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740)
게임 속 바바리안으로 살아남기 740화 뒤바뀐 운명 (3)(740/740)
740화 뒤바뀐 운명 (3)
카산드라라는 예언가가 있다.
그녀는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했으나, 트로이의 왕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끝내 트로이는 멸망한다.
물론 왕에게도 변명할 말은 있었다.
카산드라에게 차인 아폴론이 찌질하게 그녀에게서 ‘설득력’을 빼앗아갔으니까. 사람들이 예언을 믿지 않던 것에는 그 ‘저주’의 영향이 분명하게 있었다.
하지만…….
‘글쎄.’
‘설득력’이 있었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다.
그야 불길한 예언을 믿고 싶은 자가 어딨겠는가?
본인이 돈 주고 찾아간 점집에서도 안 좋은 말을 들으면 선무당이네 마네 하고 뛰쳐 나오는 마당에.
과연 트로이의 왕이라고 그 예언을 듣고 ‘음, 우리가 멸망하는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을까.
‘아니겠지.’
지금 내가 그러한 것처럼.
“하하… 조, 조금 진정하는 게 어떻소? 나는 수사자 공과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오.”
“싸우자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거다. 네놈 말을 믿을 수 있는지 아닌지를.”
내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자, 처음엔 당황한 듯한 기색을 보이던 녀석이 피식 웃는다.
마치 당황한 척 했던 것이 연기였던 것처럼.
“당신이라면 이미 알고 있지 않소? 어르신의 능력을.”
“암, 그 늙은이의 능력이야 잘 알지. 사람 갖고 장난치는 거에는 완전히 도가 텄으니까.”
내 비아냥거리는 말에도 녀석은 별다른 반응 없이 조용히 이렇게 되물을 뿐이었다.
“그럼 왜 멈춘 거요?”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냥 나를 지나쳐 성지로 향하면 될 것을, 도대체 어떤 연유로 멈추었소?”
“…….”
“수사자 공도 속으로는 알고 있던 것 아니오? 어르신의 조언을 듣지 않으면 후회할지 모른다는 걸.”
마음 같아선 부정하고 싶었다.
단지 그 늙은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려 했을 뿐이라고. 거짓 정보도 정보는 정보니까. 이를 통해 그 늙은이의 의도를 파악해 볼 생각이었다고.
그리 말하고 싶었으나, 녀석이 조금 전에 한 말처럼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진짜 이유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걸.
“그나저나 아까 내가 여기서 죽을지, 살지 물었소?”
“…….”
“어르신에게 딱히 언질을 받은 건 없소이만……. 글쎄, 딱히 오늘 여기가 내 묫자리가 될 일은 없을 듯하구려. 아직도 대화가 이어지는 걸 보면.”
“…….”
“그러니 이것 좀 풀어 주겠소? 이제 슬슬 갑갑한데.”
하…….
“지랄.”
나는 멱살을 잡지 않은 다른 손을 이용해 녀석의 가면을 벗겨냈다.
촤악-!
드러난 가면 너머의 얼굴은 몹시나 평범했다.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30대 중반의 수인족…….
쩝, 혹시나 아는 얼굴일까도 싶었는데.
“하하… 내 얼굴이 그렇게 궁금하셨소?”
얼굴이 드러났음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녀석을 보며 나는 조용히 물었다.
“한 가지만 묻자.”
“무엇이든지.”
“너도 그 늙은이 아래에서 일했으면 기록에 대해 알겠지?”
“물론이오.”
“근데 왜 자꾸 선택에 따라 미래가 바뀌니 마니 하는 거냐? 어차피 변하는 게 없다는 게 너희들 입장이면서.”
여기서 내가 운명을 믿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이 빌어먹을 진성 운명쟁이들이 왜 이러는지가 궁금할 뿐.
“흐음… 아주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구려. 조금 길어도 괜찮겠소?”
“상관없으니까 해라.”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지금 술집에서 다른 취객들과 카드를 치고 있소. 그런데 카드를 나눠주는 사람이 실수로 순서대로 카드를 나누지 않았지.”
뭔 개소리를 하는가 싶었지만 일단 잠자코 들었다.
“순서대로 카드를 나눴다면 그에게 아주 약한 패가 들어왔을 테지만, 순서대로 카드가 나뉘지 않은 덕분에 그에게는 아주 좋은 패가 들어왔소. 다른 사람들은 취해서 실수가 있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상태지. 그래서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이득을 보기로 했소.”
