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God Dragon RAW novel - Chapter 39
39화. 봄소식은 그렇게 찾아온다 (10)
휘이잉―
한순간, 장원을 따라 깊은 적막이 흘렀다.
“상…… 단주님?”
정현을 보고 있던 이들 모두 지금 이 순간 자신들이 잘못 본 것인가, 단체로 환각에 빠진 것인가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정현이 벌인 일은 너무 비상식적이었으니까.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이 날아오더니 갑자기 모가지가 돌아갔다? 그것도 상갓집에서? 누가 그런 생각이나 해 봤을까.
그래서 장원의 하인 중 누군가가 얼빠진 목소리로 장한성을 불렀고.
털썩―
장한성이 마치 실 끊어진 망석중이처럼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진 뒤에야, 그들은 정확하게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꺄아악!”
“으, 으허어억!”
“사, 사, 살인이다!”
“이, 이게 무슨……!”
“네 이놈!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여인들이며 간담이 약한 노인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자지러지고, 장한들은 사색이 된 채로 벌떡 일어나 호통을 쳤다. 다른 문상객들은 혹시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싶어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상을 치르는 중이라 무기를 소지하지 않고 있던 표사며 쟁자수들도 재빨리 숙소로 달려갔다.
혼비백산. 아비규환. 한순간 혼란에 빠진 장원 내부를 보면서.
정현은 딱 한마디를 던졌다.
“얘들아, 뭐 하냐?”
“……?”
“……?”
흑신풍사를 비롯한 흑건적의 시선이 일제히 정현의 비틀린 입술 쪽으로 집중되고.
“접수 안 하고.”
“……!”
“……!”
순간, 흑건적 마두들의 눈동자가 동그래지더니, 저마다 피식 실소를 흘렸다.
“으흐흐. 그런 거야 저희들이 전문입죠. 맡겨만 주십셔.”
“간만에 힘 좀 쓸 수 있겠구만!”
“가뜩이나 마음에 안 드는 놈들 천지였는데, 다 뒤엎자고!”
“얘들아, 가자!”
마두들은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리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앞으로 나섰다.
비록 정현이 내공 폐쇄를 풀어 주진 않았지만, 그들 모두가 새외에서 한가락 하던 이들. 무공 실력이라고 해 봤자 삼류 내지 이류 언저리밖에 되지 않을 잔챙이들에게 밀린다면 그만큼 쪽팔리는 짓도 없었다.
아무리 십대 상단이라고 해도, 그들 오십 명이 접수하지 못하고서야 어디 얼굴이나 제대로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들은 장원에 들어온 후로 심기가 영 불편하기만 하던 차였다.
비록 도심개와는 좋지 않은 관계로 만났다지만, 그래도 몇 달이 넘도록 얼굴을 마주 보며 살아왔기에 그와 정이 들 대로 든 상태였다.
도심개가 여태 한낱 짐꾼으로 전락한 그들의 편의를 얼마나 많이 봐줬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 모두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은혜를 갚으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들이 남들의 등이나 쳐 먹고 사는 도적 출신이라고는 하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의리에 충실하고, 은원은 확실하게 따지는 편이었다.
그러던 차에 도심개가 그토록 바라던 상단에 복귀한 이후 황망한 일만 겪고 있으니 얼마나 속이 끓었겠는가. 성격 같아서는 나서서 뒤집어엎고 싶던 것을, 정현이 있어 꾹 참고 있었던 것인데.
그런데 정현이 그들의 고삐를 풀어 줬으니, 이제 더 이상 눈치 볼 것이 없었다.
당문?
만독문과의 협약?
그딴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언제 그들이 남의 눈치를 보고 살았던 적이 있나. 그랬다면 도적이 되지도 않았겠지! 물론, 사람 같지 않은 정현은 예외였지만.
여하튼.
마두들은 기분 좋게 앞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고.
“전원, 흑건적의 마두 놈들을 막아라!”
“한 놈도 장원에 손대게 하지 마라!”
쟁자수와 표사들, 그리고 하인들은 어떻게든 마두들의 접근을 막고자 달려들었다. 병기고가 활짝 열리면서 재빨리 무기를 가져오기 시작했지만, 이미 마두들은 상을 뒤엎으면서 장원의 절반 이상을 뒤덮은 뒤였다.
아니, 오히려 표사와 쟁자수들은 겨우 가져온 무기를 빼앗기고 있었다.
퍼퍼퍽!
