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God Dragon RAW novel - Chapter 59
59화. 봄소식은 그렇게 찾아온다 (30)
―검재 정현이 나타났다!
지난 삼십 년 동안 코빼기도 비치지 않으며 사실상 우화등선했다고 알려진 천하제일인이 세상에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지자.
강호는 아주 크게 들썩이고 말았다.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저 강호의 저잣거리에 흔하게 도는 헛소문이라고만 여겼으니까.
가뜩이나 흑건적의 등장 때문에 요란한 상황에서, 그 배후에 사실 검재 정현이 있다고 한다면 누가 믿기나 할까?
더구나 그가 나타났을 때의 생김새가 약관(20세)도 되어 보이지 않은 어린 모습이었다고 하니, 더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요괴가 된 게 아니고서야, 어찌 사람이 세월을 거슬러 도로 어려질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수백 년도 전에 멸문하고 만 모산파(茅山派)의 주술(呪術)을 이용해 젊은이의 몸으로 갈아탔다고 하는 게 훨씬 신뢰가 갈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미친 헛소리로 치부했을 테지만.
하지만 독왕의 고희연에 참석하고 있던 이들이며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이 하나둘씩 증언함에 따라, 소문은 점차 신빙성을 얻게 되었으니.
종국에 그가 무당파 내에서도 아무도 해내지 못했다는 광룡십검을 선보였다는 말이 들었을 때는 더 이상 아무도 그 말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뇌기(雷氣)와 벽력(霹靂)을 머금은 광룡(光龍)만큼 정현을 상징하는 것도 이 세상에 없었으니!
덕분에 강호에 적(籍)을 둔 여러 무인과 문파들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난 삼십 년간 무당파를 홀대하거나, 거의 핍박하다시피 했던 문파들로서는 혹여 자신들에게 해라도 오지 않을까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검재 정현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져 이제는 홀로 만독문을 격파했다는 소문까지 나도는데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가 직접 검을 들고 무당산에라도 오르기라도 한다면 그들은 모두 끝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무당산이 있는 호북 균현은 때아닌 인파들로 다시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원 전역이 크게 들썩이는 한편.
소란의 진원지였던 만독문은 또 다른 소동에 휘말려야만 했다.
그동안 은거를 한 것으로 알려진 망량마후가 다시 세상에 나오며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다.
문주 섭정직을 검재 정현에게 맡기겠다는 말.
이것은 숫제 그들을 해한 원수에게 세력을 통째로 갖다 바치겠다는 말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당연히 내부에서는 이래저래 여러 말이 새어 나오면서 소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었지만.
안건을 집행하는 원로원은 망량마후의 수족들이나 다름없는 곳. 문 내에 그녀의 결정을 거스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문 내에서 가진 힘은 이미 만인이 보는 앞에서 독왕의 목을 직접 꺾어 버리고도 아무도 제재를 가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때부터 이미 증명된 셈이었다.
그렇게 만독문은 피해를 복구하기도 전에 안쪽에서부터 또다시 크나큰 내홍(內訌)을 겪어야만 했다.
* * *
그렇게 사천과 중원이 전부 정현이 일으킨 사건으로 시끌벅적해지던 그 시각.
창천장원은 외부와 다르게 간만에 아주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어느 누군가는 만독문과 아주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풍사 할아버지, 괜찮아요?”
“괘, 괜찮습니다…… 허허! 보십시오. 너, 너끈하지 않습니까! 허허, 허허허!”
소진의 염려 가득한 시선을 어떻게든 달래 보고자, 흑신풍사는 당당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두 다리는 사시나무 떨듯이 후덜덜 떨리고 있었다.
‘젠장!’
만독문에서 창천장원까지 오리걸음으로 오라던 정현의 명령. 덕분에 흑신풍사는 날이 밝은 뒤에야 겨우 창천장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의 하체는 도무지 그의 것이 아닌 듯 느껴졌다. 그 먼 거리를 이렇게 당도한 것이 스스로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물론, 도중에 포기를 한다거나, 내공을 쓴다거나, 걸어서 오다가 마지막에 오리걸음으로 바꿔서 힘든 척하는 등 요령을 피워 볼까 하는 생각을 안 해 본 것도 아니었지만.
―뭐, 요령 피우려면 피워. 도망치려면 도망치고. 할 수 있으면.
‘할 수 있으면.’ 흑신풍사는 살면서 그 말만큼 사악한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정현은 언제나 사람 속을 귀신같이 읽어 내곤 했다. 그 어떤 거짓말이나 속마음도 그에게 들키지 않은 적이 없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상행 사람들 전부. 말로만 듣던 도통(道通)이 저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
그런 판국에 요령을 피운다고? 정말 목이 잘리고 싶으면 뭔들 못할까. 결국 흑신풍사는 시키는 대로 따라야만 했다. 나이 칠십에 십 리도 넘는 거리를 오리걸음…… 관절 마디마디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무공에 갓 입문했을 때에도 이런 무식한 수련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정말이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문제는 소진의 앞에서는 별반 티도 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저렇게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을 보고 어찌 달래 주지 않을 수가 있을까.