여전히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기는 하였으나.
“그럼 이제 물으리다.”
녀석은 물었다.
“여기서 약한 패를 받는 게 그의 원래 운명이었을까, 아니면 좋은 패를 받는 게 그의 원래 운명이었을까?”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했을 뿐, 답변을 하는 것에 있어서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좋은 패를 받는 쪽이겠지. 패를 나눠주는 사람이 실수를 한 것까지가 운명이었을 테니까.”
“하하, 좋은 대답이오. 이해가 빠르군.”
녀석은 그리 말했으나 솔직히 말해 나는 조금도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수사자 공이 말했듯, 뒤바뀐 운명도 운명이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은 카드를 실수로 나눠주려는 것이지. 어느 누군가가 ‘아주 작은 한 판’에서 조금 더 좋은 패를 받을 수 있게끔.”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과 다르게, 이놈이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는 이제 얼추 감이 왔다.
따라서 나는 이것을 물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됐지?”
그 질문에 녀석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결국 그 도박판에서는 엄청나게 크게 잃었소. 다만, 좋은 패를 받았던 덕분에 조금이나마 손실을 줄일 수 있었지.”
“뒤바뀐 운명으로도 ‘잃는다는 것’ 자체는 바꿀 수 없었다는 거군.”
“그렇소.”
녀석이 모법생에게 칭찬 스티커를 주는 선생처럼 웃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잃고 따고를 반복하던 그 남자는 결국 먼 미래에 더욱 큰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그 말이 위로가 될 리 없었다.
단지 이번 일을 계기로 한 번 더 굳게 결심했다.
“자, 결정하시오. 이미 수사자 공에겐 카드가 주어졌으니까.”
이 빌어먹을 운명쟁이 새끼들과 다시는 이런 주제로 얘기를 나누지 않기로.
***
뜨거운 열기와 새까만 매연이 올라오는 성벽 위.
“…….”
“…….”
오랜 침묵이 이어지자, 결국 기다리다 못한 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결정을 내리기가 그리 어렵소?”
“…….”
“간단하게 생각하시오. 차와 집 중에 무엇을 잃을 거냐 묻는다면, 모두 다 차를 선택하지 않겠소.”
뭐, 그렇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차보다 집이 더 귀할 테니까.
하지만 넓은 세상엔 그 반대인 부류도 있는 법.
무엇이 더 귀할지 정하는 것은 나다.
그래, 그러니까…….
“결정했다.”
긴 고민 끝에 나는 결정했고, 이에 녀석의 동공에도 짙은 호기심이 어렸다.
“어찌할 것이오?”
거, 다 아는 듯 말할 땐 언제고.
녀석의 눈을 보던 나는 왠지 모를 통쾌함을 느끼며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왜 알려 줘야 하냐?”
“……?”
“이만 꺼져라.”
“그게 무슨—.”
나는 이제 용무가 사라진 녀석을 불 타고 있는 7구역 아래로 던져 버렸다.
“읏……? 읏! 으아아아아아!”
거, 여기서 떨어진다고 죽는 것도 아닐 거면서.
진심으로 놀라서 까무라치는 걸 보니 이렇게 되는 미래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게 분명했다.
콰앙-!
불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나니 몇 년 묵은 체기가 내려가는 기분이었으나, 그런 속시원한 감정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후…….”
몇 년 묵은 체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에 내려앉은 듯한 기분.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
녀석을 성벽 아래로 떨어뜨린 후에도 한참이나 성벽 위에 멍하니 서 있던 나는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성지와 7구역.
고민 끝에 내가 정한 목적지를 향해.
***
몸은 조금 불편하지만, 그래도 바깥 그 어디보다도 안락한 장롱 속에 들어오고서 얼마나 흘렀을까.
스벤 파라브는 바지에 똥을 지리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이 장롱 속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저기…….”
그런 결심을 동거인에게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였을까.
“아…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그… 자, 잠깐만 나갔다 오면 안 될까요?”
“예……? 장롱 밖은 위험합니다만……?”
“그건 알겠는데… 지, 진짜 잠깐이면 되거든요?”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동거인, 리리스 마로네는 정서가 불안한 사람처럼 쉬지 않고 다리를 떨어댔다.