“으하핫! 이 병신 새끼들, 감히 이 어르신들에게 무기를 들다니. 이건 숫제 자신들을 더 밟아 달란 소리가 아닌가!”
“에잉. 이건 무게 균형이 영 별론데? 겉만 번지르르한데, 설마 이런 걸 팔겠답시고 갖고 있던 건 아니겠지?”
“이것들 완전히 사기꾼들인데! 이런 실력으로 대체 무슨 물건들을 지키겠단 거냐? 아하하!”
뛰어난 고수들인 그들에게 병장기를 들이댄다? 그냥 상납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오히려 마두들은 표사들의 손목을 꺾어 강제로 검을 빼앗으면서 저마다 품평까지 해 댔다.
그러다 간혹 간만에 날붙이를 손에 들자, 여태 억눌러 뒀던 살심이 불쑥 튀어나오는 놈들도 더러 있었지만.
“으흐흐. 이 도끼는 참 실하구만. 간만에 피 맛 좀 볼 수 있겠……!”
『살인은 하지 마라. 그러다 걸리면 모가지 같이 돌아간다.』
곧 돌아온 정현의 경고에 등을 쭈뼛 세워야만 했다.
‘염병!’
‘우라질! 하긴 죄다 제멋대로야!’
자신은 꼴 보기 싫다고, 수장 놈의 대가리를 돌려 놓고서 그들더러는 하지 말라니! 이 무슨 억지인지!
그런 말이 목 언저리까지 불쑥 올라왔지만, 그래도 마두들은 정현의 말에 충실했다. 살고 싶으면 따라야 했으니.
한편.
노인들은 아이들이 마두들의 싸움을 볼 수 없도록 몸을 돌려 시야를 가리고자 했지만.
“우리 편, 이겨라! 우리 편!”
“할아버지, 저리 좀 비켜 봐요! 우리 삼촌이 저기서 날아다니는 거 봐야 한다구요. 얍! 얍!”
워낙에 어린 시절부터 조기 교육(?)으로 비슷한 것들을 많이 봐왔던 터라, 아이들은 도리어 마두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덕분에 노인들은 멋쩍어해야 했다.
다만,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순진무구한 소진이 혹여 충격을 받지 않을까 우려를 표하기도 했으나, 그 역시 단순한 기우인 것 같았다.
“우와아. 아저씨들 잘 싸우네.”
오히려 가장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으니.
“그런데 흑신풍사 아저씨, 저기서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이렇게 해야 하는 거 같은데. 헤헤헤. 나중에 가르쳐 줘야지.”
간혹 혼자서 손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댔어도, 별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콰콰쾅!
그렇게 별다른 긴장감도 없이, 오십여 명의 마두들은 단 반 시진 만에 장원을 온전히 접수할 수 있었다.
* * *
‘……이게 이렇게 쉽게 해결되는 거였나.’
도심개는 마당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장한성의 식구들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팔다리가 하나둘쯤 뒤로 접힌 채로, 고통에 찬 신음 소리를 흘려 대고 있었다.
정현에게 도와 달라고 반쯤 억지를 부리기는 했다지만, 그래도 그가 생각했던 도움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이 근방에서 새로운 상단을 세우고, 그것이 성장하면서 창천상단을 잡아먹을 때까지 든든한 배경이 되어 달란 뜻이었는데.
그러다 간혹 흑건적의 도움이 필요할 때면 몇몇을 보내 주십사 했던 것인데. 정현은 이것을 너무 쉽게 해결해 버렸다.
단 반 시진 만에.
원래대로라면 최소 일이 년은 족히 잡아야 할 일을.
쾌도난마(快刀亂麻)!
도심개는 어쩐지 그 단어가 떠올랐다. 이리저리 뒤엉킨 매듭을 단칼에 잘라 내는 솜씨. 도심개는 이것만큼 정현에게 가장 알맞은 방식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언제나 일을 복잡하게 꼬아서 생각하는 자신도 이런 정현의 면모만큼은 보고 닮아야겠다고. 막무가내 같아 보여도 정현이 놓는 한 수에는 늘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거면 됐냐?”
그때, 정현이 도심개의 어깨를 짚으면서 물었다.
도심개는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정도면 ‘된’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이었지만.
장한성이 수족이라며 데리고 온 놈들이야 그가 죽었으니 별다른 반발도 하지 못하고 맨몸으로 내쫓길 터.
이미 흩어진 다른 식솔들은 자신이 복귀했다는 것을 안다면 돌아올 자들이 수두룩했다. 삼공자를 비롯한 이들도 금세 찾을 수 있겠지.
