 마음에 들진 않지만.
“성지에 가지 말라는 거냐?”
끝내 참지 못하고 의문을 토해내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당신이 어딜 가느냐에 따라 죽는 사람이 달라질 테니까.”
“…….”
“그러니 성지 말고 7구역으로 가시오. 그게 그나마 수사자 공을 위하는 선택이 될 터이니.”
“나를 위한 선택이라…….”
나는 피식 웃으며 한 가지만 더 확인했다.
“그건 됐고, 혹시 네가 말하는 그 어르신이 이 미래도 말해 줬나?”
“뭘 묻는진 몰라도 내게 허락된 조언은 이게 끝—.”
거, 더 조언해달라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꽈악-!
나는 휙 뻗은 손으로 녀석의 모가지를 잡아 성벽 끝으로 밀어넣고서 말했다.
“네가 여기서 살까, 아니면 뒈질까?”
맞히면, 믿어 줄 수 있을 것도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