덕분에 평소 눈치 없단 소리를 자주 듣던 스벤 파라브도 동거인이 장롱을 벗어나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얼른 다녀오시지요.”
장롱 문이 열리는 잠깐조차도 불안한 그였지만, ‘여성’의 ‘생리 현상’을 막을 만한 이유를 댈 수도 그럴 자신도 없었기에 최대한 잽싸면서도 은밀하게 장롱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여, 옆방에만 금방 다녀올게요……!”
이내 마로네가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옆 방으로 떠났고, 그 잠깐 동안도 스벤 파라브는 장롱 문을 닫고서 기다렸다.
스르륵.
장롱문이 열린 것은 약 4분 정도 흘렀을 때였고, 예상보다 늦게 돌아온 리리스 마리네의 표정은 어딘가 다급했다.
“파라브 씨……! 불이에요, 불!”
“예……?”
“7구역 동부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어요!”
7구역 동부라면 8구역이 있는 방향인데… 그쪽에서 뭔가 ‘사건’이라도 발생한 것일까?
“파라브 씨도 어서 나와서 한번 봐보세요!”
“…예?”
“와서 보시라니까요? 심상치가 않은 게… 어쩌면 여기까지 불길에 다 뒤덮일지도 몰라요.”
“아…….”
“아… 가 아니라, 어쩌면 자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지도 모른다니까요?”
“그… 그렇군요……?”
리리스 마로네의 말에도 그는 장롱에서 떠날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 불안하긴 했기에…….
“혹시 잠깐 장롱 문 좀 닫아 주시겠습니까……?”
“……네?”
“정말 잠깐이면 됩니다.”
그 말과 동시에 그는 직접 장롱 문을 닫았다.
두근-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다시금 불안하게 뛰던 심장이 얌전해졌다.
덜컥-!
비록 리리스 마로네의 손에 의해 금방 장롱 문이 열렸지만, 그 짧은 시간 느꼈던 평온함만으로도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동부에 불이 크게 났든 안 났든 상관없다.
나는 이 장롱 안에만 있으면 안전하다.
그런 직감을 넘어선 절대적인 확신이 온몸을 지배했다.
물론 누군가에게 이 말을 한다면 정신병자처럼 여길 터이나…….
‘암, 직감은 따라야지.’
스벤 파라브는 그동안 이 직감에 의해 여러 번 구원을 받았고, ‘거인’이라 불리는 얀델조차도 이 직감을 인정하고 때론 의지까지 했었다.
따라서…….
“괜찮습니다, 마로네 양. 여기라면 안전할 겁니다.”
“어떻게 확신하시는 건데요?”
“마로네 양은 마법사고, 저는 성기사이지 않습니까. 번갈아서 능력을 쓰면 도시 전체가 불타더라도 이 장롱 하나 정도는 불에 타지 않게 지킬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도 말이 안 되는 억지가 아니었다.
성기사에게는 보호막이나 결계, 신성 인챈트 같은 이능이 여럿 있고 이는 마법사 또한 매한가지.
“으음…….”
‘직감’이라는 말보다는 훨씬 그럴듯하게 들렸을까?
리리스 마로네 역시 그 말에 수긍하려는 듯한 기색을 보였고, 스벤 파라브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바깥에 노아르크인들이 한가득이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이동하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만약 이동을 한다고 해도 차라리 불길이 여기까지 덮친 다음에 해도 늦지 않고요. 그땐 놈들도 불 때문에 정신이 없을 테니까요.”
“아…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그럼 일단은 지켜보는 거로…….”
그렇게 리리스 마로네도 고개를 끄덕이며 장롱 안에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자는 결론이 나려던 때였다.
“…….”
돌연 리리스 마로네의 고개가 창가로 향한 채 굳는다.
처음엔 왜 저러는가도 싶었으나…….
“……꺄아아아아악!”
창밖 지상에서 세찬 비명이 들려오며 그 역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장! 여기 숨어 있던 년 하나 찾았어!”
“아아아악! 사, 살려 주세요……!”
“하하하! 살려달라는데? 어떡할까?”
그 대화가 들려온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두근-!
아니겠지, 아니겠지, 아니겠지……?
속으로 빌고 또 빌었으나…….
“파, 파라브 씨……!”
두근-!
“…저, 저희가 구해야 해요!”
늘 그렇듯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