문제라면 장한성의 집권을 인정했던 만독문의 반발이었다.
이미 협약과 다르게 삼십 명이 훨씬 넘는 인원이 성도로 들어온 데다가, 크나큰 사고까지 쳐 버렸으니 명백한 협정 위반이었다. 아마 자신들의 위신이 더럽혀졌다고 생각하면서 크게 들고 일어날 게 뻔히 보였다.
하지만.
“뒤처리는 알아서 할 수 있지?”
정현이 양심이 있으면 이 뒤는 알아서 하라는 눈치를 보내는데, 거기다 대고 ‘도와주신 김에 조금만 더 도와주십시오’라는 농담도 던지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랬다가는 정말 자신도 여기 있는 이들과 같은 꼴이 될 게 뻔했으니.
어차피 도심개도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을 빠르게 끝낸바. 사실 정현의 말마따나 새로운 상단을 세워서 창천상단을 잡아먹는 것보다, 이렇게 안에서 먹어 치우는 게 훨씬 손쉽고 빨랐다. 일단 반발할 놈이 없을 테니.
도심개는 정현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서 바닥에 넙죽 엎드린 채 덜덜 떨고 있던 대집사를 내려다보았다.
녀석은 제발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중이었다.
“홍학이라고 했던가?”
“예? 예! 그, 그렇습니다요, 어르신. 제발 목숨만큼은 살려 주십시오! 개가 되라면 개가 되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그대가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는데 말이야.”
“무, 무엇이든 말씀만……!”
“지금부터 딱 이 각(약 30분)을 주겠네. 그 안에 이 머저리 같은 놈들을 모두 끌고,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물론, 그동안 해 처먹은 것들은 알아서 여기다 두고 가야 할 걸세. 장부를 맞춰 보고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알고 있겠지?”
대집사는 여태 장한성을 뒷배로 두면서 여기저기서 횡령했던 것들을 모두 토해 내야 한다는 사실에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지만.
도심개의 옆에서 가만히 웃고 있는 마두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러지 못하겠다는 말이 도저히 나오질 않았다.
오히려 그의 옆에 혀를 쭉 내뺀 장한성과 같은 꼴이 될 것 같아 크게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그리고 움직이라는 도심개의 턱짓이 떨어지자마자, 일어나 부리나케 움직였다.
“이 미친 것들아! 빨리 움직여! 일어나란 말이야! 죄다 목까지 잘리고 싶냐!”
그렇게 기생충 같던 놈들이 장원을 비우는 데는 일 각(15분)도 걸리지 않았다. 놈들은 입고 있는 옷 이외에는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맨몸으로 내쫓기고 만 것이다.
도심개는 이번에 다른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는 하인과 시녀들이 있었다. 그들은 원래 이 장원에 얽매여 있는 몸. 좀 전의 놈들과 다르게 내쫓아서는 안 되는 상단의 재산이었다.
물론, 이들도 장한성과 작당하던 놈들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바. 도심개는 그들도 그냥 용서할 마음이 없었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신분이 노예로 격하될 것이다. 여태껏 상단이 입은 모든 피해가 네놈들의 빚으로 걸릴 것이니, 밤낮없이 일해서 어떻게든 갚아야 할 것이야.”
“어, 어르신!”
“그, 그, 그것은……!”
졸지에 노비가 된 이들이 어떻게 그 많은 액수를 감당할 수 있겠냐며 제발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려 했지만.
“끌고 가시오.”
이미 대기하고 있던 마두들이 히죽 웃으면서 놈들을 뒷마당으로 끌고 갔다. 노예 낙인을 인두로 강제로 지지기 위해서였다. 장원의 접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밖에도 도심개는 혼란스러운 장원을 진정시키기 위해 중심에서 여러 가지 많은 명령을 내렸다.
주로 그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는 건, 도심개와 함께 왔던 다른 행원들이었다.
우선 창천상단이 지난 사 년 동안 겪었던 일들을 빨리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행수들은 우선 각 전각으로 들어가 장부들을 정리하는 한편, 표사와 쟁자수들은 본단의 현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여 각 지부로 연통을 보내 조만간에 ‘소집령’이 있을 거란 사실을 전달했다.
또한, 일꾼들은 지난 넉 달 동안 흩어진 식솔들을 찾으려 바깥으로 나가 수소문했으니.
그동안 큰일(?)을 해낸 정현과 흑건적은 창천상단의 빈객으로서 편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