“죄송해요. 진아 때문에, 할아버지만 혼나고…… 으흑!”
“아, 아, 아닙니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보십시오! 얍! 야압!”
흑신풍사는 소진을 달래기 위해서 이런저런 자세를 취하며, 이깟 일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허세를 잔뜩 부렸다.
그때.
“뭐야, 설마 진짜로 한 거야?”
갑자기 뒤에서 정현이 마당을 가로지르면서 늘어져라 하품을 하다 말고 피식 웃는 소리가 났다.
흑신풍사는 순간 드는 불안감에 식은땀을 흘리며 그를 돌아봤다.
“예? 무, 무슨……?”
“그걸 정말로 했냐고. 캬! 대단한 새끼. 어쩐지 밤새 안 보인다 싶더라. 그 거리를 진짜 오리걸음으로 왔어? 어떻게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놈이 있네.”
“…….”
“뭐, 나이 들수록 하체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니까, 운동한 셈 치고 잘됐네.”
순간, 흑신풍사의 눈동자가 뒤집히고 말았다.
‘나 저 새끼 죽일 거야! 언젠간 죽이고 말 거라고오!’
그렇게 그는 오늘도 허황된 꿈을 꿨지만.
“눈 깔아라. 그러다 진짜 독왕 옆에 같이 눕는다.”
“넵!”
몸은 반사적으로 정현의 말에 즉각 반응하고 있었다. 눈물 나는 생존 본능이었다.
* * *
기련조옹은 삼십 명도 넘는 마두들이 둘러앉아 청승맞게 떠들어 대는 꼴을 보고 있었다.
“왜, 왜 이렇게 조용하시지……?”
“그러게…….”
“대체 어떻게 우리의 목을 치시려고?”
“대롱대롱 매달려나?”
“아냐. 머리통만 모아다가 탑을 쌓을지도. 그 왜 옛날에 천사교(天邪敎)인가 하는 놈들이 광동에서 한창 날뛸 때, 검선께서 그놈들 모가지만 싹 다 모아다가 골탑(骨塔) 세우지 않았었냐. 그때 굴러다닌 머리통만 천 개가 넘었다고 들었었는데. 하아!”
“에이, 아무리 그래도…… 아가씨가 계시니 좀 더 보기 좋게 순장하려고 그러시지는 않을까?”
정현과 함께 만독문에서 창천장원으로 돌아온 이후, 마두들은 여태 겁에 질린 기색에서 못 벗어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소진도 무사히 지켰으니 용서해 주지 않으실까 하던 낙관적인 생각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 생각에 정현이 만독문에서 몇 놈이나 처치할지를 두고 내기를 하기도 했었으니.
하지만 구출된 이후, 몇 시간이 지나도록 정현이 계속 그들을 부를 기미를 보이지 않자 조금씩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언제 정현이 부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새벽을 내내 뜬눈으로 지샜던 그들은 끝내 아침 해가 뜨는 걸 보고 말았으니.
이제는 아예 피가 메마르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단 하루 사이에 피골이 상접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으니.
신나게 깽판을 칠 때는 참 기분이 좋았는데. 막상 벌을 받을 때가 되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소진에게 내기에서 져서 돈주머니를 싹 다 털렸던 것도 마음 한구석에 자꾸만 켕기긴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기련조옹은 태평한 모습이었다.
아무렇게나 되라는 듯한 투.
“큰형님은…… 두렵지 않수?”
그러다 철산흑우가 조심스레 기련조옹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두 사람은 원래 사이가 아주 좋지 않은 편이었지만, 정현과 흑신풍사에게 이래저래 고생을 같이 당하다 보니 어느새 지난 은원을 모두 잊고 호형호제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무엇이 말이냐?”
“아니…… 우리가 다 같이 사고를 친 것은 사실이오만…… 그래도 가장 크게 일을 저지른 건 큰형님이잖수.”
기련조옹은 쓰게 웃었다. 사실 그들의 말이 맞았다. 어떻게 보면 이번 사태의 시발탄은 자신이 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황보진광을 그런 폐인의 몰골로 만들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비화되지는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기련조옹은 당시 자신의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황보진광의 멱을 따 버렸을지도 몰랐다.
아들 내외와 다르게 손자 녀석만큼은 확실하게 지켰고, 그런 손자가 정말 제대로 된 짝사랑을 하고 있단 걸 알았다.
그것이 이뤄질 확률이 극히 낮다는 게 안타깝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제대로된 짝사랑을 한번 해 보는 것은 인생에 있어 아주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니 이대로 정현에게 꾸중을 듣는다고 해도 걱정이 없었다. 미련도 없을뿐더러, 자신이 어떻게 잘못된다고 해도 여기에 있는 아우들이 어떻게든 손자를 잘 지켜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가 얻은 건, 단순히 손자가 아니었다. 새로운 ‘가족’이었다.
“다들 걱정 말아라. 어떻게든 되겠지. 어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내가 모든 걸 책임질 터이니. 너희들에게 해가 갈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큰형님……!”
“형님!”
마두들은 하나같이 감격에 젖은 나머지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기련조옹은 피식 웃음을 지으면서도 빽 소리를 질렀다.
“이 덩치는 산만 한 놈들이 어디서 눈물이야! 징그러우니 썩 거두지 못하겠느냐, 이것들아!”
“형님!”
“으헝헝!”
“어어! 이것들이, 이러지 말래도! 야!”
기련조옹은 마두들이 달라붙으려 하자, 정말 기겁해 하면서 도망치려 했다. 체구가 작은 그로서는 이 덩치 크고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한 것들에게 둘러싸였다간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리저리 달라붙는 통에 결국 녀석들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해 비명을 빽빽 질러야만 했다.
“놓으라고, 이것들아아아!”
그렇게 기련조옹이 땀내 가득한 것들에 둘러싸여 아등바등하고 있던 그때.
끼익!
갑자기 그들이 있던 방문이 열렸다.
“어, 어어……!”
마두들의 시선이 죄다 그쪽으로 쏠렸다.
그곳엔 영화가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왠지 몰라도 볼이 이상하게 빨갰다.
“거, 검선 어르신께서 부, 부르셔서 온 거였는데…… 제, 제가 때, 때를 잘못 찾아왔나 보네요! 마, 마, 마저 좋은 사랑들 나누세요.”
쾅!
“…….”
“…….”
이리저리 뒤엉킨 마두들은 영화가 남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한동안 멀거니 있어야만 했다.
* * *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기련조옹이 마두들의 품(?)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던 건 그로부터 약 일 각(15분) 뒤였다.
정현은 땀으로 흠뻑 젖다 못해 목욕을 한 것처럼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있는 기련조옹을 보면서 인상을 팍 찡그렸다. 땀내가 너무 지독해 손으로 코끝을 막아야만 했다.
“야! 몸은 왜 그래? 뭐, 수련이라도 하다 왔어?”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련조옹은 차마 정현의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야만 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꼬락서니가 부끄러운 것도 부끄러운 것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정현이 내뿜는 위압감이 숨을 막히게 했던 것이다.
마두들과 있을 때는 마음을 편하게 먹었었는데, 막상 정현을 마주하고 나니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역시 천하제일인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화경을 목전에 두고 있는 자신으로서도 도저히 깊이를 헤아리기가 힘든 고수였다. 정말 사람이 맞을까 싶은.
그래서 기련조옹은 조용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어뜨리며 목을 앞으로 내밀었다.
정현이 눈살을 좁혔다.
“뭐 하는 거냐?”
“저 하나로 끝내 주십시오.”
“뭐?”
“다른 이들은 제가 저지른 일로 인해 휘말린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부디 다른 아이들은 용서해 주십시오.”
기련조옹은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꺼내는 게 너무 조심스러웠다. 정현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니, 최대한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뭔 소리 하는 거야. 그 일은 따질 생각 없으니까, 대가리 좀 집어넣지?”
기련조옹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저, 정말이십니까?”
“그래. 영도 녀석이 아침에 한 시진이 넘도록 떠들어 대고 갔다.”
정현은 영 탐탁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지만, 그래도 영도와 한 약속을 어길 생각은 없었다.
영도는 해가 딱 뜨자마자 그를 찾아와 지난 사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마두들의 선처를 구했다. 사실 정현은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지만, 그러겠다고 하지 않으면 영도가 떠나지 않고 계속 일장연설을 늘어놓을 태세라 결국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같이 자리에 있던 소진도 제발 할아버지들을 봐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고.
“영도 도사가…….”
기련조옹은 감격에 젖어 작게 중얼거렸다. 영도가 그들을 도와주겠다던 약속을 정말 지킨 것이다. 그리고 소진에게도 따로 감사의 인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보다 너 부른 건 딴 것 때문이야.”
그 순간.
화아악!
“……!”
기련조옹은 등골이 오싹해져 저도 모르게 허리를 쭈뼛 세우고 말았다.
지금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건 명백한 살의였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간에, 대답 여부에 따라 갈가리 찢어 버리겠단 악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
기련조옹은 식은땀을 흠뻑 흘려대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숨이 턱 하고 막혀서 도저히 아무 말도 나오질 않았다.
정현이 눈을 가늘게 좁히면서 천천히 입을 뗐다.
“비호표국 털어먹었던 거, 너희라며?”